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음악을 어떻게 포장할 것인가

2009.02.03장우철

형식 없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음악을 상품으로 포장하는 방식은 그 형식이 CD가 되면서‘나쁘게’변했다.최신 베스트셀러앨범을 살피면서 좋은 음반포장에 대해 생각했다

여전히 음반은 생산된다. 아무리 안 팔린다 해도 그것이 음악을 사고파는, 그리고 음악을 소유하는 거의 유일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변화가 있긴 했다. 가로세로 31cm의 음악(LP)이 가로세로14.5cm의 음악(CD)으로 달라졌다는 점. 그런데 이 변화는우리나라에서 불법 다운로드를 음반시장 초토화의 핵심으로 보는 관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CD라는 매체의 간편한 복제기능을 주목하는 것이다. CD가 정확히 음악만을 담기 위해 생겨난 형식이 아니라는 점, 손쉽게 누구나 복제할 수 있다는 점, 소머즈의 귀가 아닌 이상 음질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다는 점 등은 음반을 소유하는 만족을 좀먹는 일이었다. CD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음악이 담긴 진정하고 유일한매체라는 생각을 주지 못한다. 한 면이 끝나면 다른 면을 듣기 위해 바늘을 올리고 판을 뒤집어야 했던‘음악적’형식이없는, 그저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작업 중 소리가 나는 작업일뿐이라는 인식이 어느새 자리잡았다. 그렇다고 CD의 기능적 편리함을 버리고 다시 LP로 복귀할 문제는 아니었다. 업계의 전략은 자연히 CD의 소장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치달았다. 눈에 띄게, 이왕 눈에 띌 작정이면 확실하게 튀게, 크기도 모양도 디자인도 모두가 그냥 한눈에‘꽂힐 수’있도록. 그러나 될 수 있는 한 절대적으로 싸게.

2009년 1월 10일 서울시내 대형 음반점 가요 코너를 살펴봤다. 그 풍경은 요즘 대중음악 음반시장의 판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뭐니뭐니 해도 팔리는 건 아이돌이라는 사실과 음악보다 이슈가 앞서간다는 사실과 여전히 어떤 음반은 조용히 팔리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소녀시대 멤버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찍은 사진이 커버를 장식한 미니앨범 , 타이포그래피만으로 디자인된 빅뱅의 2집 앨범과 DVD, <베토벤 바이러스>의 배우 김명민이 드라마 속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옷과 포즈와 표정을 한 채 직접커버에 등장한 <김명민의 클래식 : 마에스트로>, 색깔별로열 두 종류의 패키지를 선보인 이소라의 7집, 윤상의 노래를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앨범 <윤상 Song Book: Playwith Him>의 초판 한정 아웃케이스반, 인디 뮤직에 대한 관심을 대변하는 검정 치마와 브로콜리 너마저의 앨범, 언제부턴가 레코드숍의 베스트셀러가 된 화보집과 달력들(슈퍼주니어의 화보집과 달력 묶음인 와 동방신기의 벽걸이 캘린더),‘타입-C 클린 버전’의 동방신기 4집 ….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풍경은 지금 음반이 소비되는 트렌드와 환경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앨범의 구성부터 그 앨범을 포장하는 방식과 디자인에 관한 부분까지.

소녀시대의 첫 번째 미니앨범 는 ‘미니앨범’붐을 잇고 있다. 어차피 앨범 판매에 전적으로 수익을 기대하는 구조가 아닌 이상, 앨범 한 장을 만드는 부담을 덜고, 제작비도 절감하고, 실패하더라도 손실의 규모도 줄이는 가볍고도 가벼운 방법으로 미니앨범은 주류와 비주류를 막론하고 유행이다. 소녀시대는 청바지를 입은 사진을 통해 과거 ‘Kissing You’와 선을 긋고, 뭇 걸그룹들이 택한 ‘치마’위주의 분위기를 반격한다. 아이돌 스타 특유의 천진난만한 분위기보다는 패션모델들의 화보 성격인 사진을 통한 차별화를 노리고 있음도 드러난다. 빅뱅 이후 아이돌 스타들의 패션과 스타일 전략은 무대의상풍의 콘셉트로부터 점점 그 자체로 세련된 스타일쪽으로 변하고 있는데, 이번 소녀시대의 앨범 커버는 그런 흐름 속에 있다. 일반 CD 사이즈지만 플라스틱 케이스가 아닌 디지팩 형태를 사용해서 비주얼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 것도 같은 전략에서다. 빅뱅은 싱글앨범을 제외한 모든 음반에 공히 타이포그래피를 위주로 한 앨범 패키지를 선보인다. 딱딱한 종이상자, 두꺼운 비닐, 그리고 금속 케이스 등 그 재질을 변화시키되 영문 타이포그래피로만 채우는 커버 디자인 방식은 유지한다. 마치 책꽂이 한쪽이 같은 출판사의 시리즈물로 채워지는 것처럼 그 통일감은 빅뱅이라는 이미지를 집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동방신기는 음반을 ‘팔리도록’하는 지점에보다 뚜렷한 초점이 있다. 같은 앨범임에도 수록곡과 패키지를 조금씩 달리해서 몇 개의 버전으로 내놓는 방식은 엄청난 숫자의 팬클럽 회원을 잠정적인 음반소비자로 가정한 속내를 드러내지만 동방신기 팬들의 구매력은 이미 그런 방식에 대해 스스로 판단을 내린 후다.

