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정신 전인권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전인권은 자주 눈을 감았다. 하지만 삼청동 어느 식당 마당에서 노래 세 곡을 이어 불렀을 땐, 소름이 돋았다.



길목 언덕배기엔 바람이 심했다. 떨어진 벚꽃이 눈앞에서 솟구쳐 올랐다. 전인권 자택으로 가는 골목엔 작은 약수터가 있다. 4월 14일 오전 아홉 시, 약수터 돌덩이에 앉아서 전인권을 기다렸다.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구두 소리는 아니었다. 첫 약속은 13일 오후 다섯 시였다. 탁 트인 장소를 골랐다. 삼청각 다소니에선 두 시간을 기다렸다. 매니저가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전인권을 온전히 만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었다. 그래서 자택으로 갔다. 언덕 꼭대기, 하얀 대문엔 ‘전인권’이라고 영어로 쓰여 있었다. 대문은 줄넘기로 칭칭 동여맸고, 앰프에 꽂는 케이블이 아무렇게나 걸려 있었다. 전인권은 집에 없었다. 전화도 안 받았다. 다섯 번이나 언덕을 오르내린 매니저는 다리가 풀렸고, 에디터는 돌아 나왔다. 그때, 전인권이 집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약속 시간은 세 시간이 지나있었고, 전인권은 힘들어했다. 인근 식당에 자릴 잡았다.

괜찮으세요? 졸려보여요. 말씀할 수 있으세요? 그럼.

오늘 인터뷰 약속 하셨어요. 잊으셨어요? 어디지?

<GQ>요.; 아이고. 깜빡 잊었어요. 미안해. 지금하지.

식사는요? 어…. 여긴 냉면이 맛있어. 난 물냉면.

식당으로 걸어가는 길에도, 전인권은 때때로 눈을 감고 있었다. 촬영은 순식간이었는데, 벽에 기대지 않고도, 전인권은 졸고 있었다. “거울을 봐야겠다”며 식당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오기도 했다. ‘물냉면’은 차라리 본능 같았다. 전인권은 잠들었다.

저기요? 여보세요? 아… 너무 졸려서 그래. 아악!

그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다 말았다. 옆 테이블엔 회식이 한창이었다.

지금 너무 졸리면 이따 밤 12시쯤 뵐까요? 응? 그러지 뭐. 지금은, 내가 좀 자야 해.

전화기는요? 놓고 왔어요. 밥도 이따 먹자. 내가 지금 무지 졸려요. 이따 어디서 만나지?

우리 꼭 만나는 거예요. 약속. 그럼 두 분 식사 하시고, 난 좀 자야겠어요. 미치겠어, 졸려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도장도 찍었다. 저렇게 걷다 쓰러지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밑에서 자택으로 걸어 올라가는 그를 봤다. 냉면은 달았다. 삼청동 초입까지 매니저 이현숙씨와 동행했다. 차 안에선, 아까 들었던 <들국화 베스트>가 알아서 돌아갔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매니저는 말했다. “이랬던 남자가 지금은 저렇게… 그래서 옛날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나려고 해요.” 밤 열두 시에도 전인권을 만나진 못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4일 오전 10시. 전인권은 운동화를 신고 내려왔다. “어젠 미안해…” 어제와 같은 옷이었다. 그러곤 어제 그 식당으로 갔다. 그는 말했다. “난 냉면 먹을 거야, 물냉면.”

<GQ>에서 촬영한 적 있어요. 꽃 들고. 꽃을? 내가? 언제지? 자네 지금 나이가 어떻게 돼?

어제는 약주 하셨어요? 으음…. 왜? 내가 졸린 것 같아?

네. 응. 졸려.

대화는 자주 끊겼다. 거대한 남자의 상체가, 눈은 감은 채 흔들거렸다. “잠깐만, 잠깐만.” 하곤 화장실을 여섯 번이나 갔다 왔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감옥) 안에서 열심히 곡을 만들었다. 노트 하나 갖고 손으로 무릎을 치면서 리듬 만들고, 멜로디를 머릿속으로 그려 30~40곡을 만들었다.” 그는 왼손에 든 젓가락엔 냉면자락을 걸어놓고, 오른손에 든 가위로 잘라 먹었다. 몇 번 씹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곧 노래를 흥얼거렸다. 무릎을 두드리기도 했었다. 몸은 여기 있었지만 정신은 음악 속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무례, 비상식 같은 단어가 그를 위한 게 아니라, 다만, 보호가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당신이 몸을 흔들고 있으니까 저도 흔들게 되잖아요. 그럼 어떡하라고 나 보고. 난 원래. 쿵쿵따….

한국, 예술가들이 살기엔 참 힘든 나라죠? 그렇지, 그렇지…. 참 살기 힘든 나라지.

