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서울 시장께 보내는 편지 2

E.L.
가로등과, 우편함과, 길 표지판과, 광장과, 가판대와, 벤치들은 모든 시민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 눈 안에 들어오는 것들은 공공의 경치이자 민주주의의 열매지만, 때로 더 이상 퇴화할 수 없는 정치가들의 두뇌가 만든 국토의 시체이기도 하지요.

장마 끝 무렵의 세종로는,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꽉 막혀 있었습니다. 경적 소리도 평소보다 잦았죠. 21세기의 거리 어디라도 자동차 때문에 덜미 잡혀 있지만, 도시 행정가들은 맨 먼저 엔지니어란 걸 알아야 합니다. 대학 졸업장을 가진 하수도 수리공 같아서, 능률적으로 길을 넓히고 도로 흐름이 수월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음도시는 제 기능을 못하겠다고 냉정하게 경고하죠. 그날, 며느리와 함께 온 할머니는 연잎 같은 구조물을 차양 삼아 덮곤 뼈가 시린 콘크리트 널빤지에 앉아 김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한 점 그늘 없는 생땡볕아래선 행락객처럼 ‘웃음꽃을 피워본들’ 황량해 보이기만 했습니다.

시장님은 멀쩡한 차로를 몇 개나 점유하고도 의기양양해하는 설치물이 시민들의 답답한 삶을 빛으로 이끌고, 그들의 피곤한 뼈가 쉴만한 디자인이라고 믿으시죠? 광장이 공장이나 아파트 이상의 힘이 있다는 걸 잊었던 도시를 위한 카타르시스 같죠? ‘ 사진빨’과 ‘방문객 숫자’와 ‘주변의 아첨’에 스스로를 속이지 마세요. 양옆, 드넓은 차도로 포위된 채 길쭉한 수세미마냥 석재 턱으로 구획된 섬이 개방된 공간이라니요? 광화문 광장을 통해 미래의 서울을 다른 나라에게까지호소하시게요? 세계 다른 도시들이 갖고 싶은 광장에 대한 경쟁력 있는 프로젝트 같나요? 그런데, 서울의 구조물들이 도쿄에 비해 왜 그렇게까지 기품없는지 생각해본 적은 있으세요? 세종로 한가운데 그 무성한 은행나무들은 왜 뽑아버린 건데요? 미풍에 흔들리던 풀들은요?

도시 지형과 생태학은 도시의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광화문은 어떤 상위성, 집중력 때문에 서울의 프로파일 중 가장 매력적인 곳입니다. 그런 이유로 광화문 광장이, 궁궐 앞에 운집해 주군에 읍소하고 상소하던 시절의 평등주의적 태도라고 생각했다면, 그 큰 광장 덩어리를 공공장소로 쾌적하게 되돌리는 게 민주적 하모니를 이루는 근간이라 믿었다면, 저렇게는 아니었어야지요. 광장 계획은 단지 어딘가에 널찍한 공간을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가치 충돌의 문제거든요.

서울엔, 기진맥진할 만큼의 장관은 아니지만, 어떤 점에선 이태원의 키치조차, 낯선 우연의 아름다움과, 끝없이 각색 가능한 활기와 병렬 상태를 이루는 늠름함이 있지요. 토목적 광란으로 급조하기엔 서울은 그토록 내력 깊은 도시란 말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서울재정비 움직임은 급격히 현실화됐습니다. 도시 계획은 높은 건축적 압력으로 빨려 들어가고, 도시 중흥을 위한 슬로건은 강박적 난개발로 소요하고 있죠. 관건은, 그 재정비가 서울의 고유성을 고무하느냐 파괴하느냐인데, 결국 서울 거리에 불가침의 존재 같던 세종로의 신성함은 ‘화훼단지풍 중앙분리대’의 허풍에 떠밀리고 말았지요.

… 매일매일 서울 시민으로서의 평정과 이성을 시험 받습니다.처음엔 서울 자체의 광기로 인해, 다음엔 서울을 ‘사적 공사판’으로 채우는 과대망상적 변태 정치인들 때문에. 로테르담의 역사적 구역들이 나치에 의해 사라졌다면, 웅숭거리는 서울의 오랜 장소들은 정략가들이 서둘러 없앴다는 걸 잊지 마세요. 당신들에겐 도시 경관조차 개인적 야심에 종속됐으니까요. 근데, 뉴욕 그라운드 제로, 불운한 장소도 구멍난 채로 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시대적 이동과 혼란기엔 필수적인 게 있지요. 장군님 동상 류의 ‘치적’말예요. 항상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죠. 결국 시장님은 어떤 이들에겐 신통방통한 비전 탐험자겠지만, 제겐 초대형 부동산 업자, 자문위원단의 드로잉과 날것의 구상을 지체없이 현실화시킨 전 서울시장을 답습한 사람일 뿐입니다. 광화문을 이상하리만큼 버려진 섬, 문화적 무감각으로 벌집이 된 도시의 한심한 기념비, 서울의 살점에 난 상처 그 이상으로 만들어버린…. 보고 싶지 않은 것들에 둘러싸이고싶지 않은 마음을 혹시 아실는지요. 진심인데요, 그걸 모르신다면 그동안 시장님의 배움에 들인 돈이 너무너무 아까울 따름입니다. 더는 드릴 말씀이 없네요. 모쪼록 자중자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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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