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Q가 선정한 2006년의 남자 13인과 세 여자

한 해를 기념하기로는, 잔물결 같은 회고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할 수 있다. 이 남자들 때문에 조금은 덜 창피하고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었다고. <GQ>가 선정한 2006년의 남자 13인을 발표한다. 그리고 극단적으로 아름다웠던 세 여자도.




류승완, 아직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짝패>는 즐겁게 일하는 자가 가장 강한 자라는 걸 알게 해준다.

<짝패> 연기 인상적이었다. 히치콕 감독보다 연기가 좋던데? 나야 진정한 외면 연기 배우니까. 하하. <짝패> 무대인사 할 때 농담처럼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 보려면 <사생결단> 보고, 치고 박고 싸우는 거 보려면 <짝패> 보라고 했다.

동생과 같이 안 해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승범이야 항상 잘했다. 내가 문제였다(웃음).

이번에는 다른 건 몰라도 즐겁게 찍은 것 같더라. <짝패>를 보면서 스스로 가장 즐겁게 찍을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맞다. 내가 가장 즐기면서 찍었던 작업이었고, 그게 많이 전달된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의 생각과 같을 수 없다는 걸 오래 전에 알았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하는 건 욕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엔 예전 같은 자신감이 좀 더 붙긴 한 것 같다. 영화로 뭐 천하를 얻고 그럴 생각은 애초에 없었으니까. 인생의 큰 좌우명 중 하나가 즐기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거다. 잘하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따를 수 없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따를 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않나.

차기작은 충무로에서 가장 성공하기 어렵다는 시대극에 무협이 섞인 영화라고? 제목이 <야차>다. 전쟁에 공포에 하여간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종류의 영화가 될 거다. 돈이 많이 들 것 같아 클로즈업 위주로 찍으려고 한다(웃음).


류승범의 이런 청춘


<사생결단>에서 류승범은 배우에게 중요한 것은 기술적인 언어가 아니라 몸의 언어라는 것을 증명한다.

<주먹이 운다>의 교도소 화장실에서 빵 먹는 장면이나 올해 <사생결단>이나 정말 징글징글하게 연기하더라. 그런 농담 했다. 앞으로는 영화관에서 촬영장의 냄새까지 전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으면 좋겠다고. 하하. 어차피 할 거 치열하게 해야지 안 그럼 개운하지가 않다. 에너지를 다 쏟아 발끝이 저릴 정도로 해야 상쾌하다.

연기가 될 수도 있겠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무슨 짓까지 할 수 있겠나. 못 하는 걸 찾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목숨 내놓고 하는 거 아니면 다 할 수 있다. <사생결단> 찍을 때 1월에 바다에 빠져도 살더라. 못할 게 없더라. 정말 인간이 대단한 것 같다. 요즘 그런 생각 많이 한다.

배우가 대단하지. 아니다.

모든 걸 잃는다는 상상을 하나? 자주 한다. 난 항상 내리막길 위에서 산다고 생각한다. 내리막길 위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내려가는 중이라고. 남들 20년 걸려 내려가는 걸 5분 만에 내려갈 수도 있는 거다. 결국 훌륭한 삶은 얼마나 긴장하고 자신을 지키느냐의 문제다. 남들이 날 어떻게 보는가라는 문제로 흔들리지 않으려고 한다.

올해는 어떤 해였나? 너무 많이 놀았다. 빨리 현장 가고 싶다. 몸이 근질근질하다.




김혜수 그리고 정마담


김혜수는 늘 김혜수였다. 영화에서든 시상식장에서든 우연히 마주친 레스토랑 이웃탁자에서든. 단, <타짜>에서의 정마담은 최고의 김혜수였다.

Woman of the Year, 올해의 여자라는 말의 느낌은 어떤가? 좋다. 올해의 여배우보다 ‘퍼스널한’느낌이다. 유한함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누군가의 여자. 나쁘지 않다. 올해의 배우가 아니라 올해의 여자가 된 차이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반갑다.

하지만 당신을 그렇게 만든 건 사실 <타짜>의 정마담이다. ‘럭키한’일이었다. 그런 영화적인 캐릭터를 다루는 영화가 많지 않은데, 최동훈 감독도, 함께 연기한 배우들도 최고였다.

700만, 그 이유의 큰 부분을 당신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미 오랫동안 봐왔던 당신인데도 <타짜>는 김혜수의 재발견이라는 평자도 있었다. 여자들도 당신의 옷 입지 않은 몸에 넋을 잃기도 했다. 그런가? 그 이유가 어떻게 배우 하나일 수 있겠나? 좋은 대본과 좋은 감독이 굳건한 베이스를 해주었고 그 위에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조승우는 실제로도 매력이 많은 배우였고, 백윤식은 모든 것을 경박하지 않은 가벼움으로 만드는 거룩함 같은 것을 가진 배우였다. 유해진은 정말 좋은 사람, 김윤식 역시 삶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인생에서 얻은, 가진 게 많은 사람이 결국 좋은 배우다.

