CULTURE

류승완 인터뷰 – 이 죽일 놈의 삶

2008.04.14GQ

류승완은 류승범도 걱정하는 일 중독자다. 이젠 그도 삶의 질을 고민한다.

신작 촬영 중인 걸로 알고 있다.
<다찌마와 LEE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다. 임원희, 박시연, 류승범, 공효진이 나온다. 전에 만들었던 인터넷 영화의 리메이크는 아니다. (중얼중얼)

잘 안 들린다.
(누군가 사무실 문을 살짝 열었다 닫는다) 아니, 제목 빼고 전부 비밀이다! 이미 너무 많이 말했다. 필요 이상으로 말한 건 알아서 빼주길 바란다. 언론에 영화의 제목을 말하는 것조차 처음이다. 얼마 전 언론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숭례문 검색했더니 ‘다찌마와 LEE’가 나와서 전화했다는 거다. 내 참 웃겨서.

왜 그리 필사적으로 숨기나?
<짝패>때 미리 언론에 공개도 안 하고, 아무 관심 못 받다가 개봉하니까 너무 좋았다. 관객이 선입견 없이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영화전문지가 아니라 더 물을 것도 없다.
남성패션지에다 ‘한국영화 위기론은 집어치워라’같은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쓰면서 어찌 그런 소리를 할 수가 있나?

집어치울 게 없었나 보다.
아니, 농담이고. 사실 아주 시원하던데. 그 기사의 지적은 아주 정확한 것 같다. 대다수 언론이 다루는 한국영화 위기라는 게, 실은 실체가 없다는 것 말이다. 기사의 논조처럼, 위기론 자체가 하나의 거품이고 쉬운 여론몰이다. 그보다는 언론의 위기라는 게 더 맞는 말이다. 너무 호들갑스럽고 얄팍하다. 우리의 국민가수 나훈아의 바지를 벗길 정도로! 그건 아니지 않나. 한국영화의 위기는 곧 환경이 변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얼마 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또 한국영화 위기 운운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도대체 뭐하는 짓들인지 모르겠다. 경제연구소라는 놈들이 시장구조를 전혀 파악 못하고 바보 같은 보고서나 내고 말이다.

그래 놓고 요즘엔 일부 한국영화가 흥행하는 것 같으니까 부활론이 뜨는 중이다.
그러면서 월급 받고 사는 자들은 얼마나 좋을꼬.

원래 진행하기로 했던 통일신라 말기 배경 좀비영화 <야차>는 어떻게 된 건가?
<야차>는 계절이 굉장히 중요한 영화다. 그런데 스케줄이 맞는 배우는 영화에 관심이 없고, 영화에 관심 있고 나도 관심 가는 배우는 그 계절에 합류하기 힘들고, 그런 식이었다. 계절을 포기하면 지금 <야차>를 하고 있겠지만, 사실‘그’계절을 포기한다는 건 세르지오 레오네 영화에서 사막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 그냥 1년 미룬 거다.

이젠 스스로 중견 감독이라는 생각도 들 만하다.
요즘 들어 부쩍 느낀다. 나보다 어린친구들이 현장에 많아지는 거다. 한때는 농담 삼아서 자칭 중견 감독이라고 하고 다녔다. 그런데 요즘 투자자 사람들 만나면 내 작품 팬이라면서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고 말한다. 나하고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사람들이! (웃음) 어쨌든 더 이상 신인이 아닌 건 확실하고, 기능공으로 따지자면 초보 수습 단계는 벗어난 게 아닐까 싶다.

이외수 작가 큰아들도 류승완 감독 밑에서 배우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 연출부에 있다. 아주 열심히 한다. 그 친구뿐만 아니라 조감독들이 모두 뛰어나고 유능하다. 데뷔하면 다 나보다 잘 만들 친구들이다. 그들이 내게 뭘 배우기 위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현장에서의 학습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편인데, 이 친구들도 그런 현장의 흐름을 익히기 위해 있는 거다. 내가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지 않나.

이미 말하는 게 중견 감독이다.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쌓인 공력이다. 기사에 댓글이 어떻게 달릴까 계산하고 있는 거지.

