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여배우

세카, 줄리엣 앤더슨, 진저 린, 트레이시 로즈, 실비아 세인트, 제나 제임슨, 스테이시 발렌타인, 아카네 호타루, 아사미 유마, 밍카, 싸이테리아, 알리샤 클라스…. 이것은 197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포르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배우들의 이름이다. 포르노 애호가를 자처하는 한 공무원이 그녀들에 대한 편력기를 보내왔다. 공문 형식은 취하지 않았다.

컴퓨터만 켤 줄 알면‘순재’도‘야동’을 접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서른두 살인 내가 성에 파르르 눈을 뜨던 시절에는 사정이 달랐다. 세운상가로 조심스레 찾아가‘TV 과외’라는 교육적인 제목으로 그 정체를 위장한‘빨간 테이프’를 입수하면, 가슴은 가슴대로 아랫도리는 아랫도리대로 부풀어올랐다. 뭐니뭐니 해도 그 비디오테이프 안에는‘큰 누나’들이 있었다.‘스웨덴에서 건너온 바비 인형’이라 불렸던 금발 미녀 세카(유하의 시‘세운 상가 키드의 사랑’에도 언급되는 여배우), 포르노계에서는 최초로‘펙 이모(Aunt Peg)’라는 독특한 캐릭터(항상 조카들을 유혹하는)를 만들었던 줄리엣 앤더슨, 지금까지 30편이나 나온 고전 중의 고전 시리즈의 여주인공 케이 파커 등이 70년대를 풍미한 여배우들이었다. 지금처럼 발매와 동시에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서 십여 년은 족히 묵었을 작품들만이 입수가 가능했기에, 70년대 유럽‘누나’들이 90년대 한국 동생에게 가슴을 보여주는 시대를 초월한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 뒤를 잇는 여배우들로는 웅장한 그랜드 캐년을 연상시키는 박력 있는 가슴의 크리스티 캐년, 소위 ‘쓰리 린스(Three Lynns)’이라 불리며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했던 진저 린, 앰버 린, 그리고 포르셰 린, 그리고 앳되도록 귀여운 외모와는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활화산 같은 교성을 토해낸 트레이시 로즈 등이‘오 나의 여신’들이었다(트레이시 로즈는 포르노계를 은퇴해 몇몇 영화에 출연하다가 앨범도 냈는데, 수록곡‘Control’은 우리나라 스포츠 뉴스 BGM으로 나온다).
70·80년대 포르노물은 배우들의 허술하고 작위적인, 하지만 그래서 정감이 가는 연기가 볼 만했다. 가령 줄리엣 앤더슨이 나온 한 작품을 보면, 모범생인 한 여학생이 자신의 선생님인 줄리엣에게 뭔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집에 찾아간다. 선생님은 마침 존 홈즈(엄청난 사이즈로 유명한 남자 포르노 배우)의 거대한 성기를 한 입 먹으려는 상황이다. 문을 활짝 열고는 깜짝 놀라는 귀여운 여학생의 어설픈 연기라니!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줄리엣 선생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마침 잘 왔다. 내가 오럴섹스 하는 법을 가르쳐 줄게”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학생은 언제 당황했냐는 듯“좋아 보여요”라고 말하면서 바나나 시식에 동참한다. 일본 포르노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발견할 수 있다. 젊은 새엄마의 팬티를 코에 대고 자위하는 아들에게 새엄마가 다가가“혼자 하면 몸에 해로워요. 엄마가 도와줄게”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묘하게 귀 끝이 뜨거운 느낌은 요즘 일본 포르노와 옛날 미국 포르노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인터넷의 발달은 한국에서도 해외 포르노를 출시와 거의 동시에 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체코 출신의 실비아 세인트, 폰 스탈렛의 대명사가 된 제나 제임슨과 질 켈리, 스테이시 발렌타인, 브라아나 뱅크스 등의 이름이 우리나라 포르노 팬들에게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들이 80년대 포르노 여배우들과 달라진 점은 모든 면에서 훨씬 화려하고 예뻐졌다는 것이다(사실 대부분의 70·80년대 배우들은 후하게 평가해도 결코‘예쁘다’고 표현하긴 힘들었다). 엄청난 규모로 성장한 포르노 제작사들의 자본과 대중화된 성형수술의 영향이 아니었나 싶다. 스코어라는 큰 가슴 여배우 전문 포르노 제작사가 있다. 이 회사에 소속된 여배우들은 평균 K컵에 육박하는 엄청난 가슴과 이에 비해서 몹시 가는 허리를 갖고 있는데 이렇게 극명한‘가슴의 거대화와 몸매의 슬림화’는 90년대 이후 포르노 여배우들의 일반적인 추세다. 또한 성숙하다 못해 노숙해 보이는 과거 배우들에 비해 훨씬 귀엽고 발랄한 인상이다. 제나 헤이즈, 오로라 스노 같은 배우들은 시대의 흐름과 세대교체를 실감케 하는 예다.
