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은 김창완을 살지

말은 얼마나 가벼운가, 시간은 얼마나 빠른가, 삶은 과거에 있는가, 미래에 있는가. 우리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김창완에게 물었다.

밤색 목도리는 엠폴헴, 검정 노트색 니트는 씨스데이아일랜드.
밤색 목도리는 엠폴헴, 검정 노트색 니트는 씨스데이아일랜드.

김창완은 오후 네 시부터 지쳐 있었다. 목소리는 쩍쩍 갈라졌다. 하지만 오후 네 시에 만나 여섯 시 반에 헤어지고, 다시 아홉 시 반에 만나 새벽 한 시에 헤어졌다. 두 번째 만났을 땐 막걸리를 세 주전자나 비웠다. 인터뷰는 새벽 한 시쯤 끝났다. 대화는 녹음했었다. 하지만 녹음기는 인터뷰를 시작한 지 45분 만에 죽었다. 그걸 몰랐다. 녹음 분량의 반이 날아갔다. 음악의 실체, 일상이 담고 있는 비밀, 허허실실 평안해 보이는 김창완은 사실 죽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가 그 안에 있었다. ‘산울림’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 배우 김창완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사는 얘기,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파를 꺼냈는데, 반 토막 난 파가 이만큼 자라있었다는 얘기, 김창완이 김창완을 살아내고 있는 어떤 피곤함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김창완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 많은 말들이 있었으니까. 말들은 웹페이지 위에서, 종이 위에서 먼지처럼 흩날리고 있었으니까.

“인터뷰, 지겨우시죠?” “지겹지….”

김창완은 음악이나 연기에 대한 얘기는 사실 하나마나한 얘기라고, 실컷 인터뷰해 놓고 “더 할 말 없습니까?”라고 묻는 질문이 가장 지겹다고 말했다. “더 할 말 없습니까”라니, 이건 주로 피고인이 받는 질문이 아니었나? “여태까지 편견으로만 서로 부딪히다가, 마지막에 편견을 깨는 한마디를 원하는 거지.” 인터뷰의 시작은 이랬다.

<이하나의 페퍼민트> 영상을 봤어요. 그게 너무 생생해서, 오히려 ‘김창완의 부재’를 상상했어요. 김창완이 없는 대한민국을 상상했어요. 눈물이 핑 돌았어요. 이상하죠, 우린 만난 적도 없었는데. 그게 어느 정도는, 자기를 도려내는 일일 거예요. 부모, 아내, 남편, 애인. 여러 가지 이별의 장면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몸서리쳐지는 게 형제를 잃어버리는
거라고 해요. 제일 오래간대요. 한 배에서 나온 형제들이 갖는, 한몸 같은 느낌이 있어요.
내 청춘의 일부가 제거되는 것 같고, 내 팔다리 하나가 실제로 못 쓰게 된 것 같은. 그런 풍 든
느낌마저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걸로 유추해볼 때 나의 부재라는 것이 청춘의 일부분을
내 음악과 함께, 또 내 노래를 청춘의 노래로 품고 있는 사람들에겐 상당 부분 자기 상실 같은
느낌이 있겠죠….

제가 산울림의 노래를 청춘의 일부로 품진 않았어요. 저는 과거의 경험이나 성장의 일부를 담당했던 우상, 창작자를 잃어서 슬펐던 게 아니었어요. 더 이상 김창완의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는 게 슬펐던 거죠. 아직 새로운 세대들이, 내 아들보다 어리거나 내 아들 또래의 친구들이 나를 연기자로 생각하기 쉬운데… 뭐, 늘 그랬지만 나는 사실 관록 있는 오래된 밴드라는 이름을 썩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관객은 낯설어해도 에픽하이나 원더걸스, 그 밖에 젊은 밴드들하고 늘 한 무대에 서고 싶었어요.

