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정말 섹시해요?

섹시하면 팔린다. 하지만 벗었다고 섹시해지는 건 아니다. ‘섹시’에도 격과 정도가 있다는 걸 아직 모르는 이들이 있다.

예전에는 거짓말쟁이가 많았다. 대중은 여자 가수들이 노골적인 섹스어필을 시도하는 것에 내심 주목하면서도 겉으로는 싫어하는 척했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SES나 핑클은 요즘 소녀 아이돌과 비교하면 참으로 조신한 스타일로 등장했다. 그들보다 ‘약간’ 더 노골적인 승부수를 띄웠던 베이비 복스가 한때 ‘미아리 복스’라는 경멸적인 별명으로 불렸던 것을 생각하면, 세상은 많이 변했다. 오히려, 이효리의 성공 이후 여자 가수들의 섹스어필은 필수가 됐다. 데뷔 당시 멤버 전원이 미성년자였던 원더걸스 같은 팀조차 그들의 성적 매력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성공했다. 이후로 대중은 많이 솔직해졌다. 남성들은 이제 더 이상 화면 속의 상대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 숨기거나 죄악시하지 않는다. 미성년자를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애프터스쿨의 유이에게 감히 ‘꿀벅지’라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용어를 대놓고 말할 정도다. 여성들도 저 헐벗고 날씬한 여자애들을 동경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해하기보다, 솔직하게 부러워하고 기꺼이 따라하기 시작했다. 이젠 거의 모든 여성 그룹이 섹스어필이라는 무기를 최전선에 배치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2009년은 그 정점이었다.

2008년 ‘미쳤어’로 놀라운 성공을 거둔 손담비는 이미 2006년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2007년에 첫 싱글을 발표했다. 첫 뮤직비디오 ‘Cry Eye’를 관람한 사람들은 지금과 다른 콘셉트의 손담비를 보고 놀랄지도 모른다. 거의 차도르를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렸다. 노출이나 섹스어필과는 거리가 있다. 손담비는 의자에 거꾸로 앉아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한쪽 다리를 회전시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자신의 장점이 살아 있는 신체 부위를 최대한 노출시켰다. 아예 카메라 앞에서 누워버리는 식의 과감한 포즈로 후속타까지 터뜨렸다.

손담비의 섹스어필이 결국 마케팅 포인트 그 자체라는사실을 알고 있었던 기획자들은 더 이상 음악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1980년대 레트로 스타일이라고 포장됐지만 사실은 세미 트로트였던 ‘토요일 밤에’는 그렇게 탄생했다.손담비는 ‘의외로’ 가창력과 미모를 겸비한 아티스트다. 재능이 외모에 가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티스트’가 되어달라는 혹독한 요구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의 마케팅은 ‘손담비가 반쯤 벗고 움직이는 동영상’만 있으면 된다는 식이다. 가수의 진정한 가치는 결국 노래로 나타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척이라도 해줬으면 싶다.

2009년 최대어가 될 수 있었던 아이비는 지나친 섹스어필로 실패했다. 2년 만에 돌아오면서, 뭔가 파격적인 모습을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작용했던 게 아닐까? 컴백 무대부터 지나친 노출과 무리한 안무로 ‘승부를 걸려 하는’모습이 보였다. 결국 한 케이블 TV 시상식에서 일이 터졌다. 아이비는 핏줄이 드러날 정도로 압박한 가슴을 반 정도 드러냈다. 지독하게 색정적인 퍼포먼스였다. 상대는 2PM의 닉쿤이었다.2PM의 팬들은 아이비에게 총공격을 감행했다. 아이비는 미니홈피를 폐쇄하고 의연하게 대처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많았던 아이비의 팬들이 그녀를 감싸는 모습이 적극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래 남성 아이돌 스타와 여성스타 사이의 스캔들이나 무리한 합동 무대에 대해 남성 스타의 팬덤이 들고 일어날 때는, DC 인사이드를 베이스 캠프로 한 여성 스타의 옹호 세력이 일련의 ‘대첩’을 연출하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번엔 아이비를 옹호하는 세력이 극히 드물었다. 노골적인 섹스어필의 타깃은 분명히 남성이었을 텐데도, 그들에게 제대로 꽂히지 않았다는 증거다. 덕분에 ‘몸 버리고 뺨 맞는’ 슬픈 상황이 전개됐다.

