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농구를 다룰 줄 알아

논산 훈련소에서 신병 교육 중이던 양동근은 베이징 올림픽 티켓을 획득하라는 국가의 명을 받았다. 래퍼 양동근이 아니라 국가대표 가드 양동근 말이다.

초여름 태양의 자전처럼 태릉선수촌의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한 무리의 선수들이 우루루 지나갔다. 작고 다부진 몸을 보니 레슬링 국가 대표 선수들 같았다. 얼마 뒤 그 중 한 명으로 보이는 선수가 뭐라도 떨어뜨리고 간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물 빠진 파란색 운동복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고 전화를 꺼내 누군가에게 걸었다. 울린 전화는 내 것이었다. 생각보다 키가 작았고, 인터뷰 할 때는 지나치다고 느낄 정도로 자신을 낮췄다. 그러나 승모와 이두의 근육은 다부지다 못해 견고해 보였다. 손바닥으로 땀을 닦을 때마다 동물적인 제스처도 느껴졌다. 이성적 논리보다 본능이 위에 있는 사람 같았다.

3주차 훈련까지 마쳤다고 들었어요. 아직 자대배치를 안 받아서 그런지 극기 캠프에 갔다 온 것 같아요. 올림픽 예선 끝나고 마지막 주 훈련 받아야 돼요.

훈련소도 4주차 때는 요령이 생겨요. 각개 전투 같은 힘든 훈련이 남았잖아요.

국가대표 농구선수한테도 그런 게 힘든가요? 할 수는 있지만 힘든 건 힘든 거죠.

어제 저녁에 산책을 하다가 고등학생들이 3대3 농구 경기하는 걸 봤어요. 폴짝폴짝 쉬지 않고 잘도 뛰더라고요. 즐거워 보이지 않아요? 저도 길거리에서 많이 해요.

요즘도? 농구 동아리를 하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따라가서 다른 팀들하고 붙어요.

날아다녀요? 그렇죠. 아무래도 프로 선수들보다는 부드럽게 하니까.

양동근인 걸 알고 감개무량해하던가요? 그 정도까진 아니고 운동하러 나왔다가 운 좋게 프로 선수랑 해봤네, 뭐 이러죠.

통합우승을 했고, 만장일치 MVP까지 탔어요. 만으로 겨우 25세인데 벌써 최고가 된 거에요? 아유, 잘하는 선수들 엄청 많아요. 작년에 우리팀이 챔피언 결정전에서 삼성한테 졌잖아요. 은퇴할 때까지 한 번도 우승 못 하는 선수도 있는데 기회를 놓쳤으니, 얼마나 아쉬웠겠어요. 이번엔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조바심이랄까, 뭐 그런 게 있었죠.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농구도 더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고.

시간 지나면 또 조급해질걸요. 영원한 승리는 없어요. 운동이든 공부든 마음이 편해야 잘 되잖아요. 중요한 건 제가 지금 농구를 즐기고 있다는 거예요.

우지원 선수가 엉엉 울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쥘 땐 덩달아 울컥했어요. 유재학 감독을 끌어안고 말 없이 흐느끼는데, 됐다, 이제 됐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니까요. 지원이 형이 올해로 프로 10년짼데 우승을 한 번도 못했잖아요. 계속 다섯 명 안에서 게임을 뛰다가 어느 순간부터 교체도 많이 되고 언론에서 안 좋은 얘기들을 하니까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떠올랐대요. 그런 순간들이….

잘해줘서 고맙단 이야기는 안 해요? 선수들끼리는 그런 얘기 안 해요. 마음속으로만 하죠. 말은 안 했지만, (김)동우 형한테 많이 고마워요. 원래 작년 챔피언 결정전 끝나고 그 형이 군대 가려고 했거든요. 제가 가지 말라고 했어요.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한 번 더 해보자고. 지금은 장난으로 그때 내 말 안 들었으면 어떡하려고 그랬냐고, 내 덕에 우승한 줄 알라고 그래요. 근데 동우 형 없었으면 우승 못했을 거에요. 너무 잘해줬거든요.

상대편인 신기성 선수가 짜증을 많이 냈잖아요. 그런 모습을 잘 안보여 주던 선수라서 놀랐어요. 답답해서 화가 난 거죠. 누구나 그랬을 거예요. 다들 우승하고 싶으니까.

경기를 보면서 양동근이 신기성을 넘어서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신기성 선수도 이제 내가 동근이한테 밀리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에요.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패배를 인정하는 거예요. 저만 해도, 상대가 기성이 형이나 (김)승현이 형이라고 해도 게임 들어가기 전엔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해요. 후배인 제 마음가짐이 이런데 형들은 얼마나 더 이기려고 하겠어요. 지기 싫어서 화도 내는 거죠.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신기성 선수가 힘이 부쳐 보이긴 하던데요. 저랑 게임 하면 늘, 너 힘 너무 좋다고 얘기해요. 그런데 제가 얼마나 죽기 살기로 버티는지 그 형은 몰라요.