산울림을 두고, ‘전설’이라는 말을 흔히 하죠. 하지만 전설은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거나, 나무꾼이 선녀 옷을 훔쳐서 결혼하거나 그런 거예요. 전설은 오래된 이야기나 터무니없게 아름다운 이야기, 터무니없게 위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전설은 지금 이 순간일지 몰라요. 과거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 있고, 과거보다 더 긴 미래에 대한 약속이 지금이니까, ‘지금’은 전설의 가장 적합한 시간일지도 몰라요. 전설이 과거라면, 산울림의 역사는 너무 짧았고. 지금 내 얘기대로라면, 산울림은 지금부터 시작일 수 있어요. 전설이 미래를 내포하거나, 현재가 모든 전설의 끝이라면, 지금이야말로 산울림이 전설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에요. 그 전설도, 20년 당겨 온 거예요. 원래 산울림에 전설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아직도 20년이나 30년 뒤, 형제 중에 누가 하나 정말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쯤으로 생각했었는데, 미래에 있을 전설이 너무나 빨리 당겨 온 거예요. 더군다나 막내의 부재를 경험하면서, 삶이라는 게 과거의 적분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미분 적분의 적분요? 과거를 죽 더하면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삶은 델타 T 안에 있다.

델타 T요? 시간의 변화. 그러니까 순간 안에 있다. 미분화된 그 순간 안에 있다는 거예요.

당신의 재능을 둘러싼 사람들의 질투가 있어요. 당신은 “그건 고도의 집중력이다. 감성의 포착은 집중”이라고 말했어요. 그건, 행복의 조건이기도 하죠. 이미 공개됐고, 검증된 비결로서. 최근 몇몇 인터뷰에서는 사랑이나 행복이 충족된 조건이 아니다. 선택이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어요. 일상, 행복, 사랑, 죽음. 이런 것들에 대한 혼란은 대부분 소통 장애 같아요. 그 안에서 뭘 발견하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점점점점 빠져드는 물귀신일 수도 있어요. 내가, 1997년에 13집을 발표하고 10년이 넘도록 작품을 못하고, 써 놓고 쌓아놨던 곡들도 이번에 김창완밴드 하면서 다 묻어버렸어요. ‘나에게서 비롯된 노래들을, 누가 노래라고 했는가’를 의심했어요. 내 삶을 내가 보증할 수가 없었어요. 나는 음악뿐 아니라, 삶으로부터 계속 달음박질치고 회피하는 것을 일상으로 해 왔지. 삶이 날 잡으려고 할 때 그 손이 나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 같고, 생이 나를 붙잡는 것 같고, 생이 내 발 밑에서 질퍽거리는 것 같았고, 늘 귀찮고 그랬죠. 여러가지 혼란스런 일들을 겪으면서 일단 음악 쪽이 정리가 됐어요. ‘내가 불러서 노래가 아니라는 것은 맞구나’ 그걸 인정하고. ‘그러면 무엇이 노래인가?’ 다시 물어보게 됐고. 산울림에 “음악이 나를 춤추게 하고 노래하게 한다”는 가사가 있었어요. 그게 되살아났어요. 결국 한 30년 노래를 하다 보니까, 내가 부르는 것이 노래인 걸로 착각하고, 교만해지고 그랬던 거예요. 최근에 다시, ‘아, 내 노래의 주인공은 음악이구나. 음악이 나를 춤추게 하고 노래하게 하는구나’알게 됐죠. 그래서 삶이라는 것도 나의 선택, 나에게 떨어진 준엄한 명령이구나. 이걸 느끼게 됐어요.

