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해서,다행이다

이적은‘왼손잡이’와 ‘달팽이’말고도 또 다른 기억할만한 곡을 만들기 위해 세 번째 솔로 앨범을 냈다. 큰 원을 돌아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왔다고, 그는 노래한다.

스트라이프 셔츠와 핑크 팬츠는 서상영,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과 스니커즈는 DK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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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 앨범 <나무로 만든 노래>에 대해서 한 가지 확실한 건, 항상 당신을 따라다니는 수식어인‘패닉 그 자체 ’ ‘이적 행위’등을 붙일 사람은 없겠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것들을 담으려고 했다. 나, 이적, 자연인. 나무 냄새 나는 앨범. 그런 느낌?

U2의 보노도 얼마 전 자신의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로만 만든 앨범을 내겠다고 했는데, 음악 만드는 사람들은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음악 본연의 것에 다가가려는 꿈이 있나 보다.
보노가 그런 앨범 내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난 어쿠스틱 기타 외에 소규모 밴드가 좀 더 첨가되긴 했는데, 날것으로서의 곡을 쓰려고 하긴 했다. 집에서 혼자 곡 쓸 때의 느낌으로, 피아노 치면서. 대신 곡을 매우 잘 써야 한다는 압박이(웃음). 아무래도 사운드나 편곡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니까 그럴 거다.

사랑 얘기가 꽤 있더라. 원래 그런 얘기는 닭살 돋는다고 싫어하는 편 아니었나?
이번에 만든 곡들에 가사를 붙이려고 보니 괜히 심각하고 어려운 얘기로는 어울리는 곡들이 없더라. 사랑 얘기를 쓴 이유는 두 가지다. 사랑 얘기를 하면 가사가 많이 안 들린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가사의 활자 하나하나가 다 뜬다.‘어, 이거 그런 얘기였어?’ 식으로 반응이 너무 크다. 대신 사랑 얘기는 수십 년간 많은 사람들이 해왔기 때문에 사랑얘기로 얼버무리면 ‘음악’이라는 것을 더 듣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가사를 듣지 말라고 쓴 건 아니지만.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실연당하고 술도 마시는 사람인데 너무 그런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기피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근데 쓰다 보니 점점 많아져서 ‘어, 이래도 되는 건가’싶기도 했다. 괜히 듣는 사람들이 ‘이적 변했다,뭐 하자는 플레이인가’라고 말할까봐 내 안에서 자꾸 제동이 걸리는 거다. 괜히 인생, 혹은 철학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싶고. 사람들과 얘기해봤는데 그게 더 계산적일 수 있다고들 조언해주더라.

앨범을 봐도 그렇고 평소 주장하는 태도도 그렇고 이성적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것 같다. 왜 그런가?
사실 이번 앨범에서도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바꾼 곡도 있다. 4번 곡 ‘비밀’은 지금은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는 곡이 됐지만, 원래는 이랬다. 우린 오랜 친군데 내가 널 오랫동안 바라봐왔다, 그게 비밀이다, 그런 내용. 아무리 들어도 너무 이상해 믹싱하던 중간에 갑자기 다시 녹음했다. 아마도 B형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하. 어쨌든 이번 앨범은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음악을 처음 하게 한 노래,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것, 내가 지금 느끼는 사랑에 대한 감정, 인생에 대한 생각 등. 타이틀 곡 ‘다행이다’는 완전히 내 얘기다.

‘당신이라는 좋은 세상이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그 곡?
그렇다. 그런 느낌들. ‘소년’은 거울을 보면서 ‘아, 소년은 이제 안녕이구나’라는 내용의 곡이고(웃음).

