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동방신기와 보낸 다섯 시간 반

2009.02.03GQ

집채만한 밴에서 나오는 남자들은 그토록 현란해 보이던 아이돌스타가 아니었다. 학교 끝나고 버스정류장에 내리는 동생 같기도 하고,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 같기도 했다. 일년만의 휴가로각자 흩어졌다가 오늘 다시 모인 다섯 남자는 아침부터 통닭이 먹고 싶다고도 했고 샌드위치만으로는 어림없는지 자장면을 배달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대형기획사의 아이돌이니 이러이러할 것이라는 편견을 무참히 깨면서 크게 웃고 화통하게 대답했다.

재킷은 프링글 by 10꼬르소꼬모, 셔츠와 보타이는 디올, 팬츠는 24/7 by 탱고드샤, 포켓스퀘어는 돌체&가바나, 구두는 루이비통

재킷은 프링글 by 10꼬르소꼬모, 셔츠와 보타이는 디올, 팬츠는 24/7 by 탱고드샤, 포켓스퀘어는 돌체&가바나, 구두는 루이비통

 

재킷은 돌체&가바나, 셔츠는 닐바렛, 바지는 구찌, 보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구두는 에르메스

재킷은 돌체&가바나, 셔츠는 닐바렛, 바지는 구찌, 보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구두는 에르메스

 

재킷은 질샌더, 셔츠는 루이비통, 팬츠는 홍승완 스위트 리벤지, 포켓스퀘어는 길옴므, 구두는 디올, 시계는 론진

재킷은 질샌더, 셔츠는 루이비통, 팬츠는 홍승완 스위트 리벤지, 포켓스퀘어는 길옴므, 구두는 디올, 시계는 론진

 

수트와 셔츠는 랑방, 보타이와 포켓스퀘어는 란스미어, 구두는 에르메스

수트와 셔츠는 랑방, 보타이와 포켓스퀘어는 란스미어, 구두는 에르메스

 

수트와 셔츠와 구두는 모두 디올, 시계는 불가리(뉴 디아고노), 반지는 불가리(세이브 더 칠드런 링)

수트와 셔츠와 구두는 모두 디올, 시계는 불가리(뉴 디아고노), 반지는 불가리(세이브 더 칠드런 링)

 

최강창민

촬영 때 위스키를 홀짝홀짝 마시던데, 독주인데 당황하지도 않고. 요즘 들어 술을 많이 마신다. 좋아한다.

주류 담당 에디터라 술 좋아한다니 반갑다. 어떤 술 마시나? 아, 정말인가? (박수 세 번) 술 종류는 골고루 마셔보기는 하는데, 또래 친구들과는 부담 없이 맥주나 소주를 많이 마신다.

물론 둘을 섞기도 하겠지. 그러다 보면 실수도 하고. 그렇다. 주변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편이다. 술을 마시면 주변 사람을 안는 버릇이 있다. 남자한테는 문제가 아닌데, 옆에 여자 분들이 있으면 자꾸 안기려고 해서 이게 좀…. 하하.

세상이 끝날 것처럼 마시는 편인가? 아니, 즐거울 때까지만 마신다. 템포를 늦췄다가, 괜찮을 것 같다 하면 마시고. 흐름을 타면서 마신다.

좋은 습관이다. 얼마 전 잠깐의 휴가엔 라식수술을 했다고?수술하곤 그동안 못 마셨던 술, 밀렸던 술도 많이 마시고, 워낙 식성이 좋아 뭐든 가리지 않고 다 먹었다. 역시 먹고 마시는 게 최고 낙이다.

또 다른 낙은 뭔가? 가수라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요즘엔 음악 듣는 게 제일 낙이다. 활동하면서 못 들었던 음악을 많이 듣는다. 지금 가장 트렌디한 음악을 고른다. 빌보드차트 음악을 1위부터 50위까지 모아 듣는 식이다.

오래전부터 줄기차게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악이 있나? 임창정의 ‘슬픈 혼잣말’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유일하게 좋아하는 가수다. 영향 받은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고음창민’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멤버들 중에서 음역이 높은 편이었는데, 자꾸 연습하다 보니까 더 높아졌다. 그런데 그냥 ‘지르기만 한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속상할 때도 있었다. ‘고음 말고도 잘 하는 부분 많은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은 괜찮다.

무대에선 당신이 맡은 부분이 힘들다. 감정도 안무도 폭발할 때고. 힘들진 않다. 요령이 있다. 다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머리가 아프다. 머리 쪽으로 힘을 모아 소리를 내다 보니까.

온전히 혼자서 솔로곡을 불러 본다면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나? 욕심은 많다. 아직 어리니까 이것 저것 다 해보고 싶다. 콘서트에서는 저음의 재즈곡을 불렀는데 팬들 반응도 좋았다.

오늘 여기까지 팬들이 따라오지 않을까 했는데, 없던데. 그제 어제 특히 춥지 않았나. 숙소에서 기다리거나 스케줄을 따라다니다가 “오빠, 입 돌아갈 것 같아서 먼저 들어갈게요”라고 하곤 그냥 들어가는 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오늘도 추워서 일찍 퇴근했나 보다. 출퇴근 도장 찍듯 매일 따라다니는 팬들 보면 어떤가? 응원해주니까 고맙긴 한데, 때로는 불쌍하기도 하다. 주로 나보다도 어린 친구들인데 십대라는 중요한 시절에 시간 낭비, 돈 낭비 하는 것 같아서, 어찌보면 참 바보들 같아 걱정되기도 하고….

좋아서 그런 것 아니겠나. 동방신기가 그들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우리가 전부는 아니지 않나. 우리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 가수일 뿐인데. 그 시절에 할 수 있는 다른 것 자체를 다 포기하는 것 같다.

팬들이 당신의 인생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는 거다. 그렇게 사는 게 어떤 건가? 황홀하다. 그런데 그런 편한 생활에 너무 적응이 될까봐 걱정이다. 그래서 팬들이 선물을 줘도 일부러 안 받을 때도 있다. 만약에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도 그렇게 살 수는 없지 않나.

결혼하고 애 낳는 그런 생각 자주 하나? 그런 건 나이 상관없이 꿈꾸는 것 아닌가?

혹시 팬이랑 결혼하게 되는 건 아닐까? 팬과 결혼하면 처음엔 뜨겁게 지내겠지만 점점 단점을 발견하면서 식어갈 것 같다.

팬중엔 ‘일코’도 있다( 일반인처럼 코스프레하는 팬’의 줄임말로, 팬임을 공개하지 않는 팬들을 뜻한다). 왜 이런 팬이 생겼을까? 요즘은 그나마 ‘일코’분들이 겉으로 팬이란 걸 많이 표출하고 다니는 편이다. 사실 3집까지만 해도, 소위 ‘꽃미남 아이돌 그룹’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대중가수가 아니라 ‘10대들만의 그룹’의 이미지가 컸다. 동방신기 팬이라 그러면 ‘빠순이’ 취급당하고, 다 컸는데 왜 동방신기를 좋아하냐고 하고. 내 친구들도 그런 얘기를 할 정도였다.

슬펐겠다. 그런 시선을 4집 활동하면서 좀 벗었다. 예전에는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이십대 중후반 분들은 우리를 모르는 척했다. 남자들은 싫은 티를 냈다. “나는 동방신기 말고 다른 그룹이 더 좋더라” 이런 식의 말도 일부러 들리도록 했다. 지금은 남자 분들이 특히 더 관심을 가져준다. 남자 그룹이 남자한테 호감이나 지지를 받는 거, 정말 어려운 일이지 않나?

