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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2008.11.20GQ

“쌀것같아”는 침대위의 고전이 되어버린 명문장이다. 침대 위의 모두가 황진이와 서화담처럼 서로의 마음을 다읽었다는 눈빛으로 유려한 문장을 주고받는 건 아니니까. 같은 자리에 있지만 말은 다르다. 남과 여의 ‘동상이어(同牀異語)’.

그녀는 말했다.“에이, 이 자세에서 사정하면 어떡해! 조금만 더 참으라니깐.”그렇다. 이건 반항이다. 후배위로 넘어가기 전 정상위 자세를 유지한 채, 난 그녀의 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그냥 사정없이 사정해버렸다. 지금 이 여자, 그러니까 내 아내의 머릿속은 온통 임신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타짜>의 김혜수 못지않게 똑똑한 ‘이대 나온 여자’에다 매일 6시면 일어나 아침에 우유 한 잔, 점심엔 패스트푸드로 때워야 하는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인 그녀가 해만 지면 명상과 함께 임신 무드를 조성, 인류의 원시성에 탐닉한다.

검은콩, 검은 김이 머리카락이 나게 하는 식이 색채 요법인 것처럼 정자의 생성을 극대화하는 굴, 우유 등의 흰색 음식이 밥상을 지배한 지도 오래다. 막상 관계가 시작되면, 임신도 3~4개월 전부터 준비하는 거라고 말하던 아내는 벌써 3개월째 침대에 머리를 처박고 후배위 자세로 사정을 강요한다. 마치 논산 훈련장의 조교와 훈련병처럼 우리의 잠자리는 언제부턴가 상명하복의 지시와 복종의 무드가 조성됐다. 침대 위의 밀어라느니,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이니 하는 얘기는 그 옛날 삼류 에로소설 속에서나 본 것 같다.“내가 허리를 들 테니까 조금 더 위로!” “네.” “내가 왼쪽 다리를 들 테니까 오른쪽 무릎 들어올리고!” “네.” “자기는 지금 디딤발과 임팩트하는 발의 간격이 너무 넓어.” “네.”우리의 침실 대화란 마치 과거 생물 수업의 해부학 시간 같다.

기억 속 해부학 시간에서 본 것처럼 언제나 적절한 삽입 각도를 유지하고 있는 안정된 개구리 자세. 마치 뻑뻑한 관절의‘리얼달’을 대하는 것처럼 그 자세는 최근 몇 달간 변함이 없다. 고개를 쳐들어도 안 된단다. 이것은 내 몸을 떠난 정자들의 낙오와 불시착을 최소화하는, 최후의 한‘씨’까지 살려 내는 최고의 임신 자세이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이런 내 얘기를 듣더니 부러워했다. 자기는 후배위가 가장 좋은데 아내가 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난 원래 후배위도 즐기지 않았지만, 3개월째 밤마다 후배위에 몰입하고 있는 내 처지를 생각하면 말 그대로“꺄올~”하고 짐승처럼 울부짖고 싶어진다. 게다가 아내의 등에는 무척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꽤 큰 크기의 점도 하나 있다. 사포로 비벼야 직성이 풀릴 것처럼 정말 애매한 위치에 애매한 크기로 자리 잡은 그 점은 언제나 나의 쾌락을 반감시켜왔다. 그런 그 점을 이제는 거의 매일 보고 있다. 이번 달에는 아내의 얼굴을 본 시간보다 그 점을 마주한 시간이 더 길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렇게 섹스가 애정보다 생식에 치우치다 보니 어느덧 관계시 나누는 대화마저 무미건조해졌다.“나 지금 죽어!” “이렇게 하면 좋아?” “오늘 어땠어?”라는 말보다 펀드의 등락폭과 증시 변동, 심지어 얼마 전에는 아시안게임 메달 집계까지 묻고 답했다. 그건 감정의 교류라기보다 차라리 정보의 교환에 가깝다. 이 지루한 후배위의 나날들로부터 해방되더라도, 어설픈 상체 공격만 하는 그레코로만형에서 그 옛날의 뜨거운 자유형의 감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조차 이제 미지수다.

