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스타와 화보와 낙담

2009.05.08GQ

스타는 공짜로 여행을 즐기고, 브랜드는 스타로 마케팅을 하고, 잡지는 그걸로 독자를 모은다. 모두 즐겁고 행복한 일일까? 유감스럽게도 스타의 화보 촬영에는 한심한 일들이 벗어놓은 옷더미처럼 쌓여 있다.

‘아무개 파리에서 고혹적인 자태’‘아무개와 아무개 괌에서 커플 변신’‘아무개 사막에서 터프한매력, 이런 모습 처음이야’‘아무개의 뉴욕 다이어리’…. 넘실넘실 홍수 난 뉴스 속에서도 심심찮게 눈에 들어오는 제목이다. 뭔가 싶어 클릭하면 이런저런 연예인들이 한눈에 해외임을 알겠는 풍광을 배경으로 ‘쇼’를 펼치고 있다. 일반적인 패션 모델과는 구분되어야만 할테니 스냅 사진 하나를 찍어도 배우는 배우답게 연기를 선보이고 가수는 배우보다 더 배우처럼 보이려 애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난데없이 화장품 하나를 상표가 잘 보이도록 찍은 장면도 나온다. 그걸 들고 사진을 찍은 연예인의 얼굴은 고상하고 엄숙한데, 왜 보는 사람이 되려 민망한 걸까? 돌아가는 상황을 안다면 화장품 업체가 그 촬영에 얼마를 댔을지 계산이 된다. 두 페이지 세 번 노출이니 얼마쯤 되겠군.

연예인들이 해외에서 화보를 본격적으로 찍(는다는 핑계로 공짜 여행을 하)기 시작한 풍토는 두말할 것 없이 잡지들이 만들어냈다. 이제 새롭게 들여올 라이선스 잡지가 없다고 할 만큼 국내 잡지 시장은 양적으로 팽창일로였고, 따라서 어떤 경쟁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경쟁에서 연예인은 자극적인 소재였다.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데, 우선 ‘아무개 나온 그 잡지’로 불릴 수는 있을 테니까. 여기까진 무리가 없다. 팔려고 만든 잡지가 선정성과 상업성을 표방한 채 준법하며 일을 벌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비즈니스다.
문제는 연예인이 나오고 안 나오고의 문제가 아니라 잡지가 발벗고 나서서 연예인들의 시녀 노릇을 자처한다는 것이다. 시대의 권력자로 군림하는 연예인을 향해, 궁금한 걸 묻는 인터뷰가 아니라 대답하고 싶은 것만 물어 ‘드리는’영접이 되고, 뜻밖의 모습을 잡는 촬영이 아니라 해외에서 폼잡으면 그만인 사진을 찍어 ‘드리는’접대가 된 것이다.

시녀 노릇을 자처한 잡지들이 한 건의 연예인 해외 촬영을 성사시키는 순서는 대략 다음과 같다. 일단 연예인을 섭외한다. 방금 드라마를 끝냈거나 활동을 마친 연예인일수록 섭외는 성공 확률이 높다. 지친 그에게 휴식과 여행을 제안하는 것이다. 물론 공짜, 조건은 화보 촬영. 나중에 화보가 나왔을 때, 작품 끝내고 휴식차 해외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뉘앙스는 꽤 그럴싸하게 보일테니, 연예인들은‘필요하다면’‘오케이’를 한다. 이제 잡지 에디터의 전쟁이 시작된다.관광청, 항공사, 여행사 등과 일정을 잡고, 협찬할 브랜드를 섭외한다. 사진가, 메이크업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등의스케줄을 맞추고, 현지 진행을 위한 동선도 짜야 한다. 문제는 돈이다. 잡지사 스스로 부담하는 비용은 최소로 줄이고 협찬 브랜드로부터 받는 비용은 거의 전부를 해결할 만큼 최대로 늘리는 일이야말로 해외 촬영을 담당하는 에디터가 가장 큰 노력을 들이는 부분이다. 의류, 뷰티, 자동차, 주류 등 화보를 통해 노출할수 있는 여건이 되는 브랜드라면 모두 섭외 대상이 된다. 아무개와 해외 어디에 가서 화보 촬영을 할 건데 협찬을 해줄수 있느냐는 질문을 전화 메일 팩스 면담 가리지 않고 퍼붓다 보면 큰 돈과 작은 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잡힌 예산의 맥락은 화보 구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어떤 브랜드는 얼마 줬으니까 이 정도로 노출하고, 어떤 브랜드는 얼마 줬으니까 요 정도로 노출하고…. 기획부터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의 과정은 고물상보다 복잡하다. 돈이 오가는 문제니 당연한 데다, 하나가 해결되면 다른 하나가 문제되는 식이라서다.

대충 협찬 브랜드들로부터 나오는 문제로는 이런 것들이 있다. 그 브랜드가 우리랑 함께 나온다면 우리는 협찬할 수 없다, 그 연예인이 자기 옷이랑 입는다면 괜찮지만 다른 브랜드가 노출되는 거라면 명품도 안 된다, 제품을 사용했다는 캡션만이 아니라 상표가 잘 보이도록 찍은 제품 사진이 꼭 들어가야 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도 일어난다.“거기서 열 페이지 하자고 했다면서요? 그러지말고 우리랑 스무 페이지 어때요? 노출 브랜드가 거기랑은 수준이 달라요.” 무슨 거룩한 신뢰와 가치와 대단한 철학이있어 그깟 약속 하나 못 뒤집을까. 열이면 여덟, 연예인들은 조르르 스무 페이지 촬영으로 경로를 바꾼다.그렇게 어쨌든 비행기를 타면 일단 안도감이 몰려온다고 A잡지 B에디터는 말한다.“어쨌든 페이지는 메우게 되었으니까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2차 대전이 시작되죠.”