그게 4집 무대 위에서도 보였다. 활동하는 내내 너무 재밌었다. 이제 나도 5년 차니까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즐기면서 활동했었던 것 같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도 많이 나오는 걸 보니 확실히 ‘그들만의 팬덤’을 벗어난 것 같았다. 본인의 ‘개그감’, ‘예능감’은 어떤 것 같나? 원래도 말수가 적지만 다른 형들이 잘 알아서 하니까, 나까지 나설 필요가 있나 싶었다. 다 웃기겠다고 하면 오히려 난잡하니까. 남 웃기는 일은 자신 있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막상 하면 못하지도 않는다.

요즘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사실 개그의 센스 면에서는 준수 형보다는 웃긴 것 같다. 준수 형은 캐릭터 자체가 귀엽고 웃긴 거지.

당신처럼 수줍은 듯한 얼굴로 하는 개그가 사실 제일 웃기다. 그런데 뭐랄까, 노래하는 무대 위에서도 어느 순간‘풋’하고 웃을 것만 같은 ‘어색한 소년’의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 그런가? 글쎄.

노래 가사에 나오는 ‘넌 나를 원해 넌 내게 빠져 넌 내게 미쳐’의 모습에 본인을 대입하면 어떤가? 사실 섹시하고 직선적이고 남자다운 것보단, 난 조금 더 ‘마일드’한 쪽이다. ‘주문’ 노래 속 인물보다는 부드러운 성격이다.

그래도 꼽자면 자신이 어디가 제일 섹시한 거 같나? 옆 턱선? 하하. 잘 모르겠다. 요즘은 몸 관리, 얼굴 관리 등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긴 하다.

관리해야 할 것 같다. 팬들이 국경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공연이나 활동 영상 하나하나를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올리니까 말이다. 그중 그만 반복재생됐으면 하는 장면이 있나? 나는 오히려 다 좋다. 오락 프로그램에 나가서 무자비하게 망가진 모습도 오히려 내가 즐긴다. 활동한 지 5년 됐는데 그동안 찍힌 웃긴 사진이 정말 많더라. 회사 다른 직원 컴퓨터로 보다가 그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 놓기도 한다.

처음 멤버들을 만나던 모습이 까마득하겠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순수하고 평범한 학생이었고, 준수 형은 연습기간이 길어서 능청스러운 연습생이었고, 유천이 형은 미국에서 바로 왔는데 꽃남방과 올림머리가 특이했고, 재중이 형이나 윤호 형은 자기를 꾸미는 데 치장하고 멋 부리는 그런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참 빨리 간다. 그런데 이러다 사흘 뒤에 죽을 수도 있는 거다. 막상 3일 뒤에 죽는다면, 못 만났던 여자도 만나고, 못 놀았던 친구도 만나고, 못 마셨던 술을 마시겠거니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냥 일할 것 같다. 이번 휴가에도 느꼈지만 일 안 하면 어색하다.

나라면 하루 먼저 죽고 장례식을 직접 보겠다. 누가 오는지 보고 싶다. 당신의 장례식은 성대할 거다. 내 장례식은 그냥 조촐하게 했으면 좋겠다. 사람이 많이 안 왔으면 좋겠다, 사실.

죽을 날은 아직 한참 멀었다. 꿈이 뭔가? 원래는 아나운서나 기자가 되고 싶었다. 지금은 노래를 잘 하는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다. 연기자나 라디오 DJ가 될 수도 있는 거고.

솔로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아이돌이 마음만 먹으면 제각각 하고 싶은 활동을 하지 않나?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은 안 한다. 내가 볼 때 나는 나이가 더 들어야 할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뭐가 달라지나? 외모가 더 삭았으면 좋겠다. 앳되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자화자찬 같겠지만, 지금보다 나이를 먹으면 더 멋져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신이 평범한 대학생, 평범한 회사원으로 늙어가는 상상 해본 적 있나? 나는 그 나름대로 엄청 잘 지냈을 것 같다. 원래 성격히 굉장히 규제, 룰을 중요시한다. 연예계 쪽 일을 하면서 사상이 조금 자유분방해진 편이다. 내가 가진 고지식한 면이 참 좋다. 싫지 않다. 이런 것 때문에 처음 데뷔했을 때는 약간의 이질감을 느꼈다. 가치관이나 정체성에도 혼란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자신의 뜻밖의 면이 있나? 사람들이 자꾸 착실하다고 하는데, 그래서 계속 더 착실해야 하는 건가 부담이 오기도 한다. 사실 내가 완전히 착실하진 않다. 안 씻고, 안 치우고, ‘헐랭’하다.

동방신기는 언제까지 하고 싶나? 나는 오래하고 싶다. 환경과 상황이 허락하는 한 가능한 계속하고 싶다.

아이돌 선배들이 ‘아이돌의 수명’에 대해 조언한 적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한다. ‘언제까지 아이돌을 할 수는 없다. 아이돌 가수라는 사실을 너무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조심스럽게 너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을 분명히 길러라’는 식이다. 나도 이제 후배들이 많은데, 그렇다고 “너 언제까지 아이돌일 것 같냐”고 말해주긴 싫다. 미래를 준비하고 그 후를 준비하는 건 본인 몫이고, 솔직히 아이돌이라는 아이콘을 가지고 계속 가져가서 성공할 수도 있는 거고.

참, 지난 연말 한 시상식에서는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건가? 여러 가지가 복합적이다. 일본 활동을 하면서 소수의 외국인으로 산다는 게 그냥 서럽고 답답했고, 국내 활동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기대도 부담스러웠다. 그런 심적 악조건 속에서 활동했는데 상 받으니 고마워서 울었다. 그리고 되게 솔직하게 모든 걸 얘기하자면, 음, 가족들 생각도 나고,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들 생각도 나서 그랬다.

아이돌 그룹이 ‘아이돌’을 서서히 벗어나는 시점은 자신의 ‘연애’경험을 서슴없이 공개할 때인 것 같다. 지금처럼. 그런데 아까 여자 친구‘들’이라고 했나? 아, 들? 아하하. 에디터/ 손기은

유노윤호

어제까지 휴가였다고? 이번에는 좀 더 뜻깊게 보냈다.

쉴 땐 그저 푹 쉬기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고향에 갔다. 1년 반 만이었나? 내려가면 꼭 다녔던 학교에 찾아가고 할아버지 묘가 있는 선산도 가고 동네 노인정도 가고 목사님들도 뵙고 그런다. 초심이, 이쪽 일을 하게 된 초심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모교에 장학금도 전달하게 됐다.

모습이 부쩍 어른스러워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마음씀도 있었나? 어렸을 때부터 나중에 내가 잘 되면 도와주자, 받은 만큼은 돌려주자 그런 신념이 있었다.

그러니까 어려서부터 ‘내가 뭐가 되도 되긴 되겠구나’생각했던 건가? 그땐 검사가 되고 싶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쪽으로 빠져서.

빠지길 잘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오늘의 기쁨과 60만 팬클럽이 다른 어떤 ‘놈’차지가 되었을 것 아닌가. 지금 되게 좋다.

60만이라니, 그 숫자엔 놀라움도 있지만 어떤 공포도 있다. 당신에게도 그런가? 음, 글쎄.