그런 면으로 보자면 당신은 그들에 비해 부족한 사람이다. 나는 빈약하다. 내 장점이자 단점이 바로 그 불균형이다. 내 힘이자 콤플렉스. 무엇을 진짜 인생이라고 말해야 할지 명확한 판단이 서지는 않지만, 나는 많이 가진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불균형은 또 다른 쪽으로 기우는 게 있다는 뜻이니까, 그것이 나의 힘이자 콤플렉스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관객동원으로 배우의 파워를 계산하는 충무로 정서로 보자면 당신 역시 리스트의 최상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후, 당신의 작품 선택에 이것이 주는 영향이 있나? <타짜> 때문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나는 똑같다. 한 5년 전부터 나는 마음 가는 대로 일하기로 했다. <얼굴없는 미녀>가 있었고, <쓰리>, <분홍신>도 있었다. 지금 <바람 피기 좋은 날>역시 마음 가는 대로 고른 작품이다. 그러다보면 관객은 실망하는 일도 있고 기대했던 것보다 만족하는 일도 있겠지만, 그게 또 그냥 변하지 않는 나, 김혜수라는 배우가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마음 가는 대로 라는 것이, 하고 싶은 대로, 내키는 대로 막, 은 아니지 않나? 마음속에 견고하게 차오르는 무언가가 시키는 일 아닌가? 물론 너무 다르다. 지금 내가 몰두하고 있는 정서적인 이상은‘모든 것을 담고 있으면서 바람처럼 자유롭게 공기처럼 가볍게’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가 골몰하던 차였다.<바람 피기 좋은 날>은 내가 마음에 적을 두고 있는 바로 그것을 움직인 작품이었다. 제목은 자극적인 데가 있지만 실제 캐릭터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가볍게 하는 여자였다. 해보고 싶었다.

올해의 여자, 당신이 생각하는 신사는 어떤 남자인가? 5년 전에 당신은 이 질문에 “신사가 있나?”라고 반문했었다. 그랬나? 신사, ‘젠틀’의 의미는 외적으로 갖춰진 남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수위는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신사는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많은 것을 알고 가졌으나 누구에게도 자신의 것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신사일 것 같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인정’이다. 진심으로 ‘인정’할 수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열아홉 피아노 순정 김선욱


올해, 세계 4대 피아노 콩쿠르 중 하나인 리즈 콩쿠르에서 한국 청년이 우승했다. 음악을 하면 금방 조숙해진다더니 김선욱도 참 생각이 많다.

아직 스무 살도 안됐는데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만 세 번째다. 이제 피아니스트로서의 프로필은 충분하다.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건 내가 생각해도 정말 잘한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고 스스로 조절하는 중이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게 타이틀이라기보단 앞으로 100번 정도 연주를 할 수 있는 무대가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만족한다.

친구들은 고 3인데 당신은 내년이면 대학교 과정을 마친다. 고등학교 과정을 안 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나? 국어나 수학 등 일반 과목들을 꼭 배워야 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친구들은 수능을 준비하는데 나는 수능을 안 봐도 되니까 즐거운 일이다.

어릴 때부터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나? 재능은 누구나 갖고 태어난다. 재능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과 좋은 스승을 만나 재능을 닦아 가는 길이 각자 다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자신이 재능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거지만.

그런 면에서 당신의 스승인 김대진 교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제자는 스승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목적 없인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스승보다 잘 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스승이기 때문에 모범적인 지표가 될 수밖에 없다.

매일같이 칭찬만 들은건 아닐테고 어떤 쓴 소리들을 들었나? 쓴소리에도 종류가 많다. 내가 들었던 건 쓴 소리를 가장한 덕담이었다‘. 신동은 많은데 거기서 대가로 발전하는 사람은 천 명 중 한 명이다’‘, 앞으로 너 하기에 달렸다’라는 식의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이었으니까. 좀 다른 의미의 쓴 소리라면 남 잘되는 거 못 보는 사람들이 하는 그런 말을 들었던 적은 있다. 그런 거야 나만 잘하면 되는 거니까 신경 안 쓴다.

피아니스트들은 다 손가락이 가늘고 긴 줄 알았다. 당신의 손끝은 참 뭉툭하다. 내 손도 예쁘다. 피아노치기 좋은 손이다. 끝이 뭉툭하니까 칠 때 힘 조절하기가 좋다.

소명의식을 느낀다면 어떤 것인가? 이미 난 한국에서만 공부하고도 일정 궤도에 올랐다. 음악을 하려면 꼭 유학을 가야 한다는 선입견을 깼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기회가 된다면 열린 음악회를 열어서 클래식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싶다.

한국에서 계속 공부할 건가, 아니면 유학을 갈 건가? 외국에서도 공부를 하긴 해야 한다. 러시아 음악을 칠 땐 노어의 악센트 같은 걸 알아야 곡 해석을 더 잘할 수 있으니까.




To Be or Not To Be


1964년 비틀스의 존 레논은 미국 TV에 출연해 “우리가 예수보다 더 유명하다”라고 말했다. 비와의 인터뷰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법칙’으로 알려진, 인터넷에 떠도는 ‘비 어록’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비도 예수보다 더 유명해질 수 있을까?

데뷔 이후 한 번도 못 쉬었다는 기사가 났던데. 그게 무슨 말인가? 에이, 그건 거짓말이고. 다만 하루에도 하나, 혹은 두 개의 스케줄이 꼭 있었다. 연습 아니면 이런 인터뷰. 해외 방송 멘트 따는 거라든지. 그래서 제대로 하루를 쉬어본 적은 없다.

그렇다면 하루를 온전히 혼자 있어본 적이 없었단 말인가? 혼자? 글쎄, 집에서 혼자 있었던 적 빼곤 없다.

지나치게 열심히 하는 거 아닌가? 글쎄. 일말고는 재미있는 게 없다.

일이 뭐가 그렇게 재밌나? 워커홀릭인가 보다.

무슨 강박이 당신을 그렇게 일에 매달리게 하는 건가?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인가? 자존심 때문이다. 팬들에게 약속한 게 있으니까 맞추려고 하는 것뿐이다. 강박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다. 어쨌든 남에게 흐트러진 모습이나 실수하는 모습은 절대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진실되게 보이려고 한다. 연습한 만큼 한 대로, 준비 안 하면 안 한 대로. 그냥 솔직해지려고 한다. 완벽하게 보이려고 하는 건 아니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타나던가? 내가 노력한 것보다 언제나 결과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연애에 있어서의 타이밍은 좀 안 좋은데 확실히 일에 관한 타이밍은 좋은 것 같다. 하하 .

