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큐가 선정한 올해의 남자 part. 1

다른 누구 때문도 아니다. 당신이 잘했기 때문이다. 여기는, 사장님, 가족, 스승, 동료, 스태프, 매니저, 미용실 원장님…. 사돈의 팔촌까지 고맙다며 다른 사람 이름이나 읊어대는 허망한 자리가 아니다. 이것은 당신에게 건네는 단정한 명예다. 2009년 <GQ>가 선정한 올해의 남자인 바로 당신.

김언

김언은 올해 미당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이제야 김언이다’와 ‘왜 지금 김언인가’로 나뉘었다. 전자는 소수이고, ‘미래파’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조차 김언은 별로였다. 그의 시에는 미래파란 이름에서 기대하는 기괴한 감각성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김언이 한 문학 상담실에서 한 조언은 이전의 자기에게 부과했을 법한 다짐으로 들린다. “자기의 글이 딱딱하다면, 딱딱하게 글을 쓰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겁니다. 자신의 글이 딱딱한 이유가 나중에 가서는 자신의 글이 매력적으로 건조해지는 이유가 될 거예요.” 그는 <소설을 쓰자>에서 자신이 그렇게 쓰는 이유를 찾아 비문의 영역까지 치달았고, 일어난 사건을 옮기는 게 아니라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언어로 발생시키는 도발을 감행했다. 물론, 시가 모든 사람을 도발한 적은 없다. 후자의 대다수는 여전히 김언의 수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김언에게는 아직도 아군보다는 적군이 많다는 역설이 남았다. 그것 또한 작품만으로 그치지 않는 <소설을 쓰자>의 가치다. 조루하지 않는 젊은 시인에 대한 희망이면서, 한국의 문학상에 대한 희망으로 혼동해도 좋다. 아직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에 없는 김언의 얼굴은 이제하가 그렸다. 에디터 / 정우영, illustration / Lee Ze Ha

2PM

작년 9월 2PM이 데뷔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덤블링을 뛰고 넘는 화려한 무대였다. 7명이 별다른 신호도 보낸 것 같지 않은데 척척 열을 바꾸고 젊음이 터질 듯이 춤을 췄다. 그들의 퍼포먼스는 올해, ‘Again & Again’과 ‘니가 밉다’를 부르면서 폭발했다. 온몸을 쓸다가 못 참겠다는 듯 내뱉은 택연의 포효는 가요 프로그램도 ‘다시보기’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박력있는 노래와 화려한 퍼포먼스로 2PM이 구축한 어떤 카테고리는 케이블 TV를 통해서 보여주는 정반대 얼굴이 있었기에 비로소 완벽해졌다. <떴다 그녀>와 <와일드 바니> 속 2PM은 어리숙한 재범과 닉쿤, ‘예능끼’넘치는 우영과 뭐든 해맑은 찬성을 중심으로 웃기는 ‘애들’의 모습을 마음껏 보여줬다. 의외성과 이중성은 매력의 기본이니까 당연히 인기는 천공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11월, 드디어 2PM의 정규 앨범이 나왔다. 기대만큼 좋은 노래들과, 싱글 앨범에서부터 이어온 ‘여자를 못 잊는 남자’의 애절함이 넘친다. 아쉬움은 더 넘친다. 재범이 한가운데서 아기 늑대 같은 눈으로 서있다면…. 에디터 / 손기은, illustration / Kim Joong Hwa

박찬욱, 홍상수, 봉준호

앉은 순서는 개봉일 순이다. 4월 30일에 박찬욱의 <박쥐>가, 5월 14일에 홍상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5월 28일에 봉준호의 <마더>가 개봉했다. 세 명의 감독은 올해 ‘영화적 즐거움’의 밀도가 가장 높은 시간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성과를 이뤄냈다. 박찬욱은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흡혈귀 영화를 만들었고, 홍상수는 특유의 불편함을 상당수 걷어내고도 여전히 복잡미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고, 봉준호는 세트로 만든 집에서 살던 김혜자와 진짜 집에서 두문불출하던 원빈을 끌어내 누구보다 잘 ‘사용’했다. 칸 영화제에는 세 명 모두 갔고 그중 박찬욱은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마치 짠 것처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일을 벌였던 그들은 이제 각자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개기일식은 한 번 일어나고 나면 적어도 50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데…. 그들을 올해 같은 방식으로 다시 만날 날은 언제일까? 에디터 / 문성원, illustration / Bak Sun Woo