가사 중에 이 부분을 듣다가 피식 웃었다. ‘난 농담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는데’다음에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고’. 아, 이건 정말 자기 얘기구나, 하고.
정말, 그렇다. 이번 앨범은 이적이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교복을 빨리 벗어버리고 싶었을 땐 패닉 2집 앨범 중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같은 것만 반복 재생해서 들었는데 월급 봉투 받는 사회인이 되니까 오히려 ‘기다리다’나 ‘강’같은 곡이 더 기억에 남는다. 실험과 도발보다 오래 가는 건 위안이 아닐까 싶은 거다.
그럴 수 있다. 의도가 너무 앞선 음악들은 당시에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이고 이건 이 사람 밖에 못한다 싶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제스처만 남는 경우가 있다. 캔버스 찢는 등의 현대 미술은, 그것 자체가 예술에 대한 질문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냥 루벤스가 좋은 것처럼. 음악도 어릴 때 이것저것 다 하고 싶지만, 지금도 물론 그런 거 하고 싶지만, 시간이 가도 계속 남아 있는 것들은 다른 종류의 음악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라는 곡 지금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때 그 이상하게 낸 목소리는 너무 싫다. 하하. 자기의 음악이 나와만 주면 그 다양한 시도의 과정들이 의미가 있는 거겠지.

당신은 많은 장르의 음악을 시도했다. 트립합부터 펑키한 곡, 비틀스나 벡 등 특정 뮤지션의 영향을 받은 곡들. 비틀스도 물론 사이키델릭에서 펑크까지 다 했어도 비틀스 음악이긴 하지만, 어쨌든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을 많이 끌어 올렸다란 얘기와 동시에 너무 이것저것 다 하는 거 아닌가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자기 음악이 뭐냐라는 질문에 이번 앨범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앨범은 전체적으로 한 톤이다. 당신도 그렇게 들었나? 모든 뮤지션의 목적 중 하나는 모색의 시간을 거쳐 자기의 음악을, 자기의 사운드를 만드는 것이다. ‘이건 이적 스타일인데?’라는 것. 그때 비로소 한 명의 뮤지션이 되는 것 같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간 게 이번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에 했던 것들이 다 정리되고 필터링이 된 첫 번째 단추라고 할까?그래도 죽을 때까지 해야 할 거다.

죽을 때까지?
더 빨리 나와야지(웃음). 죽기 전엔 뭐가 나와야지.

이번 앨범으로는 TV 출연도 많이 할 생각인가? 10대 가수들과 한 무대에 선다거나 하는?
순위 프로그램은 여태까지 많이 하긴 했다. 많이는 잘 안 하게 되긴 한다. 필요할 때만 하게 되고. 하여간 하려고 한다. 이건 이래서 안 하고 저건 저래서 안 하고 그래왔는데 어느 순간 나 혼자 가리고 막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보는 사람은 ‘쟤가 어떻게 저길 나와, 변절한 거 아냐, 미쳤구나’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일을 나 혼자 괜히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저 이런 거 안해왔어요”라고 동네방네 소문낼 수도 없는 거고. 하하.

패닉의 골수팬을 많이 의식하게 되긴 하나 보다.
물론이다. 심하게 말하면, 내 음악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지탱해가고 있는 거다. 공연 와주고 음반 내면 사주고. 그러니까 어디 가도 기 안 죽고 떳떳하게 자기 음악 할 수 있는 거다. 저기 보이는 중학교만 가봐도 전교생 중에 나를 아는 사람이 12명 정도나 될까. 폭을 넓힐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인기도 많고 대중성을 잘 획득했다는 평가도 있는데.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다. 인디 신에서 보면 방송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달팽이 때 활동하더니 왜 쉬세요”라고 말한다. 어디 가면 10년간의 대중성과 아티스트와 실험성과 이런 얘기 하지만, 식당에 밥 먹으러 가면“어? 달팽이 청년요즘 활동 뜸하네” “패닉은 안 하세요?”이런다. 대중이라는 게 워낙 넓고 다양하니까.

7년 만에 패닉 4집 냈다고 떠들썩했는데…. 그렇다면 청중을 넓히고자 하는 생각과 음악색깔의 변화와도 관련 있을까? 영향을 줄까?
그게 바뀌면 어디에 나와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그건 바뀌면 안된다. 차별성도 없고. ‘뭐야? 신인가수야?’그럴 거다. 거창한 게 아니라 누가 뭐 하자 그러면 너무 빼지 않고 못 이기는 척 하고 할까, 하는 생각 정도다. 그렇다고 내가 추리닝 입고 어디 나가겠나. 하하.