솔직히 말하면 신기할 정도로 성공해왔다. 데뷔 이후 항상 잘한다, 잘한다 소리만 들어왔다. 가수들이 줄줄이 깨지는 그 연기까지. 매번 어떻게 그러나? 이제서야 하는 말인데, 진짜 난 운이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실패했던 적 한 번 있었다.

언제? 1집 <나쁜 남자> 음반으로 데뷔했을 때 월드컵 때문에 망하는 줄 알았다.

그랬었나? 월드컵 이후 CF에서 내 곡이 나오면서 인지도가 쌓인 거다. 그리고 정확히 사람들에게 내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 건 <상두야 학교 가자>였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연기 괜찮다는 평을 받긴 했지만, 그건 왜 출연한 건가? 왜 그렇게 가수들은 연기하지 못해 안달일까? 아무리 좋아해도 한 가지만 하면 질리기 마련이다. 음악과 춤은 질리지 않는다. 왜? 질릴 때면 연기를 하니까. 연기 하다가 지루하면 노래하고 춤춘다. 난 일하는 게 노는 것 같다. 내가 제일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건 가만히 누워서 천장 보고 있거나 TV 보는 거다.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가장 힘들고 지친다. 일이 빡빡하게 주어져야 신이 난다‘. 내가 이런 상황에서도 해냈어’라는 보람 때문에.

승부욕이 대단한 건 쇼 프로그램 출연만 봐도 짐작하겠더라. 토크쇼에 나가서도 웃기는 거나 재미로도 지는 걸 싫어한다. 1집 때 <천생연분>이란 연예 프로그램 나갔는데, 그때 씨름하고 그런 거 보면, 아, 정말 나, 지는 거 싫어했다.

주목도 받아야 하고? 주목을 받고 싶진 않지만. 그냥 가만히 있다가 ‘어? 이건 내가 겪은 일이네?’그리고 끼어들면 그게 웃기는 거다.

뭔가? 결국 타고났다는 얘긴가? 타고난 게 아니라 눈치를 보는 거다. 4~5시간 동안 녹화하면 그 중 1시간으로 압축해 방송에 내보내는데 다행히 PD 선생님들이 내가 나온 건 편집을 안 해준다. 그게 말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거다.

자신이 영리하다고 생각하나? 영리하다기보단 눈치가 많이 생긴 것 같다. 내가 말 한마디 실수하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일이 잘 안됐을 때 주위 스태프들에게‘이건 왜 이랬어! 이렇게 해봐!’라고 말해버릴 수도 있다. 스태프들에게도 조심하려고 하지만 특히나 대외적으로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내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되지 않을까 조심한다. 그런 눈치를 본다.

연예인 혹은 스타, 가수, 배우에게 인격이 중요할까? 그것 역시 꾸민 걸 수도 있다. 왜 린제이 로한처럼“더 유명해지고 싶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스타들이 없는 건가? 나도 욕한다. 나도 사람이다. 물론 도와 덕은 지키지만 가끔‘이래선 안되지’라는 짓도 한다. 다만 지킬 건 지키자는 거다. 난 내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도 파악이 안되고 내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냥 친한 사람들과 일하면서 가끔씩 내가 인기가 있구나 느끼면서 좋아하는 직업을 갖고, 내 나이 또래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벌면서 그렇게 산다. 굉장히 즐거운 상황이다. 활동 범위도 회사-집, 회사-집이다. <풀하우스> 주인공들이랑 친하니까 김성수, 한은정, 송혜교 씨와 가끔 만나서 수다 떨고 밥 먹고. 작가 선생님 만나서 다음 작품 의논하고. 밥 먹고 연습하고 다음 작품 생각하고 영화홍보는 어떻게 할지 콘서트 연출은 어떻게 하고 어느 스태프가 가장 좋을지 오늘 회의 때는 무슨 말을 할지, 오늘은 좀 구부려서 살아야겠다 등등. 이젠 내가 한 회사의 사장이란 생각도 든다. 세상 살아가면서 자기가 가장 잘된다고 생각했을 때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런 것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늘 똑같다.

그런 얘기 하면 ‘강동원, 스스로 잘생겼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 파문처럼 인터넷에서 난리 날텐데. ‘비, 인기 있는지 잘 모르겠다’파문. 근데 난 진짜 그렇다. 난 우물 안의 개구리다. 지금 팔딱팔딱 뛰는 중이다. 아시아 시장을 우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도대체 미국 시장엔 왜 진출하려고 하나? <타임>지에서‘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중 한 명으로 당신을 지목했지만 그들 역시‘비록 미국에서는 실패할지 몰라도’라고 의문 부호를 달았다. 아시아 시장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인기와 돈을 얻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 하면 끝이다. 아시아 인구만 해도 약 25억이다. 그 25억 중에 나만한 사람 안 나올까? 노래 좀 하고 춤도 조금 추고 연기도 하고 나보다 더 똑똑하고 나보다 영어도 훨씬 잘하는 사람. 그 사람이 미국 시장을 뚫을 수도 있는 거다.