아이비는 이효리 이후 섹스어필을 가장 도드라지게 내세웠던 여자 가수다. 여성 아티스트의 성적 매력을 이용하는 것으로는 달인 수준인 박진영의 프로듀싱으로 데뷔했다.2집 ‘유혹의 소나타’때는 더 앙칼지고 농염한 팜므 파탈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번엔 안일했다. 우스타 교스케의 만화 〈멋지다 마사루〉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섹시한 사람에게 섹시코만도를 시키는 것은 카페오레에 커피우유를 넣는 것과 같다.”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하고 ‘섹시한 옷을입고 섹시한 동작까지 하고 있으니 섹시하다고 생각해줘’ 정도의 섹스어필은 더 이상 매출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옷을 덜 입고 대중 앞에 나선다는 이유로 인기를 얻던 시절도 있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몸매가 드러나는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응원한 덕에 결국 가수의 길에 들어선 미나가 대표 주자다. 2006년 월드컵 때 그녀는 세미 누드로 4강을 기원했다. 2010년 월드컵을 대비해 컴백한 미나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점층법적인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는 대중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마침 신곡이 등장했다.그로테스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공적인 섹스어필이었다. 그녀의 공상과학적 스타일링은, SF 페티시를 지닌 이들이 아니라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였다. 미나의 이번 활동 중 최고는 음악도 춤도 아니었다. ‘성형 의혹, 노출증, 누드 사진이 있다는 온갖 소문에 시달렸다’는 인터뷰였다.

미성년자가 멤버로 있는 팀이라고 해서 섹스어필을 피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원더걸스에 이어 포미닛이 증거하고있다. 소녀시대는 밀리터리 룩으로 페티시즘을 자극했다.은근한 섹시 콘셉트였다. ‘소녀’는 청순의 상징이니까, 간접적이고 상징적인 섹스어필로 승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은근한 섹스어필이 멤버들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제시카와 써니의 ‘비교적’ 여성스러운 몸매, 아름다운 각선미를 지닌 수영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기획사 입장에서 소녀시대는 ‘장기적 안목’으로 운영되는 아이템일 것이다. 그들을 조심스럽게 다루고자 하는 기획자의 소심함이 오히려 ‘섹스어필’에도 강점이 됐다. 여성 아티스트들의 노골적 섹스어필을 당장 중단하라는 계몽을 늘어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섹스어필에도 도가 있다는 말이다. 비욘세의 ‘Single Lady’ 퍼포먼스가 노골적인 섹스어필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비욘세의 허리 동작은 에로스를 넘어 포르노의 영역까지 침범한다는 느낌까지 든다. 하지만 춤은 기술적으로 놀라웠다. 비디오 클립의 비주얼 역시 걸출했다. 그 모든 형식에 담긴 내용, 노래가 훌륭했다. 무대 위에 침대 하나 세로로 세워 섹스를 연출하는 장난과는 몇 광년 이상 떨어져 있다. 어떤 노래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섹스어필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브라운 아이드걸스는 원래 한국형 알앤비 혹은 미들 템포 음악으로 승부하는 그룹이었다. 말하자면, 원더걸스 이후의 여성 아이돌 그룹들과는 거리가 있는 팀이었다. 섹스어필을 내세울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매출 신장을 위해 변신을 감행했다. 비교적 어린 멤버 가인을 영입했고 짧은 치마와 어깨가 드러나는 의상을 선택했다. 2008년 가인이 ‘손타킹’이라는 별명을 얻어가며 획득한 인기를 그들은 2009년 ‘아브라카다브라’라는 히트곡을 터뜨리며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업그레이드했다. 지난해 짧은 치마조차 어색했다던 그들은 올해 더욱 노골적인 섹스어필을 무대 위에서 감행했다. 뮤직 비디오에서는‘동성 키스’같은 금단의 아이템도 사용했다. 이들의 콘셉트와 퍼포먼스는 그들이 발표한 노래와 어우러져 은근한 색기를 발산했다.

이제, 대중은 예쁜 여자가 옷을 좀 벗고 무대에 올라 왔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환영하지 않는다. 뜬금없이 성적인 코드를 노래에 삽입한다는 이유로 낚이지도 않는다. 얼마 전엔 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솔로 음반을 발표하면서 ‘노래에 신음 소리를 집어넣어 물의를 일으켰다’는 홍보 자료를 스스로 내는 해프닝을 벌였다. 노력은 가상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 부분’만 캡처되어 네티즌 사이에서 공유됐을 뿐이다.당분간은 여성 아이돌 그룹들의 강세가 지속될 것이다. 이효리를 필두로 성적 매력을 콘셉트로 승부하는 솔로 가수들 역시 중앙에 포진할 것이다. 그들이 섹시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무조건 섹시하게’ 들이대는 시대는 갔다.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비의 실패가 전자의 증명이고, 소녀시대의 은근한 섹스어필이 후자의 모범이다. 그래야 더 많은 대중이 매료될 것이다.

글 / 현현(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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