원로 감독들이 중심인 감독협회에서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하면서 영진위 해체와 영화계 반성을 촉구하는 걸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
정치판이나 영화판이나. 걱정이다. 요번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경제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지 않았나. 물론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분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어렸을 때 신문지 비벼서 밑 닦고 하던 때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언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올해 감기는 지독하고 경제는 어려웠다. 문제는 누구하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요즘은 삶의 질이라는 게 일종의 보너스 개념이다. 이미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는 혜택말이다.
돈 돈 돈 하면서 여유 없이 사는 게, 그게 정말‘삶’이맞나?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월세, 전세 전전하고. 50대 돼서도 자기 집 없고 애들 대학 보내고 나면 암 걸려 있는 것 아닌가? 암 안 걸려 있으면 마누라 바람나 있고 남편은 회사 비서하고 눈맞아 있고, 이게 뭐냐고. 그걸 어떻게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일종의 쳇바퀴 같다. 일단 그 시스템 안에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냥 그렇게 인생 뭐 있어? 하면서 가다가 죽는 것이다.
영화제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를 가보면서 정말 절실히 느꼈다. 파리 사람들 보면 자동차 백미러에 청 테이프 붙이고 다니면서도 너무 멋있게 살지 않나. 이태리 사람들 봐라. 1년동안 일하고 나서 번 돈 모두 패션에 투자하면서 자기를 꾸미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우리나라에선 상상 못할 일이다. 대낮에 밖에 나가 담배 피고 있으면 저 직없 없는 새끼 부모 잘 만난 새끼 소리 들을 거다. (웃음)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고 언뜻 보면 못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삶의 질이 상당히 높다.
삶의 만족도는 통장 잔고와 절대 상관없다. 우리나라에서 경제 어렵다고, 파탄 났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 봐라. 그런 말 하고 혀 차면서 자기는 벤츠 끌고 다닌다.

어떻게 보면 한국영화 위기론을 팔아먹고 사는 일부 저질 기자와 비슷한 것 아닌가?
아! 난 정말 이 세상이 가오 때문에 다 망가지는 것 같다. 숭례문 봐라. 국민을 위해 개방한다고 북치고 할 때는 멋지고 좋았지. 중구청에서 일하는 고위 공무원 월급 한 달에 만원씩만 줄여도 거기 경비 채용할 수 있는 돈 나왔을 거다. 괜히 보도블록 깔았다가 깼다가 하지 말고 말이다. 숭례문 화재현장 복구하지 말고 그냥 뒀으면 좋겠다. 성수대교 무너졌을 때도 그냥 뒀어야 했다. 그래야 잊지 않고 경계를 한다. 국보 1호라고 하는데, 자기네들 금고지키는 데는 별 난리를 쳤을 거다. 숨어가지고 딱지 끊게 하지 말고 이런 거, 국민 재산 지키라는 거다.

인터뷰 나가면 영락없는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히겠다. 새 정부 아래서 피곤하겠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이번 MB 정부에 기대하는 게 굉장히 크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한 게.
난 늘 흐름을 타는 스타일이다. 이상은 노코멘트다.

스필버그 영화를 좋아하지만 스콜세지 영화처럼 살아왔다고 하지 않았나. 아직도 여전히 그런가?
중산층이 돼서 그런 것 같다. 전처럼 분노하지 않는다. 계급적인 공포인가 보다. 그래도 아주 조금 싸우긴 한다. 얼마 전에도 내 차가 물 튀겼다고 소리 지르는 아저씨들한테 술 쳐 마셨으면 곱게 집에 가라고 나도 막 소리 지르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좀 잘못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알아보면 어쩌려고.
상관없다. 바보들. 예전에 한 번, 이젠 뭘 더 이상 성취하려는 것보다 지키려는 게 더 많아졌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젠 점점 더 성취할 것도 없고 지키려고 할 것도 없다는 심정이다. 당장 내일 일도 모르고 다음 상황을 모르는데 왜 미래때문에 불안해야 하나. 현재를 살아가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자꾸 생각하고 실천하려한다. 그게 굉장히 공익광고스럽고 빤한 이야기지만, 정말 중요하다. 내가 커피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운동하고 싶을 때 운동할 거다.

그래서 당신은 7주년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암을 물리쳐야지.

    에디터
    허지웅
    포토그래퍼
    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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