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임원희 인터뷰 – 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

2008.08.25GQ

사람들은 임원희에게서 여전히 <다찌마와 리>의 그 웃기는 사내를 발견한다. 관객의 기대와 하고 싶은 연기의 골 사이에서 갈등하는 동안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식객>으로 돌아온 그의 눈빛은 한결 너그럽고 시원해 보인다.

촬영장에서 봤을 때보다 살이 많이 빠진 거 같다. <식객> 촬영 때는 캐릭터 자체가 좀 비열한 놈이라서 살집도 있고 이중 턱도 생기고 그랬다. 운동 열심히 해서 뺐다. 실제 3, 4kg 밖에 안 줄인 건데 얼굴 살이 빠졌는지 티가 좀 나나봐.

어제 뭐했나, 생일이었는데. 생일 오늘이다. 어젯밤에는 <야심만만> 녹화했었다. 이상하다. 작년 오늘 촬영장에서 생일 파티 했었는데? 그때는 촬영장에서 시간 조율하느라 하루 일찍 파티 했던 거지 뭐. 아침에 어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 먹고 나왔다. 케이크도 사놓으셨기에 촛불 끄고 한 조각 먹었지. 나이 먹을수록 생일 챙기고 축하받고, 그런 거 귀찮아진다. 아무려면 어때. 뭐 얼마나 특별한 날이라고.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거, 생각보다 불편할 거 같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지.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는 거고. 무엇보다… 뭐랄까. 하도 오래 같이 살다보니까 어머니가 마누라처럼 돼가는 게 있다고(웃음). 부부처럼 싸우게 되고 말이지. 그래서 결혼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불편한 게 있다. 그래서 조만간 따로 떨어져 나오려고 한다.

사귀는 사람이 있나? 지금은 없다. 사람 만나는 게 갈수록 참 쉬운 일이 아니더라. 내 나이가 이제 서른여덟이니까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결혼. 결혼이라. 급한 건 아니지만 슬슬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할 때가 돼서, 나이가 차서 하는 결혼을 하고 싶지 않고.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로 유명해진 게 2000년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임원희, 하면 그때의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불만스럽지 않나? 솔직히 예전에는 굉장히 섭섭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연기의 폭을 강요당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게 다 내가 자초한 거다. 일반 관객들이 임원희라는 배우를 깊게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는데, 그저 예전 희극 캐릭터의 인상이 워낙 강하게 남아있으니 그러는 거 아니겠나. 그걸 뛰어넘는 연기를 보여주지 못한 내 책임인거지.

<다찌마와 리>에서의 연기가 워낙에 독특하지 않았나. 그걸 어떻게 쉽게 잊어버릴 수 있을까. <다찌마와 리> 이후에 <이것이 법이다>와 <재밌는 영화>에선 주연급으로 급부상한게 다 그덕분아니었나. 그래서 <다찌마와 리>를 독이 되고 약이 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영화 두 편 때문에 주연급 배우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거다. 그 후로 영화 작업을 많이 하지 않았고, 극 중 비중도 낮아졌는데, <이것이 법이다>와 <재밌는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요인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희극연기의 한계 때문이었다고 본다. 그럼 난 이제 조연급 배우인가? “ 주연 한 번 해봤으니까 다신 조연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 안 해. 사실 내 진짜 꿈은 주연과 조연을 넘나들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거다.

그래도 도인이 아닌 이상 신경이 안 쓰일 순 없었을 텐데. 당연하지. 나도 사람인데. 많이 신경 쓰고 괴롭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마음도 많이 사라졌고, 속으로 많이 너그러워졌다고 할까? 주연에서 조연으로, 조연에서 주연으로 갔다고 화제 삼는 거, 호사가나 특히 언론에서 좋아하는 거잖아. 그런 말들에 일일이 신경 쓰면 내가 힘들어서 안 된다고.

아까 영화 작업을 많이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안 한 건가 못 한 건가. <다찌마와 리> 류의 캐릭터를 답습하는 시나리오는 대부분 고사했다. 좋은 시나리오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그만큼 내 역량이 부족했다는 거잖아.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오게 하는 건 다른 누구의 책임이 아니라 내 몫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안 하기도 하고, 못 하기도 한 거지.

역량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럼 본인의 역량에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의미인가? 어떻게 배우가 자기 연기에 만족할 수 있을까. 만족하는 순간 정체되는 건데. 배우에게 완성이란 없다. 나이가 50이 되든 60이 되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계속 변화해 나가야지.

너무 모범답안이다. 그럼 뭐라 그래. 내가 실제 그런데.

스스로 평균적이고 모범적인 생각을 가졌다고 생각하나? 그런 대답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질문들이다. 난 정말 있는 그대로 말한 거거든. 그렇다고 내가 평균적인 인간이라고는 생각 안 해봤고. 뭐랄까. 그런 생각은 해. 많은 사람들이 내게 돌출된 행동을 하거나 급작스런 웃음을 주거나, 뭔가 통통 튀고 엉뚱한 생각을 하고 살 거라고 생각하는 게 있거든. 그런데 나, 그런 거 전혀 없다.