그럼 먼저 뚫겠다는 건가? 그렇다. 자, 나에겐 지금 기회가 왔다. <타임>지 보도로 인해 미국 사람들이 날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쟤가 뭔데 <타임>지 선정 100인에 든 거야? 쟤 누구야?’하기 시작한 거다. <타임>지 주최 파티에 갔는데 곤돌리자 라이스 국무부 장관, 제리 브룩하이머, 여러 정치인, 기업인, 스포츠인. 정말 잘 나간다는 사람만 다 모였더라. 미국 레이블 열 곳에서 딜을 받았다. 그 사람들은 무조건 같이 하자는 거였다. 근데 얼렁뚱땅 그렇게 미국에서 앨범 내면 어떻게 될까? 노래 조금 하고 춤 조금 추고 영어도 인사말밖에 못 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원래는 이번 달에 앨범이 나왔어야 되는데, 1년만 미루자고 했다. 아시아 월드 투어 하고 그 노하우 가지고 미국에서 음반 내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음반으로 갈지 영화로 갈진 아직 모르겠다. 지금 딜하고 있는데 내년 이맘때쯤이면 정확한 그림이 나올 거다. 뭐든지 철저하게 준비됐을 때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기회를 잡았다고 얼렁뚱땅 해서 소리 소문 없이 깨지고 오는 것보다 준비 철저히 해서 한 번에 빵, 터트리는 거다. 난 항상 그래왔다. 아시아에서 그냥 인기 얻지 왜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고 하냐는 질문은 수없이 받았다.

위험부담이 너무 커보이기 때문이다. 라틴계 가수들도 반짝 떴다가 음악성과 스타성 부족으로 밀려났다. 미국 시장은 만만치 않다. 미국 가서 실패할지언정 의미가 있다. 겁나서 시작도 안 해보고 있다가 몇 년 후 누가 미국에서 잘된 걸 보고 후회하느니, 실패하는 게 낫다. 실패하면 조금 더 열심히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실패하면 3집까지 내보자라고 생각하고. 정 안된다 그러면 다른 길로 풀 수도 있는 거다. 중국은 벌써 주윤발, 이연걸, 성룡, 공리, 장쯔이 등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 많다. 누군가 물꼬를 트면 한국 배우나 가수 역시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목표는 전세계가 당신을 주목하는 건가? 그것 때문에 하려는 건가? 목표는 없다. 오늘 벽돌 하나 세우고 내일 벽돌 또 하나 세우고 하다 보면 63빌딩 세우지 않겠나.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서 이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내가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 거다. 그게 내 목표다.

마돈나는 언젠가 그랬다. ‘사람들이 나처럼 옷 입으려고 하지 말고 나처럼 생각했으면 좋겠다’라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인 중 한 명이라는 당신이 사람들, 혹은 대중들에게 무슨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나? 난 지금 성공했다. 부와 영예를 안아서라기보다는 지금 당신도 얘기하지 않나‘. 너무 일 열심히 하는 거 아닌가, 좀 풀어져도 되지 않나’라는 말. 그런 말 듣고‘난 됐다’고 생각했다. 다른 가수가 ‘너 때문에 자극 받아서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말하더라.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일 열심히 프로페셔널하게 하는 것. 사람이 칼 들고 총 들고 사람들에게 강압적으로 무엇을 심으려고 하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무언가를 심어주는 게 더 무서운 거다. 내가 열심히 한다는 생각은 싫든 좋든 사람들에게 박혀 있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거였다.

그럼 성공한 당신이 지금 절실하게 느끼는 결핍과 과잉은 무엇인가? 가장 필요한 건, 아, 이런 말 하면 욕먹을 것 같은데…. 우리 스태프들과 내 능력이 향상될 수 있게 가르쳐줄 실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춤이든 노래든 연기든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 지금 스태프도 좋지만 더 실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과잉이라고 생각되는 건 일이다. 일이 너무 많다는 건 나도 안다. 일은 하고 싶은데 하기 싫기도 하고 하기 싫은데 하고 싶기도 하다. 그게 워커홀릭인 거겠지만.

본인의 능력을 의심해본 적 없나? 의심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거다. 내가 자만해지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없다. 자기 자신이 젤 무섭다. 다른 누군가와 경쟁하려면 자신과 싸우면 된다. 잠 안 자고 열심히 하면 된다. 내 자신을 못 이기니까 다른 사람이 더 낫다고 부러워하는 거다.

남은 의심하는 것 같던데. 최근 당신은 한 연예 프로그램에서‘투명인간이 돼서 해보고 싶은 것들’에 대해 남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팬들은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보는 거라고 말했다. 그들이 당신 앞에서 진짜 속마음은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무엇보다 배울 게 많고 부족하다는 걸 나 스스로 안다. 듣는 사람들은‘쟤 뭐야?’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을 가장 잘 안다. 항상 자신 있는 모습만 보여줬다. 부족한 걸 채워서. 물론 끼도 있겠지만. 지금 내 위치에서 나에게 나쁜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다. 그리고 친한 사람들 몇 명. 그들도 나쁜 말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내 앞에서 싫은 소리 안 하려고 하지 않겠나. 굳이 사이 안 좋게 할 이유가 없으니까. 뒤돌아 서서 그들이‘쟨 저게 좀 부족하지 않냐? 저게 좀 단점이야’등 등 나에 대해 솔직하게 하는 말을 들어보고 싶다. 사람들이 앞만 보고 달려가면 주위사람들을 서운하게 할 수가 있다. 그것 때문에 그런 거다. 남을 의심하진 않는다. 의심했으면 일 못했을 거다.




최승호와 한학수 PD, 살아있는 진실의 감사함


지난 1년 동안 그들을 괴롭힌 건 ‘황빠’가 아니라 ‘진실’이라는 두 글자였다.

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나? 무사히 말이다. (최승호)잘 있다. 하지만 올해 초만 해도 말이 아니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 황우석의 허위 논문을 취재한다는 걸 들은 고등학교 다니는 딸은 “그거 꼭 해야 돼?” 라면서 지레 겁을 내더라.