아이돌 스타들의 음반은 ‘어차피 팔릴 거라는’ 낙관 속에서 그 포장방식을 간소화하고 스타일이나 품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흐름을 타고 있다. 실제로 아이돌 스타들의 앨범커버 촬영은 잡지 화보를 시안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태반이고 그만큼 스타일리스트의 역할이 점점 비대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예전처럼 “저요! 저요!”하는 식으로 울긋불긋 크기도 제각각 모양도 들쭉날쭉인 앨범들은 이제 ‘B’급 아이돌 스타들의 전유물처럼 보인다.

이소라가 7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제시한 방식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불법 다운로드를 저지하겠다는 의도로는 아예 노래의 제목을 달지 않았고, 음반을 갖는 일의 가치를 위해서는 다이어리 형식으로 된 열두 색깔의 패키지를 내놓은 것이다. 그 방식은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이소라답다는 총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내밀한 대화 같은 노래와 다이어리라는 형식의 조화, 제목 없는 노래만큼이나 자유롭게 느껴지는 열두 개의 색깔. 이소라의 7집 앨범이 시사하는 바, 한가수의 음반에서 중요한 것은 눈에 띄고 싶다는 의도나 디자인의 세련됨 같은 것이 아니라 그 가수와 어떻게 각별한 조화를 이루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지난 1월 3일엔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음반 <김명민의 클래식 : 마에스트로>를 위한 팬사인회가 있었다.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뤘음은 말할 것도 없다. 드라마를 통해 얻은 명망 있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캐릭터를 클래식 옴니버스 음반의 이미지로 연장시킨 음반회사의 상업적 전략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비슷한 선례로 <김연아- Fairy on the Ice>가 큰 성공을 거뒀는데, 연이어 베스트셀러가 나온 것이다. 음악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인물을 내세워 음반을 판매하는 방식은 몇 해 전 공전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가요 옴니버스 시리즈로부터 시작된 형태다. 그러나 이런 앨범은 결국이벤트 이상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 껍데기를 오려서 책갈피로 쓴다면 모를까, 음악으로 집중되지 않고 저 홀로 이슈를 대변하는 앨범 커버는 결국 이슈의 유통기한만큼만 살아남는다. 하물며 음악적 집중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옴니버스 앨범의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윤상의 노래를 본인은 물론 여러 젊은 뮤지션들이 참여해 함께 리메이크한 앨범 <윤상 Song Book: Play with Him>은 초판에 한해 아웃케이스가 덧대어져 있다. 한정판인 셈이다.‘ 초회한정’이라는 말도 곧잘 쓰이는데 일본 음반을 구매해본 사람에게는 매우 익숙한 서비스일 것이다. 라디오헤드의 어떤 음반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중고가에 거래되거나 하는 것도 한정판에 대한 수요가 그 배경이다. 유효하고도 적절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나 진정 한정판다운 품질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윤상의 이번 앨범처럼 아웃케이스를 한 번 더 두르는‘애교’부터 전설의 아이템이 된 닉 드레이크의 LP 에디션 같은 성찬까지 한정판은 음반의 가치와 구매력을 높인다.

그런데 요즘 들어 영•미 인디 레이블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독특한 흐름이 있다. 다시 LP의 수요와 공급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인디 레이블 음반일수록 수요의 볼륨은 작을지 몰라도 음반을 소유하고자 하는 구매력은 훨씬 강하기 마련이다. 그런 이들에게 일반적인 CD의 플라스틱 케이스가 주는 공산품적인 촉감보다는 정통적인 무드가 있는, 게다가 앨범 커버의 디자인을 한껏 느낄 수 있는 크기의 LP가 다시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엔 LP를 생산해내는기계가 단 한 대도 남아있지 않으니 이런 흐름이 국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지만, 음악을 좀 더 음악다운 형식으로 소유하고 즐기는 일에 대한 생각은 어느새CD라는 형식의 한계를 체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끔 놀라는 일이 있는데, 1970년대에 제작된 어떤가요LP들은 그 재질이나 사진 인쇄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또한 컴퓨터를 통한 획일적인 공정을 거치기 전의 디자인들만이 갖는 개별성은 어디에도 없는‘단 한장의 앨범’이라는 뉘앙스에 충실하다. 앨범이 상품이 아닌작품으로서의 가치에 보다 충실해야 하는 이유다.

    에디터
    장우철
    포토그래퍼
    윤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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