오해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임원희의 본질은 이건데 자꾸 다른 걸로 생각한다고 투덜거릴 수도 있는 거다. 글쎄… 내가 최근 다짐한 게 있는데. 이제는 정말 작품 활동 많이 하려고 한다. 관객들이 내 얼굴 안에서 웃음을 원한다면 그렇게 할 거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비극적인 요소나 깊이를 발견해줄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배우는 작품으로 말해야 하는 거잖아. 글쟁이가 글로 이야기하듯이, 오해받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영화로 해명해야지. 세월의 무게와 사람의 깊이가 묻어있는,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웃음을 주고 싶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놀라지 않나? 의외로 내성적이라고. 맞다. 꼭 그러더라. 그만큼 고정관념이 있는 건데. 아무래도 혼자 자라서 그런지 사람 많이 모여서 으싸으싸하는 분위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촬영 없을 때는 거의 집에 있다.

그런데 어떻게 무대나 카메라 앞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연기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 <쓰리, 몬스터>나 <실미도> <코마> <주먹이 운다> 같은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참 에너지 넘치는 배우라는 느낌인데. 애초 연극할 때부터 훈련이 됐으니깐. 일과 구별이 됐다고 하면 딱 맞는 표현일 것 같다. 그리고 공동 작업을 하면서 거기에 자신을 맞춰나가려고 노력하는 건 배우로서 최소한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아 이건 나한테 안 맞어, 그러고 관두는 건 배우의 자세가 아니다. 그 안에서 뭔가를 시도해보면서 정 배울 게 없다고 느껴지면 나오는 거지. 혼자 맘대로 할 거면 모노드라마나 해야지. 배우가 뭐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혼자 맘대로 해.

일탈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나? 그럴 때 많지. 많은데. 그런 건 누구나 참고 사는 거잖아. 배우라서 특별히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감시와 검열의 잣대가 심하면 심했지. 그러니까 그냥 술 마시고 순대 먹으면서 대충 스트레스 풀고 사는 거 아니겠나. 나도 미친 척하고 뚜껑 열린 스포츠카 운전하면서 한 손에 맥주 캔 들고 멋지게 딱, 뚜껑 따서 벌컥벌컥 마시고 싶다. 하지만 그건 영화 같은 일이잖아. 시도해볼 순 있겠지. 하지만 3초 만에 잡힐걸? 어디 땅끝마을 같은데 가면 한 시간 정도 탈 순 있겠지만, 그게 뭐가 일탈이야(웃음).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그러니까 되게 엉뚱할 거 같고 돌발적일 거 같다는 생각들을 역이용해서, 오히려 더 막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 일탈의 책임을 누가 지는데?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탈, 생각해보면 별로 없다. 장마 때 비 맞으며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담배 피고 소주 들이켜는 정도의 일탈이야 나도 소싯적에 해봤다(웃음). 재밌었지.

최민수씨처럼 할리 데이비슨 타고 남 시선 신경 안 쓰면서 살 수도 있다. 그거야 선배니까 가능한 거지. 나도 보면서 참 부럽긴 하다. 그래도 그 분은 지켜야 할 선은 지키시지 않나.

안 지키시는 거 같던데(웃음). 뭐, 난 그런 스타일이 아니니까 말이지. 아예 다른 성격이고. 그건 최민수 선배님의 매력인 거고, 내게는 나만의 매력이 있는 거니까.

자기 평가 시간이다. 본인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보는 분들이 좋게 생각해준다면 연기의 독특함이랄까, 뭐 그런 희소성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뭔가 다른 게 나올 거 같다는 기대감 말이다. 지금까지의 연기 생활에 후회는 없다. 여기까지 왔다는 게 중요하다. 배우는 누가 찾아주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직업이지 않나.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연기 계속 하면서 살 수 있는 거지. 뭐든지 오래, 꾸준히, 지속적으로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다. 특히 배우는 더욱 더.

그러고 보면 배우라는 직업이 참 어려운 거다. 배우가 하는 일이라는 게 이거니 저거니, 이렇게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참 복잡하면서 심도가 깊다. 이 일을 하려면 참 열려 있어야 하는 거 같아. 그래서 요즘은 남의 말을 많이 들으려 한다. 가끔 술을 마시다 보면 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 자기 이야기만 하는 어른들 있잖아? 나 그런 거 싫어해. 그런 사람들이랑 술 마시려고 하지도 않는다. 들어야지.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배울 게 있는 거잖아.

<맛 대 맛>에도 출연한다며, 나가서 만들 음식은 정해놨나? 아니,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네. <식객> 연기 때문에 요리 학원에서 3개월 배웠는데, 참 쉽지 않더라. 실제 클로즈업 장면들은 전문가 분들이 도와준 거고. 나야 뭐 흉내만 내는 수준이다.

장기적으로 요리를 취미로 가져갈 생각은 없나? 아이고. 조금도 없다(웃음). 그래도 미래의 와이프에게 요리 하나 저도는 자신 있게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식객>에 나오는 요리들은 너무 어렵거든. 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요리가 아니라, 무슨 궁중음식들이 대부분이다. 재료도 비싼 것들이고.

올해가 다 가기 전에 꼭 이뤘으면 하는 게 뭔가? 사실, 이런 말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이번엔 정말 절실하게 느끼고 있어서 하는 소리인데, <식객>이 꼭 흥행했으면 좋겠다. 사실 그동안 특별히 크게 흥행한 출연작이 없다. <실미도>야 출연하는 배우들이 하도 많으니까 그냥 천만 가는구나, 싶었던 경우고. (김)강우 씨랑 약속한 게 있다. 영화 흥행 딱 시키고 나서 아주 찐하게 하이파이브 한 번 해보자는 거. 그것 이상 바라는 게 없지. 하이파이브는 기쁨을 드러내기에 너무 소심한 표현인 거 같다. 나 원래 소극적이라니까.

    에디터
    허지웅
    포토그래퍼
    cheho
    헤어&메이크업
    김보영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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