결국 진실은 의 보도 내용대로였다. 진실은, 도대체 어떤 건가? (한학수) 초등학교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단어지만 그게 우리 생활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인지 깨닫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도 원칙, 진실, 원초적인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느끼게 된 것 같다.

우리도 그렇고. ‘황빠’들은 여전히 당신들을 공격하고 있나? 그들에게 해줄 얘기라도. (한학수) 작년 연말과 올해 초 특히 심했고 5월에 검찰수사 발표되고 나선 한풀 꺾였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7백회 방송 나가고 나서 다시 들썩거리고 있다. 그들도 피해자인데 해줄 얘기가 있겠나. 황우석 박사를 내면화된 자신으로 여기고 삶의 가치로까지 삼다 보니 우리가 자기들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는 생각까지 갖는 것 같다.

황 박사 사건 취재 후기를 모아 낸 책은 두 사람을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서게 할 여지를 안고 있다. 황우석 사건과 관련해 아직 밝혀야 할 진실이 더 있는 건가? (한학수) 일단 뼈대는 다 드러났다. 다만 워낙 오랜 시간을 두고 되씹어야 할 문제라서 이런 세세한 자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과정은 모른 채 결과만 가지고 허망해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그분들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바뀔 수 있다, 희망은 그 속에 있다,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런 에피소드 중 하나가 모 장관 얘기다.

방송 취소를 강요한 모 장관의 얘기가 취재일지로만 남겨두기엔 너무 거대한 것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최승호) 지금 그 문제에 정면으로 덤비긴 어렵다. 그 작업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팀이 해야 할 거다. 우리 머릿속에 들어있는 사람들을 팀이 방문할 때가 곧 올 거다.




박태환, 박차고 나온놈이 샘이나


결승점을 터치한 그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물안경을 벗는다. 기록판을 확인한다.  웃는다.  당신도 웃는다.

열여덟 살 수영선수 박태환은 얼굴만 귀엽게 생긴게 아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저절로 ‘훗’하고 웃음이 샌다. 손톱 물어뜯는 버릇을 고치려고 누나더러 매니큐어를 발라달라고 했는가 하면, 스물일곱 살쯤엔 초밥 만드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태연하게도 얘기한다. 이유는 너무 좋아해서, 맛있게 잘 만들어 먹고 싶어서라고 한다. 쉬는 날엔 어머니께 된장찌개 만드는 법을 배우고, 태릉선수촌의 느려터진 인터넷 속도야말로 퇴출 대상이라고 털어놓고…. 소년이란 원래 그런 걸까? ‘잘 모르겠다. 그저 달릴 뿐’같은 어눌한 말이 그에겐 너무나 합리적일 만큼이니, 응원말고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물에 들어가기만 하면 기록을 갈아치웠고, 금메달은 당연히 그의 것이었다. 턴을 연습했더니 턴을 잘하게 되었고, 근력을 키우려 했더니 어느새 근력이 강해졌다. 운이 좋았다는 얘기도, 노력의 산물이라는 얘기도 어울리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타고났다’면 또 모르겠지만. 로켓처럼 치솟는 그의 그래프는 올 12월 도하 아시안게임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주위 어른들은 ‘태환 보호’ 노선이라도 채택한 듯 그를 돌본다. 경기고 동문들에게선 ‘소년 등과한 선수들에게 꼭 필요한 멘토링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성토되었고, 코칭 스태프와 가족들은 ‘태환이는 아직 어린 아이이므로 휘둘리지 않도록 신경써’달라고 말한다. 그런 마음들이 한결같이 박태환의 스트로크에 힘을 달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당연하다. 그런데, 물에서 나온 박태환이라는 소년은 이렇게 말한다. “스트레스 안 받아요. 괜찮아요.” 그에게 엄지 손가락을 펴서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가장 많이 승리한 송진우


프로야구 통산 200승 기록을 달성하려면 적어도 345경기에서 1만1827명의 타자에게 4만5676개의 공을 던져야 한다. 송진우는 그랬다.

늦었지만 통산 2백승 달성을 축하한다. 누가 가장 큰 힘이 되던가? 내 주변 동료 선수들, 감독과 코치들, 그리고 야구 팬들. 누구나 “송진우는 2백승 해야 돼”라고 말하고 또 진심으로 그렇게 해주길 바랐다.

현명한 남편이라면 이럴 때 ‘부인’이라고 말하는 게 좋지 않나? 부인 내조도 빼놓을 순 없겠지.

아내에게 살가운 남편은 아닌가 보다. 맞다.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성격이 투박하고 그냥 그렇다.

탈났던 팔꿈치는 어떤가? 정말 많이 아팠다. 3회쯤 ‘이거, 안되겠는데’싶더라. 경기 끝나고 6일 정도를 쉬었는데도 회복이 안 됐다. 지금은, 완전하진 않아도 괜찮다. 곧 일본에서 정밀검진을 받을 예정이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프로야구 역사 24년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한 명승부였다. 명승부는. 경기는 이겨야 하는 거다. 결국 졌으니까 명승부는 아니다.

그래도 전 국민이 한화를 응원했다. 그랬나? 난 열 명 중 일곱 명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나이로 마흔 두 살이다. 이제 힘들지 않나? 보통 남자들은 그쯤 되면 아내와의 잠자리도 피하려고 한다. 이쯤 되면 부족한 체력을 억지로 극복할 수 없다. 더 떨어지지 않게만 조심하고 정신력으로 이겨내는 거지.

아직도 타자 상대하는 데 자신감이 넘치나? 비율로 보면 젊을 때만하진 않겠지. 그래도 팀에서 날 필요로 하고, 아직까진 타자들에게 질 거라는 생각이 안 든다. 지금은 하루하루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오른다. 타자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라지지 않을 때까진 선수로 뛸 거다.




