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나는 김동현이다

2009.03.05GQ

덤빌 테면 덤벼라. 한국인 최초의 UFC 파이터 김동현은 챔피언도, 이 땅의 열악한 격투기 현실도, 두렵지 않다.

젖은 옷의 무게 그는 관찰하고 생각했다. 세상은 발 디뎌야 할 미지다. 걸음은 그의 의무의고 함성은 그의 무기이다.

젖은 옷의 무게 그는 관찰하고 생각했다. 세상은 발 디뎌야 할 미지다. 걸음은 그의 의무의고 함성은 그의 무기이다.

얼굴이 낯익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지만 설마 했다. 에디터가 아는 그는 공격적인 성격도 아니고 심지어 온순하기까지 해서. 그 김동현이 이 김동현이 맞다는 건 섭외하면서 알았다. 종합격투기를 하고 있을 줄이야. 인터뷰엔 반말과 존댓말이 섞여 있다. 그가 에디터의 군대 선임이기 때문에. 한 기수 차이지만.

첫 번째로 든 생각은‘자랑스럽다’야. UFC 최초의 한국인이잖아. 그렇지만 내가 엄마나 아빠였다면 절대 하지 말라고 했을 거야. 몰래 했어, 몰래.

언제부터 했어요? 옛날엔 전혀 몰랐어. 용인대학교에서 유도했다는 것만 알았지. 원래부터 관심은 있었어. 2003년도에 군대 갔다 오자마자 본격적으로 시작했지. 집에서 반대가 너무 심해서 트로피나 상장 받으면 다 숨겼어. 그런데 아빠 친구가 내 시합을 보는 바람에 들켰지. 쫓겨날 뻔했어. 그만두고 뉴질랜드로 유학을 갔지.

뜬금없이 왜 유학을 갔대? 한국에 있으면 계속 하니까. 너무 좋아하니까. 워킹홀리데이로 가버렸지. 영어 공부하고 닥치는 대로 일하고. 근데 거기서도 운동 생각이 나서 유도 체육관에 등록을 했어. 정말 미치겠더라고. 그래서 못 이기고 돌아온 거야.

돌아왔더니 하래? 아니. 그래서 돈 벌려고 노력했었어. 근데 한 달 이상 일을 못 하는 거야.

아니, 왜 한 달 이상 일을 못 해? 머릿속에 운동밖에 안 들어 있어서, 다른 일엔 집중이 안 됐어. 그렇게 살 바엔, 돈을 벌든 못 벌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었어. 집에 다시 얘기를 했지. 1년만 해보고 성과를 못 내거나 지면 그만두겠다고. 그리곤 집을 나와서 체육관에서 살았어. 그러다 어느 날 일본에서 연락이 온 거야.

딥에서 뛰게 된 거지? 응. 딥은 프라이드나 K-1의 하부 단체 같은 건데, 잘 하면 프라이드로 올라갈 수 있어. 거기 가서 계속 이겼지. 그때부턴 집에서도, 인정을 해주기 시작한 거야. 일단 외국에 나가서 이기고 오니까. 게다가 다치지도 않고.

종합격투기는 언뜻 보면 진짜 싸움 같아. 설마 싸움 잘하는 사람이 그것도 잘 하는 건 아니지? 유도, 복싱, 태권도 이런 건 무조건 그것만 잘 하면 이기는 거야. 종합격투기는 뭐든 다 해도 되니까 변수가 많아. 작전을 잘 짜고 시합에 나가야 돼. 그러려면 정말 즐겨야 돼.

작전이란 게 엄청 중요하구나. 시합 도중에도 생각을 해야 돼. 좀 맞는다고 당황하면 끝나.

UFC는 어떻게 계약하게 된 거야? 딥에서 5연승 했을 땐가, 이제 프라이드에 들어가도 되겠구나 생각을 했지. 근데, 그때 프라이드가 망해버린 거야. 난 프라이드가 꿈이었는데. 운동 시작하고 그때처럼 힘들었던 적이 없었어. 슬럼프가 왔지. 꿈이 사라지니까.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 다섯 달 동안 시합을 못 했어. 그러다가,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일본 딥에 나갔지. 그때 딥 챔피언을 이겼어. 그 후에 K-1, UFC에서 제의가 온 거야.

