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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섹스의 비용

2008.08.14GQ

섹스엔 돈이 든다. 처음할땐 더 많이 든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건데 그 정도쯤 못 쓸 거야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아깝다.

남자의 이야기

어찌 되었건 섹스에 관한 에디터의 사고는 보편적이지 않다. 낭만적인 걸 좋아하지만 금방 싫증을 내고 심지어 요즘은 권태롭기까지 하다. 지금, 사실, 남자가 첫 섹스의 비용에 대해 탐구하는 건 매우 이중적인 작태라고 생각한다. 남자에겐 대실 3만원(2만원짜리도 많지만), 굳이 자고 가지 않더라도, 밤 아홉 시 이후엔 5만원만이 필요할 뿐이다. 아니라고? 그럼 뭐가 더 필요한데?

아, 만나면 밥 먹어야지. 첫 섹스부터, 무작정 모텔에 데려갈 순 없으니까. 그래도 한 번은 밤 열 시쯤 만나서 한강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강물을 내려다보며 섹스하자고 조른 적이 있다. 여자에게 조르면, 의외로 놀라운 결과를 얻는다. 그럴 땐 약간 아이 같아질 필요가 있다. 나중에 그 여자는, 이렇게 철없는 남자랑 하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서 잔 거라고 했다. 밥값이라고 할 것까진 없고, 모텔에가기 전, 매점에서 콜라랑 포카칩을 사먹었으니까 2천원을 썼다. 돈번 기분이었다. 문제는 모텔. 이 근처에 모텔이 있었나? 다행히 잡지에서 본 모텔 이름이 – 와우, 침대 바로 옆에 하트 모양의 월풀 욕조가 달렸다던 – 떠올랐다. 강남역쯤이라고 했으니까 멀지도 않았다. 내비게이션에 쳤다.

유명 모텔에 한정돼 있는 게 문제지만 내비게이션은 모텔도 잘 찾는다. 발레 파킹을 하고 들어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만원짜리를 세는데“, 십만원입니다”하는 거였다. 태연한 척하느라 애먹었다. 신용카드로 계산했다. 일회용품 값 천원은 현찰로 내야 한다고 해서 따로 천원을 더 냈다. 객실이 궁전 같았던 것도 아닌데(하트 모양 욕조가 달린 방은 15만원이었다). 잘 모르는 동네에서 갑자기 섹스하게 되면 이처럼 의외의 지출이 생길 수 있다. 강북 일대였다면, 오만원에 해결할 수 있었다.

마음이 맞았든, 여자가 오래 참았든, 나에게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성적 매력을 발견했든, 말 한두 마디에 가질 수 있는 여자가 있는 반면, 넘어올것 같지만 절차 생략을 싫어하는 여자도 있다. 그럴 땐 돈이 꽤 든다. 결국 밥값이지만. 섹스를 걸고 심리싸움을 벌여야 하는데 삼겹살집이나 분식집에갈 순 없다. 당연히 레스토랑이다. 파스타랑 리조또를 하나씩 시키고,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샐러드를 추가하면 10만원이다(여자들은 왜 샐러드 같은 걸 먹을까). 술도 빠질 수 없다. 화이트 와인을 마실땐 빌라 M 모스카텔을, 레드 와인을 마실 땐 에스쿠도로호나 1865를시키는 편이다. 그러면 저녁 한 끼에만 15만원이 나간다. 이런 날 첫 섹스에 성공하면 모텔에서의 태도나 몸짓, 신음소리까지 우아해지긴 한다. 그러나 그건 별로 좋지 않다. 여자들은 우아함에 취하면 수동적이 된다. 예를 들어 애무가 오로지 남자들만의 의무라는 말도 안 되는 착각에 빠진다거나.