누군가 당신을 대할 때, 그저 ‘정윤호’가 아니라 당신 뒤에 그렇게 많은 팬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는것 같진 않나? 이렇게 인터뷰하면서도 뭔가 좋은 쪽으로만 묻는다든지…. 매체에 답하는 것이니까 제일 솔직한 모습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부분을 가리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솔직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당장 앞에 앉아 있는 사람도 내 감정을 느낄 리 없다. 어디서든 팬들을 의식하면서 답하진 않는다. 그건 내 성격이랑 아예 안 맞는다.

촬영하면서도 가장 활기차 보여서 리더라 다르군 생각했다. 어떤 충고나 비판도 굉장히 좋게 생각한다. 물론 순간 상처 받을 때는 있다. 근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팬도 그렇지만 항상 당신 옆엔 누군가가 당신만을 위해 있다. 머리 만져주는 사람, 스케줄 말해주는 사람, 밥 시켜주는 사람….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것 같은 사람들 틈에서 지내는 게 어떤 걸까? 그런데 나는 뭔가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것에 굉장히 관심이 있다. 호기심이 너무 많다. 연예인이라는 게 어떤 틀 안에서 돌아가는 모습이 비슷비슷하잖나. 동방신기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냥 정윤호다. 코드가 맞으면 끝까지 가는 거고 아니면 각자 또 하다 보면 나중에 또 기회가 오면 오기도 하고. 둥글게 둥글게 사는 타입이다.

자신이 연예인 같나? 나는 그냥 촌놈 같다. 무대 위에선 최곤데 평상시에는 그냥. 내가 생긴 거랑은 다르게 둥글둥글 그렇다. 당신이 ‘촌놈’으로 지내는 동안에도 당신을 스타로 알고 사람들이 쫓아다니는데? 그러니까, 항상 뒤에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건 이제 바꿀 수 없는 건데…. 그게 내 자신에게 더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도록 만든다. 때로는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여주고 있다는 게 오히려 고독하다고 느끼게도 한다. 뭐, 하지만 누가 이런 경험을 해볼수 있을까? 그래서 배우고자 한다. 누군가 쳐다본다 싶으면 당당하게 좋은 일을 해버린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은 특별한 일을 한다.

이를테면? 잠자는 시간을 쪼개서 하루에 하나씩 뭔가 특별한 일을 한다. 우리 집 청소 아니고 친구네 집 청소를 한다. 왜 그런 일을 계속 하냐면 나는 이제 일반 사람이랑 같이 할 수 없는 공간에 어느 정도 와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는 일이 워낙 이러니까. 근데 내가 친구네 집 청소를 한다거나 할 땐 내가 정윤호라는 걸 느낀다. 그 외엔 다 유노윤호 아닌가? 친구들이 “야 방청소좀하자”이러면 스케줄 멋있게 다 끝내고 와서, 같이 걸레로 방바닥을 닦는다. 밥 좀 하자 그러면 같이 밥을 한다. 이런 걸 즐긴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아까 당신이 말한 고독…. 이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유노윤호라는 이름을 처음 지었을 때가 생각나나? 다른 애들 이름은 다 회사랑 지었는데 나는 내가 지었다. 유노윤호라는 게, 사실은 내 아이디였다. 한게임 아이디.

그 맞고로 유명한? 테트리스했다. 사실 그때 좀 유명했었다. 최근에 한 번 들어갔는데 누군가 그 아이디를 채갔길래 다시 사이트에 전화해서 돌려놨다. 게임하다가 채팅을 하는데 “오, 아이디가 유노윤호시네요?” 그러길래, “아 제가 좀 윤호를 좋아합니다”그랬다가 나중에 슬쩍 “사실은 제가 유노윤호 맞거든요”그랬더니 “난 서태지다”그랬다. 이런 거구나 했다.

팬이 아닌 사람과 연애할 수 있나? 나는 나를 좀 잘 아는 사람이랑 연애하고 싶다.

말하자면 팬과 결혼할 거란 얘긴가? 그럴 가능성도 있다. “나 팬이야” 막이렇게말안해도 평상시에 호감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래야 나를 사랑해줄 것 같고, 그래야 나도 사랑할 수있을것같다.

두부 자르듯 나뉘는 건 아니지만, 정윤호가 아니라 유노윤호에게 호감이 있는 사람 말인가? 아, 아닌 거 같다. 정윤호라는 사람을 좋아해주면 좋겠다.

변장하거나 고향친구들과 방 청소하면서만 정윤호를 느끼고 있으니 이를 어쩌나? 유명하다. 이쪽 바닥에서 연예인 안 만나기로. 연예인들과 사이는 좋은데 어울리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냥 친구들이랑 여행 가고 먹고 놀고 그런 게 좋은데 연예인을 하다 보면 파티 가야 하고…. 그런 게 적성에 잘 안 맞는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것이 연예인 유노윤호에게 콤플렉스가 되기도 하나? 사실 콤플렉스가 있었다. 방송 나가서 막 더 사투리도 쓰고 하는 건 일부러 그걸 이기려고 그러는 거다. 창피할 이유가 없으니까. 거기서 자라왔고, 내 모든 성격이 거기서 만들어졌고, 그래서 유명해진 건데. 처음 준비할 땐 사투리 많이 쓰는 게 나 자신도 좀 그랬는데 이제 안 그렇다. 이걸 장점으로 승화시키자, 그렇게.

이제 5년쯤 됐나? 처음 동방신기 시작할 때, 5년 후쯤이면 이렇게 됐을 것이라는 생각과 지금을 비교한다면? 거의 비슷하다. 꿈을 말도 안 되게 크게 잡았었다.

지금 말도 안 되게 크게 된 것 같나? 처음에, 광주에서 차비만 들고 딱 올라왔을 땐, 정윤호라는 사람을 좋아해주는 사람을 찾자라고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탄탄대로라고 생각한다.

동방신기의 위기를 생각한 적은 없나? 걱정은 한다. 걱정은 항상 하는데, 멤버들 얼굴 보면 걱정이 없어진다. 혼자 있으면, 우리가 10년 뒤에, 15년 뒤에 어떻게 되어 있을까. 많은 선배들을 봐왔고…. 그러다가도 멤버들 얼굴 딱 보면, 아 괜한 걱정했다, 이렇게 된다.

리더라는 책임감 때문일까? 당신은 어떤 리더인가? 애들이 많이 믿어준다. 일단 나는 말보단 행동을 하는 스타일이다. 바로 해버린다. 단순한 면도 있지만 멤버들이 좋아해준다.

빅뱅의 등장과 성공은 동방신기에게 뭐였나? 솔직히 신경 안 썼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 같다. 애들이 되게 센스 있네, 아 얘네들이 새로운 시대를 열려고 하는구나, 그렇게 느꼈다. 내가 보기엔 아이돌엔 1기 2기 3기 이런 게 있는 거 같다. H.O.T 형들이랑 우리 음악이 다르듯이 우리 음악이랑 빅뱅 음악이 다르지 않나? 어떤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문화가 온 거다. 그걸 이해하려고 했다. 결국 큰 자극제가 됐다.

어떤 자극인가? 우리가 멋있게 포장을 해서 신사적인 느낌이라면 빅뱅은 약간 노는 판? 그런 느낌이었기 때문에 되게 생소했다. 부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 색깔이 아직까진 필요한 거 같다. 우리도 하게 되면 저런 스타일도 해보자 그러고 있다.