솔로 3집까지 냈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당신을‘달팽이’로 많이 기억하나 보다. 본인은 어떤가? 이건 죽었다 깨나도 내 곡이다, 하는 게 있나?
‘왼손잡이’ ‘뿔’ ‘하루를 달리다’가 그렇다. 이번 앨범에도 몇 곡 있다. 나밖에 못할 것 같은 곡이 있다.

무슨 곡인가?
그걸 내가 어떻게 얘기하나(웃음). 그건 남들이 얘기해야지, 내가 하면 팔불출이지(웃음).

만들어놓고 창피했던 곡은?
창피한 곡 좀 있다. 많진 않다. 내가 워낙 ‘자뻑과’라(웃음). 또 많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 곡들을 다시 만지거나 그러고 싶진 않다. 그건 음악을 계속하면서 내린 나만의 결론이다.그건 움직일 수 없는 나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듣는 이들한테는 더더욱.

당신은 90년대 음악을 회고했을 때 기억에 남는 뮤지션 중 한 명이고 90년대 특유의 문화 과잉의 시대에서 그 서구 문화의 가장 큰 수혜자이기도 하다. 당신이 낸 책 <지문사냥꾼>만 봐도 그렇고.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는 게 꽤 의미 있는 일일 것 같다. TV 나와 바람도 안 맞고. 사명감까진 아니더라도 그런 생각이 좀 있나?
이런 얘길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그렇게 계속 음악을 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선배들, 형들이 많이 있었다. 상황이 안돼서 그랬을 테고, 어쩌면 나도 그럴 수 있을 테지만 말이다. 예전엔 TV도 안 나오던 사람이 오락 프로그램도 하고. 지금 음악계가 어려워서기도 하지만 후배들이 자신의 역할 모델을 찾기가 힘든 것 같다. 30~40대가 되도 자기 음악을 되든 안 되든 넉넉히 꾸준히 하고 있는 사람 찾기가 어렵다는 생각에 슬프다.내가 모델씩은 아니지만 책임감 갖는 부분이 있다. 이러다 또 <야심만만> 나올지도 모르지만(웃음). 나중에 편집돼서‘리액션’만 잡히고.

“이적 씨는 원래 그렇게 말이 없으세요?”란 말듣고? 사실 그런 프로그램에 나온 걸 뭐라 비난하기도 그렇다. 우리 어렸을 때 활발하게 활동하던 가수들이 지금 다시 나오고 있다. 그런 현상을 보면 씁쓸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니까.
어차피 연예인인데. 아무리 아티스트라고 해봐야 크게 보면 연예인이고 사람들 즐겁게 해주는 사람 아니냐, 거기에 뭐 귀족처럼 그럴 것 없다라는 시선도 있다. 그러다 보면 흔들리게 된다. 물론 그런 거 다 X까고 공연장 사람 꽉 차고 앨범 몇 십만씩 팔리면 그럴 필요 없을 거다. 나훈아 선생님처럼.

때론 야속하단 생각 드나? 비판하는 미디어나 등 돌리는 팬이나?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음반시장까지 무너지는 바람에. 그나마 나나, 나와 같은 세대의 (김)동률이 등은 남들 보기 창피하지 않게 뭘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고마운 거다. 공연도 할 수있고 앨범도낼수있고. 야속하기보단 고맙다.

항상 앨범 내기 전에 김동률에게 먼저 들려주고 얘길 듣는다고 하던데, 이번에도 그랬나? 그는 무슨 말을 하던가?
아, 항상 그런 건 아니고, 이번엔 녹음실 위 아래를 쓰느라 자주 얘길 나누긴 했다. 타이틀 곡을 ‘다행이다’라고 하라고 한 것도 동률이다. 원래 1분 50초 남짓의 짧은 곡이었는데, 후렴구 한번 더 부르라고 하란 것도 동률이고. 웃긴 얘기지만 이번 앨범을 나도 기대했다(웃음).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번 앨범 흥미로울 것 같다고 마구 얘기했다. 나에겐 새로운 단계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앨범이다. 듣는 사람이야 ‘구려’라고 한 마디하면 끝이겠지만(웃음). 물론 좋다고 말해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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