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김명민이 배운 것, 김명민에게 배울 것

2008.09.04GQ

김명민의 단단함은 언뜻 타고난 듯 보인다. 질투도 생긴다. 하지만 그의 단단함이 숱한 좌절과 고통의 생채기 위에 앉은 딱지임을 알고 나면, 맘이 달라진다.

검은 색 셔츠는 타임옴므, 검은색 수트는 알렉산드로 델라쿠아 at 무이, 검은색 솔리드 타이는 찰스 주르당, 빨간 색 스카프는 벨그라비아, 벨트는 페라가모, 구두는 소다

검은 색 셔츠는 타임옴므, 검은색 수트는 알렉산드로 델라쿠아 at 무이, 검은색 솔리드 타이는 찰스 주르당, 빨간 색 스카프는 벨그라비아, 벨트는 페라가모, 구두는 소다

보험, 금융권 CF에 주로 얼굴을 보이더니 최근에는 아예 공명선거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거 참 이상한 거다. <하얀거탑>의 장준혁은 야심으로 똘똘 뭉쳐 온갖 비리와 조작과 뒷거래를 총동원하면서 일신을 도모하는 파렴치한이 아닌가. 참 비리의 온상이란 말이지. 만날 돈 싸들고 로비하고, 과장되고, 뭐 그런 인물이었잖아. 그런데 왜 내게 그런 신뢰를 갖는 걸까? 되게 아이러니하지 않나?

여러모로 재미있는 지점이다. 아마 그게 요즘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영웅상인가 보다. 요컨대, 의사는 비리를 저지르든 말든 사람만 잘 고치면 된다는 거다. 정치인은 비리를 저지르든 말든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논리와 비슷하게 들려 섬뜩하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아무리 그래도 장준혁 같은 인물에게 신뢰를 갖는 현상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닌 건 아닌 건데 말이다.

신뢰와 믿음의 이름으로 타자화된다면, 그것도 문제다. ‘이순신’이 나쁜 일 하고 다니면 안 되지 않나.
뭐, 괜찮다. 예전에는 그 선량하고 도덕적인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이런 저런 일들을 좀 피하는 경향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이미지가 너무 확고해져서, 내가 무슨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지도 않을 거다(웃음). 바른 생활, 믿음, 신뢰, 뭐 이런 지점에 있어선 이제‘안정빵’의 영역으로 들어갔다고나 할까. 으하하하. 그동안 참 관리 잘했구나, 뭐 이러면서 혼자 대견해하고 그런다.

그러니까 <불멸의 이순신>까지만 해도 좀 불안했는데.
그렇지. 그걸로 어느 정도 굳히기를 하고, 그 이후에 <하얀거탑>으로 다지기를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굉장히 까다롭고 괴팍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 의외다. 아까 사진 촬영할 때도 혼자 계속 웃고 있었다.
분위기 좋게 하려고 그랬다. 원래 명랑하기도 하고. 이런 현장에서 잘 부탁해야 할 사람은 기자나 사진작가가 아니라 배우 아닌가? 따지고 보면 안 되는 모델 가지고 장면 만들어가야 하는 사진작가가 사실 제일 불쌍하다.

스스로 안 되는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사진은 정말 아무리 찍혀 봐도 쉽게 향상되는 기미가 없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 하루 종일 한 거 보다 사진 촬영 한 두 시간 하는 게 훨씬 더 피곤하다. 그런데 그런 피곤함이 얼굴에 드러나면 사진 찍는 분들이 불편하지 않나. 그럼 사진도 잘 안 나오고, 결국에는 배우 손해지. 그러니까 힘들어도 열심히 즐겁게 하는 게 결국 내게 좋은 거다.

어쨌든 배우 입장에선 믿음, 신뢰, 이런 식의 캐릭터로 굳어지는 게 그다지 좋은 일만은 아닐 거다. 요번에 개봉하는 <무방비도시>에서도 형사는 형사이되‘엘리트’형사다. 이미지가 고착화돼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남들이 인정하는 직업군을 많이 연기해온 건 사실이다. 또 위인이나 능력이 출중한 의사 역할을 연기해서 신뢰도 많이 쌓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밑바닥 인생, 쓰레기 같은 막장 캐릭터의 캐스팅 제의가 안 들어오느냐? 그건 아니다. 들어온다. 그런데 경우를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내가 기존에 쌓아온 캐릭터의 이미지라는 게 애초‘쌈마이’에 저질스러운 성격이었다면, 그럼 내가 지금까지 맡았던 그런 인물들을 연기하지 못했을 거다. 캐스팅이 안 됐을 거라고. 오히려 지금 상태가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앞으로 그런 고착화가 되지 않도록 상황에 맞게 작품을 잘 선택하는 게 내 몫의 고민인거고.