무대에서 ‘Wrong Number’할 때, 도입부의 당신 표정을 보고 멈칫했던 적이 있다.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어떤 감동이 있었다. 아이돌스타에게서 느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거라서 좀 당황하기도 했다. 아이돌 음악은 지금 이 순간에만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앨범으로 들으면 동방신기도 댄스곡은 서너 곡밖에 없다. 다른 음악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들만이 지닐 수 있는 음악이 있고 그건 지금 해야 하는 음악이라는 거다. 아이돌의 음악성은 하나의 무기라고 생각한다. 무기가 많으면 좋지 않나?

솔로로 활동하는 동방신기는 잘 상상이 안 된다. 멤버들이 언젠가는 개인 활동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주는 동방신기였으면 좋겠다.

당신은 어떤가? 혼자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나? 일단 기회가 오면 준비하려고 생각은 다 해놨다. 혼자 딴맘 먹는 게 아니라 멤버들이랑 다 상의를 한다. 우리는 모든 걸 공유한다. 예를 들어 이번에 시상식에서 춤추다가 모자를 떨어뜨리고 던지고 이런 애드리브 같은 것도 멤버들이 “형이랑 이거랑 어울릴 거 같아” 그런 얘기 속에서 나온 거다.

아이돌이 무슨 독재치하에서 신음하는 백성도 아닐텐데, 모든 게 통제되어 있을 거라는 편견은 가시질 않는다. 하라는 대로 할 거라는 생각도 마찬가지고. 그럴 거 같다.

그런 거 없나? 전혀 없다. 큰 문제라면 상의하지만, 대부분은 다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요즘 당신을 가장 자극하는 게 있나? 아버지다. 항상 아버지를 볼 때마다 감탄사가 나온다. 아버지 반만 따라가자라는 게 신조다. 50년 동안 변하질 않으셨다. 항상 열심히, 지금도 새벽 네 시부터 일하시고, 아홉 시면 주무신다. 그러면서 사랑, 일, 친구를 다 지켜내셨다. 무슨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아버지 얘기 듣고 견디고, 아버지 한 말씀 한 말씀에 산다.

소속사 회장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하던데. 처음 시작할 땐 어렸기 때문에 부모님 느낌으로 많이 대해주셨던 것 같다. 나이가 어린데 술을 먹을 수는 없지 않나?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아버지처럼 안 된다, 된다 많이 가르쳐 주셨다. 요즘엔 오히려 친구 같다. 우리가 아버지 같을 때도 있다. “선생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술 좀 그만 드세요”그러기도 하고.

멤버들끼리는 어떤가? 머리가 커지면서 하는 얘기도 달라지지 않나? 뭐, 여자 얘기도 하지만 대부분 꿈에 대한 얘기, 미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우리가 어떻게 될까 그런 얘기? 나중에 결혼해서 어떻게 살고 싶냐? 우리 같이 살까?

집이 아주 커야 되겠다. 그렇게 살아도 멋있을 거 같다.

성인이 되고 나니 자유가 생긴 만큼 어떤 구속도 더 생기지 않나? 예전엔 휴가가 생기면 뭔가 확 해버리곤 했는데 요즘엔 잘 못 한다. 너무 익숙해졌나 보다. 친구들 만나고 있어도 몸이 다시 근질근질해진다. 다시 무대로 올라가야 되는데, 스케줄 해야 되는데 그런 게 좀 생겼다.

그게 어떤 성숙이라면 좋겠다. 여기서 바로 공항으로 간다고? 일본에서 싱글이 나와서 프로모션하러 간다. 그러고는 한국에서 먼저 콘서트를 하고, 일본에서도 콘서트가 있다. (매니저가 출발을 재촉한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에디터/ 장우철

시아준수

 

시아준수의 아우라는, 동방신기의 궤도 밖에 있는 느낌이다. 그런가?

자유로워 보인달까?
꾸미는 것 같지 않았다. 그건 시아준수만의 감성일까? 라이브할 때도, 애드리브를 많이 하는 편이다. ‘노노 노호우오우오오’이런 식으로. 하지만 우린 팀이니까, 그 틀을 깨면 안 되니까 서로 신경 쓴다. 어려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노래할 땐, 당신만의 노래를 하나?
청중을 생각하면서 부른다.

나만의 노래와 청중이 바라는 것. 비중은 어떤가? 그건 일종의 싸움이기도 하다.
맞다. 하지만 노래를 계산적으로 부르진 않는다. 이론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날의 컨디션,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듯이 한다. 처음 ‘주문(미로틱)’ 라이브를 할 때는 어디서 숨쉬는가까지 생각하고 불렀었다. 지금은 쉴 때 쉬게 된다. 라이브는 녹음에 가장 가깝게 하는 게 좋지만, 그럼 묘미가 떨어진다.

가수로서 당신의 자의식은 목소리인가?
굳이 나누자면. 노래 50, 춤 50이다. 노래가 더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연습생 때부터 항상 춤을 췄다. 어쩌다 보니 이미지가….

‘본 투 싱’이 됐다.
그냥 팬들끼리 하는 말이다. 잊어 달라. 춤에도 같은 열정을 갖고 있다.

노래로 어디까지 가고 싶나?
노래는 계속 가고 싶다. 음악엔 백 점이 없으니까.

악마에게 당신의 재능 중 하나를 온전히 내줘야 한다면. 뭘 포기하겠나? 목소리? 가창력? 감성? 테크틱?
테크닉이다. 굳이 필요 없다. 노래엔 우선 순위가 있다.

1순위는 뭔가?
감성이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는 스타일의 차이일 수 있다. 타고난 목소리로 얼마나 진심으로 부르느냐가 중요하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런 마인드는 있다.

누가 시아준수를 자극하나?
브라이언 맥나이트를 들으면 화가 난다. 너무 잘해버리니까.

팬 중에 스티비 원더, 김범수, 시아준수를 비교한 사람이 있었다. “누가 제일 잘 하나요? 저는 시아준수가 제일 좋았어요. 그때만 눈물이 났어요.” 그랬다. 하하, 미치겠다. 그건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자신에게 와 닿았다는 것에 대한 칭찬일 거다. 우선, 그 이름들을 내 입으로 말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스티비 원더, 김범수 씨와 비교됐다는 것 자체가 황공할 따름이다.

2008년엔 하고 싶은 걸 다 했다고 들었다. 바랐던 것들이 다 이뤄졌다. 목표 이상을 달성했다. 사실, 이번 앨범을 내면서는 비교를 많이 당했었다.

다른 그룹들과? ‘동방신기는 이제 한물갔다’는 말을 들었었다. 댓글도 그랬다. 1년 7개월 공백이 생각보다 더 길었다. 체감하기에 그랬다. 예전에 컴백할 때는 그냥‘컴백’이었다. 이번엔‘우리가 잘할 수 있을까?’생각했다. 팬덤도, 음악도, 문화도 달라졌으니까. 게다가 “동방신기가 한국에서도 잘 될까?” 그런 얘길 많이 들었다. 일본에서 1위를 했으니까.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됐다. 맞다. 하지만 잘 되고 못 되고에 중점을 두진 않았다. 그 부분은 자신이 없었다. 우리가 잘한다고 대중에 어필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시대와 트렌드가 맞아야 하는 거니까. 노래가 뜨고 안 뜨고는 대중의 몫이다. 데뷔 후 6년 동안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필요도 없었다. 동방신기가 부재했던 1년 7개월 동안 대중이 우리에 대한 감을 많이 잃으신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그래도 우린 동방신기다” 그것만 보여주자고 다짐했었다. 그거 하난 자신있고 떳떳하다.

편안한 주문이다.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했다. 부담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작년엔 유난했다.

