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재단사

윤기 넘치는 갈색 종마 그림이 걸린 방. 이제 여기서 수트와 셔츠를 맞출 수 있다.

가죽끈이 달린 캐시미어 코트와 장갑도 있고, 말 안장도 있고 금테를 두른 커피잔도 있고 다이아몬드 반지도 있고 운동화도 있고 담요도 있고 줄자도 있고 USB도 있다. 게다가 레스토랑과 깃발을 펄럭이는 동상까지 에르메스 플래그십스토어에는 없는 게 없다. 딱 하나 맞춤복만 빼고.이 세상 귀하고 예쁜 걸 다 가졌으니 하나쯤 없어도 될 것 같았는데, 11월부터는 그것까지 가질 수 있게 됐다. 도산공원 앞 에르메스 플래그십스토어 2층, 오전 햇살이 잘 드는 남자용 VIP룸에서 그 과정은 시작된다. 우선 초록색 에르메스 상자에 담긴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고 존 롭 가죽 슬리퍼로 갈아신는다. 좋은 옷을 만나는 자리니까. 긴 행어에 재킷 8개, 바지 6개, 베스트 1개가 반듯하게 걸려 있다. 동일한 남색 원단에 50 사이즈. 맞춤 수트용 샘플이다. 라펠과 주머니 모양,단추와 주름의 수가 조금씩 다르다. 몸 치수를 재고 마음에 드는 스타일부터 소재, 안감, 단추, 실 색깔, 이니셜 형태를 정한다. 머리가 아프면 신문도 읽고 커피도 마신다. 커다란 선반장의 백과사전집 같은 책들은 에르메스가 만들 수 있는 원단 스크랩이다. 선택이 끝나면 주문서는 파리장인의 손으로, 이탈리아 수트 작업실로 넘어간다. 7주를 기다리고 종마 그림이 걸린 그 방을 다시 찾아간다. 수트가 도착한다. 수트와 몸의 완벽한 조화를 확인하고 수트는 주인과 함께 방을 떠난다. 수트, 베스트, 코트는 기성복 샘플을 고른 후 몸에 맞게 제작하는‘데미 메저(반맞춤)’, 셔츠는 몸 치수를 재서 완벽하게 새로 제작하는‘수 메저(완전 맞춤)’방식이다. 왼쪽 사진에서 행어 제일 앞의크림색 광목 셔츠는 에르메스 도산점을 위해 제일 처음 만들어진 견본이다. 에르메스니까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 커프스에 가죽 스트랩을 끼울 수도, 금 단추를 달 수도, 실크 스카프 천으로셔츠와 안감을 만들 수도 있다. 이 모든 건 프랑스 포부흐, 일본 긴자, 미국 매디슨, 중국 상하이,그리고 한국 도 산파크 점에만 실현 가능한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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