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우주의 어린이

E.L.

너무 말랐잖아

패션쇼장에서, 모델들이 입은 옷들의 재단과 선, 의도, 옷감, 사조를 보려고 용을 쓰면서도 도대체 잘 안 되는 건, 걔네들이 어지간히도 말랐기 때문이다. 키 크고, 엉덩이 날씬하고, 쪼갠 듯한 단발머리 모델들은 하나같이 단식원에서 온 운동선수 같다. 진짜진 짜 반갑지 않은 친척 같다. 대체 키 184에 64킬로그램이 쫙 빠진 몸이 라는 거야? 골다공증의 인체 표본 아냐? 혹시 소말리아의 키다리 아 저씨셔? 아님 갈비뼈를 살짝 담근 보관용 진공포장인 거야? 옷에 나쁜 결정 같은 것은 없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입 은 걸 좋아하고 또 즐긴다면, 그게 다라고. 그렇다고 내가 대퇴부를 조이는 스키니 진을 입는 게 옳은가. 그건 옷을 껴입는 위대한 즐거움 이 아니라 킹 사이즈 침대에 싱글 커버를 씌우는 거지. 결국 난 모호 하게 확신을 주거나 순전히 추상인 패션 이미지에 응답할 수 없군. 봄 에야 대충 걸친다 쳐. 중력과 친한 셀룰라이트 형제 같은 이 몸으로 6 월과 9월 사이엔 어떻게 입지? 7월과 8월의 밍밍함은 어떻게 하지? 패션 산업에서 말라깽이들이 표준이란 인식이 누구 책임인가에 대해선 다들 구라가 분분하다. 그러니까 저체중 모델을 찜한 디자이 너들? 체중과 건강과의 상관관계를 싸그리 무시한 모델 에이전시들? 허약한 제 자식에게 보약 한 첩 안 먹인 부모들? 광고를‘실어준다는’ 이유로 마른 애들에게 제 옷을 입히는 브랜드들? 광고주들 기분 안 잡 치려는 패션 잡지들? 그 광고 비주얼이 실린 잡지를 구태여 사는 사람 들? 그러나 뻔뻔한 면역성은 패션 산업의 불건강한 이미지 너머에서 백두장사처럼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때로 마른 몸이 주는 부정적 영향력은 판타지를 미행하는 예술로 해석된다. 캣워크에서 고작 몇 분을 위해 준비된 장관壯觀은 일상에 서 제거된 심미적 거품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어쩜 마른 몸이 환상을 함축한 사회적 관점을 넓게 전개시킬 때, 그게 예술이 될진 모르겠다. 삶은 종종 예술을 모방하니까. 하지만, 지방섬유가 감싼 내 몸으론 예술을 모방할 수조차 없다. 그게 참, 인생의 더러운 신비이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시간이라는 얕은 물속에서 멍청하게 뛰어다니다 가, 가끔 생각한다. 어땠을까. 어머니가 내 곁에서 이렇게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내 삶이 어떻게 변했을까. 이런 식으로, 손끝에 미성숙한 적 개심만 묻히며 살게 된다면? 결국 독립된 인간이 되자고 그렇게 애썼 지만, 생명을 준 부모와, 절대 알지 못 하는 선조에 대한 책무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때서야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걸. 하지만, 대체 무엇이 원숙한 나이에 이르렀는지의 여부를 말해주 는진 잘 모르겠다. 어떤 어린애가 그걸 위한 티켓을 살까. 성인기란 합리적으로 축적된 이해력을 가진 시기일까. 모두 들어서길 두려워 하는 감정적인 터널 아닌가. 아무리 나이를 먹은들 알 필요도 없는 사람과 사물로 가득한 안개 속을 청소해 가는 이런 기분은 뭘까. 그럼 통찰력이 어른의 조건일까. 삶의 문제는 아닌 척해도 실은 다 자기가 초래한 일이다. 별 해괴한 순간 앞에서 본래 성격의 뚜렷한 윤곽이 드러나는 건, 그 상황에선 외형을 꾸며 짐짓 가장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순전히 자기 자신이 되는 성숙을 배우지만, 통찰 력은, 실은 힘든 일 이후가 아니라 놀랍게도 편안한 시기에 조금씩 획 득되는 것이다. 그걸 이해할 수 없다면 평생 구강기에 머무를 것이다. 종국엔 사랑이 어른의 조건일까. 그런데, 다들 사랑이라고 이해 하는 건 그냥 긴급하고 맛있는 살의 끌림일 뿐 아닌가. 자고 있는 봉 두난발에 사랑을 속삭이면 그게 사랑인가. 사랑의 가장자리에서 다른 선택이 없을 때 남는 건, 미묘한 낭만이 아니라 오직 지저분하고 단 순하고 근본적이고 실질적이며 동물적이라는 자각은 괜한 냉소일까. 태어나 처음 했던 말과 첫 번째 발걸음, 코를 풀 수 있었던 첫 해 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두운 부엌에서 엄마의 어깨에 기대 잠들었던 순간도 까맣게 지워졌다. 나는 그 시간들로부터 빠져나왔다. 망각은, 다시는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없는 채, 지금까지도 우주의 어린이로 배회하는 내 자신의 결함이자 숙명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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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