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의 대형 제품

덩치가 큰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멸종 위기의 대형 제품 6개를 사용하는 6명의 남자가 그 이유에 대해 말한다. 일단 밥을 많이 먹어서는 아니다.

린호프 마스터 테크니카 3000(430 X 180 X 180mm, 2600g)디지털도 쓰고 35mm 슬라이드 필름도 썼는데 작년쯤 갑자기 다 식상해졌어요. 단순한 사진이 찍고 싶었어요. 흑백사진을 찍으면 어떨까 궁금했죠. 핫셀블라드와 롤라이 카메라로 잠깐 찍다 대형 사진에 대해 알게 됐어요. 아마추어들이 그렇잖아요. 뭔가 바꾸면 잘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한 게 사실이에요. 대형 카메라는 정말 요즘 카메라에 비하면 너무 불편해요. 삼각대가 꼭 필요하고 배낭에 짊어지고 나가도 한 컷 촬영하려면 30~40분씩 걸리니까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민망하고. 나가면 하루에 열 컷 정도 찍는 것 같아요. 그래도 판형이 크다 보니 나무 같은 걸 찍으면 디테일이 정말 기가 막혀요. 그것 때문에 대형 카메라에 빠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불편한 그 과정들이 재미있어요. 새걸로 사서 보디만 9백만원 정도였어요. 환율에 따라 변해서 지금은 얼마인지 모르겠네요. 취미로 사진 하는 사람들이 사고 싶은 건 참 많죠. 그런데 어차피 다 살 순 없어요. 그냥 여기까지 온 걸로 만족하고 있어요. 염상협(사업가)

바이거 인디안 시그너쳐(970mm, 120000g) 3년 전에 국내에 수입됐다는 얘길 듣고 구입했어요. 처음부터 대형을 원했기 때문에 집에 놓는 데 큰 무리는 없었어요. 직업 때문에 감상보다는 정확한 소리를 위한 세팅을 원해요. 취향을 위해 오디오를 구입하면 이 소리 저 소리 즐기기 위해 기기를 계속 바꾸게 되는데 저는 한 번 구입하면 거의 안 바꿔요. 확실히 이 턴테이블은 중립적인 소리를 내요. 오디오는 저가일수록 개성이 강하죠. 전체적으로 정확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성이라도 있어야 하니까요. 고가일수록 개성이 없다고 생각하면 간단하겠네요. 그리고 대형일수록 소리에 여유가 있고 스케일이 커요. 판이 돌아가면 계속 공진이 일어나는데 그걸 얼마나 잘 제어해서 소리의 손실을 줄이느냐가 제일 중요하거든요. 이렇게 큰 이유도 대부분 그것 때문이에요. 가격은 5천5백만원 정도였는데 더 비싼 턴테이블도 있어요. 10억원 정도…. 전 세계에 열 대 정도 있는데 거기에 비하면 훨씬 싸지만 만족해요. 제 기준으로 가정에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중립적인 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요. 박성준(지휘자)

비엘 챠퍼스 BL918 화이트로즈(2860 X 1170 X 1100mm, 320000g) 할리 데이비슨을 타다 보편적으로 살 수 있는 바이크들이 좀 지겹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수공으로 제작하는 비엘 챠퍼스에서 좋아하는 모양과 무늬로 만들기로 마음먹었어요. 만드는 중간 중간 상의를 하느라 꽤 오랜 시간이 걸렸죠. 918 시리즈가 커스텀 시리즈 중에서도 제일 크고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드는 바이크예요. 크기는 확실히 커요. 보통은 바이크를 탄다고 하면 속도를 생각하는데 이건 빨리 달리기 위한 바이크가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속도를 그리 즐기지도 않고요. 그것보다는 소리나 묵직한 승차감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바이크랄까요. 원래 챠퍼가 그렇잖아요. 그리고 클수록 더 안전하기도 하고요. 가격은 처음에 업체에서 5천만원 정도를 제시했는데 그 부근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편하게 탈 만한 작은 바이크는 아니지만 달릴 때의 느낌이나 아무 데서나 볼 수 없는 무늬만으로도 즐거워요. 최지웅(사업가)