힘드세요? 나? 힘들지, 아주… 거지 같은 나라지. 우리 음악 하는 사람들한테는.

어떤 점이요? 왜 나를 자꾸 잡아가, 검찰들이. 신문 내려고 잡아가는 거잖아. 영국은, 에릭 클랩튼은 국가가 싹 다 고쳐줬다고. 국가가 예술가를 도와주지. 음악은 서비스업이고, 사람을 기분 좋게, 신나게 해주는 직업이잖아.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잖아.

4월 16일 날 공연하시잖아요. 황보령 씨 쇼케이스 게스트로. 누구지? 목요일인가, 그게?

무슨 노래하세요? 언제? 내일 모렌가? ‘사랑한 후에’하고 신곡 하나 부르면 좋은데. 기타를 한 번 쳐봐야 해. 신곡이 한 40곡 정도 있어.

진짜 한국적인 록을 만들겠다고 하신 걸 읽었어요. (물냉면 후루룩) 뭐? 뭐라고 물어봤어?

한국적인 록이요. 그럼, 그래야지. 우리나라 음악이 일본보다 50년 뒤졌어요. 그래도 우리는 우리 걸 파야지. 왜 일본 거를 답습하고 그러냔 말이야.

우리 게 뭐예요? 우리 거? 우리 걸 몰라? 한복은 우리 거잖아. 그리고 한식 그거. 갈비탕 먹고 있는 거. 우리거 잖아. 근데 자네 조금 건방지다. 하하하하. 먹어. 정치인 중에선 누구 좋아해? 옛날에 이십대가 제일 많이 하던 얘기가 정치랑 군대 얘기였어. 정치 가지고 싸우고, 요즘은 그런 게 없지? 선거 때 되면 누가 좋다. 그런 거 얘기해?

하죠. 기본적으로 정치에 관심들을 갖고 있는 이십대가 많으니까. 그렇지. 정부, 정치, 금융은 알아야지. 우리나라 자원이 어떻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활용하고. 그걸 알 필요가 있지. 가수도, 나 같은 경우는 사랑노래 안하고 ‘사노라면’ 그런 노래 하잖아. 그건 우리나라 살림, 정치하고도 통하지. 요즘은 그런 데 관심 없지? 잠깐만…. 나 담배 하나 줘요. 다리가 아파가지고 여기 앉아있기가.

전인권은 밖으로 나갔다. 30분 정도, 좌식 테이블에 앉아 책상다리를 하고 있었다. 그게 힘들었는지, 방이 답답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전인권은 식당 마당에 서 있었다. 다리를 주무르거나, 기지개를 켜진 않았다. 손가락만 움직였다. 왼손은 코드를, 오른손은 스트로크를 했다. 다시 돌아왔을 때, 냉면엔 국물만 남아있었다. 그걸 다 마시고, 밖으로 나갔다. 벤치에 앉았다. 밖에서 나누는 대화라고 다를 건 없었지만….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티스트는, 자신만의 쾌감을 끝없이 캐내는 게 아티스트야. 무슨 말인지 알어?”

당신의 쾌감은 어떤 거예요? 음악을 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거지. 솔직한 얘기야 이게. 평생 자신의 쾌감을 쫓는 게 음악이지.

요즘도 그런 걸 느낀 적 있으세요? 그럼, 아티스트는 평생이지. 내 노래들 좋아 요즘에.

제목이 뭐예요? ….

네? 응, 듣고 있어. 듣고 있어.

최근에 만든 40곡엔 어떤 얘기가 담겨 있나요? 뭐? 자자, 이제 해보자. 큰 목소리로 해보자!

어떻게 살아오셨다고 생각하세요? 나? 현숙 씨, 나 말보로 하나만 사다주세요. 제일 센 걸로 사다주세요.

어떻게 살아오셨냐고요? 열심히 살았지….

구체적으로요. 들국화를 했지. 록 음악을 계속 팠지. 우리나라에 ‘아파트’란 노래가 최고 인기 좋았지, 몇 년 전에? 그게 록이잖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록을 좋아한단 말이야. 근데 누구 하나 하질 못해. 아무도 못해.

밖으로 나오기 전엔, 서울올림픽 얘길 했었다. 그는 “88년 서울 올림픽 전엔 세계에서 한국을 아는 나라가 없었다. 4위인가 8위인가를 했었나. 일본하고 같이 하긴 했지만…이라고 했다. 2002년 월드컵과 헷갈린 걸까? ‘아파트’를 ‘몇 년 전’이라고 말하는 걸로 봐선, 뭔가 혼동하고 있었다. 확실한 건 음악밖에 없었다. ‘지금 음악인들이 록을 못하는 이유’를 물었을 땐, 대답 대신 노래를 불렀다. “‘나아를 찾아서어 오직 나, 그대만을 찾아서어/광장에 사는 곳곳마다 너의 기억이~’ 새로 만든 곡이야. ” 입을 다물었을 때, 노래도 끝났다. 처음 듣는 멜로디, 무릎으로 치는 박자, 여전히 눈은 감은 채 몇 소절을 부르곤 영화 얘길 시작했다.

