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큐가 선정한 올해의 남자 Part. 2

다른 누구 때문도 아니다. 당신이 잘했기 때문이다. 여기는, 사장님, 가족, 스승, 동료, 스태프, 매니저, 미용실 원장님…. 사돈의 팔촌까지 고맙다며 다른 사람 이름이나 읊어대는 허망한 자리가 아니다. 이것은 당신에게 건네는 단정한 명예다. 2009년 <GQ>가 선정한 올해의 남자인 바로 당신.

1박 2일 팀

산천경계 좋고 바람 시원한 곳도 있었고,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는 곳도 있었다. 여섯 남자는 일단 모여서 어딘가로 떠났다. 해야 할 일은 목적지까지 무사히가기, 배고프면 밥 먹기, 때 되면 잠자기, 생각나는 대로 놀기…. 아이고 쉽기도 해라. 문제는 그 모두에 ‘버라이어티’를 몸소 새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1박 2일>의 여섯 멤버 강호동, 김C,이수근, 은지원, MC몽, 이승기는 이른바‘버라이어티 정신’을 위해 제정신을 놓기 일쑤였다‘. 리얼’에 ‘야생’을 더하더니 마침내 ‘버라이어티 정신’을 대놓고 외치며 국토를 종횡무진하는동안, 여섯 남자는‘캐릭터’와‘진짜’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설사 그것이 또 다른 설정일 뿐이라 해도, 맘 놓고 즐거울 수 있었다. 강호동은 과연대장다웠고(장난도 대장급으로 쳤고), 김C는 믿음직했고(때로 처량했지만), 이수근은 적소에서 웃겼고(미워할 수 없는 야비한 수도 곧잘 쓰면서), 은지원은 철부지 도련님 같았고‘( 서울소년’이라는 맞춤한 캐릭터로서), MC 몽은 개구졌고(머리 좋게 엉뚱한 건지, 엉뚱하게도 머리 좋아 보인 건지 헷갈리게 만들면서), 이승기는 막내답게 귀여웠다(허당도 꽤 많이 짚었다). 남자여섯이지만 칙칙하거나 징글맞거나 공격적이지 않았다. 나만 아니면 된다며, 별의별 꾀를 다 부렸어도, 결국 형 같고 동생 같고, 그랬다. 에디터 / 장우철, illustration / Golfanji

윤진욱

윤진욱은 밤톨 같다. 알이 단단하게 꽉찬 작은 밤톨 같은 얼굴을 가진 청년은 어느 때라도 촬영이 시작되면 그 얼굴이 주는 잔상대로 조밀하고도 단정한 표정과 손짓을 만든다. 윤진욱은 스펀지 같다. 밤톨 얼굴을 갖고 천 개의 표정을 짓는다. 지난달 전통 놀음 배우와 무형문화재 앞에서‘흥겹게’란 사진가의 요구에 손바닥을 좌우로 흔들면서탈춤을 췄다. 올해 윤진욱은 전에 없던 일을 몇 가지 했다. [GQ STYLE] 독일판표지 모델이 됐고 갭 광고에도 모델로 섰다. 오토바이 사고도 있었다. 그래서 올해는 화보 촬영장보다 병원 침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열다섯 살엔 축구 선수가 장래 희망이었다는 스물다섯 살 윤진욱은, 쉰다섯쯤엔 오토바이 위에서 여유를 부리며 사는 게 꿈이다. 서른다섯엔 해야할 일,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바쁘겠다는 윤진욱은 촬영 후 연기 수업을 받으러간다고 했다. 12월호 [GQ]가 나올 때쯤, 그는 남태훈 감독의 SF스릴러 영화촬영장에 있을 거다. 첫 영화 데뷔를 준비 중인 배우는 헬멧과 가방을 챙기고 이어폰을 꽂더니 ‘젯’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스튜디오를 떠났다. 에디터 / 박정혜, illustration / Park Chang Yong

