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축구는 남자의 미래다 1

2009.09.23GQ

그는 자선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유소년 ‘축구’ 자선사업. 그는 정확히 축구를 겨누고 있었고, 사려 깊은 남자에게는 좀처럼 ‘틀린’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의상과 액세서리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의상과 액세서리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홍명보

선수 때 그랬던 대로, 코치로 나오면서도 웃음기 없고, 매서운 모습이다. 딱히 웃을 이유가 없지 않나. 집중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

웃을 이유는 없어도 무서운 얼굴로 굳을 것까지야. 얼굴이 굳는 건 아니다. 눈이 매서워서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카메라는 의식 안 하나? 전혀 안 한다. 중요한 건 경기다. 좋은 이미지로 비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경기를 잘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굉장히 빨리 감독이란 위치에 올랐다. 빠른 건 사실이지만, 나는 준비되어 있었다. 스스로 많은 준비를 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빠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지도자로서의 경험을 생각해도 비정상적일 정도는 아니다.

감독에 대한 야심이 있었나? 감독 욕심이 있었다면 벌써 프로 팀을 맡았을 거다.

프로 팀에서 제의가 있었나? 지난겨울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한국과 일본의 프로팀들에서 제의가 있었다. 그리고 보다시피 모두 거절했다. 3년 동안 코치 생활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곤해 있을 때라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 청소년 대표 팀 감독 제안은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 팀을 제안 받을 때와 달리, 내가 꼭 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게 있었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점이 책임감을 더해준다는 건가? 그보다는 어린 선수들이란 점이 책임감 을 더했다. 이 친구들을 발전시키는 건 한국 축구의 기둥을 만드는 것과 같아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국가대표 맡고 싶다는 야심 좀 있다고 누가 홍명보를 흘겨볼 것 같진 않은데…. 언론에 드러난 당신의 진중한 언행을 보고 짐작은 했지만, 스스로에게 명분을 만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대체적으로 그렇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해도 내게 명분이 있다면 한다. 프로 팀 맡으라는 사람이 많았다. 그에 반해 대표 팀 맡으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말들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스스로 중심을 잡는다. 나를 위해서도, 그 아이들을 위해서도 내가 맡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홍명보 감독의 인생에 가장 큰 명분은 축구인가? 축구밖에 없나? 어려서부터 축구가 가장 중요했지만, 평생 축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아직 확실하게 드러난 건 없어도, 내가 평생 하고 싶은 건 자선사업이다.

자선 사업도 축구와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 유소년축구 장학재단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축구를 계속할 수 있게 돕고 싶다. 적어도 물질적인 이유로 축구를 그만두는 일은 없게 하는 게 내 목적이다.

물론 물질적인 건 중요하다. 하지만 결과론적인 얘기긴 해도, 지지리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고 해서 꼭 축구 선수가 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축구 역사에서 우리는 그걸 봤다. 그보다 아이들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건‘, 놀고 싶다’는 것 아닌가. 청소년 대표 팀도 아직 놀고 싶어 할 나이인 것 같은데? 대표 팀으로 같이 할 수 있는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 겨우 일주일, 열흘 간격이니까. 소속 팀에서 알아서 잘 즐기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랬고. 축구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내심인가? 아니다. 많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희생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팀을 위해, 동료를 위해, 나를 희생해야 한다.

희생정신을 강조한다고 개인의 역량이 가려질까? 스스로를 책임지면서도 경기의 전체를 볼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어야 희생정신을 발휘할 여유도 생기지 않겠냐는 말이다. 마치 현역 시절의 당신처럼. 축구 팀은 개인의 집합이다. 열한 명이 다 뛰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희생정신이다. 다른 선수가 힘들 때, 대신해서 한 번이라도 더 뛰어주려는 마음이 우리 선수들에게는 있다. 그걸 어떻게 기술적인 것과 접목시키는가가 내 역할이다.

당신은 현역 시절 창의력을 강조한 선수였다. 감독으로서도 그렇다.