어젠 당신의 팬페이지에 갔었다. 거긴 일종의 낙원이었다. 그들은 시아준수 안에서 평화와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것도 진심으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된 느낌은 어떤가? 좋은 노래, 좋은 무대. 보답할 건 그것밖에 없다. 내가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될 거다. 그런 건 생각하기 어렵다. 난 가수니까, 노래와 무대다.

처음엔, 목소리만 믿고 시작한 건가? 계기는 강타 형이었다. 지금도 연예인 보면 하나도 안 떨린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정말 유명한 여자 배우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다.

김태희도? 전지현도? 모니카 벨루치를 봐도? 예쁜 사람이 예쁜 건 안다. 그냥 이분은 이래서 좋고. 그런 거지. 근데 강타 형은, 떨린다.

필통에 강타 형 사진을 붙이고 다녔나? 필통? 아이, 그 정돈 아니었다. 책상에 붙였다.

그거나 그거나.
지금도 강타 형을 보면 떨린다. 그 사람과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하는 내 모습이 아직도 놀랍다. 강타 형 때문에 가수가 된 게 맞다.

그저께 당신이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 알고 있다. 피자였다.
맞다. 어떻게 알았나?

‘사생팬’이 알려줬다. 1월 1일부터 10일까진 휴가였다. 회사는 간섭하지 않는 휴가인가? 회사는 관여하지 않는다. ‘사생팬’이 한다. 참 기분이 좋지 않다.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팬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말하지만, 개인적인 시간까지. 그것까지 다…. 그 휴가를 뺏기고 싶지는 않으니까.

일 년에 딱 열흘인가? 제대로 된 휴가는 그렇다. 하지만 집 앞에서 기다리고, 따라오고, 따돌리기 힘들고, 어디 갈 때마다 신경 쓰이고. 그게 연예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부분인 건 안다. 욕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팬들은) 무대에서 만나고 싶다.

그런 팬덤은, 아이돌로 살다 보면 익숙해질 수 있는 걸까? 익숙해질 수 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감각해지는 거다. 하지만 익숙해진 내 모습이 불쌍해 보일 거다. 그래서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건 팽팽한 긴장이다. 익숙해지면 우리가 힘들 거다.

당신의 자아는 평화롭고 굳어 보인다. 그래서 바다를 좋아하나? 야자수가 좋다. 그냥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국에 왔다’ 그런 느낌이 야자수 하나로 딱 온다. 휴가라면 도시보다 휴양지를 택한다. 바다와 따뜻함이 좋다.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그런 생각이 좋은 거다. 야자수, 햇살, 그런 환상이 너무 크다.

아이돌은, 아이돌이라는 사실만으로 무시당하기도 한다. 항상 음악을 듣지만‘동방신기의 음악을 어디서 들으면 가장 행복할까?’ 그렇게 생각하면 답이 안 나왔었다. 이해한다. 아무래도 퍼포먼스 중심의 노래를 했으니까. 걸어 다니면서는 무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돌이라는 자의식이 있나? 있다. 하지만 판단은 대중이 하는 거다. 그리고 그걸 바꾸기엔 너무 멀리 왔다. 아이돌이 나쁜 건 아니다. 한국이 아이돌을 생각하는 마인드가 나쁘다.

왜일까? 모르겠다. 저스틴 팀버레이크, 비욘세도 아이돌인데 그들이 실력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아이돌은 실력이 없다고 여긴다. 대중의 시선이 안 좋기 때문에, 많은 그룹들이 아이돌을 지향하지 않고 ‘아티스트’로 보이려고 한다.

동방신기는 어떤가? 욕심이 있다면, 아이돌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지, 동방신기가 아이돌이라는 사실을 바꾸고 싶진 않다. 아이돌이 실력이 없는 게 아니라는 편견을 깨고 싶다. 동방신기는 아이돌이다.

그건 목표이기도 한가? 아니다. 아이돌이라고 불리든 안 불리든, 그건 대중의 판단이다.

동방신기라면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나? 이걸 해내면 실력 있는 거다. 그런 기준은 없는 거니까. 안주하지 않을 뿐이다.

그건 예술가의 길이다. 아이돌로서 모든 분야를 100% 충족시키는 건 어렵다. 인기가 있어서 안티도 있고. 또 시작이 아이돌이었다.

(이때, 시아준수가 주문한 치킨이 도착했다.)

치킨이 왔다. 치킨, 최고로 좋다. 닭으로 만든 음식을 다 좋아한다. 원랜 양념이 좋은데, 이건 프라이든데도 맛있다. 바삭바삭하다.

방송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신경 안 쓰는 것 같다. 안 쓴다.

힘들지 않나? 안 힘들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다. 그건 연예인이 아니라 어떤 분야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걸 억지로 가지려고 하면 힘들어진다. 욕심이다. 강하면 부러진다. 가진 게 있으니까, 포기도 한다. 지금 가수로서, 동방신기 시아준수로서 사랑 받는 것 너무 행복하고 좋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연예인은 안 할 것같다. 2년 전부터 생각했었다. 해봤기 때문에 평범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자신도 없다. 노래도, 평범하게 살면서 편하게 부르고 싶다.

<지큐>와의 인터뷰는 어떤 의미인가? 솔직히 잡지를 안 본다. 패션엔 관심이 없다. 패션은 유천이 형이 좋아한다.

<지큐>가 패션지일까? <지큐>가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다. 정말이다.

좋은 차 타고 싶지 않나? 포르쉐 같은. 자동차에도 관심이 없다. 남자들이 운전을 하면 으레 갖는 호기심은 있지만, 명품도 안 좋아한다. 옷 살 땐, 입어보는 것도 귀찮아한다. 연예인으로서 난 참, ‘아니다.’

여러모로 잡지 볼 일이 없는 사람이다. 어떤 게 시아준수를 유혹하면 흔들릴 건가? 프로 축구 구단주가 와서 “축구 해보지 않을래?”그러면 흔들릴 것 같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면 분명히 흔들릴 거다. 다시 태어나면 축구선수 할 거다. 트렁크에 축구화 네 켤레, 축구복만 여섯 벌 있다. 언제든 공 찰 수 있게 갖고 다닌다. 노래랑 바꿀 수 있는 건 그나마 축구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놓아준다면 어딜 갈 건가? 보라보라.

왜 보라보라에 그렇게 집착하나? 한 두 번이 아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다시 가겠다고 다짐했다. 하아… 그 한적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이다. 에디터/ 정우성

믹키유천

휴가 때 프로방스는 갔다 왔나? 어딘가에서 휴가를 얻으면 거기 꼭 가고 싶다고 한 걸 봤다. 못 갔다. 시간도 너무 빠듯했고. 거기만 갈 것도 아니라 2~3주는 필요하다. 거기에 있는 어떤 언덕을 봤는데 너무 좋았다.

그럼 뭐 했나? 반은 놀고, 반은 집에서 곡을 썼다. 노래도 많이 들었다.

아까 듣기론 크리스마스 때도 혼자 보냈다고 하던데…. 24일엔 그냥 쉬려고 했다. 그런데 오후 다섯 시쯤 일어나니까 기분이 너무 꿀꿀해서 아는 형들 하고 레스토랑에 갔다. 난 레스토랑 정말 안 간다. 스테이크 먹을 바에 곱창 먹지. 그런데 다 커플들만 있었다. 아니면 부모님 소개시켜 드리는 자리. 먹고 나서 또 푹 자고 일어났더니 동생하고 동생 여자친구, 어머니 이렇게 세 명이 샐러드를 만들고 있었다. 더 꿀꿀해져서 방에서 안 나갔다. 이게 뭐냐 싶어서 곡 좀 쓰다가, 2월에 있는 콘서트 때 보여줄 개인기를 준비했다.