한 번 섹스 하는 데 20만원(모텔비 포함) 가까이 쓰는 날엔 굳이 이럴 필요가 있었나, 싶다. 아, 물론 연인 관계로서의 발전 가능성, 직설적으로 말하면 앞으로도 두고두고‘할’사이가 아닐 때에 해당 하는 감정이다. 어떤 남자들은 한 번 섹스한 여자랑은 다시 안 한다는데 에디터는 비교적‘원 나잇’을 피하는 편이다. 매번 새로운 여자랑 하면 신선하긴 하지만 그때마다 어떻게 넘어오게 할까 궁리하는게 괴롭다. 게다가 이십만원이 드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다. 그 돈이면 사실 편하게 누워만 있어도 섹스할 수 있는 곳에 가는 게 낫다. 나는‘신상’에 대한 환상이 다른 남자들보다 적어서 섹스 비용을 많이 아껴왔다. 섹스 횟수가 두 번, 세 번 늘어날수록 레스토랑에 가는 일은 줄어든다. 떡볶이만 사주고도 얼마든지 분위기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여자만 속옷 사는 거 아니다. 에디터도 품위 있는 팬티를사기 위해 백화점에 가봤다. 엄마가 사온 팬티는 모두, 만원에 3장 주는 데서 사온 것 같은 디자인이다. 백화점에 가니 한 장에 보통 2만원이 넘었다. 근데 돈도 돈이지만 어떤 팬티가 품위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 또 할 말 있다. 여자한테 모텔비 내라고 할 생각은 절대 없다.꼭 한 번, 3만원인 줄 알고 들어간 모텔에서 남은 방이 특실밖에 없다며 6만원을 내라고 하길래 여자친구가 카드로 대신 낸 적은 있다. 민망하지만, 고마웠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기억하지. 여자들이 최소한, 음… 오늘 이걸 먹고 모텔에 가자고 하겠네, 라고 눈치 챘다면, 밥값 정도는 알아서 내면 좋겠다. 그래야 섹스할 때 남자들도 더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여자도 그렇겠지만, 남자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상대를 만날 때 힘이 솟는다. 운동을 시키려면 뭘 좀 먹이고시켜야지. 매번 섹스 끝나고 나서 내 이마에 난 땀 닦아 줄 때만 그렇게 얘기하지 말고. 근데 이거 읽고 있지? 글/ 이우성  (에디터)

 

여자의 이야기

첫 섹스를 하기 전엔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 그와 섹스할 때의내 모습은 아직 그가 모르는 내 모습이고 사실 그건 나도 모르는 모습이다. 나는 그를 보는 게 아니라 그의 눈을 통해, 섹스하고 있는 나를 보려고 애쓴다. 내겐 그의 뱃살이나 목의 주름에 신경 쓸 겨를이없다. 가까이서 보는 내 피부, 머릿결, 엉덩이와 가슴의 탄력, 다리의 매끈함, 이런 것들이 더 마음에 걸린다. 그가 나에게 다정한 것이 섹스 이전의 기대 때문일까봐,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까봐, 다음날 아침 그가 문득 냉정해질까봐 무섭다.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데 있다. 그 두려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면 할수록 하고 싶은마음도 점점 커졌다.