UFC에선 우선 네 경기만 계약했다고 들었는데, 돈은 얼마나 받는 거예요? 예전엔 계약금 받고, 한 게임당 얼마씩 받는다, 이런 식이었는데, 지금은 계약금이 없어. 그냥 한 경기당 얼마, 이렇게 줘. 이겼을 때는 보통 그 돈의 두 배 혹은 절반을 더 주지.

구체적으로 얼만데? 딥에선 한 경기에 50만원이나 100만원 받았어. UFC는 큰 대회라 더 줘. 신인이나 네임 밸류 없는 파이터의 경우 500만원에서 800만원 정도.

그것밖에 안 줘? 이번에 카로 파리시안하고 할 땐 얼마 받은 거야? 난첫경기때부터다른 신인들보단 많이 받았어. 유일한 한국인이란 상품성이 있잖아. 첫 경기에 2만 불, 그러니까 2천만원쯤 되지. 파리시안이랑 할 땐 2만 6천 불 받았어. 이겼으면 그만큼 더 받았을 거야.

그럼 지금 웰터급 챔피언인 조르주 생피에르는 한 경기당 얼마나 받는 거예요? 음, 20만 불.

2억? 응. 그런데 세계 톱인데 2억이면 적게 받는 거야. 걔는 2억이 문제가 아냐. 우리나라는 TV로 경기 보는 게 공짜잖아, 그런데 미국은 메인 경기를 보려면 50불을 내야 돼.

그럼 50불의 몇 퍼센트를 생피에르가 또 받겠네? 거의 15퍼센트 받아. 대전료 빼고 수신료만 한 게임에 10억쯤 버는 거야.

엊그제 시합한 사람치곤 얼굴이 깨끗하다. 난 원래 잘 안 맞아. 딥에 있을 때도 거의 맞은 적이 없어. 경기 스타일이 그래. 간격을 둘 땐 확실히 두고, 붙을 땐 바싹 붙지. 보통 밑에 깔리면 많이 맞거든. 그러다 점수도 뺏기고. 그래서 난 바로 일어나. 이번에 붙은 파리시안도 나랑 비슷한 스타일이야. 밑에 깔리면 반칙을 해서라도 일어나더라고. 그래서 발로 내 얼굴을 찬 거야. 그런 면에서 많이 배웠어. 내가.

난 정말, 누가 내 얼굴을 그렇게 차면, 시합이고 뭐고, 달려가서 반쯤 실신시켜버릴 거야. 걔 넘어트렸을 때, 이번 시합 이겼구나 생각했어. 걔도 알고 있던 거지. 오래 깔려 있으면 진다는 걸. 그러니까 어떡해서든 일어나려고 반칙을 한 건데, 난 허무하잖아. 거기서 오래 있으면 이기는 거란 말야. 그래서 심판한테 어필했지. 솔직히 반칙한 건 신경 안 써. 아쉬운 건, 경기를 다시 시작할 때, 그 포지션에서 했었어야 한다는 거야.

심판 미스였어. 큰 대회에서 그런 일이 생기다니. UFC 경기를 처음 진행하는 심판이었어. 근데 불만은 없어. 어차피 생각하면 아쉽고 짜증만 나고 결과는 번복 안 되니까.

바닥에 깔리면 상대가 위로 올라와서 얼굴로 계속 주먹을 날리잖아. 그때 무슨 생각이 들어. 안 무서워? 응. 위에서 때리는 게 의외로 쉽지가 않아. 인간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거든. 상대 입장에서도 가시덤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때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역시 파이터는 일반인이랑 다르구나. 현지 중계진들이 해설할 때 그랬대. 파리시안이 UFC에서 톱파이터들이랑 많이 싸웠는데, 백 포지션(등)을 잡힌 건 처음이라고, 나처럼 괴롭혔던 선수가 없다고. 졌지만, 이번엔 확실히 인정을 받았어. 사실 예전엔 상대가 약해서 이겼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거든. 근데 파리시안이 UFC 7위이야. 얘를 이기면 톱 10안에 드는 거지. 얘랑 붙어서 승리한 선수들이 세 명인가 네 명밖에 안 돼. 챔피언급 선수들이었어. 그래서 다들 내가 힘들 거라고 예상 했는데 의외로 좋은 모습 보인 거지. 나중에 UFC 사장도 내가 이긴 거라고 얘기해줬어. 승리를 도둑 맞았다고.

종합격투기 시작하고 처음 진 거지? 응.