휴가와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보냈지만, 당신과 동방신기의 작년은 역대 최고였다. 많은 성과를 이뤄서 안심이 된다. 공백기가 어휴, 1년 7개월이니까. 부담이 컸다. 처음에 일본 갔을 땐 뭔가 보여줘야 되는데 한동안 별 반응이 없어서 많이 불안했다.

일본에서 활동한 지 3년 정도 됐다. 올해 오리콘 차트 1위만 네 번했는데, 그 정도면 빠른 시간에 성공한 것 아닌가? 일본 쪽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일본 사람이고 일본 가수였다면 모르겠는데 한국에서 뭔가 이루고 간 상태라 불안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사실 굉장히 컸다. 다시 시작하는 느낌? 그리고 한국과 일본 사이의 균형이 점점 더 틀어지지 않을까 초조했다. 일본에서 하는 동안은 한국에서 못하니까. 일본활동 마무리하고 4집으로 한국에 왔을 때 그 시간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방신기는 시작부터 1위였다. 이후에도 내려간 적은 없다. 그런데 왜 굳이 일본까지 갔나? 막상 처음 갔을 때는 큰 벽이 없었다. 편안하게 활동하면서 반경을 넓히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데 막상 J-팝을 하려니 예상과는 달랐다. 한국과 다르다 는 게 피부에 와 닿았다. 초반엔 이게 맞는 건가, 해야 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신은 자신을 아이돌이라고 생각하나? 일본과 한국은 아이돌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물어봤다. 둘을 경험해봤고 성공도 해봤으니 ‘한국의 아이돌’에 대한 어떤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을까 해서. 아무래도 한국에서 아이돌이라고 하면 나이 어리고 음악성 떨어지고 비주얼 중심에 십대 팬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룹이란 이미지가 있다. 지금은 인식이 좀 바뀐 것 같고 수준 자체가 많이 올라간 것 같긴 하지만…. 사실 우리가 아이돌이다 아니다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보는 사람의 시점이 달라지는 것 아닌가? 그래도 한국에서 활동하면서는 아이돌이란 단어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다.

이제 당신들이 제일 연차가 높다. 어지간한 선배 아이돌들은 다 은퇴하거나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일본 쪽 회사에서도 그런 얘기를 제일 많이 했다. 스마프 같은 그룹이 되면 좋겠다. 동방신기의 색깔을 계속 갖고 가면서 개인적으로도 성공하고, 모이면 또 동방신기의 느낌이 나오고. 일본그룹하고 제일 다르게 봤던 게 다섯 명이 함께 산다는 것이다.

지금도 합숙을 하나? 일본에서는. 거기선 그걸 의아해하면서도 좋게 받아들인다.

어릴 때부터 뭘 할지 결정한 사람을 보면 항상 궁금하다. 그 확신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 어떻게 보면 무모한 자신감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운동을 많이 해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태권도를 오래했다. 3단까지 땄으니까. 그러다 보니 앉아 있는 시간보다 운동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다 미국에 가게 됐고, 중학교 2학년 반 정도까지 진짜 열심히 했다. 반에서 1등을 안 놓쳤다. 그런데 어느 날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여기 앉아 있어야 돼?

그런 생각은 다 한 번씩 한다. 그러면서 계속 할 뿐이지. 그래서 학교를 안 나갔다. 집안 사정도 힘들고 해서 일을 시작했다. 1주일에 대여섯 개 정도. 나무 패는 일부터 세탁소 일, 한인 비디오 가게 등. 예를 들어 비디오 가게에선 한국에서 들어온 원본을 몇 백 개씩 복사해서 전 지역으로 보내는 일을 했다. 그리고 돈을 벌어서 피아노를 샀다.

피아노가 그렇게 갖고 싶었나? 너무 갖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는데 2주 배우다 못 배웠다. 그 아쉬움이 남아 있었는지 피아노를 사서 계속 쳤다. 악보를 잘 못 보니까 주변에 피아노 잘 치는 사람 손가락을 보고 따라 쳤다. 중학교 들어서 진지하게 음악이 하고 싶었다. 공연도 많이 다니고 싶었고. 그런 시기에 운이 좋아서 SM을 만났다.

미국에서 만난 건가? SM에 여러 나라를 돌며 캐스팅 하는 분들이 있다. 제의를 받고 그들이 묵고 있는 호텔 복도에서 오디션을 봤는데 갑자기 춤을 추라고 해서 벽을 타고 막 뛰고 난리를 쳤다. 혹시 한국에 오지 않겠냐고 해서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간 일을 진짜 열심히 했다. 그걸로 비행기 표를 샀다.

무슨 80년대 성장영화도 아니고… 그런데 SM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나? 잘 알고 있었다. 좋아하는 회사였다. 그래서 이 기회를 잡아야겠다 생각했다. 그때가 열 일곱 살 즈음이었다.

제일 아끼는 물건도 CD라고 하던데 어떤 거 많이 듣나? 장르를 가리진 않는 편인데… 트로트는 거의 안 듣는다. 가요는 최근에 나온 윤종신 형 노래 같은 스타일 좋아한다. 과거의 015B나. 해외는 모던 록이나 어덜트 컨템포러리 쪽 좋아한다.

뭐든 지금 하고 있는 동방신기의 음악과는 다르다. 그 사이의 간극은 상관없나?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것만 해도 너무 좋았다. 처음에는 동방신기로 성공해서 나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음악을 해야지라는 생각이 컸다. 뭐든 상관없었다. 녹음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부를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곡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보다 행복한 게 없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 욕심은 생겼다. 앨범 느낌은 이랬으면 좋겠다, 어땠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지만 나는 박유천이 아니라 동방신기니까 그런 부분은 충분히 존중하고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 색깔을 찾았던 거고.

시작할 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게 성공했다. 운이 좋았다.

운이 좋았다라… 정말 낙천적으로 들린다. 하긴, 비관적인 아이돌은 본 적이 없다. 준수하고 나는 정말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 너무 심해서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도 많다.

다 잘 될 거 라고 생각하는 편인가? 그보다는 내가 잘 될 거라고 느끼면 무조건 잘 된다는 확신이 있다. 아직 젊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인 것 같다. 물론 여건이 주어졌으니 자신감이 붙는 거겠지만 멤버들 중 가장‘무대포’인 건 확실하다. 이걸 해야지 하면 무조건 한다. 행동으로 하는 건 더 그렇다.

외모만 보면 제일 얌전해 보인다. 물론 얼마 전 <해피투게더>에서 했던 경악할 만한 분장을 보면 확실히 안 그런 것 같지만. 원래 성격이 좀 차분하긴 한데 밝을 때 너무 밝다. 밝은 모습을 좋아하거나, 기억하는 분들에겐 그런 모습을 더 보여드리려고 한다. 사적으로도.

팬 페이지를 검색해 봐도 어떤 곳에는 ‘나쁜 남자’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어떤 곳에는 밝고 귀여운 사진들만 올려놨더라. 나쁜 남자처럼 보이진 않는데…. 그 펜 페이지 어딘지 안다. 어머니께서 들어가 봤다고 하셨다. 그런데 뭐, 어떤 모습을 보고 그러는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내가 봐도 좀 표정이나 성격이 다양하긴 하다. 방송을 해도 있는 그대로 하다 보니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그런 게 다 보이는 것 같다.