영화를 만드세요? 아, <자유의 길>이라고. 한 아티스트가… “나는 저기 저 나무에 이파리만큼 무수히 많은 멜로디를 만들었거든. 내 머릿 속에 꽉 찬 이 멜로디들이 모두 거짓이겠어, 아니면 모두 죄이겠어.” 그 안에 들어가는 대사야. 그러니까 나는 저기 저 나무의 이파리만큼 무수히 많은 멜로디를 만들었거든. 영화에서도 나는 마약 사범으로 잡혀. 그리고 친구가 면회를 와. 그때 하는 얘기야. 그러니까 나는 지금….

그게 죄일까? 노래를 만든 게?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약을 먹고 멜로디를 만들었단 말이야. 내가 약을 먹든 뭘 하든 내 몸에 들어가는 건 내가 소화시키는 거야.

당신 노래를 직접 들으니까…. 좋지? 좋은 노래는 아주 좋게 들려. 다 좋아. 아, 나 한숨 한번 쉬어야겠다. 내가 말 안 하고 있을 때는 그냥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거야. 앞으로 5년을 내 전성기로 만들어버리려고. 우리 애들을 위해서. …나, 집에 올라가서 뭐 준비 좀 해야 돼.

네? 얼마나요? 한 오 분. 금방 갔다 올게.

이러곤 집으로 뛰어갔다. 매니저 이현숙 씨에게 물었다. 그냥, “보통 때의 전인권은 어떤 사람이냐”고. 이현숙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생각하는 게 다 음악이죠. 2006년엔 제가 전인권 씨 댁에 자주 갔어요. 기타에 관심을 갖고 연습에 몰두하던 때였어요. 연습만 했어요. 똑같은 자리에서. 색연필 사다달라고 해서 나름의 주법을 그려서 연구하고 벽에 붙여놓고 그랬거든요. 밤에 오나, 낮에 오나 똑같아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질 않아요. 어느 날은 제가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서 마당에서 몰래 들여다봤어요. 똑같아요. 어젯밤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기타치고 있어요. 잠자고 화장실 가는 거 빼고는 다 음악. 음악으로 시작해서 잠들기까지. 그게 다인 사람이에요.” 갑자기 집으로 뛰어 올라간 건 왜였을까? 전인권은 8분 후에 다시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대신, 또 노래를 불렀다. 오전 열 시에 만나서, 정오까지 약속된 인터뷰였다.

뭐하고 오셨어요? 집에 가서? 뭔가 했어.

당신은 어디서 가장 큰 쾌감을 느껴요? 가고 싶은 곳이 있으세요? “우리는 맘 한켠에/왠지 모를 설레임을/두두담담다다 사람답게/살고 싶은 힘이겠지/힘이겠지이.” 신곡이야. “다라담담다 다라담담다랄라하아/다라랄라 사람답게 살고 싶은/힘이겠지 힘이겠지이/오래 전부터 지금껏/변하지 않는 내 가슴엔/그 무언가 그 무언가/왜 날 라랄랄라라/그대여 우리 변치 않는 사랑 영원하게/ 그대여 우리 변치 않는 사랑 영원하게~” 어때, 노래?

노래 하시니까, 사람다워요. 당신 같은 기자 아주, 처음 봤다.

이제 그가 아무 말 않고 있을 땐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보기만 했다. 그러다, 또 노래를 부를 것 같아서, 사람이 내는 그런 소릴 들은 건 처음이어서. 이현숙 매니저는 말했다. “전인권 씨가 마당에서 노래 부르면 멀리 보이는 부대 운동장에서 군인들이 손을 흔들어요.” 광화문 이순신 동상부터 서울플라자호텔 정도의 거리였다. 그 정도는 울릴 법한 목소리였다. 삼청공원에서 노래하던 열아홉 전인권은 ‘삼청동의 전설’이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계속 음악 생각하시는 거예요? 어, 그렇지. 그렇지. 조금 전에 들은 노래 솔직히 어때?

그러곤 한 곡을 더 불렀다. 완성된 곡 같진 않았다. 지금까진 없던 노래일 수도 있었다. 이젠 질문만 하면 노래를 불렀다. “다르다아~ 내가 험한 길을 갈 때/그대는 무얼 하고 있을까/내가 팻말을 만들어/화살표로 화살표로…. 음… 방향을 개시하여도오~”

신곡이에요? “나는 모올라아/그대를 사랑하는 게/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나는 몰라아…” 그런 게 있어.