철저하게 준비함으로써 두려움에 맞서려고 했기 때문에, 그를 만난 후 내 생활은 바쁘고 촘촘해졌다.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조차 몸의 어느 한 부분은 늘 바빴다(아놀드 케겔 박사 때문이다). 우선 털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면도기와 눈썹칼을사용하지만, 남자의 푸르스름한 턱이 아닌 다음에야 면도 후에 남는자국들이 예쁠 리 없다. 다리와 팔에 난 털은 멀리에선 보이지도 않지만 쓰다듬으면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건 아니다. 나는 애초에 털 같은 건 아예 나지도 않았던 것처럼, 보들보들하고 티 없는 아기이고싶었다. 레이저 시술을 하는 병원에 갔다. 겨드랑이는 12만5천원. 다른 부위는 털의 수를 짐작해 가격을 매긴다. 겨드랑이와 팔 다리만하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코밑의 솜털, 뒷목의 솜털과 등의 잔털, 비키니 라인까지, 한번 하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비용이, 엄마와 싸우고 난 뒤 문을 쾅 닫고 들어가면 줄줄이 이어지는 잔소리처럼끝도 없이 불어났다. 해야 할 일뿐 아니라 써야 할 돈도 너무 많았다!
속옷은 빅토리아 시크릿으로 골라야 했다. 이건 의심의 여지가없다. 일종의 부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갖게 하는. 남자들이 침 흘리면서 보는 게 속옷이 아니라 그걸 입은 모델의 몸이라는건 물론 안다. 말하자면 나는 속옷이 아니라 그 이미지를 사고 싶었던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9만8천원.‘ 오늘 밤 이렇게 될 줄 몰랐지만 언제나 이렇게 입어요’하는 것 같은 은은한 흰색과(물론 가슴을 모아주는 효과도 있다)‘ 나도 오늘 밤을 기다려왔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섹시한 레이스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둘 다 사버렸다. 옆에서 구경하던 친구가“그거 벗겨질 때까지 몇 초도 안 걸릴 텐데?”라며 빈정거리는 데도 불구하고.

다음 달 카드 청구서를 떠올리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달콤한 향이 나는 보디로션 2만6천8백원, 그의 허벅지를 따끔거리게 하는 게 아니라‘간질여야’하니까 샴푸와 컨디셔너 4만1천2백원, 다음 날 아침 햇살에도 부끄럽지 않기 위해 피부관리 10회에 50만원. 네일 케어를 할 때는 그의 가슴을 쓰다듬는 내 손가락을 따라가는 그의 시선을 떠올렸고 페디큐어를 할 때는 정성스레 발가락을 빨아주던 첫사랑을 생각했다. 합쳐서 7만원. 두려움과기대와 카드빚이 눈밭을 정신없이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한데 뭉쳐 커져가고 있었다.

그때 그걸 발견했다. 가슴 탄력 크림! 어떤 여자가 자기 블로그에 그 크림을 사용한 뒤 달라졌다며 깊이 파인 옷을 입은 사진을 올려놓았다. 꽉 조이는 것 같지도 않은데 가슴 골이 보였다. 그 밑으로어디 제품이냐고 애타게 묻는 리플만 장장 7페이지에 달했다. 어쩐지 경쟁력이 떨어진 것 같아서 가슴이 덜컹했다. 그의 옛 애인은 저걸 썼을까? 아니면 타고난 글래머였을지도 모르지. 크림은 31만원이나 했다. 눈을 질끈 감고 샀다. 제품설명 창 옆에서‘분홍유두크림’도 나를 유혹했다. 4만 3천 원. 나는 젖꼭지가 분홍색인 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남자들은 언제나 그 얘기를 했다. 그래서… 샀다.

그 은밀하고도 요란스러운 준비 과정을 거쳐 – 엄밀하게 말해 아직 맹렬하게 준비하는 중에 – 그와 첫 섹스를 했다. 실망스러웠다. 사실 첫 섹스는 누구와 하든 만족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첫섹스라서가 아니었다. 하고 나서“좋았어?”라고 묻는 남자도 짜증나지만 아예 관심조차 없는 남자는 혐오스럽다. 그 자리에 있는 게 꼭나였어야 했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건 교감이라기보다 배설에가까웠다. 내가 한 모든 준비에는 그의 시선과 느낌이 나를 지배할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에게 물었다. “너, 솔직히 나랑 자게 되어서 돈 굳었다고 생각하지?”그는 얼굴이 시뻘개지면서 화를 냈다. 그는 질문의 핵심을 몰랐다. 그래서 나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자기가 하룻밤을 위해 얼마만큼의 돈을 쓰는지 계산해 보임으로써‘돈이 굳는게 아니라고’말하려고 애썼다. 그 남자 앞에서, 아 정말이지, 본전생각이 났다. 글/ 김지현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에디터
    이우성
    기타
    글/ 김지현(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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