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에서 뮤지컬배우로 – 윤형렬 인터뷰

애매한 가수 데뷔 음반을 품고 노트르담의 꼽추가 되어 뮤지컬 무대 위를 절뚝거렸다. 그리고 윤형렬은 후음성의 깊숙한 목소리로 단숨에 천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셔츠와 니트는 띠어리 맨, 재킷과 바지는 벤셔먼, 시계는 D&G by 갤러리어클락, 스니커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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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 내내 할아버지 같은 신음 소리를 내더라.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에서 너무 구부리고 움츠리고 다리를 절길래, 몸을 좀 젖혀보라는 의미에서 한 촬영이었다.

힘들었나 보다. ‘콰지모도 일어서다’이런 제목은 아니겠지. 간만에 스트레칭을 한 것 같다. 꼽추 역할 때문에 허리에 통증이 자주온다. 그런데 지금은 목이 더 안 좋다. 콰지모도 역에 더블 캐스팅된 김범래 선배의 공연을 몇 번 대신 했더니 목에 무리가 왔다.

작년 10월, <노트르담 드 파리>의첫회공연때에도예정된캐스팅인 김범래를 대신해 공연했었다. 덕분에 주목도 많이 받았다. 외국어 버전으로는 아시아권에서 처음으로 올린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이었다. 그때도 선배가 몸이 안 좋아 얼떨결에 내가 아시아 초연 콰지모도가 됐다. 그때는 이게 공연인지 리허설인지 모를 정도로 준비도 없이, 긴장할 틈도 없이 무대에 올라갔다. 알고 봤더니 큰 의미가 있는 공연이었더라.

가수로 데뷔해서 뮤지컬은 처음이었는데, 그때 공연이랑 비교해 지금이 훨씬 수월해졌나? 무대 위에서 시야가 넓어졌다. 하지만 길게 공연을 해서 그런지, 익숙해지고 요령이 생겨서 그런지 요즘 매너리즘에 빠졌다. 원통에 매달려 노래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안무팀과 박자가 안 맞으면 집중이 안될 때가 꽤 있다.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두 장면에서 딴 생각이 들어버리면 공연하면서도 카타르시스를 못 느낀다.

신인인데 벌써 그러면 어떡하나.그러니까 말이다. 내가 괜히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게 내 성격인 것 같다. 완벽주의다. 그래도 신인에게 ‘매너리즘’은 어색하다. ‘무명가수였던 윤형렬이 일약 뮤지컬 스타가 됐다’라는 평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무명가수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아예 무명이었던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좀 어설프게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 뮤지컬을 하게 되면 고깝게 볼 수도 있고, 선입견이 있으면 ‘가수니까 연기가 저래’, ‘가수 하다 망해서 뮤지컬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가수로선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2003년 15회 유재하 가요제에서 은상을 탔고 2006년 12월에 디지털 앨범을, 2007년 2월에 1집 앨범을 냈다. 솔직히 말하면 실패는 아니다. 성공했다, 안 했다 할 수 없을 만큼 아예 알려지질 않았다. 방송출연을 안 했고 대중에 노출될 기회가 없었다. 이런 말 이상하지만, 홍대 인디밴드랑 다를 바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나는 장동건처럼 생겼거나 노래를 너무 잘해 길에서 대충 노래해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마침 공연기획사 측에서 오디션 보라는 연락이 와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겠다. 아니, 그건 아니다. 처음에는 겁났다.

가수로서도 앞길이 불투명한데, 뮤지컬 제의가 들어왔으니 말이다. 그때 나는 뮤지컬을 몰랐고, 매력도 못 느꼈다. 한번은 대학로에서 뮤지컬을 봤는데 엄청 실망했다. 뮤지컬 배우라면 춤, 노래, 연기를 다 잘해야 하는 거 아닌가? 노래도 가수보다 못하고 춤도 댄서보다 못 추고 연기도 영화배우보다 못했다. 이도 저도 아닌 아마추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의가 들어왔을 때 인식이 안 좋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오디션은 어떻게 봤나. 노트르담 드 파리 DVD를 찾아보고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디션엔 노래만 외워서 갔는데, 연출자가 이 노래 저 노래 다 시켜봤다. 듣기론 내가 가장 긴 시간 오디션을 봤다고 했다. 연기를 시킨 것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 자리에서 등을 굽혀 봐라 했다면 가수로서 나름 ‘곤조’도 있고 하니까 굴욕감 느꼈을 수도 있을텐데. 250 :1의 경쟁률에 5차까지 이어지는 오디션이었다. 없던 열정도 생겨나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하고 싶어졌고, 더 열심히 했다. 4차는 연기 테스트였다. 콰지모도 걸음걸이로 연기하며 노래하는 게 너무 어색했다. 절름발이처럼 다니면서 머릿속으로는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오디션에 온 다른 사람들이 앞에서 계속 망가지고, 바보 같고 어수룩한 콰지모도 표정도 열심히 하니까 나도 덩달아 되더라.

뮤지컬 배우 남경읍은 70년대에 뮤지컬을 처음 시작할 때 서울 각지를 돌며 성악, 피아노, 발레, 기계체조 등등을 하루종일 배웠다고 했다. 그런 말 들으면 뮤지컬 배우 지망생들에게 죄송하다. 나의 레슨 장소는 <노트르담 드 파리> 연습실이었다. 선배들이 고가의 레슨을 무료로 해 준 셈이다. 서범석 선배는 아직도 레슨비 내놓으라고 한다.

