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DITOR’S LETTER – 성공과 상처

2008.12.09이충걸

E.L.겨울이 되면, 누구나처럼, 일 년이란 시간 전부가 한 달의 열매도 없이 완전히 지나가 버린 것 같다. 한심해,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라고 말하고 나면, 잃을 게 아무것도 없는 처지에서조차 잃어 버릴 수 있는 모든 걸 가진 기분이 되고 만다. 책 한 권이 가슴속에 무거운 소리를 내며 끝나듯 한 해가 지나면, 일 년 내내 잡지를‘살고 숨 쉬었’지만, 그게 나에게 더 많은 걸 하게 만든 것 같지도 않다(종결을 참을 수 없어 그 끝에 다다르기 전에 책을 놓아본 적이 있었나? 삶이 그렇게 쉽게 조작될 수 있을까?). 파우스트적인 세상에서 걷어 차인 뒤엔 강직한 척하기 위한 여분도 안 남는다. 12월에, 빙하는 컵 받침대에 똑똑 떨어지고, 사막은 침대에서 한숨을 쉰다…. 그러나, 어두운 큰 강 하구에서 모든 걸 정지 상태로 만드는 뭔가에 직면할 때조차, 누구한테서 어떤 헛소리도 귀담아 듣지 말자는 건 나의 구차한 지혜이다. 그래 봤자 낭비하는 시간만 늘어갈 뿐이다. 사회의 모양을 만들어가는 위대한 사람들이라고 내부에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창조의 우물을 가진 건 아닐 테다. 적어도 그를 원하는 자리에 어떻게 있어야 할지는 알겠지만…. 상업적 세상이, 크고 형편없는것에 눈과 귀를 즐겁게 채울 때, 그들은 당대의 계량법에 자신의 출중한 문화적 본능을 맞추는 것이다.

하지만, 명성은 너무나 피곤해 보인다. 사람들은 이름을 가진 이들에 대해 너무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거나, 너무 지나친 기대를 한다.그들의 현실 속 도전기에는 우러러볼 것과 비난할 것이 동시에 있다. 실패하면 사람들은 그들을 바보라고 부른다. 그들이 성공하면 대신 영웅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현대의 도덕 철학에 논쟁을 일으킬 만한 새로운 관념의 예를 보여준다. 모순되게 들리지만‘도덕적 운’말이다. 칭찬 아니면 비난이 꼬리 무는 일이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운과 상관 있을까. 어떻게 커다란 환영歡迎과 혼란스러운 무능이 공존할까. 하는 일마다 일일이 칭찬 듣거나 비난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면, 운도 그가 가진 것 중의 하나로 작용하는 것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인상 깊은 명성 뒤에 숨은 너무나 평범한 사실이며, 하나의 명성과 여러 명성들을 위태롭게 만드는 어떤 상태 아닌가. 이것을 다 합하면 결점 많은 인간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결국 모든 성공은 무섭다. 너무 이른 성공은, 의지력에 반하는 초자연에 가까운 운명의 개념을 준다. 젊은 나이에 도달한 사람은 그의 빛나는 별 때문에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성공을 실행했다고 믿는다. 나이 들어 성공하는 건 더 슬프다. 그 별이 식고 나면 의지할 게 거의 없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된다. 해피 엔딩이 슬픈 건 불완전성 때문이다.

이달 MEN OF THE YEAR의 면면을 보면서, 그들의 미덕이 무엇이건, 그들이 단지 합리적인 사람들은 아니란 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들 원치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는 위험을 감수하는 건 그들을 아주 매력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이유이다. 하지만 판에 박힌 듯 그들을 양육해 왔거나, 좌절시킬지도 모를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 나태한 자들에게 충격과 상처를 주고 마는 것이다. 내가 찬 바닥에서 시리게 웅크리고 있을 때 그들은 옥상에서 자기들만의 달달한 공기를 마시리 라는 것, 엄청난 힘으로 채워진 할 일들의 목록을 지니고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부랑자들 사이로 표표히 걸어갈 거란 상상과 함께….

성공(이라는 장엄한 개념)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의자에 앉아 나는 자조한다. 그래봤자, 단순하고 무가치한 육신이 만든 업적이 영원할 리 없어. 문명화된 사회의 마지막 남은 자투리들은 콜로세움같이 부스러지고 마는 거야. 모두가 그들처럼 성공할 수도 없어. 그게 그들을 비난하거나 그들이 준 기쁨에 대한 변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분별한 무관심으로 자신감을 약화시키고, 우아함관 동떨어진 것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불쌍하게 살지도 않겠어. 그냥, 별이 빛나는 어둠 속에서 나를 숨긴 채 걸으며 발 아래 놓인 것들과 천체에 대해 자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거야. 이만해도 참 잘 했어. 그니까 나보다 잘났단 이유로 그들을 미워하진 않을 거야….

    에디터
    이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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