과거엔 가요 프로그램 이외에는 별로 출연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활동 때부터 친근하게 느끼는 분들이 많았다.

이전에는 좀 과격하게 말하면 거대 팬클럽이 지탱하는 아이돌 그룹 같은 이미지였다. 지금은 넓어졌다. 예를 들어 지금 인터뷰도 그렇다. 집에 <지큐>가 많은데도 <지큐>와 인터뷰를 할 거라곤 생각 못 했다. 그냥 자연스럽게 때가 온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회사가 우리를 굉장히 믿는 부분이다. 우리도 그만큼 편안하게 활동을 했던 것 같다.

인터뷰 준비하면서 말로만 듣던‘카시오페아’에도 가입 해 봤다. 절차가 복잡한 편이었다. 거기 등업도 잘 안 해주지 않나?

일단 가입하면서 퀴즈 하나가 있어서 찾아서 썼다. 그런데 정회원이 되려면 매달 바뀌는 퀴즈 세 개를 더 맞춰야 돼서…. 아… 퀴즈도 있구나….

관심이 있든 없든 그들은 계속 유지 중이고 더 커지고 있지 않나. 실제로 이번에 한 명 더 가입했고. 어제 <지큐> 피처팀끼리 090108하면 관련 검색어에 ‘090108동방신기’가 뜬다는 것 때문에 놀랐다. 일일 스케줄 아닌가. 처음엔 너무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좀 답답하고.

좀 무섭지 않나? 그분들도 다양하다. 심한 분들은 너무 심하다. 옛날에는 장난 아니었다. 아… 나가면 따라오고. 그런데 이제 따로 살다 보니 나도 유연하게 대처하고 그분들도 예전처럼 하지 않는다. 지금은 “맥주 한잔 하고 오니까 따라오지 마세요”하면“조금만 드시고 오세요” 그러고 안 따라온다.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긴 하지만. 그렇게 됐다.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그렇다. 제대로 적응이 된 거다. 숙소 생활 할 때는 다섯 명에 대한 팬이 오니까 굉장히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내 팬만 오니까 조용한 편이다. 와서 오래 있지도 않는다. 잠깐 한두 시간 있다가 오늘은 안 나오네 하고 가고. 나올 때 마주쳐서 “어디 가세요”하면“그냥 영화 보러 가요”라면서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마세요”하면 얘기도 안 한다. 하루 종일이 아니라 시간대가 있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가끔 큰 공연이 있거나 팬 미팅을 하면 여전히 잠을 못 자긴 해도….

한국에서, 일본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뭐가 더 남았나? 우리가 원하는 건 꼭 어떤 공연장에 몇 명을 채우고 그런 게 아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대중적인 음악색깔을 갖고 싶다. 한국에서 활동할 땐 안 그랬다. 오히려 한국에선 대중적인 부분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이제 인기를 많이 얻기보다 누구나 알고, 한번쯤 들어 봤을 법한 음악을 하고 싶다. 오래오래. 개인적인 바람은 그렇다.

개인적으론 뭘 하고 싶나? 드라마도 하고 싶다. 그런데 친구인 (김)현중이가 요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굉장히 힘들어하더라. 그저께 봤는데 얼굴이 너무 안 좋아졌다. 그래서 무섭긴 한데 도전해보고는 싶다. 음악적으로는 밴드를 너무 하고 싶다.

모델로 생각하는 밴드가 있나? 국내에서는 자우림, 해외에서는 머시라는 밴드.

두 밴드의 음악에는 꽤 많은 차이가 있는데? 그렇긴 한데 여러 가지를 접목시켜 보고 싶다. 자우림 같은 느낌의 밴드에 머시 같은 느낌의 음악.

언제까지 동방신기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정말 현실적으로. 쉰에서 예순 살까지?

그럼 역사책에 나올 수도 있겠다. 활동은 안 하더라도 그 이름은 계속 가져갈 것 같다. 팀워크를 다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나는 동방신기였기 때문에 이름이 있는 거다. 연예인이나 가수로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지금은 믹키유천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데 쉰 살이 되면…. 더 잘 어울릴 거다. 굉장히 잘 어울릴 거다. 에디터/ 문성원

영웅재중

아까 자장면 먹는 거 봤다. 별 일 아닌데 신기했다. 우리도 자장면 먹는다. 팬들은 많이 보셨을 거다.

다섯 명 중에 당신이 제일 예민해 보인다. 얼굴 표정이, 좀 내버려 둬,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전혀 아니다.

새벽에, 당신과 축구하는 꿈을 꿨다. 천 년을 살아도 그런 일이 안 생길 텐데. 혹시 아나? 다음 주 일요일에 만나서 축구할지? 나도 축구 좋아한다. 어젯밤에 맨유 경기도 봤다.

정말? 박지성 플레이에 대한 영웅재중의 생각은 어떤가? 평점도 매길 수 있겠나? 9점. 상대 편 공격의 흐름을 잘 끊었다. 박지성은 동료들이 더 잘 공격할 수 있게 도와줬다.

팬들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처럼, 당신도 박지성을 만나고 싶나? 유노랑, 준수가 같은 학교다. 걔들이 만나러 간다고 하면 사인 받아달라고 해야지.

실제론 운동을 잘 안 할 것 같다. 비싼 몸이니까, 다치면 안 되니까, 회사에서 못하게 하지 않나? 예전에 춤추다가, 관절하고 관절 사이에 있는 판이 찢어져서 수술한 적이 있다. 다 나은 후에 한 번 운동을 했는데, 다른 사람 무릎하고 부딪혔다. 정말 아팠다. 그때 이후론 불안해서 격한 운동은 안 한다. 의사선생님이 또 다치면 수술해도 안 낫는다고 했다.

열흘 동안 휴가였다고 들었다. 부모님 보고, 친구들도 보고, 할 게 없어서 곡 작업도 했다.

그럴 때도 항상 누군가 옆에 있나? 아니다. 집에 갈 때도 직접 운전해서 갔다.

차는 무슨 차? 안 쓸 거면 가르쳐 주겠다.

그게뭐별건가? 그래도….

납치라도 당하면 어떡하려고 혼자 돌아다니나? 동방신기 생활을 오래 해서, 몰래 빠져나가는 건 정말 잘 한다.

영웅재중 팬들은 당신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을 것 같다. 스케줄도 다 꿰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 방 침실에 침대가 몇 개 있는진 모를 거다.

뭐지. 이 뜬금없는 궁금증은. 다섯 명이니까 다섯 개 아닐까? 세 개. 거기서 다섯 명이 다 자나? 매니저 한 분이랑 멤버 두 명이 거기서 자고, 방 하나에 준수가 자고, 또 방 하나가 더 있는데 거기선 또 매니저 형이 자고…. 나는 거실에서 잔다.

가수를 거실에 재우고 매니저는 방에서 잔다고? 나는 거실이 좋다. 맨바닥, 확 트여 있는 공간 이런 것들 좋아한다. 아침에 사람들이 걸어 다녀서 잠도 잘 깬다.

한 시대의 문화 아이콘으로서, 이 다음에 학생들은 학교에서 동방신기에 대해 배울 거다. 역사책에 영웅재중은 어떻게 기록되면 좋겠나? 음, 영웅재중은 ‘월드 피스’를 지향했다.

세계 평화? 그럼 역사책이 너무 웃겨지려나.

