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DITOR’S LETTER – 나는 당신을

2008.10.30GQ

E.L.나는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에 일일이 설명 듣기를 원하는 부류가 아닙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은 지큐 속에 담을 수조차 없습니다. 큰 방이나 차고, 전집 한 질로도 모자랍니다. 당신은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당신은 훌륭한 된장찌개와 파스타 맛이 어떤 건지 압니다. 당신은 허튼수작 같은 개숫물 따위는 마시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성을 존중합니다. 그들을 인간으로 좋아하며, 그들이 깊이 없는 대상으로 대해지는 걸 혐오합니다. 그들은 기분 좋은 특성을 가진 3차원적 인간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압니다. 당신은 뇌 손상을 입은 것 같은 자들, 누군가 항상 대신 문을 열어줘야 하는 자들과 다릅니다. 당신은 불평등한 운동장에서 보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은 기다릴 가치가 있는 뭔가를 만드는 데 삶을 바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직물을 짜는 이, 그릇을 굽는 이들 말이지요. 당신은 매끄럽습니다. 에나멜 지갑 같은 매끄러움이 아니라 세심하게 닦인 매끄러움입니다. 누구는 형광 분홍색 안감처럼 재킷을 벗을 때 눈이 부시듯 사물 속에서 튀는 게 세상을 향해 비명을 내지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다릅니다. 네이비 블루 블레이저에 어울리는 안감은 형광 분홍이 아니라 (드라큘라의) 레드 실크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당신을 위해 만든 수트 하나쯤은 가졌습니다.아니면, 지금이 가질 때입니다. 당신은 소매 접은 꼰대를 혐오합니다.재단사가 바지 앞섶에 단추를 달 건지, 펜 포켓은 필요한지 묻는다면, 당신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듯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당신은 겁먹지도 소란스럽지도 않으면서 원하는 걸 얻는 방법을 압니다.

6년 동안 를 통해 스타일과 쇼핑과 건축과 럭셔리와 속된 가치에 대해 배우는 동안, 나 역시 당신이 겪는 종류의 일들을 거쳤습니다. 에 대한 나의 인식은 부끄러움과 자랑에 의해 모양을 갖춰 왔습니다. 나는‘이런 잡지를 읽은들 뭘 얻을 수 있어? 바보들에게 투표하고, 뚜쟁이들을 숭배하고, 쇼핑, 섹스, 책, 유흥이 주는 알량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 그 고생해서 번 돈을 날리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이?’이렇게 생각합니다. 또‘이 심상치 않은 시대에 난 스스로를 고무시키는 시스템에 속박된다는 게 뭔지 알아. 난 나의 투표같은 지혜가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걸 믿어. 왜냐하면 나는 매달를 통해 스스로를 재건하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차갑고 축축한 밤은 미끈거리는 원유가 흐르는 강물처럼 지난 6년의 모래사장을 왔다갔다하고 있습니다. 고개 돌려 에디터들을 보면 달 착륙을 주제로 영화 찍는 사람과 마주치는 기분이 듭니다. 갑자기 음향 시스템이 복구된 듯 동대문 로커들은 엄청난 사운드를 내뿜고 있습니다. 내 자신, 무도회장에 남겨진 타잔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나는, 같은 잡지는 대한민국 문화적 국경 내부의 단층선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이 단층선은 세속적인 치들과 엄숙한 생각으로 여며진 신노동당원 사이가 아닌, 다른 해석들을 존중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합니다. 가끔 에서 다루는 담론들이 부담스럽다는 코멘트를 듣습니다. 지구 온난화 기사를읽고 싶다면 신문을 보겠다는 식입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어서 읽고 현실을 적시하는 겁니다. 그러나 지면에서 환경 문제를 읽는다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결국, 우리는 정원사이기 때문입니다.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위계나 형식적 관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한계는 당신 것이 아닙니다. 창공도 당신의 한계가 아닙니다. 나는 그저 당신을 존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참 다정한 친구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6년 동안 내가 배웠던 모든 것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당신과 마주치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에디터
    이충걸(GQ KOREA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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