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노상에서 담배나 피우며

E.L.최승자 ‘시가 죽었다’는 식의 기사들이, 세탁기에서 양말을 잃어버리는 횟수만큼 정기적으로 실릴 때마다, 시가 가진 근원적 가치가 역설적으로 여전히 중요하단 걸 알게 된다. 공적 교육이 원하는‘수요’에시가 제외되면서, ‘시의 즐거움’은‘시의 연구’로 변형되고, 시가 마음을 만지는 과정에 어떤‘지식’까지 포함되자, 일상에서 시의 위치는 – 특히 남자들에겐 – 너무 어렵거나, 돈과 무관하거나, 단순히 지겨운 무엇이 되었지만. 가끔 라디오의 축축하고 촉촉한 감상성이 시를 확장시키고, 문학 퍼포먼스에서 시를 부축하려 하지만, 변색된 시의 문제는 전달이 아니라 욕구라는 걸 모른다.

시는 삶에 귀속돼 있으므로, 삶에서 겪는 전체 경험을 반영해야한다. 시가 존재하는 사회만큼 다양해야 하고, 시가 묘사하는 관계만큼 곡절 있어야 한다. 삶의 모습 그대로 즐거워해야 하고, 비판해야 하고, 환영해야 하고, 거절해야 한다. 나는 최승자의 시를 애송한 적은 없지만, 최승자를‘알아야 했던’시절을 살았다. 그리고 진짜 시란,미학, 사회적 논평, 문맥, 구두점, 지혜, 전례, 통찰, 플롯, 구성으로 혼합된 참된 예술적 용기의 결과라는 걸 배웠다. 현란함에 버무려진 거만함, 궁시렁거리는 비유들, 비제한적 상징, 의문스러운 관용구들로 버무려진 요즘 시의 표준적 기조는 너무 메스껍고 뚱뚱해졌으나….이달엔 최승자를 인터뷰했다. 좀 더 다가가면 뒤로 물러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오래 ‘은둔’해온 단호한 경계성을 걱정하면서도….햇빛이 눈이 부신, 느린 거북이 같은 최승자는 껍질을 등에 진 채 “안녕이라는 인사” 혹은 “날씨에 대한 찬사” 같은 일상의 일을 이야기하며 기어나오는 중이다. 조용하게 배신당한 날, 모처럼 맑은 정신인 날, 혼란이 안전한 빛보다 힘센 날, 얼어붙은 맘으로 느린 시간을 세는날, 최승자를 읽는다. 그리고 시가, 짧은 단어로 구성된 하나의 조각이라거나 시대에 뒤처져 전락하고 만 기묘한 형태가 아니라, 인생에 가장 직접적으로 매달린 언어 형식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배운다.

담배 평생 해온 일도 그만둘 때가 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으니. 대신 전혀 몰랐던 일을 순식간에 배우기도 한다. 담배 피는 법 하나 배우지 못하고, 필터 물 때의 그윽한 향연도 모르고, 재로 덮인 재떨이를 씻어본 적도 없지만, 한 모금의 연기가 공중을 채우듯 삽시간에 담배가 늘었다. 전엔 일주일에 한 개비였는데. 담배로 죽은 사람들의 손이 무덤 밖으로 나와 내 이마의 재떨이에 담뱃재를 턴 게 분명해….그동안은, 금연 빌딩이나 비행기 안에서 금단 현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살피며 남의 불행이 곧 내 기쁨이라는 극도의 전율을 느꼈다. 치흔만 남은 꽁초들을 일렬로 세우던 무르익은 중독자들을비난하며, 회색 연기 속에 비치는 그 드러운 이빨 어떡할 거냐고 질색했다. 나이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그렇게 고소해하는 게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런 태도를 오만이라고, 신이 되고자 갈망하는 인간의 거드름이라고 했을 거야…).나이 든 남자들의 소유물들 – 일부일처제, 갱년기 증후군, 십대가된 아이들 -, 어렸을 땐 그렇게 지옥 같던 것들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깨닫는 순간이 온다. 담배가 해롭단 이미지는, 매달려야 할가치라곤 젊음 하나뿐인 사회에 속한 사람에게만 해당되기도 하고…. 그래서, 황달기가 보이기엔 시간이 좀 남은 손가락으로 흰 몸체를 그러쥐고, 울렁이는 가슴 쪽으로 끌어올린다. 그 동안 그렇게 착하게 살았으니 이런 나쁜 짓 좀 해도 돼, 라고 변명하면서. 내 몸을 불건강에 팔아 넘겼단 격렬한 죄의식이나, 담배가 주는 엄숙함, 진지한 사색 같은 건 모른다. 니코틴이 혈류에 섞여 몇 시간이고 계속, 계속, 계속 돌아다녀도, 이른 아침, 지난 밤의 무기력을 씻는 에스프레소의 위력에 못 미치지만… 슬픈 일이 너무 많아서… 담배 연기가 폐 뒤로 넘어가 다시는 밖으로 나올 것 같지 않다. 아픈 후배가 꼭 살아나서, 국장님은 수퍼맨이에요, 하는 소리를 기어코 다시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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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