<무방비도시>를 선택하던 시점이, 여러 가지 시나리오 바닥에 펼쳐놓고 엄지발가락으로 하나 고르면 되는 상황 아니었나?
그런데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눈에 딱 들어오는, 그런 경우가 많지 않다. 상황이나 시점 등 따로 고려해야 할 사항도 많고 말이다. 그런데 딱 그때 시점에서 정말 괜찮은 시나리오가 <무방비도시>였던 거지. 구성이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탄탄했고, 읽으면서 상대 배우들과 어떻게 호흡하면 되겠다 싶은 그림이 자동으로 다 그려지더라.

바로 전의 <리턴>의 시나리오도 무척 훌륭했다. 눈이 좋은 건가, 운이 좋은 건가?
뭐랄까. 난 그냥 단순한 게 싫다. 뭔가 파헤쳐 나가야 하고 고민을 해야 하는 이야기가 좋다. 뭐랄까, 요리사의 심정이랄까. 난 한 두 가지 재료 던져주면서 뭐 만들어내라 건 별로다. 적어도 열두 가지 정도 재료를 줘놓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보라고 하라는 거다.

욕심이 많다.
그렇다. 하지만 단순히 화면에 얼마나 더 비춰지는지에 골몰하는, 분량에 대한 욕심은 아니다. 그 캐릭터가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의 폭을 이야기하는 거다. 그 부분에 있어서라면 분명히 욕심이 많다.

연기가 욕심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무방비도시>에서 손예진과의 호흡은 어땠나?
손예진씨. 뭐, 내가 선배고 그녀는 후배이지 않나. 전체적으로 볼 때 무언가를 맞춰 가는 데 있어선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녀가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납득이 가게 설명하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거기 맞춰가고 따라가는, 그런 타입이거든. 어려운 건 없었다.

당신이 연기하는 인물들에게선 늘 어둠이 보인다. 그런데, 난 오늘 어둠을 연기해봐야겠다, 싶은 어둠과 다르다. 원래 검은색 도화지 위로 그려진 그림을 보다가 아직 색이 덜 칠해진 부분을 보는 기분과 비슷하다.
거 참 이상하지? 평상시에는 어둠과 거리가 먼데. 내가 연기한 역할들이 대부분 우울한 인물들이 많았다. 내면에 뭔가 억눌려 있고 과거가 있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런 인물을 연기할 때만큼은, 그러니까 그 작품을 촬영하는 동안에는 그런 성격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거 같다. 그럼 집에 가서도 장준혁이고 이순신인 건가? 그렇게 되면 그건 똘아이고(웃음). 집에 가서 만날 폼 잡고, 아들놈이 뭐라 하면“네 이놈”하고 불호령 내리고, 그럴 순 없지 않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평소에 그 인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는 거다. 그래야 어떤 감독님이 주문을 해도 바로 연기가 나올 수 있다. 특히 드라마 같은 경우는 워낙에 대본이 촉박하게 나오다 보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친구 만나서 막 놀고, 집에 가서 신나게 떠들고, 그렇게 하고 나서 다음 날 촬영장에 가면 내 안의 공기가 다 날아가 버렸다고. 늘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캐릭터의 어둠은 보통 과거로부터 온다. 트라우마 말이다. 당신도 그런 게 있나?
납치가 되고 감금이 되고 그래서 대단한 충격을 받은, 그런 건 없다(웃음). 과거의 기억이 어두웠을 때도 있고, 밝았을 때도 있는데. 그런 어두웠을 때의 기억들이라는 게 결국 지금에 와서는 내 인생의 큰 선생님들이다. 그 기억들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포기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거다. 시쳇말이 아니라 내게는 정말 그렇다.

카메라 앞에서 한 당신의 첫 번째 연기는 무엇이었나?
뒤통수 연기. SBS <부자유친>이라는 드라마였다. 96년도 SBS 공채 동기들이 나왔던 드라마인데 난 역할이 없었다. 동기들 나가니까 덩달아 따라간 거다. 그렇게라도 나가면 얼마 되지 않는 출연료라도 받을 수 있으니까. 그거 받으려고 나갔는데 원래 없는 역할이다 보니 그냥 카메라 기자 3번, 같은 걸 하라고 해서 카메라 들고 걸어 다녔다.