내일도 나는‘마빡’을 친다, 박준형 정종철


몸으로 웃기려는 개그맨은 많았지만 그들처럼 몸과 입을 모아 웃기려는 사람은 없었다.

이마는 안 아픈가? 언제까지 이마를 때릴 작정인가? (정종철) 하루종일 때려도 이젠 익숙해져서 하나도 안 아프다. (박준형) 재미없을 때까지 때릴 거다.

마빡이 개그는 각각 때리는 강도와 고생하는 정도가 다른 데서 오는 재미가 크다. 골목대장 마빡이가 제일 고생이 많은데. 고생한 보람은 있나? (정종철) 난 못 이룬 게 하나도 없다. 다 이뤘다. 결혼도 했지 아기도 가졌지 상도 탔지 마빡이도 잘 됐지. (박준형) 난 정종철이 이루는 걸 본 걸로 만족한다.

개그를 만들 때 서로 쉬운 동작을 하려고 싸우진 않았나? (박준형) 어려운 동작을 쉬운 동작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는 없다. 무조건 웃기면 아무리 어려워도 한다. 다만 어느 동작이 더 웃긴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할 때가 있다. 일단 내가 만든 동작으로 하자고 우기고 본다. (정종철 나이가 제일 많은 형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편이다. 박준형 요즘은 우겼다가 안 웃기면 창피하니까 웬만하면 안 우긴다.

개그맨, 서울 종합 예술학교 교수, 라디오 진행자, 갈갈이 패밀리 기획사 대표, 명함이 네 개나 된다. (박준형) 나는 천상 개그맨이다. 개그맨을 하면서 다른 직업도 생긴 거다. 개그맨이 내 뿌리다. (정종철) 우리는 뿌리가 남 다르니까 준형이 형이 딸 낳고 내가 아들 낳아서 결혼시키면 슈퍼 울트라 개그맨이 태어날 거다.

당신은 영원한 ‘옥동자’인가? (정종철) 나는 옥동자 팬이다. 다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은 했다. 우리는 배우랑 달라서 굳이 착한 부잣집 막내 아들 이미지에서 가난한 집 맏형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할 필요가 없다. 어떤 캐릭터든 웃음을 주면 되는 거다. 옥동자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다.

마빡 개그는 분명 지금까지의 개그와는 다른 새로운 점이 있었다. 방송이 아닌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꼭 해보고 싶은 혁신적인 개그는 없는가? (박준형) 동성애를 활용한 개그를 해보고 싶다. 콘티도 다 만들어놨다. 정말 내가 직접 해야 된다. 근데 이거 말하면 누가 할 텐데. 자세한 내용은 더 말 못하겠다.

혹시 누군가 하면 아이디어 도용이라고 증인이 돼 주겠다. 십 년 뒤에는 어디를 때리고 있을 것 같은가? (박준형) 십 년 뒤에도 어떤 식으로든 코미디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을 거다. 그땐 지금의 <코미디 70/80>처럼 <코미디 90/00>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을까. (정종철) 잘 하는 게 개그밖에 없으니 죽을 때까지 남들을 웃기면서 살 거다. 하나님이 이끄는 대로. 박준형 옥동자가 하나님 따라 가면 난 그 뒤로 대충 따라 가면 되겠다.




송일국, 말달리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씩 웃을 줄 아는 남자였다는 사실은 송일국이 새롭게 쓴 역사다.

망치로 때리면 깨질 것 같은 하늘이었고 바람은 매웠다. 전라남도 나주의 한 외곽지대엔, 힝힝대는 말들, 두꺼운 파카를 입은 스태프들, 수염을 붙인 엑스트라들, 구경 나온 동네 꼬마녀석들이 저마다 분주하다. 송일국은 접히는 의자에 무릎을 세운 채 앉아 있다. 눈에 안약을 넣는다. 물을 마신다. 대본을 외운다. 주먹을 쥐었다 편다. 이쪽을 보고 일어선다“. 조금만 일찍 오시지, 아까 말 타고 한번 쫙 달렸는데.”퍽 재미있게 들리는 말이다. 극단적인 촬영 스케줄로 많이 예민해졌다더니, 친구 어깨라도 치듯 그는 툭툭 말했다.

MBC 특별드라마 <주몽>에서 주몽을 연기하는 송일국은 올해, 들판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뙤약볕을 헤맬지라도, 그는 얼굴이 타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땀이 많이 나도, 머리칼이 흐트러져도, 눈꺼풀이 무겁거나 입술이 부르터도 안된다. 주몽은 피로할 수 없는 인물이니까, 조사 하나가 뒤틀려서도, 팔자로 걸어서도 안되는, 그는 영웅이어야 하니까. 현장에선 송일국의 기합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선배 배우들이나 카메라가 코앞에 있어도 그는 ‘하!’하면서 기합을 넣는다. 속삭이듯 말하는 설정조차 위엄있는 발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화면 안에 있든, 리액션을 해주느라 화면 밖에 있든, 송일국은 짝다리를 짚지 않는다. 그렇다고 막대기 같은 류는 아니다. 곧잘 씩 웃곤 하니까.

마침 그날은 11월 11일이었다. 마리도, 협보와 오이도, 묵거도 조명담당도 조연출도 모두 ‘빼빼로’를 하나씩들 물고 있다. 모두 송일국이 건넨 것이다. “빼빼로데이라서…” 멋적게 웃으며 건네는 과자를 받으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생각났다면 과장이겠지만, 그가 생각하는 ‘주몽’이 어떤 사람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주몽 일행이 말을 타고 50m 전방의 카메라를 향해 달려가는 신 촬영이 시작되었다. 주몽이 타는 말‘제비’는 촬영장에서 유일하게 앞발을 들어올릴 수 있는 녀석이다. NG 때문에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와야 하는 상황에서 터벅터벅 돌아오는 다른 말들과 달리 ‘제비’는 쏜살같은 스피드를 낸다. 앞으로 바짝 몸을 숙인 송일국은 우렁찬 목소리로 그 리듬을 지휘한다. “하! 하! 하! 하!”






