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하석진의 야망의 계절

2008.08.18GQ

그런 대로 인기가 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방 제대로 지르든, 휴식이며 숨고르기며 자존심이며 비상이든 하석진은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말한다. 이 젊은 배우가 숨기지 않는 정직은 시퍼렇고 시뻘겋다. 손을 대면 묻는다.

러닝톱은 코데즈 컴바인, 청바지는 배우 본인의 것

러닝톱은 코데즈 컴바인, 청바지는 배우 본인의 것

잘생겼어요. 그쵸? 네? 아니. 더 잘생긴 사람들 많이 있는데.

TV에 잘생긴 남자가 나오면, 남자들은 둘 중 하나를 택하죠. ‘저놈 멋있다’, 혹은 ‘저 새끼 왠지 싫다.’ 그쵸. 저도 테레비에 뭔가 좀 괜찮은 얼굴이 나오면 왠지 싫어요.

<GQ>의 남자 독자들은 당신을 어떻게 볼까요? 사실 오늘 이렇게 촬영하는 줄 몰랐는데,지금 몸은 최근 6개월 동안 가장 안 좋은 상태라서…. 군인 독자들은 고참 쫄병들 간에 보면서 그냥, 얘 몸 좋다 정도? 근데 남자 기사 별로 안 볼 거 같긴 해요.

그런 반응이라면 인터뷰 말고 사진이나 한 컷 더 찍는게 낫지 않을까요? 그렇진 않죠. 사진은 첫인상이고요. 저에 대해 궁금했던, 혹은 궁금하지 않았더라도 책을 보면서 ‘어 얘는 누구야? 얘 거기 나온 애 아니야?’ 저도 그렇거든요. 인터뷰 적게 한 티가나는 신인들 대답 보면서 아휴, 나도 예전에 이랬겠구나 그러기도 하고요.

이를테면 어떤 대답이죠? 연기에 대한 엄청난 야망이 있다는듯 ‘저는 정말 열정을 다 바칠거예요. 많이 지켜봐 주시고’ 뭐 그런 거. 딱 보면 입에 발린 대답인 거 알잖아요.

그런 말 안할 거죠? 네. 하석진은 왜 배우를 해요? 처음엔 사실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했어요. 대학생이 일반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 시급 3천원 버는데, 이건 어떻게 운 한 번 좋아서 광고 찍으면 5백만원정도 받으니까, 살짝 일 년 정도만 휴학하고 해볼까 생각했어요.

사고 싶은 게 있었어요? 그때 SM3가 사고 싶었어요. 그래서 SM3를 샀어요. 뭔가 다이내믹 하다는 걸 느꼈어요. TV에 나온 제 모습 보면서 좀더 잘해야지, 아 이번엔 되게못했네, 뭐 저렇게 어설퍼? 만날 욕하던 탤런트들이 하던 걸 제가 똑같이 하니까 그걸 없애려는 욕심도 생기고, 막 일 년을 이 년으로 연장시키고 이 년을 삼 년으로….

그러니까 돈 때문에 시작했다? 하하, 네. 이 얘기는 친구들한테만 했던 건데.

지금은요? 이 일은 얼굴을 ‘팔고’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돌아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독을 품기 시작했어요. 3년 전보다 많이 나가지 못했거든요? 돌아갈 수 없으니 잘 해야죠.

배우가 연기를 하는 건, 가수가 노래를 부르거나, 의사가 환자를 보는 것과 같은 듯 다르죠. 연기자는 뭐랄까 인격 자체를 변화시키면서 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게….

인격요? 아, 성격. 음, 친구들로부터 쟤는 저런 성격이야, 걔는 원래 늦잖아, 걔는 게임을 잘해, 술 잘 마셔, 싸울 때마다 이런 버릇이 있어,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듣는 얘기가있잖아요. 그런데 배우는 다음 캐릭터가 이거다 하면 그 캐릭터를 위해서 몇 달 동안 살아야한다는, 뭐랄까 거창하게 말하면 영혼을 계속 바꿔야 하는 직업이랄까요?