세계적인 스타들은 지구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한다.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돕거나 파괴되는 열대림, 녹는 빙하에 대해 알리기도 한다. 영웅재중은 세계 평화를 위해 어떤 일을 했나? 아직까진 마음만 있지 행동으로 옮긴 건 없다. 예전에 일본에서 공연하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 이런 문구를 외친 적이 있다. 스톱 지구 온난화!

그 말이 힘이 있을까? 동방신기의 영향력이 더 강해지면, 우리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이 우리 말에 관심을 가질 거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스타가 팬들의 사랑으로 얻은 지위란 걸 안다면, 더더욱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한 달에 이삼만원만 기부하면 아프리카에 있는 아이들이 몇 주 동안 먹을 식량을 살 수 있단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걸 좀 해보고 싶다. 동방신기도 기부를 하긴 하는데, 나 개인적으로도 생각해 보겠다. 그런데 내 생각엔 준수 때문에 환경이 더 오염되는 것 같다.

시아준수? 준수가 스프레이를 많이 쓴다.

오존층을 위해, 시아준수한테 스프레이 적게 뿌리라고 말하는 게 좋겠다. 그런데 이름 앞에 영웅이 붙는 거 부담스럽지 않나? 꼭 그렇진 않다. 영웅이 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거니까. 창민이는 최강이 되겠단 거고. 그런데… 솔직히 미국에 갔을 땐 창피했다.

미국에선 히어로재중이라고 인사하나? 영웅을 뺀다. 이름 앞에 그런 게 붙으면 이상하니까. 내가 직접 영웅이라고 소개하는 것도 웃기고. 일본에서도 처음엔, 인사할 때 이름만 말했다. 나중에 팬들이 먼저 영웅을 붙여 줘서, 그때부터 영웅재중이 됐다. 중국이나 대만에서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히어로를 붙인다.

팬들의 사랑도 받고, 회사에서 지원도 잘 해주는데, 부족한 게 있나? 대학생활. 미팅이나 소개팅이 정말 하고 싶었다. 친구들끼리 술 마실 때 가끔 자연스럽게 여자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되게 재밌다. 영웅재중이고 뭐고 없이,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대해줘서 좋다.

새로운 사람 만나는 데 흥미를 가질 나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누굴 소개해주는 걸 좋아하게 됐다. 하동균 형이랑 타블로 형은 원래 서로 몰랐는데 내가 소개시켜줬다. 지금은 둘이 ‘베스트’다. (하)동균이 형이랑 (김)현중이도 서로 몰랐는데, 내가 소개 시켜줘서 친해졌다.

기왕이면 여자를 소개시켜줄 일이지? 나는 거의 남자들하고만 있는다. 술을 마셔도 열 번에 아홉 번은 남자들끼리다. 여자가 있으면 꼭 그게 그렇게 된다.

그게 그렇게 되는 건 뭔가? 이렇게 얘기하다가 저렇게 된다. 아, 그러니까 결국 다들 여자만 보고, 여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는 남자들끼리 떠들고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술 마실 때도 여자한텐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다.

여자한테 관심이 없는 건가? 내 핸드폰에 여자 연예인 번호가, 회사 동료 말고는, 여자 연예인은 세 명밖에 없다.

궁금하게 그런 말을 이 자리에서 왜 하나? 이것도 안 쓸 거면 말할 수 있다.

그게 뭐 별 건가? 수상하다. 근데 그 세명한테도 연락 안한지 백만년됐다.

옛날에 아이돌은 대스타가 아니었다. 대스타는 따로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대세가 역전됐다. 이런 시대 변화에 대해 물으면 너무 어려울까? 시대가 흐를수록 아이돌 그룹의 실력이 좋아지고, 활동 영역도 넓어졌다. 그러니 더 많이 사랑받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돌이란 호칭은 어떤가? 한두 단계 아래로 보는 표현 같다. 나쁘진 않다. 이 수식어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주느냐가 문젠데, 확실히 부정적인 인상도 있다. 뭔가 철없는 애들 같아 보이고. 하지만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의외로 말을 의젓하게 한다. 이것도 일종의 편견이라면 편견이겠지만. 신문 읽는 거 좋아한다. 비행기를 많이 타는데 늘 신문을 읽는다. <중앙일보> 팬이다. 다 똑같은 건지 모르겠지만, 종이 질도 맘에 들고, 글씨도 눈에 잘 들어온다.

기억에 남는 기사도 있겠지? 김정일이 아파서 전쟁 날지도 모른단 얘기가 돌 때였는데, 신문에 주한미군에 관한 기사가 났었다. 그 전까진 미군 기지가 한국에 들어와 있는 게 싫었었다. 놀랍게도 그날은 기사를 읽으면서 주한미군에게 조금 의지가 됐다. 어찌 됐건 전쟁 나면 우리 편일 것 같고.

전쟁 나면 자원해서 군대 갈 생각 있나? 아… 막상 상황이 닥치면 정말 무서울 것 같다. 우리 전력이 밀리면 가야겠지만.

할 일이 있지 않을까? 그래도 영웅인데…. 직접 가서 싸우든,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위문 공연을 다니든, 다 같이 싸우자고 격려를 하든, 뭔가 하긴 할 거다. 꼭! 근데 이런 질문은 대답하기 곤란하다. 조금만 말을 잘못해도 비난을 받는다. 무슨 비난? 군대 안 가냐고. 나 군대 갈 거다.

꼭! 동방신기는 영향력 있는 아이돌 그룹이니까, 남자답게 입대하면 모든 팬들이 박수를 칠 거다. 마음이 아파도. 그런데 영향력이란 게 도대체 뭘까? 그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영향력이 있으면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둘을 동시에 다 가질 순 없다. 하나를 선택하라면 명예다. 데뷔하고 5년 동안 나뿐만 아니라 동방신기 멤버들 모두, 명예를 얻고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건 정말 정말이다.

자부심이 대단하다. 어디에 가든 동방신기의 영향력이 느껴진다. 물론 동방신기의 영향력이 거의 없는 나라도 있다. 그런 곳에 가면 그걸 키우고 싶어진다. 너무나. 돈을 벌려고 했으면 다른 나라에 가서 신인가수처럼 고생하지 않았을 거다. 그냥 잘 벌리는 나라에서 적당히 하면 되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다. 돈은 아니다.

앞으론 어떤 나라에서 동방신기의 영향력을 키우고 싶나? 아직 아시아. 일본에서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몸은 하나고 시간은 부족하다. 해외에 가면 다른 아티스트 분들도 열심히 활동하는 걸 직접 보게 된다. 그분들이 인기를 얻을 때,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쌓은 영향력을 뺏기기도 한다. 더 강해져야 한다.

여든 살이 되면 영웅은 뭐하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마흔까진 생각해 봤다.

마흔엔 뭐하고 있을까? 동방신기를 마흔까진 할 수 있지 않을까? 회사에 직원으로 들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팔십까진 못 살 거다.

그게 무슨 동방신기 팬들 기절할 소린가? 술하고 담배를 너무 좋아해서 그러기 전에 죽을 것 같다.

그러면 가볍게 운동도 할 겸 다음 주 일요일에 같이 축구하는 건 어떤가? 오래 살게 해주겠다. 일본이랑 대만에 다녀와야 된다. 무릎도 안 좋고. 역시 제일 예민하다니까. 에디터/ 이우성

    에디터
    정우성, 손기은, 이우성, 문성원, 장우철
    포토그래퍼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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