판정에 전혀 문제가 없던 건 아니지만, 선배가 압도적이지도 않았어. 라스베이거스에서 미국 국적 선수와 시합한 거잖아. 그 정도 텃세는 너무 당연하지. 나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겼으면 돈은 더 벌었겠지만 장기적으론 안 좋았을 것 같아. 두 번째 경기 때도 판정 시비가 있었는데, 그땐 내가 이겼잖아. 그런데 이번에도 그렇게 이기면 한국 사람들도 나를 인정 안 했을 거야. 자만했을 수도 있어. 한 번도 진 적이 없으니까. 이번 경기를 통해 확실히 배웠어. 3라운드에 똑바로 안 하면 진다는 거.

경기 후에 리뷰를 보니까, 체력과 타격을 보완해야 된다고들 하던데, 동의해요? 응. 그런데 체력은, 약한 게 아니야. 나는 거리 재면서 서 있는 경우가 거의 없잖아. 계속 뛴다고. 있는 힘을 다 내. 지칠 수밖에 없어. 파리시안도 진짜 체력 좋은 선순데, 1라운드 때부터 헐떡거렸잖아. 체력을 어떻게 안배하고 운용하느냐, 오히려 이런 능력을 키워야 될 것 같아. 정말 미친 듯이 훈련해서 3라운드가 아니라 30라운드까지 뛸 수 있으면 제일 좋고.

타격은 확실히 패턴이 단순하더라. 툭툭 치고 빠지면서 살짝 약 올리는 펀치들이 너무 없었어. 타격에 관해선, 내가 이번에 확실히 느낀 건데, 그동안은 가까이 붙어서 경기할 때가 많았어. 거리를 두는 상대랑 싸워 본 적이 별로 없는 거야. 그리고 한 방에 끝내려는 마음이 있었던 거 같아. 앞으론 복싱을 좀 보완하려고 해. 특히 크린치 상태에서 살짝 살짝 때리는 거. 심판은 그런 걸 높이 치거든. 적극적이라고 판단해서.

그렇게 보완해 나가면, 동양인도 생피에르나 B.J 펜 정도 레벨하고 대등하게 싸울 수 있어? 걔들은 사람 같지가 않아. 당연하지.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대단한 거야, 우리나라는 종합격투기가 들어온 지 6년, 7년밖에 안 됐어. 미국이나 일본은 20년 이상 됐단 말야. 엄청난 속도로 따라잡고 있는 거라고. 한국이 투기 종목에 강하잖아. 체계적인 시스템이 도입되고, 관심만 많아지면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나올 거야.

경비는 다 어떻게 해? 경기 한 달 전에 라스베이거스에 갔잖아. 거의 자비로 했지.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삼성제약에서 후원을 해줬어. 몇 백만원 들어왔더라고. 정말 다행이었지.

지난번엔 혼자 갔단 얘기 듣고 너무 놀랐어요. 그래도 한국 대표인데. 이번엔 좀 여러 명이 갔어요? 사범님하고 둘이.

울퉁불퉁한 귀 김동현은 상대에게 얼굴을 맞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두 귀는, 스스로 듣는 동시에 비명을 지른다.

울퉁불퉁한 귀 김동현은 상대에게 얼굴을 맞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두 귀는, 스스로 듣는 동시에 비명을 지른다.

설마 이코노미 타고 간 건 아니지? 이코노미 타고 갔어.

최홍만도 K-1 시합 때 이코노미 타고 다녔나? 최홍만은 덩치가 크잖아.

선배는 작아? 어쩔 수 없지. 여건이 다르니까.

아니, 뭐가 그렇게 열악해. 최홍만 같은 선수는 시작부터 스타였잖아. 상품성도 있고…. 그런데 전지 훈련 말곤 특별히 돈 쓸 일이 없어. 나머지는 다 저축해. 내가 지금은 소위 말해 잘 나가지만, 한 두 경기 지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도 있어. 그럼 부르는 데가 없어서, 또 50만원 받으면서 시합에 나가야 돼.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준비를 해야지.

4차전 때는 꼭 비즈니스 타고 가세요. 한국 유일의 UFC 선수잖아. 자존심이 있지. 난 괜찮아. 실력 좋은데 인정 못 받고 있는 애들이 불쌍하지. 아, 그리고 이번엔 재미교포 중에 한 분이 도와주셨어. 그분이 내 경기 보고 연락을 해왔더라고. 지난번엔 경기 사흘 전에 가서 몸도 안 좋은 상태에서 뛰었잖아. 이번엔 제대로 해보고 싶더라고. 그분 집에서 숙식을 했지. 차도 빌려주셨어. 그런데도 돈이 엄청 들었다.