아마츄어 증폭기

아마츄어 증폭기의 4집 <수성랜드>는 좋은 앨범이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독특한 가사를 가진 노래들이 유기적으로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사전적이라고 할 만한 의미의 좋은 앨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보다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만든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보통 ‘진심이 담긴 노래’라고 표현하곤 하는.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묻는다면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거리낌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표면적인 요소다. 그의 노래들은 멜로디와 가사는 모두 흔히 들어본 아름다움과는 약간 다른 양식을 갖고 있다. 유튜브 같은 곳에서 그의 공연 영상을 검색해봐도 좋을 것 같다. 그는 어디에서 어떤 공연을 하든 거리낌이 없다. 아마츄어 증폭기로 활동할 때도, 야마가타 트윅스터라는 이름으로 ‘댄스 음악’을 할 때도 그랬다. 아는 사람이 없는 지방 무대에서도 기괴한 복장으로 ‘열창’을 하고, 관객들이 앉아 있으면 너무 즐겁게 춤을 추고 또 춰서 결국 모두가 따라 일어나 웃고 춤추도록 만든다. 적어도 한국 인디 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태도다. 올해 그는 지방을 포함 수많은 곳에서 노래하고 춤췄다. 그리고 ‘자립 음악가’로 살아가기 위한 여러 방법을 모색하고 주장했다. 그의 블로그에 이런 글이 있다. “(전략) 뭐라도 녹음해라. (중략)음질은 물론 뭐 같을 것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거기에 담긴 공기다. 일생에 한 번뿐인 순간의 공기. 무식한 사람은 ‘무드’라고 하겠지만.” 아마츄어 증폭기의 앨범엔 그런 공기가 담겨 있다. 그 공기와 거리낌 없는 태도가, ‘진심’같은 단어를 2009년에도 촌스럽지 않게 만드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에디터 / 문성원, illustration / Byul.org

이병헌

이병헌은 이제 마흔이다. 지금껏 그의 위치는 꽤 미묘했다. 스타라고 하기엔 우물을 파는 배우에 가까워 보였고, 그렇다고 정통파 배우라고 하기엔 상업 영화와 대작 드라마 위주의 스타 같았다. 한쪽으로 확 기울었던 적이 없다. 올해는 좀 달랐다. 믿을 만한 배우라는 축을 그대로 둔 채, 그는 완전히 스타가 됐다. 해외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때문만은 아니다. 해외 영화에서도 이병헌이 이병헌일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선 수트를 입었을 때라면 어떤 배우와 함께 등장해도 존재감에서 앞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넓은 정으로 깎은 듯한 얼굴과 생고무 질감의 몸은 오히려 비교 대상이 있을 때 더 빛났다. 블록버스터였던 <지.아이.조>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채닝 테이텀보다 하얀 닌자 복장과 하얀 수트만 입던 이병헌이 더 기억에 남을 정도니까. 그리고 드라마 <아이리스>. 그는 대규모 드라마에선 한국에서 제일 잘 어울리는 남자 배우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올해 이병헌보다 좋은 경력을 쌓은 한국 배우는 없다. 그리고 모두 운보다는 ‘가진 것’들로 이뤄낸 결과다. 에디터 / 문성원, illustration / Kim Young June

이승환

“당신은, 가 선정한 올해의 남자입니다”라는 편지에 이승환이 이런 답장을 보내왔다“. 2008년 9월 30일자로 연예 매니지먼트 일을 정리한 이후 불행하지 않으니 행복한… 그야말로 잔잔한 삶을 누렸더랬습니다. 이번 해에는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부딪치지 않고, 섣부르게 나서지 않기를, 저를 다잡아 봅니다. 앞으로의 20년 동안 예전처럼 제 노래가 널리 퍼져 들리지 않는다 해도 어디선가 전 똑같은 마음으로, 똑같은 얼굴로 (…)열심히 음악하고 있을 겁니다. 지난 20년, 감사했습니다.” 공연 ‘차카게살자’수익금 4천3백여 만원을 전액 기부한 게 3월,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에서 “어릴 때 배운 대로 위로가 되어 주는 사람의 도리를 다하려고 이 자리에 섰을 뿐이니 팬들도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던 건 4월, 새만금 록페스티벌은 소신과 맞지 않는다며 출연을 번복해 8백만원을 물었던 건 6월이었다. 11월의 인터뷰에선 “‘부딪치되 흔들리지 않고, 조용하되 침묵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20주년 기념 앨범 <환타스틱 프렌즈>의 타이틀곡 ‘좋은날 2’의 가사는 이렇다. “이만하면 괜찮아 뭔가 찜찜해도/난 전보다 덜 엉망인걸 it’s wonderful day/ 오늘 하루 난 실컷 먹고 잘꺼야 it’s wonderful day/열심히 살은 갸륵한 내게 주는 선물이야.” 이승환이 말하길 “그야말로 잔잔한 삶”이었던 2009년의 일부다. 에디터 / 정우성, illustration / Lee Ji Su

