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그 삼천 일 동안 행복했었나요

E.L.인생은 지나간 시간들로 나누어진다. 사람들은 시간을 인지하는자기만의 방식을 찾는다. 나도 그렇다. 봄은 매년 하나씩 사라진다.영원히 계속될지 언젠가 끝날진 모르지만, 시간은 어쨌든 지구에 배급된 작은 조각이라서이다. 를 창간한 지 8년이 지났으니, 내 인생에 8년이 줄어든 셈이다(결국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시간이 흐르면 다들 쉽게 안전해진다고들 믿지만, 8년은 손가락 몇 개로 헤아릴 수 있는 제한된 성숙기라서, 정체停滯를 받아들일 만큼 강인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꽤 괜찮은 이닝을 끝낸 것도 같다.

아니, 운전 기사가 제대로 된 염세주의자인 소형 택시에서 보낸듯 사지 뒤틀리는 시간이었다. 불안과 죄책감, 희망과 축하할 이유를고백하는 속삭임 위에 흘러간 시간이기도 했다. 그동안의 인간적인계산기로도, 지금까지 단 한 권의 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유익한 생각의 교환, 확신이 준 충동, 농담 같은 평화, 남보다 낫다고 말하고 싶은 잔인할 만큼의 우월성 속에서 소량의 만족을 찾았다. 감동적이도록 우스운 허세, 기쁘지 않은 놀라움, 일반적이고도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갈등과 취소, 예민한 판단이 준 착각 속에서 의기소침해졌다. 지루하진 않았다. 시간은 움켜쥘 수 없고, 속도를 가늠하는 순간 더 빨리 가니까. 결국 세상에 잠시 멈추게 할 수 있는 시간 따위는없다는 걸 배웠다. 당신도, 잡지 만들기 위한 헐떡이는 절차가 지나면다시 뒤를 향해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시간의 역순환을 알 것이다.

잡지를 발간하는 과정엔 그것을 크게 부풀리거나 내쫓는 정신적상태가 있다. 를 지큐이게 하는 개별적 특성의 집합 속에서 걸러낸 진실들은 어떤 식으로든 같은 맥락의 얘기다. 모든 예술 작품들이 그렇듯이 잡지도 비밀한 악수와 같다. 잡지를 읽는 동안 비밀번호를 찾는 게임이 시작된다. 의 은밀한 공식은 콜라냐 식혜냐를결정하는 데도 소용되었다. 방향을 가리키는 기질도 그랬다. 예를들 어“바로 저기 있어요”라는 표현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제스처가 없다면“좌회전 두 번 한 다음 우회전 하세요”란 말의 운율만큼 시적이지도 않고, 리듬도 쓸모도 없다. 그때, 는 전통적인 방법“( 목포집 바로 맞은편에 있어요”)뿐만 아니라 재치 있는 듯 엉뚱한 방법“( 돌아갈 돈도 없을 텐데, 너무 멀리 왔네요”)도 좋아라 하는 것이다.

…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새로운 척하는 어떤 음악은 자동차 경적 소리로 시작하기도 한다. 어쩜, 현대의 새로운 남자에 대한더 계산되고 더 냉소적인 대답은 자기가 지각 못 하는 사이, 주변에 따라 의식을 교체하는 영혼 조절 장치가 내장된 포스트 – 페미니즘적인남자일 것이다. 좋은 커피가 없는 세상을 살았던 어설펐던 조상들조차 평생을 부러워했을, 자본가들의 사회 속 가장 젊은 요즘 수컷들은,문을 여는 것과는 아무 상관 없어진(그보단 오르가슴과 엮인) 레이디퍼스트 철학 같은 건 잘 모를 것이다. 그럼 혹시 남자가 될 수 있는 최고점은, 남자가 될 수 있는 최악의 상태를 뜻하지 않을까. 그렇다면동네 야구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정직한 얼굴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게 아닐까(이것이 8년을 탐구한 남자의 궁극이란 말인가).

창간의 자장으로부터 이렇게 멀어진 지금까지도, 내 자신, 가끔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의아해한다. 늘 경계하면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외쳐도, 한 번 폭우가 쏟아지면 옆집 사는 강아지조차 못 구하면서…. 경험한 자는 계속 살아가고, 경험하지 못한 자는 그것을 쓴다.말을 하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건 그래서 두렵다. 하지만, 프로작을 백병 먹는 대신 감사도 크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꿈에서 깨어, 그가옆에서 잠든 것을 확인했을 때 갖는 안도감 같은…. 한 남자는 스스로를 지지하며 이렇게 말한다. 8년을 전력투구했다. 그리고 이만큼 왔다. 그러니, 다가올 시간들은 오직 당신과 나만을 위한 자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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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