배칠수

지난 5월 25일 MBC 라디오 표준 FM <최양락의 재밌는 라디오>에서, 배칠수가 모사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열심히 잘들 지내시고요. 건강들 하십시오.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이미 울던 사람들은 한 번 더 울었다.지난 8월 19일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을 수 있었다. 네 음운짜리 단어였다. 누군가에겐 ‘일생’이었다.최양락은 말했다“. 그동안 문제를 일부러 틀리느라고 고생하셨는데, 여러분이 양해해주신다면 처음으로 정답을 맞추는 모습을보여드리고 싶습니다.”그리고 문제를 내지 않고 물었다“. 정답 아시겠습니까?”배칠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목소리로 말했다.“민주주의.”마지막이었다. 그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성대모사는 앞으로 방송에서 일체 하지 않겠다.그분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배칠수의 성대모사는‘, 닮은 목소리’라는 사전의 정의 저편에서 조금 더 깊다. 그는 말했다“. 원랜 조금 더 긴 대사였지만, 그러다 울컥이라도 하면, 그건 ‘오버’니까 짧게 끊은 거예요. 너무 친근하던 어른이고,대통령이었던 분이고…. 그런 감정이었어요. 그러곤 결국 웃음을 말했다“. 웃음엔 값어치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호동이형이나 재석이가 주는 웃음이나, 지금도 구석에서 코너 짜고 있는 후배들이 주는 웃음의 값어치는 같은 거니까요. 제가 뽑혔을 정도면,어떤 사회적 모양새가 달라붙어야 올해의 남자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 친구들도 좀 뽑아주세요.”라디오 부스에 앉아 있는배칠수와 마이크를 물고 있는 앵무새는 박재동 화백이 그렸다. 에디터 / 정우성, illustration / Park Jae Dong

원빈

원빈이 처음 데뷔했을 때 사람들은 얼굴처럼 매끈하고 부드러운 ‘스타’로서 충실한 역할만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그건 원빈이 얼마나 ‘엔터테인먼트’적인 면모가 부족한 배우인지 모른 채 내린 결론이었다‘. 끼’나‘재능’의 부재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수완’을 발휘하거나‘잰 척’을 할 의지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 원빈의 모습은 올해 영화 <마더> 속에서 불을 뿜었다.<마더> 속도준은 잘하려고 애쓰는 티가 나지 않는 그저 ‘바보’의 모습이 됐다. 원빈은 드라마 <가을동화>보다 <꼭지> 속 역할이 훨씬 편했다고 하고, 스스로가 별 매력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생각해보면 이제 대중도 원빈에게서 의외의 재치라든지, 망가지는 모습의 쾌감 따위를 바라지 않는다. 원빈이니까. 올해의 남자에 선정된 소감도 너무 원빈이다“. 작년에 있었던와의 첫 인연이 떠오르네요. 올해도 저에게는 매우 인상적인 한 해였어요. <마더>로 다시 여러분들 앞에 설 수 있었고, 해외에서도 큰 무대에서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으니까요.”의미있는시간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에디터 / 손기은, illustration / Shin Chang Yong

조정석과 김무열

홀린 사람. 무대에서 직접 마주치는 배우들은 대개 그렇게 보인다. 허공을 향하고 있으면서도 누군가를 뚫어져라 갈망하는 듯할 때, 그건 생생함을 넘어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기분. 올해 김무열과 조정석을 보면서 그랬다. 뮤지컬흥행의 최전방에 있는 배우로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나란히 캐스팅 되었을 때, 흥분은 모두의 것이었다. 김무열이 연기한 멜키어는 자유롭다.조정석이 연기한 모리츠도 자유롭다. 멜키어는 그것을 통제할 줄 안다(고 생각한다). 지성과 반성의 힘이다. 모리츠는 어쩔 줄 모른다. 그는 함몰한다. 사춘기, 누구나 겪고 기억하지만, 누구도행복하지 않은 시간. 김무열의 멜키어는 태풍의 눈에서 잠깐 갖는 평화처럼 미치도록 아름답고 헛되도록 불안하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심장을 떨면서 발음하는 것 같은 조정석의 모리츠는 누군가의 운명처럼 뭔가를 자꾸 예견하게 만든다. 둘의 앙상블은 한 장면에 함께 있지 않아도 부딪히고 산화하고 깨져버린다. 산산조각 난 그것들을 주워 담으면 거울이 되지 않을까? 섬뜩할 만큼 차갑게 서로를 비추는 거울. 오늘 공연을 마친 그들에게 어제의 무대와 내일의 무대는 무엇일까? 어제는 사라져버렸으니 그건 꿈이 아닐까? 내일은 오지 않았으니 그것도 꿈이 아닐까? 어제라 한들, 꿈이라 한들, 약속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저 빛나는 것 좀 봐!라고 외칠 때처럼 무대 위의 그들을 보고만 있는 것이다. 홀린 사람처럼. 에디터 / 장우철, illustration / Lee Cha Ryung