아직도 김미려에게 듣지 못한 말들


개그우먼 김미려, 아니‘사모님’과의 인터뷰는 많기도 하다. 그녀에게 또 무엇을 물어야 할까?

당신의 솔직하고 감추지 않는 모습은 전략인가? 아니면 천성인가? 하하, 무슨 전략을 만들어 추진할 정도로 머리가 좋지 못하다. 인터뷰하면 매니저가 자주 한숨을 쉰다(이 때 옆에 앉은 매니저는 또 한심한 숨을 몰아냈다). 그리고 나가면서 잔소리 듣는다. 말 좀 가려서 하라고.

감기가 꽤 심하게 걸린 거 같다. 반지하 방에 보일러도 안 들어오나? 들어가는 입구는 지면보다 약간 낮지만, 베란다 쪽은 엄연한 지상이다‘. 반지하 사는 사모님’, 미디어에서 이런 타이틀을 좋아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반지하는 절대 아니다. 귀뚜라미는 가끔 나온다.

당신의 2006년은 대단했다. 어떤가? 솔직히 대단한 일을 한 것 같기는 한데 아직도 내가 대단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길에서 나를 알아봐 주는 분들을 만나면 신기하고 너무 반갑다.

벌써 CF도 찍었고, 이나영도 이영애도 당신 흉내를 내고, 얼마 전엔 영화도 찍지 않았나? 영화는 그냥 카메오 출연한 거다. 이나영 CF는 현재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라디오로 넘어가면 사모님 캐릭터를 흉내낸 CF가 대리운전 광고 등에 두루 쓰이고 있다. 소속사에서 조심스럽게 법적인 조치를 강구 중이라 들었다. (현재 노래에 대한 저작권을 보호하는 각종 협회나 단체들이 있어 다양한 활동을 통해 권리를 지켜 주고 있지만, 개그 쪽에는 그런 모임이 전무하다. 바람직한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김미려가 출연한 라디오 프로에 사모님을 모방한 CF가 네 개나 들어간 것은 너무했던 것 같다. – 김미려 매니저의 말)

매주 아이디어 짜내기 힘들지 않나? 아이디어를 무식하게 쥐어 짜는 편이다. 재미없는 아이디어도 계속 파다보면 뭔가 나온다고 믿는다. 혁신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한때 회장님을 출연시키자는 아이디어가 추진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한 번 이렇게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 코너는 매우 정신없고 장황해질 것 같아 참았다.

마빡이 아나? 근데 마빡이를 한 번도 못봤다. 미안하다. 흉내낼 줄 안다. 이렇게….

사모님 캐릭터에 너무 고정된 건 아닐까? 앞으로 전혀 다른 김미려가 되고 싶진 않나?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 코미디를 접목한 뮤지컬이 아니라 정말 뮤지컬 배우다. 어릴 적에 TV에서 우연히 봤던 뮤지컬(기억이 나지 않는다) 속에서 주인공의 열연에 감동을 받았다. 노래와 연기를 통해 관중들을 감동시키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얼마 전에는 <도전 1000곡>에 출연해서 뮤지컬 배우, 박해미를 봤다. 그녀의 열정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유해진


넙치, 도충, 짭새, 용만, 개스통, 육갑이에 이어<타짜>에서‘입으로 화투치는 고광렬’ 역을 맡은 유해진. 그는 특별히 한 건 없다고 말한다. 유해진은 그런 사람이다.

<타짜> 배우들 중 화투를 제일 잘 친다고? 제일 타짜답게 생겼다는 말은 들었다. 하하.

밤새 화투 쳐서 퀭한 낯빛이란 건가? 눈이 쪽 찢어져서 속여도 잘 모르는 생김새라고.

고광렬 대사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처럼 당신도 한다면 하는 사람인가? 큰 건 그런 것 같다. 연기를 해야겠다라고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어떻게든 해냈다.

노력을 치밀하게 한다고 소문났던데? 아우, 뭐 그런 얘길 자꾸 하고 그러나. 쑥스럽게.

출연한 영화는 보겠지? 그래도 두 번 정도는 보는 것 같다. 시사로 보고 일반 극장 가서 한번 보고. 극장 맨 뒷자리에 편하게 앉아서 보는데 그때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왕의 남자> 육갑이 이후 네티즌들이 ‘너무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던데. 이게 웬 닭살인가? 다행이다. 걸어댕겨도 누가 뒤통수 치지 않을까 걱정 안 해도 돼서.

주로 억울한 역할 많이 맡았다. <왕의 남자> 육갑이, <공공의 적> 칼잡이, <타짜>의 고광렬도 억울해 보였다. 주로 좀… 거친 직업을 많이 맡았지. 사실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광대도 그렇고 뭐 한 가지 열심히 하다가 어느날 사라지는 사람들.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화투 기술도 배우고. 좋은 기술 쓸 줄 알면 왜 그런 일 하겠나. 그런 인물에 애정이 간다. 나도 이 일 하다가 언젠가 사라질 거고.

사람들이 기억하는 역이 주로 코믹한 육갑이나 칼잡이어서 서운하진 않나? 아무거나 기억해도 상관 없다. 내가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해안선> <무사> <빙우> 모두 다.

