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얕음 속의 깊음

E.L.
최근 두 달 사이에 좋아하던 사람이 넷이나 세상을 떴다. 그러다가…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고, 알 필요도 없는 존재 같기만 했다. 머릿속엔 지난 겨울, 중국 심양의 한 북한 식당에서 ‘여성 접대원 동무’가 들려준‘심장에 남는 사람 ’가사가 녹음기처럼 되풀이되었다. 인생의 길에 상봉과 이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못 잊어….두 달 동안의 무감각한 괴로움은 무얼 위해서였을까. 차라리 건강한 자기 보존 아닌가. 친구를 잃었다는 사실이 내가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주었을까. 깊은 생각을 하려 할 때마다 왜 지겨워질까‘. 애도의 스타일’이 어두운 방으로 사라지고 난 뒤엔 죄책감, 후회가 뭉클뭉클 피어났다. 결국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축으로 순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두 얕은 방식으로 슬퍼할 뿐이었다. 난 인생의 얕은 가장자리에서만 헤엄쳤다. 그 얄팍함은 내가 왜 한 번이라도 뭔가에 중독된 적이 없는지를 설명한다.

물론 나도 다른사람처럼 ‘얕음’과 ‘깊음’ 양쪽 특징이 섞여 있다. 어제, 택시 기사 아저씨가 실수로 더 거슬러준 4천 원을 되돌린 내 행동은 나를 윤리적으로 만들었다(깊음). 내가 찬 비싼 시계는 나를 허영 많은 사람으로 간주한다(얕음). 그 영역에서 내 마음의 나침반은 중앙 왼편을 가리키며‘얕음’쪽으로 기운다. 그‘얕음’에는 특정한 관심을 끌어내는, 거품이 많은 아우라가 있다. 깊은 이들에겐 엄숙함, 얕은 나에겐 반짝임. 그러나 정직하고, 따뜻한 공감을 주고, 윤리적으로 묵직하며, 필요한만큼 감성적인,‘ 깊은’ 사람들이 세상을 언급하면, 난 그 생각들을 총합시킬 수 없다. 내 경험으론 (그것도 그렇게 많은 걸 말하진 않지만), 깊음은 다차원적이기 때문이다.

실존하는 불안과 싸우는 지성은 하나의 장비다. 삽 같아서, 명철할수록 더 깊이 팔 수 있다. 하지만 절망의 간극에서부터 성층권 꼭대기에 이르는 넓은 범위의 감정을 보여주는 이들에겐 조울증세가 있다. 어쩌면 깊음은 대양 같은 침몰과 닮았다. 스스로를 증명하는 사람의 불안한 생명력은 그런 것이다. 결국 깊음도 얕은 곳, 혹은 조금만 낮은 곳에서 올라온 것일 테고, 똑같이 인생이라는 연속체의 양 부분이라 해도 그들처럼 될 순 없다.그런데 왜 더 깊이 있어야 하나? 더 많은 걸 느끼고, 더 무리해서 글을 쓰고, 더 많은 칭찬을 받기 위해? ‘ 깊음’이 인생의 괴로운 퍼즐을 해결할 수 있을까?‘ 깊음’은 종종 함축성을 파고들며 시간을 보낼텐데, 난 의자에 지긋하게 앉아 있지도 못 한다. 정신적 풀장의 바닥 어딘가에 답이 있다고 해도, 잠수하려 할 때마다 표면에서 튕겨져버린다.

하지만, 수류탄을 들고 뽑으면 터진다고 협박하는 거리의 영장류들부터, 누군가가 망친 지도로 길을 찾는 지식인들, 구더기 끓는 책임 회피자들이 자기만 옳다고 우글댈 땐 얄팍한 나조차 코웃음친다.우기면 다 옳은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해석들, 상식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은 가끔 환상 아닌가. 자기가 누구란 게 얼마나 확실하건 간에, 어떻게 하나의 논쟁이 기밀처럼 새나가는지에 상관없이, 직관력이 얼마나 불변한가는 차치하고, 그것들은 늘 틀릴 수 있다. 파란 색을 보는 경험조차 때론 단순한 뉴런 폭발에 불과하다. 세포 무더기와막조직, 소금 용액과 같은. 우리가 사는 세상도 전체 은하계가 아니라 단지 거대한 은하의 부분일 뿐이다. 게다가 둥둥 떠다닌다. 그러나 어떤 치들에겐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우주가 존재하는 모든 것인데 어떻게 그 우주가 움직이지? 신념이나 열망 같은 개념은 천성적인 게 아니라 학습되는 것이다. 신념은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확신은 너무나 착란되고 깊숙히 달라붙어 있어서 자기들조차 한 가지가 끝나고 다른 가지가 시작되는 지점이 어딘지 모른다.사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순간들이 오히려 가장 비루할 때 위로가 된다. 그러니 죽은 뒤의 세계나, 우주의 불공평함에 대한 질문은 말아야지. 초등학교 수준의 철학을 진짜라고 믿어야지. 삶은 계속 살아 있는 거야… 같은…. 하지만 그런 태만 모드는 비겁한 낙관이기도한 거야…. 얇은 이의 사고방식이란 늘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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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