거스를 수 없는. 거스를 수 없다고 봐요. 내가 그래서 파에 대한 얘기를 했어요. 냉장고에 넣어놓은 파가 반으로 잘려 있었어요. 이만큼은 파란 잎이고, 이만큼은 줄기예요. 우리 아줌마가 신문지에 싸 놨어요. 냉장고에 넣어놨어요. 내가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파를 딱 빼서 수의를 벗기듯이 신문지를 벗기고, 파를 집어 들었는데, 파가 이만큼이나 자라 있는 거예요. 소름이 쫙 끼쳤어요. 몸이 반으로 잘려져서, 수의를 입고 들어가서, 곧 생명이 없어지는데 거기서 싹을 내듯 파가 자랐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죽음은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무서운 생명, 그걸 한참 봤어요. 이런 건 뭐 감상적인 거고, 중요하진 않고.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의 이런 생각. 아주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 이런 것들조차, 훅 불면 꺼지는 촛불만큼 아주 간단한 논리고. 온 아니면 오프 정도밖에 안 되는 간단한 게임이에요. 정신이란 게 그래요. 최근의 인터뷰에서, 김창완은 몇몇 기자들의 손을 잡았다. 우리가 만나서 서로를 만지는 어떤 순간에 대한 체험으로서. 그리고 지금, 김창완이 자세를 고쳐 앉고 있다. 상체를 일으켰는데, 왼손을 뻗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제 손 잡으려고 그러시죠? 그렇지. 내가 이렇게 손을 잡아서 내 말뜻을 전하려고 하는데. 그런 일련의 것들을 인터뷰로 풀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오죽하면 인터뷰를 하다 말고 기자 손을 꽉 잡았겠어요.

그걸 많은 분들이 썼어요. 손 꽉 잡은 걸?

‘(이때 기자의 손을 잡으며)’라고 썼어요. 수십, 수만 년의 역사도 이 한순간을 다 함축하지 못한다는 맥락에서. 오히려 반대로. “그 많은 역사와 집적이 이렇게 한순간에 구현된다.” 그게 본뜻이에요. 그걸로 모든 얘기를 다 내포하는 걸 수도 있고, 모든 것들을 하잘것없게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그러나 내 생각에는, 몇 시간 얘길 하고 몇 시간 술을 퍼먹고, 또 수많은 얘기를 나누고. 그 모든 것이 한 번 손잡는 행위 안에 포함이 된다.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런 내용이지.

굳이 해설을 할 필요는 없겠죠? 이런 예를 들 수 있겠네. 내가 곡을 만들면서 기타 하나 들고 둥둥둥둥 꾹 눌러서 녹음을 해요. 그 간단하고 단조로운 행위가 얼마나 내포하는 게 많은지, 어떤 편곡을 붙여도, 처음에 있었던 분위기를 재현해 내는 건 불가능해요.

‘지금’을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 사이의 오해, 왜곡은 필연적이지.

제 글은 제 것이고, 제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당신이고. 하지만 그런 게 인터뷰라는 사회적 용인이 있다면, 오케이. 그냥 자신을 믿으세요. 내 눈으로 본 세상. 그것에 충실하는 거지.

사람을 괴롭게 하는 건 의심일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의심 하나 없었던 인생처럼 보여요. 음악은 홀리듯이 시작했고, 1집 앨범은 그냥 친척들에게 돌리려고 녹음했고, 그게 성공했고. 그런 일련의 설화들이, 그런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거예요. 아니 나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저 사람은 안 그럴 거야’라는 선입견들이 내 말을 다 안 들리게 만드나봐. 하하. 그러니까 내가 전설이 된 거는, 전설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설화들이 퍼져나가고 있는 것은….

김창완 설화죠. 그것은 나의 의지나 삶과는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의 질투, 또 많은 사람들의 희망의 산물일 수 있죠. 그걸 일일이 참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봐요.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교하게 이뤄져 있어요. 상식적으로도 수십억 년의 시행착오를 거친 것이기 때문에, 상처 하나를 치유하는 과정에도, 실수라는 것은 거의 없어요. 생각을 잠깐 잘못 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우리 몸이나 생명이 실수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핑크색 개나리꽃 본 적 있어요? 억지로 만들어내는 장난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십억 송이의 개나리꽃이 다 같이 노란 것을 보면서, 생명엔 얼마나 치밀한 계획표가 있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또 변종조차도. 그건 우연이 아닐 거예요.

당신은요? 나도 치밀하게 만들어진 인간이지.