<행복합니다>의 강석 역할은 어때요? 걔가 처한 어려움이 뭔지는 알지만, 솔직히 시골집에 여자친구랑 도망쳐 왔으면 그 다음에 이뤄지는 일은 당연한 거잖아요? 남자로 태어났으면 본능인데, 본능을 억제하면서까지 ‘난 못하겠어’라고 말하는 거는 솔직히 이해가 안 돼요.

연기는 어때요? 주위 얘기와는 별도로 자신이 만족하는 부분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음, 좀 늘었다고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아무래도 연기자의 기본기가 떨어지는 거 같아요. 연극영화과 가면 처음부터 아에이오우 발성 연습부터 하고, 무대에 서서 소리를 빽빽질러보는데, 저는 항상 ‘생활연기’로, 나라면 이렇게 했겠다고 생각하는 정도라서요. 근데, 평소에 꼭 정확하게 단어를 ‘찝어서’ 얘기하진 않잖아요. 잘 못 알아들어서 ‘뭐라고?’ 되묻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연기는 전달이 안되니까, 발음을 ‘찝어서’ 해야 하니까.

발음에 신경 쓰다 보면 얼굴이 굳죠?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워지죠. 연습하면서, ‘아 이런 감정이구나’느껴도 촬영장 가서 “레디 액션” 막 이러면 다 깨져 버려요. ‘아 카메라 돌아갔다. 큰일났다. 대사는 외웠으니 다행이다. 연습할 때 감정에 사로잡힌 것과 현장에서의 갭이 되게 컸는데 요즘 그 차이를 많이 줄였다고 생각해요.

젊은 배우에게 기대하는 것이 꼭 미친듯이 선명한 발음으로 신들린 듯 연기하는,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르겠다 나는 달린다’식의 어떤 불안? 매력? 저는 그런 게 해보고 싶어요. <커피 프린스>의 사장님 있죠. 그런 식으로 여자들이 ‘어머 쟤 너무 멋지지 않니? 저런 남자친구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거 있죠. 고삐리들이, ‘야, 학교짱 쟤 멋있지 않냐?’ 이게 아니라 호감층이 이삼십대 여자들인 그런 걸 해보고 싶어요.

뭔가 아직 제대로 못 만났다고 생각해요? 네, 그런 생각 많이 해요. 동료 배우들은, 연기생활하다 보면 ‘이거다’하는 때가 온다, 연기하면서 진짜 전율을 느꼈다, 그런 얘기를 하는데, 전 그런 감정 아직 한 번도 못 느껴 봤어요, 사실. 다음 작품이 뭐다 그러면 무조건 현장 들어가 혼나면서, 칭찬 듣기도 하면서 계속 그랬어요.

이래도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이군요. 네, 지금이 그때예요. 스케줄이 ‘빡세고’, 미니시리즈 주인공처럼 밤샘 촬영을 하는 건 아니지만 한 캐릭터에 묶여서 6개월간 지낸다는 게 저에겐 되게 지치는 일이라서요. 뭔가 시간이 필요해요. 그냥 시나리오 받아서, 어떠냐? 괜찮냐? 매니저가 물으면, 네 괜찮은 거 같아요, 그런 식이었어요. 이게 정말 하고싶다 언제 들어가냐, 아직 한 6개월 남았다, 6개월 후에라도 꼭 만나서 그걸 하자, 이런 상황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서로의 입장이 있죠. 회사나 매니저 입장에선 자기 연기자를 “요새 다음 작품 찾고 있어”라고 소개하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더라고요.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른다는 가사가 있잖아요. 저는 알고 있어요. 젊다는 거. 잃기 싫어요. 저는 중년의 저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극단적이지만 제임스 딘은 죽어서 제임스 딘이기도 하죠. 네. 결국 지금이 중요해요. 내가 지금 최선을 다 한다는 그것만…. 그래요. 제임스 딘은 죽어서 제임스 딘이겠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살아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이기도 하죠. 음, 공대생이잖아요. 그건 어떤 거예요? 얘가 어디서 놀다 온 놈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는 그런…. 그게 배우와 무슨 상관일까요? 캐스팅 권한을 가진 자가, 물론 연기력도 보고, 어떤 놈인지, 어떤 얼굴인지도 보지만, ‘너 한양대 공대 다녀?’ 이놈이 그래도 중고등학교 때 나름 엄마 말잘 듣고 열심히 보낸 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거 같아요. 뭐, 쓸모는 없어요.

