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김두현은 생각한다, 고로 축구한다

2008.09.11GQ

목소리가 잘 안 들려서 녹음기를 그에게 더 가까이 밀었다. 생각해 보면 경기 중에 소리 지르는 걸 본 적이 거의 없다. 공이 있는 곳으로, 김두현은 남들보다 더 많이 뛰어갔던 것 같다.

스포츠 신문 자주 봐요? 있으면요. 지금처럼 식당에 오면 있잖아요, 무슨 기사 실렸나 보죠. (김)상식 형 딸 난 거 나왔네.

거기 왼쪽에 토종 선수 중에선 김두현 선수 활약이 제일 좋다는 기사도 나왔어요. 아, 정말. 잘했다는 기사 나오면 기분 진짜 좋아요.

더 비싼 거 먹어도 되는데 자장면 먹자 해서 좀 웃겼어요. 당구 치며 먹음 더 맛있을 텐데. 한 200점 쳐요. 상식이 형은 한 500 정도 칠걸요.

축구도 어떻게 보면 당구랑 비슷한 것 같아요. 그렇죠. 공에 회전을 줘야 하고 거리나 위치, 움직임 이런 걸 다 계산해야 하니까.

고트비 코치가 예전에 한 축구 전문지와 인터뷰한 걸 봤는데, 홍명보, 박지성, 김두현 이렇게 셋은 생각하는 축구를 한다고 했어요. 생각하는 축구란 뭐죠? 생각 없이 뛰는 선수도 있나요? 축구는 확률 게임이잖아요. 어떤 상황이 왔을 때 빈 공간이 있다고 무조건 찔러 넣는 게 아니라, 저기로 넣으면 오히려 수비가 붙을 거 같으니까 반대편으로 볼을 보내자, 이런 판단을 수시로 내리는 거죠. 그때그때 경험으로 익혔던 느낌이 있어요.

2001년 수원에서 프로 생활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김남일이 이적해 온 후 결국 성남으로 팀을 옮겼죠. 서운하진 않았어요? 충분히 제 몫을 하고 있었잖아요. 사람들이 밀렸다고 얘기하는데 밀린 거 아니에요. 나도 중앙 미드필드를 봐요. 감독님은 우리 둘 다 뛰게 해야 하는데 남일이 형은 측면을 볼 수 없잖아요. 나는 그 자리랑 중앙 다 볼 수 있으니 내가 옮겨갈 수밖에. 아예 경기에 못 나왔으면 밀린 거지만 계속 경기 나갔단 말이에요.

밀렸다고 보도하는 신문 보면 화났겠어요. 잘 모르고 얘기하는 거잖아요. 근데 내가 팀 옮기자마자 수원 성적이 떨어졌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그것도 기분이 좋죠. 주위에서 내가 빠져서 그렇게 됐다고 말하는 것도 듣기 싫진 않았고요. 내가 원해서 이적했던 건데 그런 얘기가 나오니까 기분은 안 좋았죠. 그렇지만 운동장에서 확인시켜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성남에 왔을 때 전반기 9위였는데, 후반기에 우승 했어요. 작년엔 시즌 MVP 탔고 K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도 4회 연속 뽑혔고.

올 시즌 초 성남이 한창 잘나갈 때 다른 팀의 한 선수가 나에게 말했어요. 성남은 팀 플레이를 중시하지만 수원은 이기적인 플레이를 많이 한다고. 그런데 후반기에 수원과 성남이 바뀐 것 같아요. 작년에도 9월 한 달 되게 힘들었어요. 성적도 떨어지고. 그런데 결국 챔피언 결정전에 나가 우승했잖아요. 올해도 1위로 나가다 2위로 처졌지만, 홍역이라 생각해요. 잘 안된 부분이 있어도 이겼을 때는 얘기를 안 하죠. 그런데 연패하면 빨리 탈출해야 되니까 내부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는 게 서로 느껴져요. 이런 과정들이 모여서 팀이 완전히 회복이 됐을 때는 더 큰 힘을 발휘할 거예요. 곧 작년처럼 다시 치고 올라갈 거고요, 챔피언 결정전은 올 시즌에도 성남과 수원이 올라갈 거라고 봐요.

모래알 같던 수원의 조직력이 갑자기 좋아진 이유는 뭐죠? 수원엔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잖아요. 벤치에 앉은 선수들까지 비교하면 우리팀조차 상대가 안 돼요. 이런 팀은 이길수록 조직력이 다져져요. 대신 한 번 무너지면 겉잡을 수 없죠. 분위기를 추스르고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시간은 수원보다 우리가 훨씬 짧을걸요. 성남은 애초부터 전체를 지향하는 팀이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죠? 우리 감독님은 그런 면에서 훌륭하시죠.

성남과 붙는 팀들은 다들 당신을 못 잡아 먹어 안달이에요. 거친 태클이 깊게 들어오면 그냥 확 밟아버릴까 하는 생각이 안드나요? 그 순간엔 그런 생각이 들죠. 그런데 내가 저쪽 감독이라도 나만 따라 다니라 그럴 거예요. 결국 내 문제죠. 심리전에 말리면 내 플레이를 못하는데 누굴 원망하겠어요. 그럼 팀에도 피해가 가잖아요. 답은 나와요. 따라붙지 못할 만큼 잘하면 되지. 늘, 팀의 우승을 생각해요. 뭔가 이루기 위해선 고비가 많으니까. 모든 건 과정이고 나한텐 이겨낼 힘이 있어요. 작년, 우승했을 때도 자꾸 눈물이 났는데, 물론 기뻐서지만, 내가 정말 잘했구나, 이런 생각 때문에 더 눈물 났어요.