흰색 니트는 빅토리녹스, 갈색 코듀로이 바지는 루츠, 모자와 목도리는 모두 엠폴햄, 기타는 김창완의 것
흰색 니트는 빅토리녹스, 갈색 코듀로이 바지는 루츠, 모자와 목도리는 모두 엠폴햄, 기타는 김창완의 것

누군가 “어쩜 그렇게 많은 일을 하세요?” 물었더니, “나 죽을 만큼 노력해요” 그랬어요. 그건 무서운 말이에요. 나의 감각에 다가오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일상이다. 그러나 그걸 다 못 보니까 권태로운 것이다. 그게 아까워서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고 결심 한 적이 있어요. 그거는 죽을 만큼 노력하면…. 되는 거예요. 되는데, 우리가 보통, 아 나는 뭐 언어가 짧다든지, 나는 머리가 나쁘다든지, 나는 게으르다든지 자기한테 수만 가지 이유가 있어요. 그런데 지금 현대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그래도요, 눈에 왜 저게 보이나를 완전히 설명 못 해요. 더군다나 우리는 생명으로부터 아직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죠. 한마디로 우린 아직 멀었어요.

인간이요? 아직 너무나 원시적이지. 뭐, 공상은 할 수 있지만, 자기중심으로부터 확 벗어나는 어마어마한 존재가 되기에는….

미개한 거예요, 그렇죠? 미개하고, 이기적이고, 아직 그것의 노예이고. 우리는 아직 너무나 무식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보는 것, 내가 느끼는 것, 이것에 대한 신뢰만으로도 지금의 우리보다 백 배 만 배 커지는 거예요. 내 생각이 그거예요. 나에게 재능이 있다 없다를 떠나서, 아니 한 겨울에 왜 수박 맛이 그리울까? 입덧하나? 이런 신비함부터. 어휴, 할 말이 없습니다. 어마어마한 세상이 있는데, 그 모든 해석을 다 갖고 있는 본인들이 왜 절더러 당신 그림이 좋아요 글이 좋아요, 노래 좋아요. 그러시는지.

자전거, 너무 타고 싶으시죠? 너무요. 술 마시고 자전거 타다가 몇 번 넘어지고 나면 걸어다니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뇌의 기능이 필요한가 하는 걸 알게 해 준다니까요?

언젠가 스키장에서 팍 엎어졌는데, 너무 새로운 감각이었어요. 코가 시큰한 게. 그리고 얼마 전에 스쿠터를 슬금슬금 타다가 넘어졌는데. 것도 새로웠어요. 한 20년 만에 흘리는 피였나. 그래서 우리 자전거 팀도 자빠지면 되게 좋아해요. 더군다나 눈길에서 자전거 타다가 자빠지면 허허허허. 너무 좋아요. 되게 아프지만, 되게 좋아요.

왜요? 저는 새로워서 좋았지만. 일단은 앞니가 안 부러졌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이건 경험해 봐야 아는데, 사고의 순간에는 통증이 없어져요. 그러니까 통증이 올 때쯤이면 그게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인데, 너무나 아프지. 근데 통증은 생명의 신호예요. 그것이 어릴 때는 울음으로 터져 나왔는데. 요즘은 기가 막히기도 하고. 허허,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날 때도 있지.

여기까지다. ‘부재’로 시작한 인터뷰는 ‘아픔과 생명’을 말하는 순간에 끝났다. 45분 무렵부터, 녹음기도‘부재’했다. 정확한 건, 우리가 술을 마시기로 했다는 것뿐이었다. 막걸리와 홍어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는 것.

딱 45분 녹음됐네요. 괜찮아, 괜찮아. 여행을 가면 사진을 찍고 죽어라 메모를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안 해. 이유를 물었더니, 그러면 그 여행을 그 사진과 메모만으로 왜곡시킨대요. 사진과 메모가, 여행의 중심적 사건이 된대요. 인터뷰도 별로 중요한 말은 아니에요. 나중에 우성 씨가 소설을 잘 써요. 그래야 재밌지. 멘트가 틀릴 수도 있어요. 전혀 엉뚱한 말을 해도 괜찮아. 지어낸 말도 상관없어. 전혀 개의치 말고. 마음대로 해요. 그럼 이제 우리 사진 찍을까? 이따 9시 반까지 방배동으로 와요.

