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근호는 제2의 박지성이 될까?

2009.07.27GQ

이근호는 유럽에 갈 수 있을까? 일단 박지성의 성공은 긍정적인 터전이 되었다.

2년 전으로 기억한다. <맨유TV> 해설자인 패디 크레란드와 박지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박지성은 유럽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유형의 선수”라면서“, 기술이 뛰어난 선수도 아니고 골 결정력도 아직 부족하지만 그가 없는 경기에선 빈자리가 확연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또 보비 찰튼은 박지성에 대해 “영리하다”고 짧게 대답했다. 맨유에서 바라보는 박지성의 이미지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과시하는 선수가 아니라 팀 전술을 이해하고 팀플레이에 성실하게 임하는‘충견’ 같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박지성은 체력과 성실함을 무기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다. 축구 팬들이나 축구 관계자들에게 짧은 시간 안에 쉽게 눈에 띌 수 없는 이유다. 박지성은 허정무 감독이 발탁하기 전까지 철저히 외면당한 무명선수였다. PSV 에인트호벤 초창기에도 팀의 팬들은 기본기도 부족한 선수를 데려왔다며 혹평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들도 세 번째 시즌에 접어들면서 놀라운 체력과 활동량으로팀에 일조하는 박지성의 진가에 대해 눈을 떴고,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맨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경기를 치른 후에야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박지성은 한국 학원축구문화에서 탄생한 가장 보편적인 유형의 선수였지만 유럽에선보기 드문 경우의 선수였다.하지만 박지성의 활약으로 유럽의 많은 클럽들에서 한국 선수들의 보이지 않는 장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근호는 그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재목으로 떠올랐다. 일본 스포츠 전문지 <스포니치>는“이근호가 박지성으로부터‘젊을 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있다’는 충고를 받아들여 유럽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이근호가 선배인 박지성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납득할 만하다. 박지성이 닦아놓은 길은 이근호에게 모범답안이 기 때 문이다. 박지성도 일본의 교토 퍼플상가를 거쳐 PSV로 이적했고, 그것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빅클럽 진출의 발판이 됐다. 이근호가 PSV와 유사한 규모의 파리 상제르망으로이적하려는 것도 결국 박지성의 행보를 좇는 셈이다.이근호는 박지성과 유사한 점이 꽤 많다. 박지성이 대학때까지 무명의 설움을 거쳤듯, 그 또한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 2군 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했음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사실 이근호와 비슷한 유형의 공격수는 대한민국 축구계에 정말 많다. 기술보다는 체력이 좋고 성실하며 활동량이 풍부한 공격수들이 단기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학원축구 대회에서 좋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한국 축구계에선 비슷한 기량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팀 성적이 저조해 상급 학교 진학에 실패하고 선수 생활을 접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고만고만한 성향의 선수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이 토너먼트 몇 경기를 보고 옥석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이근호는운이 좋은 경우다.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는 감독을 만났기 때문이다. 대구FC의 변병주 감독은 인천 2군에서 뛰던 그를영입해 팀의 간판 선수로 키웠다. 만약 이근호가 대구로 이적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1군과 2군을 들락날락하는 평범한 K리그 선수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변감독은 이근호를 불러들여 많은 출전 기회를 주었다.또 장남석과 에닝요를 중심으로 빠른 역습을 많이 시도한대구의 소수 정예 공격 스타일도 공간 창출 능력이 뛰어난이근호의 장점을 잘 살리는 계기가 됐다.변 감독은 이근호에 대한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파리 상제르망과의 이적 협상이 진행 중이던 지난7월 10일 전화통화에서“이근호는 기술이 좋은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체력이 좋고 공간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한선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럽 진출 성공 여부에 대해선 그도 박지성 얘기를 꺼냈다. 그는“이근호도 박지성처럼 성실함을 무기로 팀에 희생하는 유형의 선수”라며,“ 그를 잘 활용할 줄 알고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을 만나면 유럽에서도좋은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주전으로 많은 시간 출장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느냐의 여부다.유럽에 진출하는 아시아 선수들은 남미나 아프리카 선수들보다 기회가 다소 적다. 그래서 첫 번째 클럽에서 실패할 경우 입지가 상당히 좁아진다. 설기현이나 박지성, 이영표 등은 첫 번째 클럽에서 성공한 경우지만, 이동국과 이천수 등은 첫 번째 클럽에서 자리를 잡는 데 실패해 결국 국내로 돌아와야 했다. 축구선수들에겐 자신감과 동기부여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 K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광주 상무의 공격수 김명중과 고슬기가 좋은 사례다. 이들은 광주상무에 입대하기 전 포항 스틸러스 소속이었다. 하지만 포항 시절 1군 경기에 뛸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출전 기회가 줄어들자 심리적인 자신감 결여로 이어졌고 이는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광주에서 출전 기회가 보장되고 올 시즌 들어 득점 횟수가 늘어나자 내재되어 있던 잠재력이 폭발했다.이근호도 마찬가지다. 그도 대구에서 많은 출전 기회를 통해 기량을 향상시켰고, 투박했던 기술도 J리그를 거치며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또 국가대표팀에 주전으로 기용되며 자신감과 동기부여도 얻었다.이런 상황에서 유럽에 진출할 경우 전술 소화 능력과 기술적 향상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수준 높은 선수들 틈에서 연습하면서 볼 터치 능력과 패스 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박지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다. 또 경기 템포가 빠른 리그 수준에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경기 운영 능력이 한 단계 향상된다. 이는 2001년 세리에A에서 활약하다 대표팀 경기를 위해 복귀했던 안정환이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하지만 출전 기회가 없으면 심리적 위축과 실전 경기 감각 상실로 이어진다. 유럽 진출에 실패한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악재다. 실제로 유럽 내에이전트들은 동양인들에 대한 편견이 매우 크다. 대부분의 유럽에이전트들은 아시아 선수 영입에서 마케팅적인 효과를 우선순위로 생각한다. 물론 어느 정도 기량이 뒷받침되는 선수가 협상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기술적인 부분으로 접근하면 그들은 일단 빠른 선수인지를 묻는다. 과거 차범근처럼 스피드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무기를 가져야 유럽 선수들과의 경쟁력에서 승산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들에게 아시아선수의 기술적 재능은 큰 관심사가 아니다. 아시아에서 톱클래스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정도 선수는 유럽이나 남미에 아주 많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그러나 이근호는 아직 상업적으로 큰 장점이 있는 선수가 아니다. 물론 그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주전 공격수고월드컵을 앞둔 상황에서 한국 최고 인기 스타로 떠오를 수 있는 잠재성이 있다. 유럽 클럽들이 상업적 접근을 하는 데 고민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무리하게 접근할 필요는 없다. 이근호의 경우 오히려 기량을 더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기량 면에서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 변 감독의 말에서도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변 감독은 “대표팀과 J리그를 거치며근호의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궁합이 맞는 좋은 유럽 팀을 만나면 기량이 일취월장할 것”이라면서,“ 한국에서 근호만큼 골 넣는 재주가 있는 선수는 드물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근호는 득점 감각이 뛰어나기 때문에 원래 갖고 있던 장점에 득점력까지 향상될 경우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주전 자리만 확보된다면 실력만으로 유럽 중위권 리그에서 충분히 상품 가치를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과거의 박지성처럼. 결국 모든 것은 이근호에게 달려 있다. 실력 향상과 운이 모두 뒷받침된다면 이근호는 제2의 박지성이 아닌 그 이상의 꿈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글/ 장지헌(MBC ESPN 해설위원)
    스탭
    Illustration/ Lee Jae June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