B에디터가 말한‘2차 대전’은 말로는 치사하나 직접 겪으면 머리가 폭발하는 일들이다. 호텔 냉장고를 초토화시키는 매니저와 밤새 호텔방에서 국제전화를 쓰는 연예인 듀엣은 거의 익숙할 지경이다. 촬영 외 시간에 관광가이드를 요청하고, 음식 타박과 의상 타박을 말버릇처럼 달고, 날씨마저 짜증과 불평의 대상이 되는 것 역시 드문 일이 아니다. 심지어 그런 정도만 안 해도 너무 매너가 좋은 연예인으로 등극한다고 C잡지 D기자는 말한다.“ 룸서비스 시켜 먹고 매니저 시켜서 계산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어요. 네, 감동요.”사례가 축적되고 소문은 금세 퍼진다. 누구는 어디로 가서 어느 호텔에서 자며 뭘 먹었다더라, 누구는 친구를 데려갔다더라, 누구는 매니저까지 비즈니스 클래스를 태웠다더라, 누구는 덤으로 옷을 줬다더라…. 이건 연예인 쪽에서 나는 소문이다. 잡지나 협찬 브랜드 쪽에서는 다른 소문이 난다. 누구는 진짜 ‘싸가지’가 없다, 누구는 술에 취해 다음 날 오후까지 안 일어나 촬영을 망쳤다, 누구는 브랜드 제품을 자기 가방에 넣어 갔다….

듣자마자 귓속이 질척해진다. 거기에 무슨 스타가 있고 무슨 매체가 있나?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책이 나온다. 남은 건 몇 페이지에 걸친 과시적인 화보와 찬양시로 범벅된 인터뷰다. 화보속에서 연예인들의 어떤 ‘싸가지’는 수증기처럼 증발된다.그의 솜털까지 찬미하는 인터뷰 기사 속에서 연예인들의 기함할 만한 태도는 송두리째 사라진다. 뉴스가 뜬다.‘ 아무개가 런던에 간 까닭은….’ 연예인 해외 화보 촬영의 득과 실에 대해 D브랜드 마케팅 실장은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직접 광고를 하는 것보다는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려는 측면에서 협찬을 합니다. 요즘 김연아 같은 이슈가 아니라면 제아무리 특급 연예인이라고 해도 화보 촬영으로 브랜드 매출이 오르거나 하진 않아요. 잡지의 수준과 연예인의 이름값과 화보의 품질 속에서 브랜드는 이미지를 끌어올리길 기대하는 거죠.”E잡지 F기자 역시 그 파괴력에 대해 큰 의미를두진 않는다.“ 기껏해야 포털 사이트에 뉴스로 뜨고 화제가되는 정도죠. 그것도 거의 해당 연예인의 팬들 사이에서 정도예요. 이제 독자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갑자기 아무개가 평소에 입을 것 같지도 않은 브랜드만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협찬’이라는 생각은 너무 쉬운 거죠.”

이제까지의 부정적인 얘기들이 연예인 해외 촬영을 둘러싼 전체는 아니다. 브랜드와 잡지와 연예인은 엮일 수 밖에 없으니, 그 속에서 서로가 지킬 것을 지키는 사례들도 없진 않다. 여기서도 문제는 돈이다. 그 돈이 결국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가냐는 문제 말이다.기획과 관련된 모든 이익을 기부하는 형태로 진행하는 사례도 있으니 뜻과 양심이 통한다면 누가 누구의 시녀 노릇을 하느냐의 차원을 넘어선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결국 이것은 미디어의 위상과 가치에 관한 대단히 기본적인 문제이자 모두의 자존심 문제다. 그 돈을 받아공짜 여행을 즐기는 연예인은 그 자신이‘짠순이’든 ‘짠돌이’든 일단 창피한 줄 알 일이다. 연예인이 응당 받아 마땅한 것은 대중에게 선물하거나 봉사한 만큼(혹은 그 이상)의인기일 뿐이다. 그것을 이용해 알량한 명예(멋진 해외 배경사진 나부랑이)를 얻겠다는 생각은 거지근성과 무엇이 다른가.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 해가며 손을 벌린 미디어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그 화보로 책을 파는 동안 미디어의 자존심도 거덜나고 있음을 깨쳐야만 한다.“한 명도 빠짐없이 편집장들이 모여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겠다는 서명이라도 하지 않는 한, 이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일일 뿐이에요. 정말 다같이 모여 그런 조항이라도 만드는 게 옳지 않을까요?”한 여성지 편집장의 말 속엔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이 포함되었을지언정, 그렇게까지되어버린 상황에 대한 통탄이 진동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통탄도 누군가에겐 우스운 일이다. 그런채 아무개는 오늘 아침 뉴욕행 비행기에 희희낙락 탑승했다.

    에디터
    장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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