지금부턴 술을 마신다. 방배동 어딘가, 막걸리 안주가 코스처럼 나오는 집. 사람 좋아보이는 사장님이 김창완 씨의 내일 아침 스케줄까지 챙겨주는 오랜 단골집. 홍어와, 애탕, 두루치기와 동태탕을 다섯 명이서 나눠 먹었다. “나 원래는 술 마실 계획이 없었어. 근데 아까, 몰라. 그냥 한 잔 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인터뷰 중간에 술 먹자고 먼저 그랬어. 끝나고도 아니고. 이 젊은 친구하고 그렇게 약속을 한 거거든.”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다 마지막에 들르는 집, 자전거의 피로를 술과 대화로 풀어주는 집. 그런 가게였다. 안은 김창완의 친구들로 꽉 차 있었다. 모르는 여자 한 명은 술에 취한 채 “선생님 섹시해요” 소리치고 나갔다. 가게 안은 매캐했고, 모든 얼굴들이 발그레했다.

아까 어디서 끊겼나 들어봤더니…. 그걸 뭘 얘길 해.

우리 ‘실체’ 얘기하고 그런 건 다 날아갔어요. 음악의 실체… 좋은 얘기였어. 맞아. 이젠 친한 사람들과의 술자리보다, 이렇게 낯선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점점 많아졌어요. 일상은 원래 처음 보는 사람과의 만남, 그런 것들로 꽉 채워져 있는 거예요.

“사랑은 우연히 빠지는 자가당착” 이라는 말씀 하신 적 있죠? 그건 섬뜩한 말이었어요. 내가 상대를 사랑한다고 믿고, 만지고, 키스하는 것이 ‘자가당착’이라는 말로 귀결됐을 땐. 그 섬뜩함을 이해해요. 사랑을 극명하게 딱 정의 내리면 누가 얘기해도 굉장히 섬뜩할 거예요. 도대체 저 자가당착이라는 말이 얼마나 사랑을 위축시킬 것인가, 혹은 얼마나 해방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겠지. 그런데 그냥 비교적 근접하게 표현한다고 한 게 그거예요.

‘자가당착’은 의심의 여지를 허락하는 단어죠. 그래서 함정이기도 해요. 열렬히 사랑해도. 자가당착이라고 하는 순간에, 의심하는 거죠. 나에게는 순전한 이기심밖에 없다는 건가, 사랑이 내포하는 수많은 이타주의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이런 거? 하하. 내가 약간 폭력적으로 얘기를 건넸을 수도 있지. 많은 사람들의 무사안일주의에 일침을 가하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왜 그렇게 쉽게, 누가 만든 사랑의 정의에 당신의 사랑을 맞추려고 해? 난 반란을 얘기한 거예요. 난 아직 누구의 콘셉트에도 동의하지 않아. 난 무수히 많은 사랑의 이력들을 봐 왔잖아. 사랑의 많은 신화들을 봤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조금은 부족한 거야. 조금은 과장됐거나.

김창완은, 중학생이었을 때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며칠 동안이나 가슴앓이를 했던 얘기를 했다. 어떻게 그런 찰나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거냐고. 그리고 80년대에 처음 들은 ‘지고이네르바이젠’의 선율은 충격이었다고. “내가 음악은 실체가 있다고 했죠? 따로 실체가 있어요. 태양이 저기 있는 것처럼. 그건 종교와도 같아요. 실체가 있는 종교지. 그렇게 나를 두들겨 패는 것은 내로라 하는 ‘레드 제플린’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고이네르바이젠이 나를 뚫고 나가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 음악이 추상적인 건, 그게 추상적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음악을 말로 풀어내려는 치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김창완은 한 번도 음악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태양처럼 확실한 실체를, 무대에서 찾고 있다고 했다. 처음 녹음하는 데모 테이프의 설렘은 무슨 수를 써도 재연할 수 없고, 음악은 연주하고 노래하는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거니까. 인생은, 델타 T 안에 있는 거니까. 그리고 막걸리 두 주전자를 비웠다. 시큼하게 취기가 올랐다.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김창완만 보였다.

