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김상현도 기아도 너무 갑작스럽다. 20승 4패와 15홈런 38타점은 지난 8월, 기아와 김상현의 성적이다. 기아 출입 기자인 <스포츠 한국>의 최경호에게 기아에 대해 ‘갑자기’ 물어보았다.

시즌 전, 기아의 선전을 예상했나? 좋은 전력이라고는 생각했다. 1등은 예상하기 어려웠지만 2, 3위는 할 거라고 봤다. 외부적으로 보기에 전력이 작년보다 크게 좋아진 것 같지 않지만, 젊은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연차가 됐다는 점이 컸다. 곽정철, 양현종 같은 선수들이 3년차, 5년차 아닌가. 프로야구에 적응하고, 자신감도 붙어서 뭔가 보여줄 때였다. 두 번째는 작년의 실패 요인이었던 최희섭과 용병들이 올해는 괜찮을 것으로 봤다. 최희섭이 작년과 달라져 있었고, 용병도 아주 똘똘한 선수들을 잘 확보했다.

기아는 작년에 6위였다. 사실 작년에도 기아는 6위에 그칠 전력이 아니었다. 올림픽으로 인한 공백 때 기아가 캠프에서 굉장히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걸로 아는데, 후반기에 그게 마이너스로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기아의 선전은 올해 반짝할 게 아니다. 몇년 더 갈 것이다.

전반기에는 왜 부진했을까? 부상자들이 문제였다. 이용규가 나가 떨어졌고, 서재응이 내려갔고, 윤석민도 안 좋았고, 김원섭도 그랬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다 빠졌다. 6월 중순까지 그랬다가 7월에 다 돌아오니까 팀이 좋아졌다.

김상현이 올해 급부상한 배경은 무얼까? 성장했다고 볼 수는 없다. 김상현 나이가 몇인데, 이제 와서 선수로 성장했을까. 운이 좋았다. 하지만 야구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나는 것도 운이다. 김상현이엘지에 있을 때 황병일 코치랑 잘 맞았다고들었다. 기아에서 다시 황병일 코치를만나니까 심리적인 안정감이 있었을 거다. 그리고 김상현이 시즌 첫 대여섯 게임을 못했다면 지금같이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김상현이 기회를 잡았다.김상현이 기록 중인 3할 30홈런 100타점은 5년 만의 기록이다. 기아의 올 시즌성적에서 70퍼센트를 맡았다고 본다.기아에 없는 해결사, 오른손 거포, 3루수를 그가 단번에 해결한 것이니 말이다.

올해의 MVP 감인 김상현이 기아의 성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그가 없었다면 이런 성적이 가능했을까? 단연코, 그가 없었으면 이런 성적이 나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기아 코치가 얼마 전에 이런 말을 했다.“김상현은 50억짜리 선수”라고. 50억이란 계산법이 재밌다. 특급 FA로 계약하면 30억정도를 받는데, 거기다가 구단 보상금까지 주니까, 그걸 합치면 50억은 된다는 거다.

구톰슨, 로페즈, 양현종 같은 투수들의 성적에 비해, 타자들의 성적은 볼품없다.기아는 투수의 팀이라고 보는 견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용병 둘을 투수로 데리고 왔다는 것 자체가 마운드로 승부를 보겠다는 선언인 거다. 조범현 감독이 시즌 시작할 때부터 얘기했던 부분이다. 기아가방망이가 약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아무래도 타자에게는 한계가 있다. 모든 경기에서 10점을 뽑을 수 있는 팀은 없다. 문제는 집중력이다. 기아는 타격 집중력이 높아졌다. 예전에는 최희섭만 견제하면 됐는데, 이제는 김상현이 있다. 투수로서는 견제를 분산하느라 애먹을 수밖에 없다.

조범현 감독 부임 이후 치밀하고 착실한리빌딩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을까? 기아의 선전을 두고 언론에서는 벌써부터리더십에 대한 말을 흘리면서, 조범현감독에게‘조갈량’이라고 하지 않나.기아의 선전에서 그의 역할이 어느 정도였던 것 같나? 조 감독이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잘 썼다. 구멍이 생겼을 때, 그 구멍을 꿰서 봉합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기아가 올해 갑자기 꽃을 피워서 그저 운이 좋아서 그런 것처럼 보일 순 있다. 하지만 지금의 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치밀하게 이전부터 준비해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양현종, 곽정철 같은 선수들의 준비과정이 그전에 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마지막 점을 조범현 감독이 찍은거다. 기아는 2001년 8월에 창단했다.그런데 지금 기아를 보면 이대진, 유동욱 정도를 빼고는 다 어린 선수들이다. 기아는 그때부터 젊은 자원을 확보하려고 노력 많이 했다. 따져보면 이제 많아야 이십대 중반을 넘긴 친구들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다. 음식으로치면 숙성된 거다.

적어도 플레이오프행은 확정지었다. 한국시리즈에서 SK와 붙는다면 승산은 어느 정도일까? 단기전에서는 다를 것으로 본다.SK와 기아의 차이점은 두 가지다. 먼저, 경기 장악능력에서 김성근 감독이 앞선다. 두 번째는, SK 선수들이 한국시리즈 우승두 번을 역전으로 장식했다는 거다. 이 말은 설사 SK가 뒤지더라도, 선수들은 조급해하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단기전에서 경험은 크다. 경험은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기아는 97년에 진출하고 12년 만인데, 한국시리즈 경험이 있는 선수가 이종범, 장성호 정도다. 상대성적은 기아가 앞서지만, 그건 단지 참고사항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