시그마 APO 200-500mm F2.8 EX DG(726mm, 15700g) 취미로 조류 촬영을 많이 하다 보니, 아무래도 망원 렌즈가 필요했어요. 한 자리에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어서 크고 무거워도 상관없으니 성능 좋은 줌 렌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시그마에서 나온 이 렌즈를 봤는데 화각도 딱 마음에 들고 조리개가 어떤 화각에서도 F2.8까지 열린다는 게 놀라웠어요. 사실 500mm에서 조리개를 F2.8까지 열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선택 범위가 넓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렌즈 성능은 아주 좋아요. 최대 구경에서도 색수차가 거의 없거든요. 모든 화각에서 사진이 고르게 잘 나와요. 그리고 컨버터를 달면 화각이 400~1000mm가 돼요. 그 상태에서도 자동 초점이 가능한데 그런 렌즈가 또 있는지 모르겠네요. 가격이 4천5백만원 정도라 부담스럽긴 했지만 2년 정도 쓰다 보니 아쉬운 마음은 없어요. 이걸로 찍은 새가 몇 마린지…. 장성영(공무원)

서멀테이크 레벨10(614 X 318 X 666mm, 21370g)서멀테이크가 BMW 디자인 연구소와 합작 개발해 작년에 나온 케이스에요. 처음엔 콘셉트 제품인 줄 알았는데 곧 5백 대만 한정 생산 한다는 정보를 들었어요. 한국엔 30대가 들어왔고요. 당시 85만원에 산 걸로 기억해요. 컴퓨터 케이스만 그 가격을 주고 산다면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많죠. 이 케이스는 각 부품에 맞게 공간이 할애되어 있는데 그건 크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그래서 공기 순환이 잘되고 무겁기 때문에 진동도 잘 잡아요. 영상광고 일을 하고 있어서 컴퓨터 사양이 좋을 필요가 있긴 한데 그래서 이 케이스를 쓰는 건 아니에요. 포르쉐를 탄다고 자동차 경주에 꼭 나가야 하는 게 아닌 것처럼요. 대부분 컴퓨터는 너무 용도에만 맞춰 해석하는 것 같아요. 음… 오래된 문화는 미에 대한 통일된 기준이 있는 편이잖아요. 컴퓨터는 역사가 굉장히 짧아서 그런 게 아직 없는 편이에요. 개인적으로 레벨10은 현존하는 케이스 중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전에는 내부를 꾸미는 데 많은 시간을 썼지만 이제 내부는 적당히 한 채로 그냥 닫아두고 써요. 정지안(영상광고 감독)

보작 B-301A 콘서트 그랜드(1400 X 800 X 480mm, 95000g) 이건 1965년에 나온 스피커니까 45년쯤 됐네요. 아는 선배에게 구입한 거라 가격을 공개하긴 좀 그렇고, 발매 당시 2천 달러가 넘었어요. 지금은 아주 비싸진 않아요. 잘 보이진 않지만 우퍼가 4개, 미드레인지가 2개, 트위터가 8개가 달려 있어요. 좌우로 하면 총 28개죠. 크긴 하지만 집에 놓긴 오히려 더 좋아요. 요즘 나오는 스피커들은 벽에서 1미터 정도는 띄워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건 구석에 붙여 쓸 수 있도록 만든 스피커라 벽에 딱 들어가서 오히려 자리를 덜 차지해요. 그리고 그냥 가구 같아서 보기에도 부담스럽지 않고요. 덩치가 크고 오래된 스피커라 소리에 여유가 있어요. 해상도가 뛰어나다거나 정교한 소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요. 이 스피커하고 비슷한 시기에 나온 밥 딜런 노래 한번 들어 보실래요? 어때요? 리얼하잖아요. 대는 소를 겸해도 소는 대를 겸하지 못한다고, 집에서 듣던 거랑 다르죠? 어지간하면 안 바꾸고 쓰려고 해요. 옛날에는 밤 12시에도 남의 집에 중고 기기 가지러 가고 했는데 나이 오십이 넘어가니 이제 그런 정성이 안 나와요. 얘도 큰 곳에서 쓰라고 만든 스피컨데 말년에 작은 집에 와서 고생하고 있는 거죠. 김욱동(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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