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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술 수수께끼

2009.05.08GQ

조선시대엔 주류 담당 기자도 없었고, 잡지도 없었는데 술에 대해 이렇게나 많이 기록했다.


전통술 수수께끼

전통주의 브랜드화가 절실하다는 기사는 부패비리 뉴스만큼이나 잦다. 그런데도 도통 사람들이 즐겨 찾질 않으니 전통술은 도대체위용을 잃은 걸까? 그 생각이 채 끝나기 전, 다행히 국순당의 신우창 박사를 만났다‘. 우리술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는 국순당의 연구원이자 애주가이자 복원가다. 그와 팀원은 작년 6월 창포주를 시작으로 이화주, 자주, 신도주, 송절주, 소곡주를 복원했다“. 술에 대한 기록이 남은 고문헌은 상당히 많아요. <수운잡방>, <임원십육지>,<양주방> 등에는 술 제조법이 상세하게 나오기도 합니다.”제조법이나와 있다면 그걸 거창하게‘복원’이라고 부를 것까지 있을까 하는 민망한 질문을 하려는데, 신 박사가 고충을 털어놨다“. 문헌에 기록된 도량형의 정확한 양을 알 길이 없어요. 그때의 한 되와 지금의 한 되가 다르니까요. 전통주는 누룩을 만드는 게 핵심인데, 천 년 전의미생물과 현재의 미생물은 또 완전히 다릅니다.”문헌에 적힌 기록대로 술을 복원해도, 이 맛이 과연 그 시절 그 맛인지에 대한 확인도 불가능하다‘. 입 안에 쩍쩍 달라붙는다’고 기록돼 있으면당도가 높다고 풀이하고‘, 술이 맵고 달다’고 쓰여 있으면 알코올도수가 20도라고 추리하는 식이다. 그 말을 듣곤 당장 신우창 박사의 팀원이 되고 싶었다. 이건 너무 신나는 일이지 않나? 최고로 맛있는수수께끼 아닌가?‘ 백세주 마을’에 가면 복원된 술을 맛볼 수 있다.사진 속 걸쭉한 술이 배꽃 향이 풀풀 올라오는 이화주고 맑은 술은끝맛이 잘근잘근 씹히는 소곡주다.


위스키의 시간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증류소에 가면 발목 위로 높게 올라오는 신발을 신은 아저씨가 목가적인 표정과 포즈로 일하고 있을 것 같다. 익숙하고 전형적이고 전통적이고 담담하지만, 짜릿하진 않다. 맥캘란이 지난 7일 증류소를 배경으로 찍은 폴라로이드를 라벨에 붙인 한정판‘맥캘란 랜킨’을 공개했다. 영국 출신 사진가 존 랜킨 와들이 여자의 하얀 살과 호박색 증류기를 함께 찍었는데, 이건 좀 짜릿하다. 차가운 구리에 맨살이 닿는 것처럼. 그저 조용하던 맥캘란 위스키 증류소가 모델 튤리의 이미지로 복슬복슬 피어올랐다. 맥캘란의 이런 외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국 만화가 랄프 스테드먼과 미술가 피터 블레이크의 그림으로 병을 꾸며 한정판매한 적이 있지만 사진가와 처음부터 작품을 새롭게 구상해 1000장의 라벨을 제각기 다르게 만든 건 처음이다. 필름으로 뽑아 인화하고 또 인화하는 사진이 아닌 폴라로이드로 작업한 건‘한정’의 가치를 증폭시키기 위해서고, 증류소를 배경으로 누드 사진을 찍은 건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하기 위해서다. 그리곤 그 병 안에 가볍고 부드러운 오렌지 향이 맴도는 파인 오크 30년을 채웠다.


이만하면 전통술

지난주 마트에도 있었고, 오늘 편의점에도 있고, 다음 달 우리집 냉장고에도 있을 맥주들이다. 그런데 나이들이 무려 1백 살이 넘는다. 기네스는 올해로 2백50주년을 맞이했다.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생일 잔치를 벌인다. 하이네켄도 탄생한 지 1백46년째다.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도 이미지는 아직도 청년이니 신기할 따름이다. 미국에선 가장 역사가 깊은 유적이 1백 년 정돈데, 버드와이저는 1백33년이나 됐다. 일본도 맥주 강국답게, 아사히 맥주를 1백20년 전부터 마셔 왔다. 가장 나이가 많은 맥주는 호가든인데, ‘라거 맥주’가 아니라, 수도사가 만들어 왔던‘밀 맥주’이기 때문이다. 무려 5백 하고도 64년 전에 처음 나왔다.

    에디터
    손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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