그럼 확실한 자기 역할을 가지고 한 첫 번째 연기는 무엇이었나?
96년도에 <남자 대탐험>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1회 때 4마디 대사 가지고 출연했다가, 감독님이“너 괜찮은 거 같은데 다음에 또 나와 봐라”해주시는 바람에 고정으로 출연하게 됐다. 그 때 (변)우민이 형, 김남주 씨가 나오는 드라마였는데, 우민이 형의 매형 역할을 했다. 덕분에 7회부터 16회까지 쭉 나왔지.

감독이 당신의 뭘 보고 그런 선택을 했을까?
잘 생기지 않고, 평범해서? 나는 스타일이 눈에 탁 띄게 잘 생긴 스타일이 아니지 않나. 다른 내 동기들은 다 주인공, 눈에 띄는 신인, 뭐 이런 식으로 일찍부터 잘 나갔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웨이터나 도둑놈, 이런 거 못 시킨다고. 잘생겨서. 그런데 난 아무렇지도 않아. 너무 잘 어울린다고. <임꺽정>의 망나니 2번 시켜도 되고, 대학생, 깡패, 도둑놈, 의사, CF 감독, 뭐 역할이란 역할은 다 해본 거 같다. 그냥 뭘 시켜도 무난하게 눈에 안 띄게 어울리니까. 그게 내 강점이었다.

당신처럼 역할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 그게 성에 찼나?
그때는 아무튼 뭐든 많이 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뿐이었다. 단역이니까. 궁극적으로 내가 완성된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자꾸 브라운관에 비춰져야 하고, 또 PD나 다른 사람들에게 빨리 인정받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났었다. 그러다 보니 일도 많이 하게 됐다. 주인공급 얼굴 가지고 있는 동기들은 쉬고 있어도, 나는 미친 듯이 계속 일했다. 어떻게 보면 좋은 거다. 그야말로‘어떻게 보면’좋은 거지. 그런데 그렇게 몇 년 동안 일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회의가 찾아오더라. 나는 죽어라고 나가서 단역만 하는데, 동기들은 한 번에 주인공 팍팍 하니까 말이다. 음, 그때는 그게 참 부러웠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난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훈련을 쌓아온 거다. 분위기도 알고 생리도 알고 호흡도 알고,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 좀 큰 역할을 맡아도 큰 무리 없이 할 수 있게 된 거 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윤종찬 감독의 <소름>으로 스크린 데뷔를 했다. 에디터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영화로 손꼽는 작품이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일단 영화 데뷔작이었고, 너무너무 힘들게 찍었다. 아, 원래 영화는 이렇게 힘들게 찍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스태프들이 나중에 살짝 이야기해주더라. 다 이렇지는 않다고(웃음). 한 번은 감독님과 싸운 적도 있었다. 마지막에 비를 맞으면서 아파트를 노려보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리허설만 무려 아홉 번을 가는 거다. 사실 다른 장면 리허설 열일곱 번 간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다가도, 그때 그 촬영장 온도가 겨울이라 영하 18도까지 내려갔었단 말이다. 그런데 살수차로 물을 계속 뿌리면서 리허설을 몇 번씩 계속 하시는 거다.

그럼 그게 연기가 아니었구나.
눈을 시뻘게져가지고. 그 살수차 물이 상당히 더러웠거든. 여덟 번째 가서 감독님께 소리쳤다“. 감독님! 저 슛 들어가서 잘 할게요! 슛 들어가면 절대로 눈 안 깜박 거릴게요. 정말 자신 있어요!”

그랬더니?
“리허설”.한 마디 하시더라. 고집 있으시니까. 그렇게 한 번을 더해서 아홉 번의 리허설까지 간 뒤 간신히 본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정말. 이건. 후아… (허공을 본다)

<소름> 이후 <거울 속으로>도 찍고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도 했지만, 결국 흥행된 게 거의 없지 않았나.
솔직히 그때는 이미 연기에 대한 열정이나 꿈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2004년 <꽃보다 아름다워> 하면서 외국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는 무역사업을 하고, 나는 따라가서 더 늦기 전에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사업계획서까지 짜놓고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 더 늦기 전에 다른 거 해봐야겠다는 심정이었던 거다.