9월 2일 대전하고 경기할 때 고종수 선수와 맞붙었죠. 어땠어요? 수원에서 같이 있었잖아요. 자기만의 느낌이 있으니까 아무리 축구를 쉬어도 감각은 나오는 거죠. 체력을 끌어올리면 대전하고 붙을 때마다 우리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아직도 고종수 선수는 좀 안타까워요. 개인적으론 불행을 겪었지만 후배들한텐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연예인들 만나고 운동 열심히 안 하고 시간 나면 놀고 이랬는데 결국엔 잘 안 풀렸잖아요. 그걸 보고 후배들이 많이 느꼈어요. 종수 형도 그렇게 말해요. 자만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젊었을 때 노는 거 다 필요 없다고. 후회한다고.

좋은 선배네요. 그런 얘기 하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예요.

그날 당신이 넣은 골이 오프사이드 논쟁에 휘말렸어요. 직접 볼 땐 오프사이드 아니었나요? 석연치 않은 판정이 꽤 있었죠. K 리그 심판 자질론이 또 한 번 나왔고요. 잘 모르겠어요. 심판이 정확하게 봤겠죠. 물론 대전이 피해 봤다는 생각은 들어요. 하지만 우리도 언젠간 피해볼 수 있어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심판들도 선호하는 팀이 있으니까, 공정하게 보려고 하겠지만 모든 게 완벽할 순 없겠죠. 사람이니까.

K 리그에선 날아다니다 국가 대표 경기에만 나서면 위축되는 건 왜죠? 아직 내가 대표팀에 젖어 들지 못하는 것 같아요. 코치님이나 감독님과도 얘기가 통하고 분위기에 잘 어우러져야 하는 데 그렇지를 못해요. 부자연스럽고 어색해요.

김두현은 박지성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얘기를 하잖아요. 국가대표팀 자체가 박지성 선수 위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불만은 조금도 없어요? 지성이 형이 실력으로 인정받은 건데 불만이 있을 리 있나요. 내가 그 이상으로 실력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는 거죠.

박지성과 김두현의 차이는 뭘까요? 저보다 잘 아시잖아요.

상위 레벨에 있는 선수들의 차이는 실력이 아니라 적응의 문제인 것 같아요. 박지성보다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축구 선수한테는 계기라는 게 있어요. 그 계기를 통해 한 단계씩 올라서는 거죠. 지성이 형은 그런 계기들을 차근차근 밟으면서 더 큰 선수로 성장했죠. 세계적인 선수들과 붙으면서 그만큼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되고. 나도 재능은 있지만 발휘를 못했고, 계기도 없었죠. 그게 형이랑 나랑 차이일 거예요.

사실 박지성과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나잖아요. 박지성의 시대가 가면 당신의 시대도 저물지 몰라요. 난 하나도 초조하지 않아요. 열심히 착실하게 하면 언젠간 인정을 받겠죠. 뛰고 안 뛰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보고 배우는 거죠. 지성이 형한테 배울 수 있는 게 뭔지 보고 난 또 나만 할 수 있는 게 뭔지 찾고.

언젠가 국가 대표팀 주전자리를 차지하겠단 생각 안 해요? 지성이 형이 중앙도 보지만 소속팀에선 측면도 보잖아요. 나도 다 볼 수 있고. 둘이 같이 뛰면 재밌을 것 같아요.

김두현이 판단할 때 지금 K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는 누구인가요? 당신을 제외하면 다 비슷한가요? (이)관우 형 있잖아요. (백)지훈이도 잘하고.

십 년 전, 축구 관계자들이 한국 축구 미래로 당신을 꼽았듯, 당신도 후배를 말해봐요. (염)기훈이. 가진 게 많은 선수예요. 서울에서 미드필더 보는 기성룡도 잘해요. 나이에 비해 경기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고, 패스도 훌륭하고 신장도 좋아요. 요즘 후배들은 우리 때랑 달라요. 자신감 있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나 스무 살 때 못했던 걸 너무 쉽게 해요.

실력은 별 볼일 없는데 언론에 의해 뜨는 선수를 보면 어때요? 실력이 없는데 띄우진 않아요. 다만 어린 선수들은 한참 더 배워야 할 시기에 언론이 관심을 가지면 자기도 모르게 판단력을 잃는 것 같아요. 실력 이상으로 잘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죠. 잘못하면 겉만 번지르르해지고. 자기들은 아니라지만 결국 그렇게 된 선수들이 있어요. 안타깝죠.

반대로 실력은 있는데 온전하게 평가를 못 받는 선수는 누가 있어요? 장학영. 내가 보기엔 그 자리에선 대한민국 최고예요.

 

흔히들 한국 축구의 두 가지 큰 문제로 공격수의 부재와 축구협회의 무능력을 꼽잖아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얘기하는 순간 나는 영원히 국가 대표에서 제명될걸요. 통과.

축구는 당신 삶에 어떤 의미예요? 어릴 때 축구와 야구 둘 중 뭐 할까 고민 했는데, 그냥 축구가 더 좋았어요. 축구를 통해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좋은 사람 높은 사람도 만났으니, 전부죠 전부. 축구를 빼면, 생각만 해도 두려워요.

해외 진출에 대해 물으면 좋은 기회 있을 때 가겠다고 할 거죠? 난 무조건 나갈 거예요. 돈을 떠나서, 이 다음에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되면 더 많은 걸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K 리그에만 오래 있으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고. 나가서 경험해 보고 싶어요.

어떤 리그의 어떤 팀으로 가고 싶어요? 일본도 괜찮을 것 같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팀은 바르셀로나예요. 사비나 데코 자리에 내가 뛰면 재밌겠는데.

    에디터
    이우성
    포토그래퍼
    송창래
    스탭
    스타일리스트/서수경, 메이크업 / 오미영
    브랜드
    발렌티노, 디젤, 샌프란시스코 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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