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우가 보는 배구

결국 배구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지금 와서 가장 드러내고 싶은 건, 선수로서 박철우가 가진 재능이 아니라, 그가 팀 동료 혹은 관중에게 보내는 기분 좋은 기운에 관한 것이다. 누구든지 그를 만나면 친구가 되고 싶을 테니까.

마지막 세트, 듀스 상황. 세터 권영민의 토스가 당신에게 올라왔어요. 상대편에서 블로킹을 뜨겠죠. 그 순간, 정말 이 선수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상대를 꼽는다면요? 삼성화재 안젤코, 석진욱. 대한항공의 칼라 그리고 신영수. 셋은 너무 높고, 진욱이 형은 키는 작지만 블로킹 센스가 엄청나요.

블로킹 순위 1위, 2위(윤봉우, 이선규)가 다 현대 센터예요. 올 시즌 현대캐피탈의 수비는 다소 불안해요. 그렇지만 블로킹하는 걸 보면, 저래서 강팀이구나란 생각을 하게 돼요. 네. 연습할 땐 상대편으로 붙는 경우가 있는데, 그 둘은 정말 어려워요. 만약 저희 같은 블로킹에 삼성화재 정도의 수비력까지 갖췄다면 바닥에 공이 아예 안 떨어질 거예요.

오, 그럴 수도 있겠는데요. 그 정도쯤 돼야 김호철 감독님께서 소리를 안 지르실까요? 그래도 프로인데‘, 스파르타’식으로 운동할 필요는 없잖아요? 운동량은 다른 팀에 비해 적을 거예요. 훈련 때도 전술 훈련 같은 팀 훈련을 주로 해요.
개인적인 수비 연습 같은 건 많이 안 해서 체력적으로 크게 힘들진 않아요. 대신 감독님은 공 하나 하나에 아주 강하게 집중하라고 요구하시거든요. 그런 걸 강조하시다 보니, 저희도 정신을 바짝 차리게 돼요.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죠. 못하면 소리를 지르시니까 위축도 되고. 그래도 저는 옛날보단 적응이 됐어요. 그리고 감독님도 저한텐 많이 뭐라고 안 하세요. 무리하면 기흉이 재발될 수도 있어서.

뉴스에서 김호철 감독님이, 우리 선수들은 소리를 질러야 말을 듣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봤어요. 스타일이 원래 그러시잖아요. 경기 중에 감독님이 윽박지르시면 괜히 부담돼서 실수하는 선수도 있을 수 있겠는데, 또 한편으로는 감독님의 그런 눈빛을 이겨낸 선수들은 중요한 순간에 더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예를 들면 24대 24 같은 상황.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는 점에서, 저 역시 저도 지금까진 감독님의 방식이 옳았다고 믿어요. 그런데 유독 배구에서만 그런 분위기가 가능한 건 선수들에게 프로로서의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런 게 없지는 않죠. 프로 농구나 야구를 보면 선수 개인의 의지가 크게 반영되잖아요. 제가 보기엔 그런 것 같더라고요. 배구는 아직 FA도 없고, 제도적인 장치가 약하다 보니, 선수들이 예전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감독님의 말을 잘 따르는 게 당연하지만 개인적인 의견도 내세울 수 있어야 하는데…. 몇 년 지나면 가능해 질 거예요.

박철우 선수에 대해 말할 때, 지겹게 반복되는 얘기가 체력이에요. 다 좋은데 기흉 때문에 체력이 약하단 거죠. 저는 아파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면 사람들도 제가 가진 능력을 더 높게 평가해주겠죠. 기흉은 제 운명이고 기회예요.

수술을 네 번이나 했어요. 이제 건강한가요? 몸이 안 좋으면 감독님께 말씀 드리고 쉬어요. 발병할 수도 있으니까. 발병률을 낮추기 위해 여러 번 수술한 거예요. 네 번째 수술 전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예전보다 회복하는 데 더 오래 걸리진 않을까? 그냥 1년 정도 쉬는 거라고 생각하자. 몇 년간 쉬지 않고 운동했으니까 괜찮다. 이런 생각들을 했어요.

얼마 전 LIG와의 경기에서 무려 75%나 되는 공격 성공률을 기록했던데, 스파이크할 때 무슨 생각을 해요? 블로킹 위치, 공이 떨어질 지점 뭐 이런 것들인가요? 예전엔 그냥 때렸어요. 그런데 경험이 쌓이니까, 순간의 판단에 따라, 이땐 이런 식으로 저땐 저런 식으로, 뭐 이런 게 딱 나와요. 기본적으론 블로킹의 위치와 토스가 떨어지는 지점, 이 두 가지를 조합해서 때려요. 그런데 토스란 게 길게 떨어질 때도 있고 짧게 떨어질 때도 있으니까, 항상 블로킹의 위치를 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각각의 상황을 연습 때 가능한 많이 경험해봐야 해요. 배구란 게 그래요. 상대가 어떻게 대응하든 우리만 잘하면 이길 수 있어요. 중요한 순간에는 가장 자신 있는 쪽으로 많이 때리는 편이에요.

가장 자신 있는 쪽이 어딘데요? 다요.

정말? 공격은, 공을 잘 때리고 못 때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몸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에 따라 성공률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블로킹이 높거나, 토스가 어렵게 와도, 몸을 잘 컨트롤 하면, 처리할 수 있어요. 선수들은 다 10년 넘게 배구를 해왔기 때문에 기술적인 차이는 크게 없어요. 자기 몸을 잘 갖고 노는 사람이 잘 하는 거죠. 몸을 컨트롤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잖아요. 제가 스물 다섯인데, 이때가 힘 쓰기 가장 좋은 때래요.