다른 걸 한다는 건, 배우를 그만두겠다는 거였나?
그렇다. <소름> 끝내고 나서 엄청나게 많은 시나리오가 들어왔었다. 아마 내 인생 통틀어서 그렇게 많은 캐스팅 제의를 받아본 적이 없었을 거야. 한꺼번에 30, 40권 받았으니까. 그런데 그 중에서 선택했던 세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다 말고 나란히 다 엎어져버렸다. 그렇게 2년 반을 허송세월로 보낸 거다. 끔찍했다. 영화 시장은 꽁꽁 얼었지, 영화배우들은 TV로 전향하지, 나만 혼자 영화 고집하다가 홀딱 다 말아먹었지, 그 엎어진 영화 찍으면서 무릎 짜개지고 이쪽저쪽 부러지고 몸 다 망가졌지, 아내는 임신했는데 병원 갔더니 아기가 안 자란다고 하지, 의사는 나보고 아내에게 무슨 스트레스를 주고 있냐고 물어보지, 최악인 거다. 더 늦기 전에 모든 걸 정리하고 떠나자는 생각을 어떻게 안 하겠나.

그때 갑자기 <불멸의 이순신>이 찾아온 건가.
그게 참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이미 한국 떠날 준비 다 돼있고 날짜 받아놓은 상태에서 전화가 왔다. 일단 이성수 감독님을 만나서 “저 유학 갑니다”라고 하고 고사했다. 그랬더니 감독님이 놀란 거다. 아니 지금 이거 하려고 배우들이 다들 난리인데 못하겠다니, 얘는 뭔가 있는 놈인가 보다, 싶으셨나 보다. 아쉬운 소리를 한마디도 안 하니까. 내가 3일 안으로 결정해서 연락드리기로 하고 일어섰는데, 감독님은 이미 그때 결정 다 하셨다더라. 그런데 웃긴 게, 바로 그 3일 후에 우리 아기가 태어난 거다. 무슨 정신이 있어서 감독님께 전화를 드리나.

감독이 더 놀랐겠다.
결국 나중에는 감독님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내가 목이 말라서 먼저 전화를 했소이다”하시더니“그럼 저희는 하는 걸로 알고, 결정을 이미 다 끝냈습니다”라고 말씀하시고 전화를 바로 끊으시는 거다(웃음). 아기 낳고 누워 있는 아내에게 가서“여보, 아마 우리 아기가 태어나면서 가지고 나온 선물인가 보다. 이거 할게”라고 말했다. 내가 이 드라마 하나 더 하고 배우 일을 그만 두더라도, 나중에 우리 아기가 자라서 아빠가 이순신 연기했던 배우라고 하면 얼마나‘가오’가 살겠나. 그런 맘에 결정한 거지.

<불멸의 이순신>을 했을 때가 몇 살이었나?
그때가 2004년이니까, 서른 세 살이다.

그 행운이 좀 더 젊었을 때, 이를테면 이십대 때 찾아왔다면 어땠을까? 때가 됐기 때문에 기회가 될 수 있었던 거다. 만약 이십대 때 왔으면 어 이순신? 그래 한 번 해보자, 하면서 의기양양하게 선택했었을 테고, 지금과 같은 결과를 결코 보지 못했을 거다. 물론 지금 내가 이 모든 결과에 썩 만족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연륜도 경험도 없고 무엇보다 좌절도 충분히 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런 역할을 맡았다면 배우로서 오히려 독이 됐을 거다.

한 살 더 먹었다. 배우라서 의미가 더 각별한가?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면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그게 나이 값이고. 내가 신인 위치에 있을 때, 그리고 중견 역할에 있을 때, 그런 위치에 따라서 책임져야 할 부분들이 분명히 달라진다. <무방비도시>는 내가 책임져야 할 작품이다. 예전에 <소름>? 그건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됐다. 그거 내가 책임 안 진다고 뭐라 할 사람 없다. 감독님에게 뭐라 하겠지. 앞으로 그런 책임은 더 많아질 거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책임을 전가시키려 할 거고 말이다.

라이벌이 있나?
라이벌이 있는 게 좋긴 한데, 그런 의식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미 그런 의식 때문에 괴로웠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2000년에, 그러니까 이제 슬슬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기 시작하고 신인상 받고 할 때 이야기다. 주위에서 나와 누군가를 비교하는 말들이 자꾸 들려왔다. 계속 신경이 쓰였다. 계속 뒤를 돌아보고 라이벌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고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그렇게 뒤돌아보는 데 허비한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그게 필요 없고, 또 소모적인 행동이었다는 걸 당신에게 가르쳐준 게 누군가?
내가 망가져 있던 시간들, 그게 내게 가르쳐줬다. 아까 내가 암울했던 시기를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이야기다. 삼사 년 정도 망가진 세월을 보내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저만치 앞에 가 있더라고. 그때 마음먹었다. 저들에게는 저들의 길이 있고, 내게는 내 길이 있는 거라고.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옆을 보거나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게 <불멸의 이순신> 할 때 즈음 맹세한 거다.