사투리 쓰는 지방색 강한 역할이 많았다. 대사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그렇다. 표정 연기를 못해서. 솔직히 잘 모르겠다. 고광렬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도 잘 대답을 못한다. 자꾸 말하면 희석되는 것 같고 틀을 정해버리는 것 같아서.

유연한 성격인가 보다. 본인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거 아닌가? 그래서 ‘유하다’고 유해진이다. 하하. 난 내 이름이 너무 좋다. 얼굴이랑 어울리진 않지만.

얼굴도 맘에 드나? 사춘기 땐 싫었다. 지금은 맘에 든다, 내 얼굴. 어떨 땐 거울 보면서 측은하기도 하고 이런 얼굴 안되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던져진 대로 사는 거지.

실제로 만나보니 영화 속 당신이 연기한 양아치들과 너무 다르다. 내 정서가 좀 그렇다. 가끔 집에서 그림도 그린다. 집에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았다. 뭐, 그 정도.




지금은 김성주 시대


쉽사리 끝나지 않을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김성주 아나운서. 그가 말하는 아나운서 같지 않은 아나운서의 변.

독일 월드컵으로 향하는 김성주의 어깨는 무거웠다. 차범근은 이미 검증받은 사람, 혹시라도 시청률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 모든 책임이 그에게로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과가 나쁘면 개편 때까지 5개월 쉬어야지 했다. 주위에서는 우려가 기대의 키를 넘었다. ‘글쎄’와 ‘아무리’, ‘설마’가 말머리를 채운 말들이 오고갔다.
그는 결국 월드컵 폐막 경기까지 모두 중계하고 돌아왔다. 어사화만 없었을 뿐, 금의환향이었다. 처음엔 그 역시 ‘손석희’를 꿈꾸며 아나운서가 되었고 2:8 가르마를 하고 뉴스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열망을 웅변했었다. 그러나 ‘손석희’는 더 이상 없었다. 더 바라지도, 더 생겨날 수도 없는 롤모델이었다. 전달력과 신뢰가 강력한 아나운서가 즐거움과 정보를 함께 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점점 구체화된 것이 요즘의 김성주다.

주위 사람들은 ‘영포왕자’가 되고 ‘마빡이’가 된 그에게 그러다 다시는 뉴스 못한다고, 너무 많이 갔으니 이제 그만 하라고 말하지만 김성주의 생각은 다르다. 자신이 하는 뉴스를 보면서 시청자들이 웃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뉴스 진행자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면 예능국이나 교양국에서 원하는 역할도 하지 못했을 거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대학생들이 ‘김성주형 아나운서’를 꿈꾸며 개인기까지 연마하느라 고생이라는 말을 들으면 정색하고 꾸짖는다. ‘신뢰 가는 뉴스 전달자가 되어야 그 다음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한결같은 그의 논리다.

친근한 얼굴, 성실한 목소리, 축구장이 손바닥처럼 보일 정도인 순발력, 청취자와 함께 아침을 여는 것이 기쁜 체력, 설익은 성대모사와 어리숙한 콩트로도 웃게 만드는 편안함, 이 모두가 부모님의 선물이자 자신의 복이라고 생각한다는 아나운서 같지 않은 아나운서. 그는 자신이 무언가 이루고 생을 마치게 된다면 2006년은 그 밑거름이 된 해일 거라며 착하게 웃었다.






그 여자, 김수현


올해를 기념하는 단 한 편의 드라마라면, 역시 그 여자가 쓴 것이었다.

한고은은 키가 너무 큰 것 같았다. 조민기에게선 남성훈이 스쳤다. 정애리는 너무 젊어보였고, 이훈의 발성엔 외로움이 없었다. “내가 단춧구멍 가로로 뚫으라면 가로로 뚫고, 세로로 뚫으라면 세로로 뚫어”라고 모래 쓸듯 말하던 윤여정과 얼굴 전체로 나른한 신경질이 흐르던 정혜선을 떠올리건대, 이승연과 하유미는 작아보였다. 첫 방송이 나가고 나서 김수현은 즉각 곽영범 PD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냈다. 연기, 소품, 연출, 흐름, 다 마음에 안 든다면서. 시청률은 이만저만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1회만 나가도 난리가 났던 시절로부터는 모서리가 많이 둥글어진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홍소장의 가을>이나 <부모님전상서> 같은 드라마가 그랬듯, 김수현은 지금 어른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어른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우리에게 어른이 있는지 묻는 듯, 쓴다. 태준과 미자가 머리가 하얗게 센 모습까지 보여줘야 했던 맥락도 비슷할 테다.

그런데, <사랑과 야망>에선 늘 누군가 울고 있었다. 긴 생머리를 자르고 ‘후까시’를 넣은 미자는 참 많이도 울었다. 그렇게 황폐하고 그렇게 시릴까 싶도록. 정자는 악다구니를 씹으며 울었고, 파주댁은 정을 어쩔 수 없어서, 은환은 강한 여자가 되느라고, 선희는 연민이 사무쳐서, 태준은 미자 때문에, 태수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부모는 자식이 안됐어서, 아이들은‘지금’이 싫어서 울었다. ‘울고짜는’것과는 거리가 먼 얘기, 다만 울 수 있다는 어떤 충만.

이젠 ‘지껄이는 귀신이 붙었다’는 둥 하는, 귀여운 말들은 더 이상 김수현 드라마에 어울리지 않는다. 절벽에 선 듯한 회고도, 얍삽한 비판이나 야유 따위도, 꺾어도 꺾이지 않을 것 같은 그 여자의 드라마가 나오는 시간엔 합당하지 않다. 예전에도 또 지금도, 다 김수현이 너무 잘 써서 생긴 일일 뿐이니까.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