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별도 달도 모두 숨어버렸어

E.L.
먼지바람이 날리는 긴 일요일. 저녁 일곱 시에 깼다. 구름의 이상한 빛은 멀리서 찾아온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황혼은 산을 바꾸고 있었다. 협곡의 위아래가 뒤집히고, 절벽이 안쪽으로 숨고, 하늘은 거의 지형화되기 시작했다. 서쪽 지평선 위 별들이 빛으로 녹아 내리자마자, 순식간에 보름달이 낮게 차올랐다. 공중에 밝혀진 1천 개의 촛불이 나를 계란처럼 부술 때, 평생 안 하던 짓을 저질렀다.

애꿎은 저녁 시간, 뒷산에 오르는 내가 장한 건지, 실성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산은, 종종 달빛 아래 눈 내리는 들판이거나 소나무 숲,저녁 하늘이 비치는 고요한 연못을 묘사하는 L. M. 몽고메리의 소녀풍 이야기에 나오는 산이 아니었다. 이 산동네로 이사온 뒤, 한번도 산에 오른 적 없던, 그냥 태종이 사냥하던 산이라는 설로만 완상하던 나태한 남자의 미친 산이었다. 그러므로 이 구릉은 지구에서 가장 달콤한 소리를 내는 장소라거나, 산을 성적 대상으로 느낄 만큼 열렬히 사랑하게 됐다는 선지자들의 언어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해가 지면 세상은 바다 밑의 산처럼 흑백사진 형태로 변한다. 멀리, 아파트와 모텔이 네온 빛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밤의 산은 인공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60미터만 올라갔는데도 산이 침묵의 저장소란 걸 알았다. 형태 없는 공간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시간,바람 천막의 펄럭임, 나무 사이를 훑는 낮은 음들, 무서운지 고독한지 알 수 없는 벌레의 흐느낌이 콜더 모빌의 연결선처럼 떠돌아 다녔다.

망원경으로 4개의 갈릴레오 위성을 봤다던 친구가 있었다. 목성, 토성, 구형의 밀집 형태를 가진 별의 그룹과 쌍둥이 별(하나는 파랑,다른 하나는 금색이라고 했다). 나는 그냥, 좋지 않은 내 눈으로 밤 열시의 하늘에 떠다니는 별들과, 그 옛날 갈릴레오가 직접 제작한 망원경으로(요즘 초급용 망원경보다도 후진 성능인 채) 확인했던 달의 계곡을 봤다. 하지만, 도시의 불빛은 달보다 7백50배나 밝았다. 너무 밝아 그 아래서 아기를 낳아도 될 것 같은 첨탑은 얼음처럼 찬 수은 조명을 쏘아 올리고 있었다. 풀 위에 살찐 등을 대고 누워 하늘을 보았다. 눈 바로 위에 떠 있는 하늘은 어둡지 않았다. 빛들의 희미한 집합은목가적이지 않았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의 줄은 어디 있을까.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별을 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어릴 때 갑자기 정전이 돼 세상이 암흑과 같았을 때, 몇몇 아이들은 길거리에 나와선 하늘을 보며 외쳤다. “우와…!” 열일곱 살 때 태백산에서 이쑤시개 끝만큼의 틈도 없이 까만 하늘을 보았을 때, 자연이나 시 속에서 불쑥 찾아오는 쾌락은, 무심코 속옷 귀퉁이를 들킨 듯 내 자신을 영원히 허약한 상태로 만들 것 같았지만….

갈릴레오 때의 별은 너무 휘황해서 땅에 그림자를 던졌다. 2세기전 사람들도 제 집에 빛을 쏘지 않았다. 달이 집을 비추는 빛을 즐겼다. 이젠 도시의 밤을 쏘다녀도 검은 하늘을 볼 수 없다. 높이 쏘아올린 인공 조명은 별빛을 다 씻어버렸다. 발견과 영감의 역사 속에서 가장 힘세던 인간과 밤의 관계는 다 꺾였다. 가끔 은하수를 보는 이들은그 이름 때문에 당혹스러울 것이다. 남산타워에서 구름 없는 하늘을 볼 때, 달 말고 다른 게 구별될까. 갈릴레오가 망원경 없이 보던 것들을 볼 수 있을까. 달 없는 밤, 농촌 하늘에서 가장 밝은 건 은하수가 아니라‘ 라스베이거스들’의 불빛이다. 결국 갈릴레오가 봤던 하늘을 보기 위해선, 터키의 미개척 오지나 페루의 산으로 떠나야 할 것이다.

사진가 최영진이 이 땅에서 달을 가장 명징하게 찍을 수 있는 데를 찾아 떠났다. 탁한 대기가 불빛을 난반사하는 도시를 피해 전라남도 완도의 산에 올랐다. 그리고 항공 우주국의 기계적 사진이 아니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풍만한 달을 찍었다. 이달 지큐 앞 페이지의 보름달 사진이 당신을 위한 추석 선물이 되라고…. 눈으로 보는 모든 전경이 인간의 관습과 형식, 가공물, 문화, 언어를 담은 문화 총집합체라면, 지금 망막을 채운 둥근 달은 무엇일까. 사회 밖으로 밀려난 판타지에 다가가기 위해 필요한 순수일까 혹은 철저한 바보스러움일까. …그래도 어쩐지 마음이 커진다. 얼음 녹는 시기가 전보다 한 달 일러진 기후변화와, 자기 축복만 챙기는 날들과, 뭘 해도 욕 먹고 안해도 욕 먹는 저잣거리의 소음과, 그 월계관에 대해서도….

SHARE
[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