그런데 앞만 보고 가는 게 꼭 좋은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인정받는 배우일수록 앞만 보고 달리다가는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의 지나친 자의식이나 자기연민에 빠진 경우를 종종 본다.
맞는 말이다. 그건 중요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한 번쯤은 돌아볼 필요가 있는 거 같다. 누가 뒤쫓아 오는지 감시하려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어느 정도 위치에 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주제파악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요즘 저 밑에 위치해 있는 아이들이 저 위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건 꼴사나운 문제를 떠나서, 일단 본인에게 마이너스다. 그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면서 해야 할 몫과 책임을 경험해야 하는 건데, 이미 저 위에 있다고 생각해버리면 그 과정을 생략해버린다. 자기가 할 게 아니라고 생각해버리는 거다. 그렇게 계속 저 위에서 뭘 찾으려하다가, 결국 나락으로 떨어져버리는 거다.

목소리가 커졌다. 마치 자신에게 한 번 더 강조하려는 것처럼 들린다.
그럴 수도 있다. 4년 전에, “ 김명민 씨, 이거 꼭 한 번 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매달리는 시나리오, 그거 하면 안 됐던 거다. 그건 ABC로 나눴을 때 C급이다.“김명민이 누군데? 음. 아, <소름>의 그 애? 음, 글쎄 나쁘지는 않은데 좀 생각해봐야겠는데?”라고 하면, 그건 B급이다. “누구, 김명민? 음, 죄송해요. 우리는 아직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하면, 바로 그게 A급이다. 어린 마음에 빨리 크고 싶고, 주인공 하고 싶고, 누가 막 치켜세워주고 나 아니면 안 된다고 하니까 혹해서 결정했던 영화들, 바로 그것들이 다 망해버린 거다. 주제 파악을 못했던 거지. 그때는 주연이 중요한 게 아니라, A급 되는 영화에 가서 A급 되는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는 게 더 중요했던 건데 말이다.

당신은 지금 무슨 급의 배우인가?
그건 나만의 비밀이다. 남들에게 A급 B급 소리 들으면 기분 나쁘지. 하지만 주제 파악을 위해선 스스로에 대해 꼭 알고 있어야 한다.

당신 같은 사람이 그런 주제 파악을 하고 살기란 참 힘든 일일 것 같다. 칭찬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을 테니.
진짜 친구는 듣기 좋은 말보다 정말 필요한 비판과 지지를 주는 사람이다. 그런 자를 곁에 두는 거도 자기 복이다. 사실 잘 되는 사람 옆에는 욕하고 비판해주는 지인이 꼭 있기 마련이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난 자라면 뭘 해야지, 싶었던 게 있나?
막연한 거라면 의사. 왜냐면 주위에서 하도 의사가 좋은 거라고 하니까 말이다.

그럼 어떤 면에선 이미 성취한 거 아닌가?
의사 역할 해봤으니까? 음, 그렇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이제 간단한 수술 정도는 하니까.

어떤 수술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장기적출?
아니 뭐 그냥, 개복이나 간단하게 맹장 떼어내는 거 정도? 농담인줄 아나본데, 진짜다. 아니 사실 이건 지나친 오만함이지. 무면허로 무슨 수술을… 하지만 간단한 수술 정도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보는 것 같다. 진짜 할 수 있다고?
자, 만약 가정을 해보자. 첩첩산중에 우리 둘 만 있다가 고립됐다. 그런데 갑자기 당신 맹장이 터졌어. 그때 내게 메스와 가위와 파이브 제로 정도 있다면, 음 보비 정도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 없고 말이지. 아, 파이브 제로는 실이고 보비는 지져서 떼어내는 기계다. 음, 마취가 안 돼서 곤란하겠네. 아니 뭐 그거야 때려서 기절을 시키든 하면 되겠네. 아무튼 내가 안 고치면 죽는 상황이다, 싶으면 내가 할 수 있겠다는 거다.

그냥 막연하게,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혀를 깨물 수도 있는데, 그래도 참고 견뎌서 나중에 정신을 차려 보면 수술은 잘 돼있을 거다(웃음)

    에디터
    허지웅
    포토그래퍼
    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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