올 시즌 유난히 듬직해 보여요. 불안하면 손이 떨린다고 하잖아요. 예전에는 그랬어요. 표정에서도 아마 나타났었을 거예요. 요즘은 공에만 몰입해요. 어차피 실력이란 건 연습 때 느는 거지 시합 때 생각을 많이 한다고 느는 게 아니거든요.

프로에 온 지 얼마 안 된 선수를 보면 아, 저 선수가 지금 긴장하고 있구나, 느껴져요? 어떤 선수는, 3년 정도 지나면 더 잘하겠구나, 느낌이 와요. 연차를 무시 못 하는 것 같아요.

3년 후에 더 잘 할 것처럼 보이는 선수가 누구예요? (김)요한이, (문)성민이, 대한항공의 한선수, 그리고 저희 팀 임시형 같은 제 또래 선수들이요. 지금도 잘한단 소리를 듣지만, 올림픽 나갈 때쯤엔 상상도 못 할 만큼 실력이 늘어 있을 것 같아요.

당신과 문성민, 김요한 이렇게 셋을 놓고 누가 최고인지에 대해 말들이 많아요. 독특한 지점들이 다 있어요. 공격이야 다들 잘하는 거고.

이참에 결론을 내죠. 가장 논란이 되는 건 이런 거예요. 힘은 누가 제일 세고, 빠른 건 누가 가장 빠르냐? 박철우의 입장은 뭔가요? 그건 성민이가 제일 나아요. 스피드, 파워 다. 성민이 체력을, 저는 따라갈 수 없어요. 100미터 달리기, 순발력, 복근, 허벅지 힘, 종아리 힘, 점프력, 허리 힘 이런 건 다 성민이에요. 상체 힘은 저나 요한이가 성민이보다 조금 더 셀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성민이가 워낙 빨라서. 전체적으로 성민이가 나아요. 수비는, 요한이가 제일 잘 해요. 저는 라이트라 그런지 수비 실력이 안 느는데, 요한이는 서브 리시브나, 전체적인 디펜스 능력, 블로킹이 좋아졌어요.

그런 면에서 라면 올 시즌엔 이경수가 정말 돋보이죠. 공격은 기본이고 수비도 완전히 날아다니던데요. 그 형은 배구의 신이에요. 못하는 게 없어요.

지금 라이트 포지션에서 경쟁자로 생각하는 선수를 꼽으라면요? 예전에 성민이 경기 비디오로 계속 돌려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김학민 선수 경기도 좀 봐요.

자신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스파이크 때릴 때 타점이 상당히 높던데요. 상대적으로 타점이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요. 제가 팔을 쫙 펴서 공격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가봐요. 그런데 그 자세에선 각이 많이 안 나와요. 일장일단이 있죠.

키가 큰 해외 선수들과 상대할 때도 그게 잘 통할까요? 수월하지 않을 수도 있겠어요. 그래서 용병들과 시합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적응을 하려고. 지금 저희 팀에서 뛰는 임시형 선수는 저보다 10cm나 작은데 잘 하잖아요. 저도 해외에 갔을 때 외국인 선수보다 10cm쯤 작아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잔기술을 많이 늘리면요.

문성민 선수가 독일에서 고전하고 있는 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대학에 안 가고 바로 프로로 올라 왔을 때, 언어나 문화의 차이 같은 게 없었는데도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 걸 감안하면 성민이는 그때의 저보다 몇 배 힘든 데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성민이를 천재라고 생각해요. 지금, 사람들이 성민이한테 빨리 돌아오라고 말하지만, 제가 보기엔, 2, 3년 잘 버텨 낸다면 분명 성공할 거예요.

지난 월드리그에서 문성민 선수가 상당히 잘했죠. 그때 못 나갔는데, TV로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던가요? 저는 몸이 안 좋아서 훈련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는데, 성민이가 너무 잘 하니까…. 저한테는 성민이가 고마운 존재예요. 자극을 많이 받아요.

한국 세터들의 토스는 유럽 세터들의 토스에 비해 높은 편이에요. 지금 문성민 선수가 고전하는 이유도 직선으로 빠르게 오는 토스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들 하던데, 우리나라도 빨리 세계 추세에 맞춰야 할 필요가 있는 걸까요? 요즘 미국이 하는 플레이를 보면 레프트 쪽으로 보내는 토스는 엄청나게 빠르고, 라이트 주 공격수 쪽으로 가는 토스는 높은 편이더라고요. 그렇게 봤을 때는 우리도 조금만 맞추면 세계 추세에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결과적으론 잘하는 팀과 못하는 팀의 차이는 서브 리시브, 수비 이런 것들이에요. 지금 우리가 하는 배구도 수준 낮은 배구가 아니에요. 용병들이 와서 고생을 하는 것도 우리나라 배구가 그만큼 수준이 있기 때문이에요.

현대가 우승할 수 있을까요? 배구라는 게 7대3인 것 같아요. 정신력이 7이 실력이 3. 정신을 편하게 놔 버리는 순간 점수 차이가 확. 정신 차리면 이미 경기는 뒤집을 수 없죠.

아, 그땐 얼마나 괴로울까. 미쳐요. 그렇지만 24대24의 상황을 즐길 줄 알아야 이길 수 있어요. 재밌다, 재밌다, 자꾸 이렇게 생각하고 경기하면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 같아요.

김호철 감독님의 ‘버럭’을 잘 견뎌온 덕분이겠죠? 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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