뭐가 제일 힘드세요? 자기 노래 만들고. 자기 노래 찾아가는 거. 그게 제일 힘들지.

음악이 전인권을 힘들게 해요? 음악이 나를? 아니지. 음악이 왜 날 힘들게 하겠어.

감옥 안에서는 답답해서 어떻게 참으셨어요? 답답한 정도가 아니고, 거긴 괴상한 데야.

그 안에선 어딜 제일 가고 싶으셨어요? 그 안에선 고기가 먹고 싶었지. 돼지고기. 기름 있는 거 목살. 털 이렇게 탁탁 나 있는 거 있잖아. 그거 먹고 싶고…. 거기 얘기 더 할 거 없어.

지겨우셨죠? 살면서? 지겨울 새가 어디 있니. 오히려 지겨운 게 부러울 때가 있지. 무지 힘들 때는 많았지. 노래 만들고 하는 게. 그걸 끝없이 한다는 건 슬픈 일이지. 인간은 어쨌든 혼자잖아.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을 찾아서 끝없이 간단 말이야. 슬픈 얘기지.

마지막 무대는 3년 전이었죠. 이젠 무대에 서셔야죠. 무대에 서면, ‘아, 내가 싱어구나.’ 노래하는 사람, 가수란 걸 알게 되지. 공연 전까지는 그냥 멍청…하고 그래. 그러다 무대 올라가서 박수 받으면서‘. 아, 내가 가수로구나’알게 되지. 자, 이제 내려가면서 얘기하자.

전인권이, 삼청동길에 나섰다. 정오였다. 눈나무집, 삼청수제비 앞엔 배고픈 사람들이 길게 서있었다. 식당 문을 쳐다보던 눈들이 전인권을 향하기 시작했다. 전인권은 빠르게 걸었다.

젊은 남자들한텐 무슨 얘길 하고 싶어요? 씩씩하게! 일자리 잡고. 영혼! 영혼을 좀 깨우쳐서. 그러니까 가난해도 재밌게 사는 방법이 있잖아. 당신 라면이 더 맛있어 불고기가 더 맛있어?

불고기요. 아니지, 어릴 땐 라면이 더 맛있잖아. 그렇게 행복하게 돈도 벌고. 재밌게.

욕심도 없으세요? 욕심이 왜 없어? 앞으로 잘 해야지. 그런 게 욕심이지. 돈도 벌어야지. 어젠 미안했어, 어제 내가 좀 짜증을 냈었나? 내가 짜증을 좀 잘 내. 어젠 미안했어~.

지금, 어디 가세요? 집에 가야지. 집에 가서, 음악 해야지“. 롸아악 스타아알!” 이런 식으로. 이런 소린 아무나 나오는 게 아니야.

전인권이, 거리에서 소릴 질렀다. 한국에, 이런 소릴 낼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집에 가신다고요? 반대 방향이에요. 집에 가거나, 산책을 하거나. 그러는 거지.

산책하면서 계속 노래 만드시는 거죠? 맞어.

여기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평화롭게 사는 게 가장 좋지.

평화로우세요? 평화로워. 앞으로 5년은, 완전히 우리나라적인, 그런 록을 할 거야. 아까 그 노래 어때, 좋지? 나 원래 인터뷰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 너무 많이 했어, 지금까지. 무지 했잖아. 잘 써줘~

전인권이 웃었다. 어젯밤 아홉 시부터 지금까지, 표정은 두 가지뿐이었다. 눈을 감고 있거나, 눈만 뜨고 있거나, 웃고 있었다.

정신은, 언제가 제일 맑아요? 제일 맑을 때? 내가 제일 맑을 때? 아침이지 아침. 밤새 연습 하고. “롸아악 스타아아알!” 이런 소리가 나오잖아? 그럼 정신도 맑아지지.

요즘엔 절제하고 사는 거죠? 무지 참고. 절제하려고 노력하지.

절제하는 기분도 괜찮죠? 그럼, 그럼. 절제의 기분이 아주 좋은 거지. 그거야, 노래할 때도 ‘오바’하지 않고….

오늘 계획은 뭐예요? 오늘의 계획은, 그냥 걷는 거야. 빨리 곡을 만들어야지.

13일 저녁에 만난 전인권과, 14일 아침에 만난 전인권은 다르지 않았다. 졸립지 않아도 눈을 감았고, 비틀거리지 않는 대신 오래 생각했다. 그러곤 노래를 불렀다. 종종 소리도 질렀다.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전인권은 홍대 브이홀에서 공연한다. 인터뷰 중에 불렀던 세 곡의 노래는 그때 다시 들을 수 있을까? 네 번의 구속, 한 번의 실형.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 전인권은 음악에 미쳐서 살아 있었다. 삼청동길엔 옷이 얇아서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전인권의 정신은 노래할 때 가장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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