배운다고 다 잘하는 건 아니다. 내 입으로 말하면 좀 민망하지만. 선배들이 내가 스펀지처럼 빨리 배운다고 하더라. 알려주면 바로 ‘쫙’ 받아들인다고. 나도 신기하다. 가끔 선배들이 ‘이렇게 해’가 아니라 ‘이런 느낌 알겠지’라는 식으로 가르쳐 줄 때가 있다. 그러면 나도 느낌이 ‘빡’ 온다. 그리고 나는 한번 마음먹으면 열심히 한다. 고등학교 때 줄곧 반에서 꼴등을 했는데, 핸드폰을 갖고 싶어 공부했더니 11등을 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도 역할이 본인에게 적격이었던 것 같다. <노트르담 드 파리>와 같은 노래로만 이어지는 뮤지컬을 만난 건 행운이다. 연기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가수 출신이 대사가 있는 뮤지컬을 했다면, 지금은 맨땅에 헤딩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콰지모도 캐릭터가 워낙 강해 그냥 분장만 하고 가만히 있어도 연기다.

연기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는 것인가.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의미 없이 한 행동인데, 관객들이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내가 페뷔스나 그랭구아르 역을 맡았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다.

연기는 신인치곤 잘했다는 평가다. 신인치곤 잘했다는 말은 좋은 뜻일 수 있는데, 내 연기가 완벽하지 않은데 신인이니까 용서가 된다라고 해석된다. 그러면 나는 또 다른 목표를 잡는다. 그 소리 듣지말자. ‘신인치곤 잘한다’는 말보다는 ‘신인인데 잘한다’는 말을 듣는게 좋다.

윤형렬만의 콰지모도는 어떻게 연기했나. 선배인 김범래의 콰지모도와 종종 비교되기도 한다. 김범래 선배님은 뮤지컬을 12년이나 했다. 또 인상도 훨씬 강하고 목소리도 더 굵다. 그래서 김범래의 콰지모도는 한이 많고, 포악한 느낌이면서도 프랑켄슈타인의 순수함이 보이는 인물이다. 나는 어차피 가진 것도 많이 다르고, 음색도 다르기 때문에 같은 컨셉트를 밀고 나가면 절대 못 따라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표현하는 콰지모도는 11세 정도의 어린 남자아이다. 가식 없고, 좋아하는 거 못 숨기고. 칭찬받으면 좋아서 뛰어다니는 컨셉트이다. 너무 순수해서 한이 많다는 것도 모른다.

지금 목소리가 너무 콰지모도 같다. 그런데 데뷔 앨범을 들어보니까 그렇게까지 굵진 않았다. 창법을 약간 다르게 했다. 이런 목소리로 대중 가요를 부른다면 사실 거부감이 먼저 들 거다. 밤에 들으면 엄청 무서운 목소리인데.

생각해보면 뮤지컬 배우들은 유려하고 맑은 목소리가 많아 당신의 목소리와 확실히 차별된다. 하지만 대중음악에서는 분명 식상한 목소리다. 대중음악을 할 때는 솔직히 말하면 짜증이 났다. 난 원래 목소리가 이렇다. 그런데 어느 누구는 목소리를 일부러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솔직히 피해자다. 가수들 중에서는 나와 비슷한 목소리가 많지만 뮤지컬계에서는 없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아, 이거구나. 가수 하지 말까?’ 그 목소리로 콰지모도 외에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시는 선배들도 있다. 워낙 목소리 색깔이 강하니까. 그런데 나는 원래 노래를 하던 사람이고, 김종국 씨 같은 목소리를 낼 수는 없겠지만, 목소리 색깔과 톤을 바꿀 수는 있다. 창법으로, 연습으로 바꿀 수 있고 그게 내 무기다.

차기작 섭외가 물밀어 들 것 같다. 다른 뮤지컬 작품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사실 <노트르담드 파리>로 이렇게 주목 받았는데. 이 다음의 행보를 잘못 내딛었을 때 가져올 파장이 두렵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해할 것이고. 잘못하면 쌓았던 것까지 다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도, 뭘 해도 잘하고 싶다. ‘차라리 그냥 콰지모도만 하지’ 그런 소리 듣고 싶진 않다.

뭘 해도 콰지모도보다 작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럴 거다. 하지만 크게 두렵진 않다. 콰지모도보다 더 큰 역할을 기다리고 있다가는 뮤지컬 한 번 하고 그냥 죽을 수도 있다.

대중 앞에 나타나는 다음 모습도 확실히 뮤지컬인가? 잘 모르겠다. 가수로서 앨범을 내게 될지, 뮤지컬을 하게 될지. 지금은 <노트르담 드 파리>에만 전념하고 싶다. 크게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은 없다. 뮤지컬하면 윤형렬이 아니라, 그 사람은 뮤지컬을 잘하는 사람이야,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사실 음반 같은 경우에는 워낙 불황이라 잘못 냈다가는 오히려 제 살 깎아먹는 상황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럽다. 아, 앨범 얘기하니까 갑자기 힘들어졌다.

많이 피곤해 보인다. 얼마 전 공연 커튼콜에서 몹시 지쳐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곡인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는 ‘않아~’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끝난다. 요즘따라 그때 자꾸 현기증이 난다. 모든 신경이 소리에만 가 있고, 아무 느낌이 없어진다. 최근 4번 정도 갑자기 눈앞이 컴컴해지고 아무것도 안 보였다. 몸이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딱 3일만 쉬었으면 좋겠다. 내 입으로 감히 이렇게 얘기하기에 부끄럽지만 그래도 나는 ‘삑사리’는 안난다.

요즘 자기 삶이 제어할 수 있는 범위 안인가. 계속 나에 대한 재발견을 하고 있다. 내가 이런 것도 할 수가 있구나. 스스로도 신기해하고 있다. 물론 내 삶을 스스로 제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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