이민호

<꽃보다 남자>는 일본과 대만에서 이미 큰 인기를 거둔 ‘검증된’작품이다. 누가 구준표 역을 맡느냐는 업계의 이슈이자 대중의 이슈였다. 꽃보다 화려한 인기를 얻게 될 것이 뻔한 역할은 이민호의 행운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구준표를 2009년 상반기의 문화 사회적 ‘아이콘’으로 띄우는 데 성공했다. 사실 이민호는 타고난 인물과 훤칠한 키라는 우월한 조건을 갖춘 채 몇 발짝 앞서서 레이스를 시작했다. 그럴 때 으레 따라오는 질투와 ‘연기력 논란’은 이민호 스스로가 눌렀다. 이민호는 짜증, 귀찮음, 답답함, 시건방의 연기에선 2009년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배우니까 말이다. 먼 기억 속에 있는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를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후속 작품을 빨리 정하지 않은 ‘잊혀지기 전략’이 꽤 유효해 보인다. 이민호는 ‘벼락 스타’나 ‘왕자’보다 훨씬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그릇이니까. 우선은 올해는 만화 속 주인공처럼 근사했던 이민호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본다. 에디터 / 손기은, illustration / Park Hee Jung

김병욱

<지붕 뚫고 하이킥>은 너무 많이 울렸다. 또 너무 많이 웃게 했다. 풍자와 해학이란 게 그렇다. 울음에도 물길을 내서 웃음으로 흐르게 한다. 웃음거리로 만들면서 너를 사랑해서 그런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본심이 전달되기엔 세상의 의심은 깊다. 김병욱은 모든 인물을 마크 트웨인이 다루는 허클베리 핀으로 여긴다. 학교도 못 다니는 극빈층, 돈은 풍족하지만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는 가족들, 김병욱은 캐릭터의 흠을 보여준 다음 정중하게 그들을 살핀다. 편지를 쓸 때의 태도다. 상허 이태준 선생은 <문장강화>에서 편지에 대해 지적했다. “감정을 상하지 않게 쓸 것. 글에는 표정이 따라가지 못한다.” 김병욱은 본심에도 표정이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사려를 더한다. 극중, 세경과 아버지가 서로의 가방에 집어넣은 돈을 붙들고 펑펑 우는 장면, 한쪽의 돈은 구겨져 있고 한쪽은 빳빳하다. 펑펑 울면서 깨닫는 부모와 자식의 역전. 김병욱은 이미 놀랄 만한 드라마를 만들고, 거기에서 캐릭터를 한 번 더 보듬는다. 이 희귀한 능력은 아무리 비정한 상황이 벌어져도 거기에 함몰되지 않고, 비정함이 현실이라는 자각을 불러일으킨다. 비정한 세계를 인정한 사람의 코미디에서, 울음과 웃음은 평등하다. 에디터 / 정우영, illustration / Hong Young Woo

한진희

그는 올해 역정낼 일이 잦았다. 주몽 때문에(<바람의 나라>의 대소) 그리고 주아란 때문에(<천사의 유혹>의 신우섭). 또한 그는 올해 욕먹을 짓이란 짓은 있는 대로 골라 했다. 돈에 눈이 멀어서(<녹색마차>의 윤성근) 그리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가장이라서(<보석비빔밥>의 궁상식). 한진희는 그렇게 캐릭터의 극단을 오가며 빛나는 조연이 무엇인지, 아니 그전에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 연기로 증명했다. 매정함과 잔인함을 연기할 땐 독사의 공격처럼 한 치의 여지도 없었다. 그 얼굴 앞에서라면 10원만 깎아달란 말도 목구멍으로 쑥 들어갈 판이었다. 하지만 그가 입을 헤 벌리고 털레털레 골목길을 걸어갈 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끌끌 혀를 차고 말 것이다. 어쩜 저리 궁상맞을까 싶어서. 70년대, 한진희는 훤칠한 남자 배우의 대명사이자 ‘양복’광고계의 슈퍼모델이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선생님 소리나 들으면서 가끔 우스개로 추억을 파는 ‘탤런트’로 남지 않았다. 한진희는 확실한 캐릭터에 걸맞은 옹골찬 연기로만 화면을 장악했다. 주연인가 조연인가라는 문제를 넘어서서, 시청률이 높은지 안 높은지 같은 문제와는 상관없이, 다만 그가 배우라는 간명한 사실이 마음에서 우러나도록 만들었다. “그냥 드라마로만, 연기로만 뵈었으면 합니다.” 그는 매번 같은 이유로 인터뷰를 고사한다. 이상한 건 거절당하면서도 고맙다는 생각이 깊숙하게 든다는 것이다. 그가 <천사의 유혹>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아니 뭐야?” 호통 치면 뭐든 쪼그라든다. “연기하시는 거죠? 정말로 화내시는 건 아니죠? 진짜 나쁜 분은 아니시죠? 그렇죠?” 두 손 모아 공손하게 묻고 싶어진다. 에디터 / 장우철, illustration / Bae Min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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