김창완 밴드

김창완 밴드의 1집 엔 오래 응시하다가끔 노려보는 것 같은, 불안하지만 조숙한 청년의 노래가 담겨 있었다. 김창완은 말했다. “아직 김창완 밴드의 정체성은 정해지지 않았어요. 목적지 없는 출발 같지만, 그런 태도야말로 음악적으로 열려 있는 것 아닐까요?” 지난 10월 7일 홍대 클럽 ‘타’엔 김창완 밴드 1집 를 축하하는 사람들이 몰래 모였다. 형식은 없었다. 비공개축하 파티였다. 김창완은, 가장 먼저 무대에 올라 1집 수록곡을 차례차례 불렀다‘. 언제의 김창완’이 아니라 ‘그냥 그때’의 김창완그대로. 뒤에서 김양평(하세가와 요헤이)이기타를, 이상훈이 키보드를, 최원식이 베이스를, 이민우가 드럼을 치고 있었다. 김창완 밴드의 현재다. 1977년에 산울림으로 데뷔한 뮤지션의 지금이다. 햇빛은 닿지 않는지하 클럽이다. 어쩌면, 한국 가요계의 가장의미있는 ‘진화’다“. 올해의 남자? 밴드는 홀대받는 가요계에서, 인디 밴드 같은 우리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는 게, 갑자기 눈부시기도 하고…. 라임라이트도 못 받고 있는데, 의아하지요.” 김창완은 이런 소감을 전해왔다. 사실, 의아할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에디터 / 정우성, illustration / Lee Kang Hoon

이청용과 기성용

한국 축구는 두 명의‘용’이 나타나면서 더 빨라지고 재미있어졌다. 88년생 이 청용과 89년생 기성용은 프로 팀에서든 국가대표 팀에서든 ‘젊은 피’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냈다. 둘은 첫 프로팀이 FC 서울로 같다. 그래서 그런지 두 명이 함께 대표 팀 경기에 출전하면 평소보다 조직력이 좀 더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록을 보면 좀 확실해진다. 둘이 대표 팀으로 함께 뛴13경기에서 대표 팀의 기록은 9승 4무였다. 함께 뛰지 못한 7경기에서는 2승 5무다. 두 번은 한 명이 어시스트를 하고 한 명이 골을 넣었다. 둘 다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겼지만 많은 해외 클럽에서관심을 가졌다는 것도 같다. 이청용은 지난 8월,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볼튼 원더러스’에 입단했다. 그리고 시즌의 반도 지나지 않은 지금 2골 2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들어가자마자 팀의 주축 선수 중 한 명이 된 것이다. 기성용은 내년 1월쯤 스코티쉬 프리미어 리그의‘셀틱 FC’로 갈 것이다. 둘을 보면 해외 리그로 가는 것이 ‘형 먼저 아우 먼저’하는 문제처럼 쉽게 느껴진다.내년에는 월드컵이 있다. 월드컵이 끝나고 나면 둘의 입지는 지금보다 더 높아져 있을 것이다. 다행히, 모두가 그러길 바라고 있다. 에티터 / 문성원, illustration / Lee Jae June

임영웅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단 두 개의 무대 설명 가운데 하나다. 초연을 준비하던 1969년, 임영웅 주변의 풍경도 황량했다. 서른다섯 살 임영웅은 두 번째 연출작을 준비 중이었다. 극단 산울림은 이제 막 첫발을 뗐다. 그러나 초연 일주일 전 베케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그것은 신생 극단에 쏟아진 행운이면서, 일종의 암시였다. 감당하지 못할 행운의 여분을 연출가는 몇 번이나 곱씹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대단한 성공이 행운이라면, 행운을 역사로 남게 만든 건 한 사람의 의지다. 2009년, 임영웅 주변의 풍경은 변했다. 극단의 전용 극장이 생겼고, 극단이 위치한 홍대는 이전과 사뭇 다른 장소가 됐다. 그러는 동안 <고도를 기다리며>는 40주년을 맞았다. 배우가 여러 차례 바뀌었고, 무대에 있는 나무도 초연 때의 그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사는 오증자번역본을 그대로 옮기는 원칙을 똑같이 고수한다. 미미, 고고는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대화를 하면서 꾸준하게고도를 기다린다. 임영웅은 말했다“. 관객들은 이제 고도가 누군지 묻지 않죠.”현대성은‘전통의 전복’에만 있지 않을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2막의 무대 설명은‘이튿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시작한다. 에디터 / 정우영, illustration / Lee 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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