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소읍

E.L.잡지를 만들기 전엔 내 인생에 휴일이 없다는 걸 몰랐다. 이제 휴일은, 그냥, 영화에서나 보이는 어떤 짓이란 걸 안다. 피부에 햇빛이 닿지 않고는 도대체 휴일 같지 않다는 사람들의, 햇빛에 대한 동경에 건전한 근거가 있다는 건 알지만…. 어느 휴일에 찍은 내 사진은, 행복해 보이지만 거기가 어딘지는 기억 안 난다. 뭘 보고 웃는지도. 그리곤 경직된 불만족으로 그 후의 날들을 채웠다. 사람들은 휴일에 대한 협의 사항을 갖고 있다. 휴일은, 굶는 사람들에 대한 호사라는 겨냥된 훈계와, 문화 제국주의의 안식일에 대한 현대적 금제를 무찌르는 일상의 기초이기 때문에. 하지만, 난 항상 집에서 내 자신을 행복하게 해줬다. 집은 내가 산 것 중 제일 비싼 거라서, 그 안에서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천금 같은 가치로 꽃필 것 같았다. 오래된 매트리스 위에 자는 게 장기적으로 요추 손상을 가져온다고 해도.

멀리 가는 건 싫었다. 비행기? 22,000피트 창공으로 돌진하는 고속 깡통이자, 날개 달린 지옥 아냐? 비행기 티켓은 많은 레벨의 역경이 기다리는 비디오 게임 입문 같지. 공항? 테러에 대한 공항의 최근 답변은 모든 승객들을 범죄자처럼 다루는 것이다. 공항에 가기 전에 산 거라곤 포부밖에 없는데도, 핸드크림은 100ml 이하인지, ‘날카로운 것’을 소지한 건 아닌지(공항 밖 어디서도 가위나 포켓나이프를 날카로운 걸로 분류하지 않는다) 추궁받는다. 그게 소위 자유 사회라는 곳에서 제정신인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공항 부족部族들은 허용되는 행동 규칙을 정한다. 그 규칙들은 날마다 시간마다 바뀐다. 도쿄에선 백 안의 노트북은 괜찮지만, 파리에선 안 된다. 시애틀에선 신발을 벗고, 키토에선 신는다. 로켓 발사기 같은 대문을 지날 때 언더 와이어 브라를 찼다간 당장 끌려나갈 것이다. 두 시간 늦게 이륙하는 비행기는 두 시간 일찍 도착한 자신을 책망하게 만든다. 긴박한 필요에도 불구하고 지평선 너머에 있는 환승역, 샌드위치 가방을 놓고 가 터미널을 잠가버리게 만든 바보, 용량만 컸지 참을성은 없는 방광….

해변? 사람들이 목가적 이상향쯤으로 기억하는 바다는 수달의 주머니보다 습하다(과학적으로, 모래와 먼지를 구분하는 한 방법은 거기서 거미와 게의 발견 빈도 통계를 보는 거지만, 어디에 눕더라도 게건 거미건 아무것도 없었음 좋겠다). 호텔? 코믹하도록 적은 팁으로 벨보이를 모욕하건, 그의 빚을 다 갚아주건 돈 자체가 참 익숙하지 않은 물건이란 걸 새로 배운다. 생각 없이 미니바의 맥주를 마셨다간 최초의 저당을 잡히고 말고. 동반자? 한 번도“내가 좀 전에 말했잖아”란 말이 상처가 되리란 건 몰랐겠지? 날씨? 이젠 안다. 소풍이 땡벌을 꼬이게 하듯 한 장소에 텐트를 모아놓는 마법의 연금술이 비를 몰고 온다는 걸…. 누군 관광이라지만, 전쟁터에서 성까지, 무덤에서 교회까지 죽도록 많은 장소들을 채우며 걷다간 숙소로 돌아와 혼절하고 만다. 박물관도 죄책감이 들 만큼 질린다(미술관은 상관없다. 모든 석판화 앞에서 감동하며 18분씩 머물지 않아도 된다면). 박물관이 정보를 표시하는 방법으론 나중에도 절대 기억 못할 거다. 누가 몇 년에 어느 왕궁을 지었고, 누가 언제 어디에 묻혔단 걸 알면 더 나은 사람이 될까? 과거의 얼굴에서 마스크를 떼내 미스터리를 읽는 건, 폭력적 이면의 교리가 아니라 우리가 알아야 할 원칙의 범주라서일까?

그러니 그 누가 피렌체행 비행기 티켓과 피아자 산 로렌조를 바라보는 호텔 숙박권을 줘도 마조히스트 커플에게 양보할 테다. 대한민국 소읍으로 가는 안내서라면 모를까. 호텔이라는 체크인의 성지도 없고, 별 다섯 개짜리 식사를 하는 떼거리에 섞일 필요도 없고, 쇼핑몰 통로에서 길을 잃을 수도 없는, 어쩜 콘크리트 가드레일들로 흩뿌려진, 계시록 이후의 황무지가 됐는지 모르지만, 아직은 차가운 바람과 적갈색 잎들이 참된 사색을 일깨워주는 곳, 마음이 가을과 공생의 관계인 명도와 색깔로 변하고 마는 곳…. 지금도 이렇게 휴일날 미적거리는 나의 무능력이 사무치도록 친밀할 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