김승현 선수하고도 비교 많이 당하죠? 처음 그 선수를 봤을 때 솔직히 얄미웠어요. 너무 빨라서 모두들 속수무책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양동근이라는 선수가 나타나서 그 김승현을 앞에 두고 자유롭게 플레이 하는 걸 보고 어안이 벙벙했어요. 팀 분위기죠, 뭐. 올 시즌엔 워낙 우리 팀 분위기가 좋았어요. 실력이 나아서 이긴 건 아니에요.

각각의 장점이 있겠죠. 경쟁하면서 서로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아요. 승현이 형은 농구 센스가 좋고 자신감이 넘쳐요. 못하는 게 없구나 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제가 그걸 따라 가려고 하죠. 열 번 들어오면 아홉 번은 막으려고 하고. 저한텐 도움이 많이 되는데 승현이 형은 나한테서 도움 될 게 있나 모르겠어요.

겸손도 지나치면 보기 안 좋아요. 진짜예요. 남들이 들으면 재수 없다고 하겠지만, 객관적으로 승현이 형보다 나은 건 세 살 어린 것밖에 없어요. 제가 더 빠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형이 탄력 받기 시작하면 전 감당 못해요.

당신이 조금 더 저돌적인 것 같던데요. 오기죠. 피하면 지니까 정면 승부하는 거에요.

가장 닮고 싶은 농구선수는 누군가요? 이 선수 저 선수 걸 다 빼오고 싶어요. 장점들만.

가장 빼오고 싶은 건 누구의 어떤 건데요? 승현이 형의 패스와 농구 센스, 기성이 형의 슛.

라이벌은 누구에요? 프로 팀에 있는 모든 가드들이요.

한국에 말고요. NBA 선수 중에는 없어요? NBA는 잘 안 봐요. 제가 게임 한 거랑 다른 팀 게임 한 거만 봐요. 시간이 없어요. 밥 먹고 운동하고 남은 시간에는 자야 되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론 한국 농구가 세계의 부름을 받지 못했잖아요. 이번엔 어떨까요? 올림픽이 베이징에서 열려서 중국은 자동 진출이에요. 그러니까 중국이 1등을 하면 2등까지도 올라가는 거죠. 좋은 기회 같아요.

요즘은 오일 파워를 앞세운 중동도 무시 못하잖아요. 돈으로 선수를 사와서 귀화 시키던데요. 해봐야죠. 못하는 팀도 잘하는 팀 잡을 수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서 스포츠가 재밌는 거 같아요. 모르잖아요. 해보기 전까지, 아무것도.

애틀랜타에서 7전 전패했어요. 매 경기 대패했죠. 스포츠의 의외성이 한국만 피해 갔나 보죠? 실력 차를 요행으로 넘어설 순 없죠. 중요한 건 자세예요.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마음가짐. 그러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길 거고.

여기 오기 전에 한 농구 담당 기자랑 통화를 했어요. 한국 농구와 세계 농구의 격차가 넘지 못할 만큼 거대한 건 아니라고 하던데요. 일리 있긴 한데 아직까진 멀었죠. 당장 중국도 못 잡는데…. 한국 농구가 과도기잖아요.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가 많이 주어지고 있고, 그들에게 경험이 쌓이면 더 강해지겠죠. 이렇게 몇 번의 과도기가 더 지나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중고등학교 후배들은 신장이 커요. 운동 능력도 좋고요. 10년 20년 후에는 해볼만 하겠죠. 결국 농구는 높이 싸움이잖아요.

그런데 중국한테 이기기가 그렇게 힘든가요? 힘들죠. 냉정하게 봤을 때 힘들어요. 어떤 면에서 차이가 나는 거예요? 걔들은 2m짜리 선수들이 우리나라 가드 수준의 기량을 갖고 있어요. 기술적인 능력이 같다고 봤을 땐 우리보다 전체적으로 10cm 이상 큰 거예요. 거기에 야오밍까지 있잖아요.

한국 농구의 미래라고 생각하는 선수가 있나요? 당신이라고 해도 돼요. 저도 세계를 목표로 할 선수는 아닌 것 같아요. 조금 전에 말했지만, 더 어린 선수들에게 기대해야죠. 하승진 선수도 열심히 하지만 운동량이 워낙 부족해요. 지금 청소년 대표 선수들이 잘해요. 그 중에 (김)진수가 돋보여요. 원래 포지션은 슈팅가드인데 키가 2m가 넘어요.

NBA는 안 가고 싶어요? 가고야 싶지만 누가 불러 주나요. 한국에서도 잘 못하는데. 거긴 가드도 키가 2m예요. 국내에서나 열심히 할래요.

NBA가 최종 목표일 줄 알았어요. 목표는 안 다치고 은퇴하는 거예요.

올림픽행이 결정 나면 순간 무슨 생각할 것 같아요? 베이징 갈 때까지 다치지 말아야지.

또 전패할 수도 있겠죠? 못 나가는 것보단 낫죠. 다 져도 웃을 거예요.

영화 <록키 발보아>에서도 록키가 지잖아요. 그런데도 모두들 기립 박수를 치죠. 이기든 지든 나 역시 그런 박수를 치고 싶어요. 당신도 록키처럼 퇴장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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