이번에 미국 가서 프랭크 미어(현 UFC 헤비급 잠정 챔피언)랑도 훈련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것도 돈을 내는 거야? 아니, 프랭크 미어는 돈을 안 받았어. 내가 그냥 다짜고짜 찾아가서 함께 훈련하고 싶다고 말한 거야. 그 선수가 아주 시원시원하더라고. 대신 다른 돈은 많이 냈지. 우리나라는, 관장님들끼리 서로 알면 공짜로 운동하게 해주잖아. 그런데 미국은 다 돈이야. 그래서 내가 미국 애들한테 돈 없다고 했어. 그래서 안 받은 데도 있고, 체육관을 몇 군데 옮겨 다녔는데, 이름 있는 체육관에선 돈을 받더라. 유명한 코치한테 지도 받으려면 또 돈을 내야 돼. 한 시간에 무조건 10만원.

유명한 코치들이 다르긴 달라? 체계적이지. 새로운 걸 많이 배웠어. 먹는 거, 감량하는 거, 컨디션 조절하는 거, 다 배워왔어. 세계 톱 파이터들이 하는 걸 해보니까 좋더라고.

미국 갈 때마다 많이 배워와서 후배들은 좀 제대로 운동하게 해줘. 꼭 그렇게 할 거야. 난, UFC 처음 나갈 때 무조건 성공하겠다고 다짐했어. 그때만 해도, 종합격투기에서 주목 받던 선수들이 다른 운동하면서 올림픽에 나갔다 온 사람들이었어. 그래서 내가 보여주고 싶어. 순수하게 아마추어 격투기부터 시작해서도 돈 많이 벌고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그럼 후배들도 자신이 생기지 않을까? 그러니까 힘들어도 내색 안 하고, 묵묵하게 해야 돼. 내가 못하면 앞으론, UFC나 다른 단체에서, (한국은) 역시 아마추어 출신은 안 되는구나, 한국은 아직 멀었구나 이렇게 생각할 거야. 후배들도 기회가 없어지는 거지.

후배들 중엔 잘하는 선수들이 꽤 있어? 옛날에도 많았고 지금도 많아. 그런데 50만원씩 받는 걸론 생활이 안 되니까 그만두는 거지. 그러다가 큰 기회가 한 번씩 와. 정작 운동은 그만두고 돈 벌고 있는데. 그럼 잠깐 운동해서 시합에 나가. 당연히 지지. 운동에만 전념하고 있어야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야.

우리나라에서는 종합격투기가 스포츠로 인정을 못 받으니까. 운동선수라기보단 파이터라고 생각하지.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점점 좋아지고 있고. 지금 미국에선 럭비 다음으로 인기가 있어.

프라이드 열기가 백만 년 갈 줄 알았는데, 이젠 UFC 시대구나. 프라이드가 망하면서 선수들이 전부 다 UFC로 왔어. 근데 그때 온 선수들이 다 원래 UFC에 있던 선수들한테 깨졌단 말야.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UFC가 최고가 된 거지.

그래도 효도르는 못 이겼잖아. 팀 실비아하고 알롭스키(둘 다 전 UFC 헤비급 챔피언)도 졌고. 효도르는 워낙 강해. 파이터로서 상당히 안정적인 스타일이야. 일단 삼보를 잘해서 넘어지지 않지, 마음먹으면 언제든 상대를 넘어뜨릴 수 있지, 타격은 타고났지. 복싱은 사실 더 잘하는 선수들이 있거든. 근데 효도르가 헤비급이면서 그렇게 빠른 펀치를 날린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야. 사실 난 팀 실비아가 웬만큼 버틸 줄 알았어. 그런데 안 되더라고. 알롭스키한테도 기대를 했는데, 안 돼.

이제 UFC 헤비급 중에 효도르랑 붙을 만한 선수가 프랭크 미어, 블록 레스너 정도인 거 같은데, 이 선수들은 잘 할까? 블록 레스너는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 몸이 워낙 좋거든. 근데, 그래도, 몰라, UFC 파이터들이 다 덤벼도 못 이길 수도 있어.