전 인터뷰가 아니면, 당신하고는…. 따로 여기 술자리에서 만납시다. 그냥, 편하게. 내가 뜬금없이, ‘나 오늘 낮에 시간이 있는데…’ 그럴 거야. 내가 전화할 거 같아. 나는 요즘에 아주 크고 절대적인 어떤 것이 있다는 걸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없어지는 거 있지. 만약에 개인과 집단이 어떤 연관성이 있거나 없거나, 둘 중에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나는 개인과 집단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다고 믿고 싶은 거야. 개인과 집단은 서로 충돌하는 관계가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돼 있다, 이걸 믿고 싶은 거야. 이상하게.

믿고 싶다는 건, 현실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게 전제일 수 있지만, 꼭 그렇진 않고. 우리가 하는 모든 사고와 행위, 그게 아주 개인적이라면 그 사고와 행위를 연관 짓는 거대한 무엇, 아니면 내가 모르는 미지와 어떤 교류가 있다, 이런 것을 믿고 싶다는 거지. 뚱딴지같은 얘기일 수도 있고…. 사람들은 자신과 집단, 자신과 자신, 이런 것에 대해 고민하고 살잖아. 그런 질문을 우주에 던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시간에다 던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시간과 공간, 그런 것들이 화두예요. 항상 내 질문의 중심이었어.

사람들은 두려워서 아무것도 놓질 못해요. 나도 안 놔 봤어요. 여태까지 놓은 적이 없어. 시간, 공간, 집단, 개인, 사랑. 내가 단어를 배운 뒤로 놓은 적이 없는 단어들이야. 내 인생이 얼마나 남았을 것 같아요? 산울림은 내 나머지 인생의 전부였어. 이해하겠나? 나는 산울림으로 살았고. 그걸로 충분했어. 더 할 수도 있었지만 그게 다였어. 더 할 수는 있었어. 내가 묻어버린 곡들도, 산울림이라고 붙여 내면 낼 수 있는 곡들이지. 하지만 안 내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해. 산울림 음악은, 이제는 누구도 훼손하지 못할 거야.

이때, 사람 좋은 사장님이 홍시를 내왔다. 내일 아침 아홉 시, SBS 라디오 <좋은아침, 김창완입니다> 생방송이 있으니, 이제 그만 다들 들어가시는 게 좋겠다는 예절 바른 신호였다. 감은 거칠었다. 막 나무에서 따 내린 것처럼. “정 기자, 왜 어렸을 때는 감 색깔을 촌스럽게 생각했을까? 어렸을 땐 아주 파스텔 블루에 현혹돼서, 된장 색깔 이런 건 굉장히 촌스럽게 느껴지잖아. 그런 감수성은 뭐야? “저는 나무가 예쁘고, 소나무에 기개가 있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10월 말의 감나무와, 그 잎새와 색깔이 아름답다는 건 최근에 알았어요.” “나 그게 갑자기 보인 이유를 좀 알겠는데? 사랑 때문일까? 푸른 하늘 아니었어? 아주 시린, 빈 하늘 아니었어?” “감나무는 단정해요. 항상 같은 시기에, 서울에 그런 풍경을 만들어주는 나무는 감나무밖에 없어 보여요. 마당 있는 집마다, 감나무도 있으니까요. 감 색깔이 예쁜 걸 왜 몰랐을까? 전 감을 안 봤던 것 같아요. 못 보고 다닌 거죠. 당장 우리집 마당에도 감나무가 있었는데도.” “… 우리 있잖아, 너만 괜찮다면, 막걸리 한 주전자 더 먹자.” 이렇게 세 주전자를 비웠다. 김창완은 어딘가로 걸어갔다. 내일 9시에 생방송이라고 그랬으면서, 집으로 가는 것 같진 않았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