창의력을‘교육’시킨다는 건 어떤 건가? 예컨대 패스만 해도 기본적인 형태에서 한두 가지를 더 가르쳐 주고, 그 하나에서 조합될 수 있는 두세 가지의 연결을 또 얘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이 예상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지 않도록 유도한다. 축구에서 창의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창의력 개발에 중점을 둔 훈련을 실제로 많이 한다.

현역 시절 뛰어난 선수였던 감독에게 선수들이 위축되지는 않나? 팀에는 굉장히 안 좋은 일이다. 내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다. 스타 플레이어였던 나와 선수들의 차이는 매우 크다. 그래서 항상 눈높이를 그 친구들에게 맞춘다. 내가 보는 눈이 그 친구들과 안 맞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훈련에 임하는 거다.

예를 들면? 예를 들면, 나는 그 친구들에게 시범을 보이지 않는다. 시범을 보이는 건 누군가가 실수를 했을 때라는 건데, 내가 시범을 보이고 나면 그 친구가 위축되리란 걸 알고 있어서다. 시범은 코치들을 시키고, 기술 교정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도록 한다.

과연 선수 때 그랬던 대로, 지도자로서도 지적이고 냉철하다. 지적이고 냉철한 지도자 홍명보에게는 언제가 가장 젊고 뜨거운 시절이었나? 지금이 가장 뜨겁다. 어느 때보다 새로운 일의 시작을 앞두고 흥분돼 있다.

국가대표를 처음 달았을 때나, 월드컵에서가 아니란 말인가? 그때는 어리둥절하고 내가 할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 선배들이 있다 보니, 위축되는 면도 있었고.

자신감이 의심을 먹어치운 건가? 그게 가장 큰 차이다.

홍명보 감독을 중심으로 한 스타 플레이어 출신 코치진에, 언론에서는 유래 없는 관심을 쏟고 있다. 부담되지 않나? 자신감은 부담감으로 줄어드는 항목이 아닌가? 물론 부담감은 있다. 처음 감독직을 맡아 첫 번째 경기를 앞두고 있으니까. 부담감을 즐거움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면서 충분히 즐기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힘들어지거나 곤경에 처하게 될 지 몰라서, 어느 때보다 즐기면서 하려고 한다.

한국 청소년 대표팀은 국가대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무엇이 문제인가? 청소년 대표 팀이라 해도, 그 시점에서 기량이 특출난 사람들일 뿐이다. 그 시점을 넘어서면 신체 조건이 더 발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더 근성이 붙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국가대표에는 대기만성형인 사람이 많다.

청소년 대표에게는 힘 빠지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시작을 청소년 대표에서 하면 물론 좋겠지만, 여기에서 시작한 선수들은, 두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청소년 대표 됐다고 자만하는 순간, 다른 친구들이 그들보다 더 앞으로 간다. 청소년 대표가 되지 못한 친구들은 지금 이를 악물고 연습하고 있을 테니까. 지금 노력해야 나중에 웃을 수 있다는 걸 청소년 대표 팀 친구들에게 항상 얘기해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지도자의 역할은 없을까? 기술적으로도 가르치지만, 교육적인 측면도 가르친다. 아직 어린 선수들이라서, 어떻게 보면 축구보다 중요한 것 같다.

희생정신 말인가? 희생정신도 교육적인 측면의 한 예일 수 있다.

다만, 운동선수들 사이에서‘교육적’이란 건 수직적이고 물리적인 어떤 거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 선례들과 비교했을 때‘홍명보호’는 민주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우리는 토론한다. 나는 항상 선수들에게 질문하면서 생각을 이끌어낸다. 답이 맞지 않더라도 그들을 질책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팀에는 좋다. 다른 많은 좋은 생각이 있다는 게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다. 축구에 정답이 없듯이, 축구팀에게도 정답이 없다. 서로 다른 많은 생각을 공유하고, 모두가 어떤 방향이라는 걸 이해하고, 그걸로 된 것이다.

결과가 나온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은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나? 글쎄, 아직 우리 팀이 검증되기까지는 많은 관문이 남았고, 현재로서는 완벽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박나나, 박태일, 문성원, 정우영
    포토그래퍼
    김보성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