그런 가운데 90년대 후반부터 나를 가장 설레게 했던 여배우는 알리샤 클라스였다. 한때 브루스 윌리스의 연인으로 타블로이드 지면을 장식했던 그녀가 다른 그 어떤 여배우보다 뛰어난 점은 최대 특기인‘Squirting’, 혹은‘Female Ejeculation’(굳이 번역하자면‘물총’) 이라 불리는 기술에 있다. 연기 도중 오르가슴에 다다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를 폭포수처럼 쏟아내는데,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까지 비 맞은 생쥐 꼴이 되는 결코 흔치 않은 광경을 볼 수 있다. 가짜다 진짜다 논란이 있지만, 진짜인 경우도 있고 가짜인 경우도 있는 듯하다. 그냥 소변인지 다른 액체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일본 AV배우 중 인기 순위 상위에 올라있는 아카네 호타루, 아사미 유마 같은 배우들도 이 특별한 기술을 터득한 듯하다. 역시 좋은 것은 빨리 받아들이고 배우는 일본이다(아카네 호타루는 완벽한 미모와 몸매를 갖춘데다 미국 배우들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물총’을 갖고 있어 현역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최근 일본 여배우 중에서 나이가 상당히 많은 축에 속하는 최고의‘물총우먼’무라사키 아야노와의 물총 대결에서는 패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장기 외에도 A2M(Ass to Mouth), 애널링구스(Analingus)라는 초호화 고난도 연기들을 선보인 알리샤 클라스는 미국 포르노 산업의 아카데미상이라 할 수 있는 AVN 어워드의 1999~2001년 그룹 및 애널 섹스 부문을 독식하기도 했다(A2M은 애널 섹스를 하던 남자 배우의 성기를 곧바로 입에 넣어 쪽쪽 빠는 것이고, 여자에게 구강성교 하는 것을 쿤닐링구스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애널링구스가 무엇인지는 금방 감이 올 것이다. 상당한 담력이나 비위를 요구하는 이런 장면에 있어서 그녀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너무나 열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현재는 싸이테리아나 티아나 린,플라워 투씨, 아리아나 졸리 같은 잘 나가는 여배우들이 이 기술을 계승해서 잘 써먹고 있다. 특히 약간 마른 나탈리 포트만 같은 외모의 싸이테리아는 분출량과 사정거리 면에서 타 여배우들을 압도하고 있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대략 거리가 7미터 이상이고 그 양은 2~3리터 정도 된다고 하니 인체의 신비에 숙연해질 따름이다.
그러나 규모만 커졌지, 부실한 스토리에 만날 똑같은 앵글과 체위로 일관하는 미국 포르노엔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가끔 대작 지향적인 작품들이 나왔지만 할리우드 영화를 패러디하는 진부한 시도들이었다. 미국 포르노의 자극에 점차 무뎌진 나는, 저러다 여배우들이 다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과격한 난교에 정액과 오줌이 난무하는,해도 너무한, 세도 너무 센 독일 포르노를 거쳐 비로소 우리의 이웃, 일본의 AV에 집중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항상 냉면 그릇만한 가슴과, 짐승을 방불케 하는 과격한 플레이만 접하다가 일본의 아기자기하고 귀여운‘야메떼’아가씨들을 만나니 점점 정상적으로(?) 취향이 바뀌어 가는 듯했다.
일본은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맞춤형으로 다양한 포르노물을 만든다. 귀여운 여동생 스타일을 원하는 이를 위한‘미소녀물’, 성숙한 누님 취향을 위해‘숙녀물’, 먼저 남자를 덮치고 성적으로 괴롭히는 적극적인 여배우들을 원하는 팬들을 위한‘치녀물’, 폰섹스처럼 대사의 완성도를 중시하는 사람들을 위한‘음어물’, 남자 성기가 달린 ‘언니’들을 원하는 참 흔치 않은 취향을 위한‘뉴-하프물’등 장르를 세분화시켜 작품을 찍고 있다. 심지어 동물과의 성교를 찍은‘수간물’이나 대변을 섭식하는‘스캇물’등 실로 포르노의 경지에 있어 주화입마쯤에 해당되는‘패륜작’들도 버젓이 시판된다. 물론 그러면서도 성기의 직접 노출은 법으로 금지되어 엄격하게 모자이크 처리돼서 발매된다. 또한 일본은 상당히 많은 서구의 개념을 개성 넘치는(?) 한자조어로 번역하거나 새로 만들어내는데, 이 능력은 포르노에도 십분 발휘되고 있다. 가령‘거유(巨墾)’만해도 대단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것을 한층 뛰어넘는 여배우들에게‘폭유(爆墾)’라는 표현을 쓴다. 귀여운 외모의 가학성향 소녀들을‘소악마’, 남자의 고환을 애무하는 것을‘옥애무’라고 쓰는 재치(?)를 보여준다.

그럼 한국은? 모두 알다시피 포르노가 제작, 유통되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해외에서 포르노를 찍어도 국내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에 대해 깊은 얘기를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르노를 봤고, 지금도 보고 있으며, 매일 밤 전국의 수많은 유흥업소에서는 라이브로 포르노가 상영되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과연 언제까지 사문화된 법으로 막아둘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상수도를 만들면 하수도도 만드는 게 세상의 상식이다. 상수도만 만들고 하수도가 정비되지 않으면 전염병이 돈다.

니콜 키드먼이나 스칼렛 요한슨 같은 배우가 있으면, 제나 헤이즈나 싸이테리아 같은 배우도 있는 것이다. 니콜이나 스칼렛이 할 수없는 연기는 제나나 싸이테리아가 해주면 된다. 안젤리나 졸리를 좋아하든 아리아나 졸리를 좋아하든, 머라이어 캐리를 좋아하든 매리 캐리를 좋아하든 취향대로 즐기고 살면, 그게 좋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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