얼마 뒤 아내는 또 섹스하는 중에 말했다.“아이를 가질 수만있다면 뭐든지 할 거야.”이렇게 매번 태어나지도 않은, 아니 심지어 씨가 채 뿌려지기도 전의 아이 얘기만 나오면 미안하게도 내 페니스는 의기소침해진다. 아이에 대한 양가 부모들의 강력한 압박이 아내와의 섹스 대화를 이리도 궁색하게 만들었지만, 그 옛날 섹스의 대화들이 그리워진 나는 스컹크처럼 엎드려 있는 아내에게 용기내어 말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를 하고 있는지 감시하려는 어머니가 같이 공부한답시고 내 공부방을 종종 지키고 있거나 간식 제공을 빌미로 불시에 들이닥치기도 했었지만, 이제 와서 아이를 낳게 만든 답시고 부부의 침실에 몰래 들어와 그때처럼 강제로 양과 음을 접붙여 섹스를 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여전히 서로 눈을 마주치지도 않은 그 자세에서 아내는 내 얘기를 라디오 듣듯 들었다. 잠시 그 리얼달의 자세가 흐트러지는가 싶더니 이내 한마디한다.“알았으니까 어쨌건 이미 시작한 건 싸고 끝내.” 행여나 오늘의 결과로 배가 남산만해졌다 해도 미래의 내 아들 혹은 딸이 우리의 이런 대화를 전혀 알 수는 없겠지. 예전엔 섹스에 집중하느라 감정 의도가 지나쳐서 말이 없었지만 이제는 섹스할 때 아무런 감정이 없어서 말이 없다. 난 요즘 부쩍 말이 없는 내성적인 사내가 되어가고 있다. 고만해(가명, 출판인)

 


 

그는 말했다.“네가 뭐가 힘들어? 누워만 있었으면서.” 나도 모르게 “어우, 힘들어.” 라는 말이 튀어나왔는데, 그때 그가 보인 반응이었다.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고장 난 차를 뒤에서 힘겹게 밀고 있는데, 나 혼자 편히 차 안에 앉아 있었다고 비난 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격렬한 운동 후 볼이 홀쭉해진 그에게 찬물을 가져다 줬다. 이 자식. 요즘 들어 부쩍 불만이 늘었다. 예전엔 옷만 벗어줘도 좋아하더니. 갈수록 요구가 많아진다. 어딜 봐도 정숙한 내가 입이 거칠어진 건, 그가 섹스가 재미없다고 선언한 다음부터였다. “너 역치라고 아냐?” 역치?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운 것도 같다. 교과서의 왼쪽 페이지 아래쯤에 역치에 관한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는데….“그게 말이야. 자극이 일정 기간 지속되면 무뎌진다는거야.” 그래서? “그래서 말인데, 네 몸만 봐도 흥분되긴 하지만, 뭔가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어.”

체격은 좋으나 체력은 약한 나는 그의 배에 올라타 앞뒤로 움직이는 게 힘들었고, 유연성이 약한 나의 허리 돌리기 또한 그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말로 그를 흥분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밝히는 여자가 됐을 때 흥분했고, 나는 그의 성적 흥분을 위해 기꺼이 밝히는 여자가 돼주었다. “벌써 커졌네. 들어오고 싶니?”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말고. 무심하게 말해야 더 흥분돼.”그의 요구대로 나는 무심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밝히는 여자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핥다, 물다, 빨다, 넣다, 이 네 가지 동사는 내가 애용하는 것들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섹스가 끝나고 그는 나의 볼에 뽀뽀를 해주며 물었다.“너 역치라고 아냐?”나는 또 자극의 강도를 높여야만 했다. 그래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야설에서 익힌 대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x발. x나 아파. 근데 x 나 짜릿해. 썅! 더 세게 박아! 더 빨리!” 우리 엄마는 다음 두 부류의 사람을 싫어한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과 천박하게 욕을 하는 사람. 엄마가 날 이렇게 키우지 않았건만!
죄책감을 느끼며 나는 욕설을 퍼부었다.“x발. 좋아. 더 세게. 개x 끼야. 더 세게 박으라구!”하긴, 우리 엄마는 당신의 딸이 섹스를 한다는 상상도 못하실 거다. 그로부터 며칠 후. 섹스가 끝나고 그는 나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물었다.“너 역치라고 아냐?” 내가 백치 아다다냐? 왜 묻고 묻고 또 물어? 그냥 얘기를 하면 될 거 아냐!