또래 배우들이 자극이 되기도 하나요? 조인성 씨가 뭐, 나이는 제 또랜데, 그런 사람들과 비교할 땐, 쟨 언제 시작했는지 그런 걸 봐요. 저보다 오래됐으면 ‘됐어 괜찮아’ 그러죠. 집에 도표 그려놓은 거 아니에요? 이게 공대생적인 마인드긴 한데, 제 또래에 제 레벨에 데뷔 연차도 비슷한 애들을 우연히 TV로 보다가, 좀 늘었는데? 하면서 묘한 생각이 들죠. 얘 뭐야? 어디서 배운 거야? 데뷔한 지 얼마 안된 애가 잘 되면 찾아봐요. 뭐야, 연극영화과 나왔네. 고등학교 때부터 했던 놈이잖아?

하하하. 못된 심리인데, 저랑 비슷한 레벨인 애가 연기 못 한다는 기사 나오면 되게 고소해요.

하하하. 그들과 어떻게 구분되어야 할까요? 글쎄요, 구분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안해요. ‘나는 액션이 되잖아’ 뭐 그런 자그마한 게 있긴 하지만…. 양아치 연기는 류승범이 짱이야, 이러는 것처럼 그런 캐릭터를 갖기에는 아직 레벨이 아닌 거 같아요.

술 잘 마셔요? 네, 좋아해요. 어제도 술 마셔가지고 얼굴 약간 부었는데. 오늘 진짜 이렇게 옷 입고 찍을 줄 알았으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하고 오는 건데.

술마시고 저지른 업적이 눈부신가요? 작년 이맘때 <못말리는 결혼> 무대인사를 다닐 땐데, 임채무 선생님이랑 폭탄 네 잔 마시고 집에 왔는데, 들뜬 기분에 동네 친구들을 만나서 클럽까지 갔어요. 클럽에서 놀더라 그런 말 듣기 싫어서 모자 쓰거나 하는데, 그날은 너무 풀어져서 무려 스테이지에 올라가 버린 거예요. 올라갈 수도 있죠 뭐. 근데 스테이지와 벽사이 틈새에 다리가 꼈어요. 자빠지면서 북 긁혔는데 씻지도 않고 잤더니 해뜨고 보니까 곪았어요. 무대인사를 절뚝거리면서 다녔는데, 매니저가 ‘무대인사 도중 다쳐 목발 짚고도 여러분 만나러 갑니다’ 뭐 이런 기삿거리를 막 만들어서…. 인터넷에 찾아보면 지금도 있을 거예요. 친구들은 알죠. 춤추다가 클럽에서 다리 껴 자빠진 주제에.

좋은 작품도, 그렇게 자빠지듯이 그렇게 만나게 될까요?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가 정말 바라는 거는 연기를 하면서 행복하다는 걸 한번 느끼고 싶어요. 지금처럼 쫓기면서 아, 일 나가네. 내일 촬영 몇 시라고? 일곱 시 반이야? 왜 이렇게 일찍이야? 첫 신이야? 왜 첫 신이야? 이런 게 아니라, 아 내일 이 신이네, 진짜 힘쏟고 싶은 신인데, 이러다가 딱 가서, 원하는 대로 됐다고 느끼는 행복감을 갖고 싶어요.

결국 만난다고들 하니 일단 믿는 거죠. 오케이, 여기까지 할까요? 근데 저 진짜 <GQ> 매달 보는데….

    에디터
    장우철
    포토그래퍼
    목나정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