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에서 보낸 오후

창경궁 대온실은 서울에서 봄이 가장 빨리 오는 곳이다

창경궁 대온실은 서울에서 봄이 가장 빨리 오는 곳이다

창경궁 대온실에 동백이 흐드러졌다는 벗의 문자메시지로부터 겨울이 끝난다. 1909년에 지어진 이 아름다운 온실엔 1백여 종의 식물들이 허세나 위용도 없이 다만 헹군 듯한 얼굴로 놓여 있다. 갯국, 구름솔, 고사리, 박쥐란, 철쭉, 동백, 현호색, 까마귀쪽나무, 치차, 원추리, 명자나무, 상사화, 꽃기린초…. 무엇보다 이 대온실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담백함이다. 꾸미고 또 꾸며서 어필하려 들지 않고 그저 계절의 햇빛을 집약적으로 담은 채 주저앉아 있는 화분들은 저희들끼리 모여 수군거리는 아주 개인적인 뉘앙스마저 풍긴다. 우연히 그곳에 들렀으되, 돌 틈을 움켜쥐고 자라는 고사리줄기를 쳐다보고 있으면 오후가 다 가고 나서야 온실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온실 밖 연못 춘당지엔 원앙 삼십여 마리가 잔물결을 일으키며 푸드덕거리고 있을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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