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송지오가 파리에 간 이유

2008.09.18GQ

송지오에게 파리는 아주 익숙하다. 파리 카페에 앉아있는 게 서울에 있는 것처럼 편하다고 말한다. 10년 전, 송지오의 파리 쇼는 무산됐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송지오의 파리 쇼는 다시 시작되었다.

밀란이나 뉴욕을 선택할 줄 알았다. 그 얘긴 정말 많이 들었다. 파리 친구들도 그런 얘기를 했다. 하지만 난 파리 외엔 다른 곳은 생각도 못했다. 밀란에 가면 이방인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싫고, 의외겠지만 뉴욕은커녕 미국도 못 가봤다.

스타일의 변화가 있었나? 어깨가 봉긋한 재킷이나 짧은 블루종 때문인지 전보다 캐주얼하다. 주제는 밀리터리였다. 옛날 군복을 흰 페인트 통에서 꺼낸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두툼한 저지, 크림색을 주로 썼다. 재킷의 포켓이나 타이 부분에 겹겹이 쌓은 디테일도 있다. 모델을 소년병처럼 보이게 하고 싶어서 일부러 키도 작고 체구도 작은 소년 모델을 골랐다.

프린트가 인상적이다. 매 시즌마다 직접 프린트를 만든다. 패턴도 되고, 심벌이 될 수도 있다. 이번엔 후자다. 내가 먼저 밑그림을 그리고, 아티스트 별이 그래픽 작업을 했다. 도형의 틀에서 밖에서 보는 안과 안에서 보는 밖을 형상화했다. 촌스럽나?

아니다. 딱‘송지오’스럽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다. 처음엔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려고 이것저것 많이 해봤다. 하지만 결국에 단순하고 세련된 게 제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단순하고 세련된 것. 남성복에선 그게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어렵다. 라면은 물과 스프만 넣는 게 제일 맛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드물다. 맛있게 끓일 수 있는 사람도 드물고. 모든 걸 최소화하면 옷은 단순해진다. 여기에 아주 미묘한 차이의 변화를 주면 세련돼지고, 그럼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게 무언지 명확해진다.

송지오 옴므는 가까이서 보니까 퀄리티가 훨씬 좋은 것 같다. 내가 추구하는 게 그거다. 그러려면 좋은 소재와 완벽한 디테일이 필요하다. 바이어에게 그 점을 강조하고 싶다. 송지오 옴므는 실루엣과 컬러에만 치중한 옷이 아니라는 걸.

예전의 송지오 옴므 쇼가 생각난다. 숨쉴 틈 없이 들어찬 사람들, 옷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매머드급 쇼만 하다가 섭섭하진 않았나. 매 시즌마다 80~90벌 정도를 준비했다. 쇼를 보러 온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엔 30벌 정도만 준비했다. 옷을 만드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그 옷을 입을 모델, 장소, 스케일 등을 생각하면 더 만들 수가 없었다.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컸다. 하지만 괜찮다. 처음부터 욕심을 안 부리겠다고 생각했으니까.

당신은 부자 아닌가? 송지오 라인도 네 개는 되고, 매출도 좋은 걸로 알고 있다. 송지오 라인의 반응이 좋은 건 사실이다. 내년에 송지오 라인이 하나 더 론칭한다. 그것 때문에 정신이 없다.

고객이 그렇게 많은데, 한국에서 쇼는 안할 건가? 1년에 쇼를 네 번 하는 건 쉬운 게 아니다. 트렁크 쇼를 생각 중이다.

요즘엔 디자이너도 인기 스타가 되고 유명인사도 된다. 난 옷을 만드는 사람이다. 옷만 잘 만들면 됐지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요즘엔 TV를 틀면 다 아는 사람이더라.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파티나 행사에 오라는 사람은 많지만 그런 데 가면 사람들은 내가 만날 놀러만 다니는 줄 알 거다.

그래서 다른 쇼도 안 보는 건가? 꼭 그런 건 아니다. 난 내 쇼에 다른 디자이너도 잘 초대하지 않는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을 초대한 건데, 비판만 하고 돌아가니까. 그럼 아예 보질 말든가. 내가 그러니, 남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좀 못됐다.

다음 컬렉션은 어느 정도 준비했나? 그림 그리는 것에 비유하자면 어떤 좋은 물감을 살지, 어떤 컬러로 살지, 종이는 어떤 걸 고를지, 붓은 무슨 털로 만든 걸 살지를 고민하고 있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박나나
    포토그래퍼
    강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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