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넌 대체 뭘 하며 살았니?

E.L.

가을이 늦어질 때, 농부는 추수하고, 나는 추궁한다. 올해 뭘 했냐고. 대답은 30년 전 신문에 실린 경상도 어린애의 시로 대신한다. ‘성적표’ – 시험 보고 매 맞고 / 성적표 받고 매 맞고 / 내 다리 장한 다리 아무튼 10월까지의 내 성적표는 이렇다.

체중 전보다 좀 날씬해진 것 같긴 하다.(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을 것이다.) 근육이 지방보다 무거워서라거나, 전체적으로 비율 배분이 더 잘 되어서가 아니라, 괜한 착시다. 아님 악착같이 더 작은 사이 즈의 옷을 입어대서? 그런데, 왜 샤워하고 나면 150그램이 더 나갈까.

운동 게으른 포유동물에겐 가장 짜증나는 문제다. 장시간 걷기? 탁구를 치겠다. 헬스클럽? 농담이지? 나이 드는 게 끔찍한 건, 매일 덜어낸 것에서 얼마나 더 빼느냐를 강박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동 생각은 아예 맨처음부터 제외시킨다. 시간과 돈도 무지하게 들고, 뱃가죽에 골을 낸 자식들의 영웅담은 안 들어도 잘살 것 같아서.

그루밍 이렇게 피곤한데도 왜 내 얼굴은 멋있을까? 하고 에디터들에게 물을 때, 대답이 1초만 늦으면 피부 권세를 다친 듯 화가 난다. 어떤 땐 주름이 적은 피부조차 전쟁터의 시체에서 거둔 듯 황량해 보인다. 그렇지만, 밑이 깨끗한 손톱은 남자에겐 신용과 같아서, 바투게 자르기 시작했다. 지문을 꼭 쥐지 못한 손끝이 한 해 내내 아팠다.

자동차 갈수록 연비가 나빠진다. 스마트 포투로 바꿀까, 고민이 만화방창이다. 그런데 왜 차를 바꿈으로써 굳이 새 기계에 적응해야 하지?

습관 바꾸기란 친구를 잃는 거라기보단 적을 죽이는 것과 같다. 하지만, 무미건조하게도 사람은 어떤 애증관계조차 쉽게 타넘지 못한다. 확언할 수 있는 건, 예전 고통은 예전 일, 지금 불안은 지금 것.

성격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겁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내 자신, 돈없고 살만 찐 보살의 현현 아닐까, 매일 궁금하다. 하지만, 관대함은 108초마다 발톱을 드러내 내 자신도 기절초풍할 편협함으로 변한다.

스타일 내 정수리엔 스타일링하기 거의 불가능한 쌍가마가 있다. 왁스로 적당히 손질하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지만, 둥근 머리 가죽은 늘 떡진다. 구불거릴 땐 쫙 펴보지만, 삶의 어떤 것도 지속적이진 않다. 술 마신 다음날 얼굴도 당나귀한테 걷어차인 풍선같이 변한다. 닭의 아랫볏 같은 여분의 턱살만큼 나이 들어 뵈는 건 없다. 그러나 남들은 무신경하거나 관대하다. 아, 세상은 긍정의 힘으로 가득한 살롱 같다.

친구 열 명의 새 친구가 생겼다. 세 명은 다시는 안 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친구가 정말 친구인지 단지 아는 사람인지는 지나봐야 알 테지. 결론은, 아는 것이 짐이고, 가진 것도 짐이라는 것이다.

일반적 중산계급의 우울증 더 명백해졌다. 부자 친구가 많다는 건, 악덕보단 미덕의 결과다. 그런데도 왜 그들을 콱 패주고 싶은 걸까.

재정 내 형편으론 무시무시한 돈을 썼지만 산술력은 변함없다. 대출건으로 은행에 들렀을 때, 직원이 말했다. “한국에 좀 더 계시면 나아질 거예요.” 그는 말을 못 알아듣는 내가 한국에 온 지 한 달 된 흑룡강성 교포로 알았을 것이다. 엄마는 말했다. “네 통장에 ‘빵원’있다!”

담배 올해는 더더욱 파란 연기에 싸인 담배를 피우며, 길고 음탕한 꿈을 꾸고 싶었다. 하지만 가끔 담배를‘태운’뒤, 몇 번씩 이를 헹구어도 입에 남은 냄새는 더 시체 같았다. 결국 올해도 담배를 못 배웠다.

후회 서사시 시리즈 같은 여정은 아니지만, 세상에 잘 왔다고는 생각한다. 그런데, 여전히 성장의 어디쯤에 머물러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내 인생을 단지 좋게(혹은 더 좋게) 살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저 좋게 (최소한 조금만이라도 더 좋게) 보이고 싶은 걸까.

갑자기 스무 살에 쓴 나의 유일한 시가 생각났다. 경험보다 감동적인 지식의 구문은 아니지만. ‘파리’- 난 앉고 싶은 데 앉았을 뿐

노화 일종의 단기 기억 상실이랄까, 몸의 기능이 거칠게 떨어졌다. 타인의 얼굴, 학교에서 배운 역사적 날들과 시어에 대한 기억은 꽤 좋았는데, 지난달부터 ‘그게 대체 기억이 안 나’ 증세가 생겼다. 첫 번째 인지나 두 번째 회상은 새벽의 귀신같이 스르륵 사라졌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게 다음 수십 년간 왜 중요하지?

예상 수명 그렇다고 늘어났을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누가 알겠어?

종합성적 올해도 인디 유머 속에서 흘러간다. 하지만 지난 누추함을 만회할 두 달이 아직 남았다. 인생의 풍부함은 디저트 수레처럼 뒤늦게 찾아오기도 하니, 제풀에 서둘러 낙담하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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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