선배가 파리시안하고 붙은 날 메인은 조르주 생피에르랑 B.J 펜이 붙은 경기였잖아. 워낙 둘 다 강해서 대등하게 전개될 줄 알았는데 너무 싱겁게 끝났어. 생피에르가 점점 세지는 것 같아. 타격하는 척하면서 넘어트린 다음, 못 일어나게 해놓고 때리면서 점수 따먹는 걸 진짜 잘해. 전략을 잘 짜면, 난 해 볼만 할 것 같은데.

파리시안도 생피에르랑 싸워서 졌었지? 응. 생피에르가 넘어뜨리고 때려서 이겼지. 그런데 그 경기에서 생피에르도 파리시안의 백은 못 잡았어.

챔피언인 생피에르도 못 잡은 파리시안의 백을 선배가 잡았으니까, 선배도 생피에르랑 해볼 만하다는 거야? 그게 말처럼 쉽냐? 안 넘어지면 되거든. 그럼 걔도 당황할걸.

수준급 파이터들이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로 선배를 꼽는다면, 어떤 점 때문일까? 내가 웰터급치곤 많이 말랐어. 상체만 봤을 땐 별로 힘이 없을 것 같은 체형이야. 근데 키가 크고 다리 힘이 진짜 좋거든. 상당히 특이한 스타일이지. 잘 안 넘어지니까.

잠깐. 생피에르가 키가 180cm가 넘던가? 아니. 178cm. 난 185cm. 그럼 김동현은 잘 안 넘어지고 특이한 스타일이니까 챔피언이 되겠네? 일단은 톱 파이터가 되는 게 목표야. 정말 붙기 싫은, 아주 까다로운 상대.

얼마 전에 데니스 강 경기하는거 봤어요? UFC 진출한 다음엔 위력이 예전만 못한 것 같아. 아냐. 데니스 강은 잘해. 실력은 세계 톱이야. 타격, 그라운드 기술 다. 근데 한 두 번 지다보니 부담이 생겨서 그래. 하지만 실력이 있으면 인정을 받게 돼 있어. 반드시.

근데 정말 신기하다. 선배, 사실은 누굴 때리거나 화내는 성격이 아니잖아. TV로 보는 사람들은 그런 거 모를 거야. 훈련하면서 많이 맞아서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거든.

여자친구는 선배 시합 봐? 잘 못 봐. 우리 엄마도 못 보고. 엄마는, 경기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동현이 많이 안 맞았다고 하면, 그때 봐. 이번 시합은 아직 못 봤대. 살 떨려서.

정말 내가 한 대 때리고 싶다. 왜 운동을 해도 종합격투기냐. 그게 이 운동의 매력이지. 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거에 더 끌려. 그래서 해병대에 간 거고.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운동이 있는 줄도 몰랐어. 나 혼자 일본 격투기 비디오 빌려서 본 거야.

원래부터 ‘돌아이’기질이 있었어? 남들은 나보고 4차원이래. 만날 혼자 비디오 보면서 기술 연습한다고. 해병대 갈 때도 아무 생각 없이 간 게 아니라니까. 해병대 홍보 비디오 보면서 연구를 했어. 철저하게.

비디오 보고 배운 테크닉을 여자친구한테 쓰는 거 아냐? …어. 어….

여자친구가 아주 좋아 죽겠어. 아니야. 근데 이 얘긴 안 실리지? 도움이 많이 되긴 해.

비디오가? 우린 다 실어. 아니, 운동한 게. 체력이 좋으니까.

근데, 계체 끝나고 사진 찍은 거 보니까, 뒤에 있는 여자 모델들 정말 예쁘더라. 그 모델들이 웬만한 선수들보다 인기가 많아. 돈도 나보다 많이 받고.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는데 UFC 옥타곤은 매 라운드 중간에 아무도 못 올라오잖아. 그래서 그 밖에서 돌더라고.

지상파 방송에서, 중계는 안 해주더라도 결과는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닐까? 애들이 보면 안 되니까. 우리나라는…. 많이 좋아졌어.

근데, 선배, 아무도 안 간 길을 간다는 거, 그건 뭘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 난 내 길을 간 걸까? 혹시 무서워서 못 간 길이 있지 않을까? 그게 잘 한 걸까? 그걸 안 하고선 도저히 못살겠단 마음이 들었다면, 했을 거야, 아마. 누구나.

좋아서 했지만, 두렵고 외로울 때도 많지? 응. 그럴 때마다 더 미친 듯이 운동해.

하하. 김동현도 겁쟁이구나.

    에디터
    이우성
    포토그래퍼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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