나는 자극의 강도를 또 높여야만 했다. 그래서 더 긴 얘기를 늘어놓기로 했다. 내가 꿈꾸는 섹스 판타지를. 물론 각종 야설과 야동에서 본 대로.“나는 여러 명과 한꺼번에 하고 싶어. 한 명은 삽입하고, 한 명은 가슴을 주 무르고, 한 명은 입에다 쑤셔 박고.”예상대로 그는 평소보다 더 거친 숨소리와 격정적인 움직임으로 보답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섹스가 끝나고 그는 나의 몸 위로 이불을 덮어주며 입을 열었다.“너 역…” x발! 알아! 역치! 그놈의 지긋지긋한 역치! 나도 다 안다고! 하지만 자극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뭘 더 어째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나… 이제 어떻게 해? ” “음, 너의 섹스 판타지 속에, 실제 인물을 넣어봐.”“실제 인물? 누구?” “네가 평소에 섹스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 나는 눈을 반짝거리고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다.“조니 뎁? 에단 호크? 조시 하트넷?”“외국 사람말고.” “비? 강동원? 김남일? 조재진 허벅지 죽이던데.” “연예인말고, 현실적인 인물로.” ‘내가 아는 남자 중에 섹스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너랑 하고 있겠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 나왔지만, 나는 그냥 오다가다 만난 남자의 이름을 들먹였다.“저렇게 우락부락한 손으로 내 몸을 거칠 게 만져주면 얼마나 짜릿할까? 그 남자랑 섹스하는 생각하면서 자위도 매일 했어.”얘기를 하다 보니, 그 남자의 못생긴 얼굴과 유난히 짧은 다리가 생각났고 순간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남자를 최고 정력의 야생마로 임명한 채, 얘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 남자 아랫입술이 어찌나 육감적이던지, 확 깨물어버릴 뻔했다니까.” “그리고?” “덥다고 남방을 벗었는데 민소매 티를 입고 있더라고. 가슴 근육이 장난 아니야.” “그리고?” “걔도 날 원하는 눈치더라고.” “그리고?”제발.‘그리고’다음에는 아무것도 없단 말이다. 하지만 그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나는 며칠 동안 상상력을 있는 힘껏 짜냈다. “내가 얘기했나? 그 남자 아랫입술이 육감적이라고. 확 깨물어버 릴 뻔했어.” “그리고?” “덥다고 남방을 벗었는데, 가슴이랑 팔뚝 근육 이 끝내주는 거야.” “그리고?” “걔는 나한테 아무 관심 없어 보였는데, 내가 막 유혹하고 싶더라니까.” “어? 전에는 걔도 널 원하는 눈치 였다면서?” “내가? 아, 그랬나?”상상력도 미천한 주제에 기억력도 후져서 낭패를 본 후, 나는 바로 다른 남자를 섹스 판타지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당분간은 내가 알고 있는 남자들 얘기로 어떻게 시간을 끌어 볼 수는 있겠지만 나는 늘 그와 섹스를 할 때마다 두렵다. 혹시나 그 가 이렇게 물어볼 까봐.“너 역치라고 아냐?” 남정숙(가명, 회사원)

    에디터
    나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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