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역시, 이소라

2010.02.02GQ

슈퍼모델을 한국말로 적확하게 표현하긴 어렵다. 그러나 사진 한장, 이름석자로 말하라면 그건 아주 쉽다. 이소라니까. 역시, 이소라니까.

의상협찬 / 블랙 원피스는 구찌, 뱅글은 오리지나 by 10 꼬르소 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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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모델 이소라. 당신 곁을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을 슈퍼모델이라는 것. 어떤가? 슈퍼모델, 너무 좋아한다. 가끔씩은, ‘슈퍼모델이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 더 인정해줬을까? 직원들이 더 사장으로 인정해줬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슈퍼모델을 너무 좋아한다. 입국 심사할 때도 슈퍼 모델이라고 쓴다.

‘슈퍼’ 라는 말도 쓰나? 쓸 때도 있었다. 하하. 내가 슈퍼모델이었기에 쉽게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고, 그 타이틀 때문에 남들의 곱절 이상 힘들게 노력했다. 회사 건물에 들어가면 관리 아저씨가 “왜 오셨지? 우리 회장님한테 인사 한번 하세요” 한다. 내 회사에 들어가는 사업주인데도 말이다.

왜 회장님한테 왜 인사를 해야하나? 연예인이니까.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있나? 많다. 너무 많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직원들의 편견을 깨는 것이었다. 연예인 이소라가 아니라 사장 이소라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따라오게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네가 뭘 알아?’ ‘네가 우리보다 이 바닥을 잘 알아?’ 하는 식이었다. 목표를 향해 일하기보다 이들과 신경전하는 게 더 힘들었다. 계속 싸워야 했다. 남자였다면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이런 불필요한 싸움 없이 바로 내 말 들었을 텐데. 그런 생각 많이 했다.

슈퍼모델이라 더 감각적이라고 다들 인정해주지 않나? 설득하고 노력해서 그 결과가 나왔을 때, 그때 인정했다.

슈퍼모델 1위, 무슨 무슨 대회에서 1등한 사람과 길거리 캐스팅된 사람에게 갖는 대중의 기대는 조금 다르다. 그런 당신이 왜 사업을 하게 되었나? 슈퍼모델로 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나? 지난 추석 때 짐을 정리하다가 10년 전 노트들을 보면서 내가 참 대견하게 느껴졌다. 수많은 사업 계획이 가득 써 있었다. 지금 이 사업이 2003년에 이미 구상되어 있었다. 2002년엔 다음과 제휴해 ‘슈퍼소라닷컴’도 만들었었고. 다이어트 비디오를 낸 것은 1998년이다. 늘 사업을 구상했다. 계속 그래온 것 같다.

사업에 관심이 많았나? 방송인보다 다른 일이 하고 싶었나? 이 길이 오래 갈 수 없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그리고 내 주변에 항상 주병진 씨가 있었다.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가 사업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원하는 것을 해보고 싶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백퍼센트 모두 말렸다. 다이어트 비디오 테이프 할 때가 프랑스 월드컵 때 였는데, 이경규 씨가 누가 몇천만 원에 산다고 하면 넘겨버리라고, 절대 성공할 리 없다고 신신당부를 하며 ‘이경규가 간다’ 촬영을 떠났다. 그런데 그가 돌아왔을 땐 이미 10만 장이 팔려 있었다.

당신의 비디오를 따라하면 진짜 살이 빠진다고 했으니까. 어떤 것이라도 하면 꾸준히 하면 살 빠진다.

큰 부자 되었나? 조금! 처음에는 한 달에 10만 장 팔리기 시작해 엄청나게 팔리긴 했다.

계속 성공했나?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알려지지 않은 실패도 많았다. 너무 앞서갔다. 실패했다 그래도 직원 몇 명 데리고 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너무 힘들었다. 지금은 뭘 해도 안 되니 놓아야겠다는 걸 갑자기 깨달았다. 직원들을 정리하고 휴업 처리했다. 그냥 놓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촬영 중에 당신 직원들이 부르는 ‘사장님’ 호칭이 자연스러웠다. 지금 일도 사람들은 반대했나? 너무 하고 싶어서 사업계획서 들고 많은 곳에 갔었다. 하지만 누가 ‘추리닝’ 을 사 입느냐며 모두 거절했다. 나는 분명히 된다고 생각했다.

당신 브랜드, 우드리는 지금 어떤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나? 마라톤 경기에서 운동화 끈을 매고 출발선에 서 있는 상황. 튀어 나가야 한다. 운동화를 벗기에는 연습을 너무 많이 했다. 마라톤은 연습 없이 갈 수 없지 않나. 충분히 연습했고, 이제 페이스를 조절하며 달려야 한다. 정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사람 자체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연예인 이소라보다 직장인 이소라가 더 익숙하다.

지금 직장인 이소라 씨와 인터뷰 중이다. 지갑만 들고 나가 점심으로 부대찌게 먹을 것 같다. 진짜 그렇다. 자 이제, 병적으로 연예인 이소라에 대해서만 물어봐라.

어떻게 하루를 보내나? 직장인처럼 ‘나인 투 파이브’ 하나? 2년간은 병적으로 그랬다.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하면서 달라졌을 것 같다. 직장인의 삶, 연예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잃은 게, 혹은 얻은 게 있나? 시즌 1과 시즌 2는 다른데, 시즌 1은 ‘우드리’ 에 도움이 되었다. 이소라가 저런 사업을 하는구나, 많이들 알게 되었다. 시즌 2는 내게 새로운 인생으로 들어가게 하는 계기를 주었다. 이제는 다른 삶을 쳐다봐도 된다는 마음을 열게 해 주었다. 연예인을 하며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고맙게 생각하게 되었다. 사업을 하다 보니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뭔가를 얻으려면 빠듯하고 치열하게 일해야 하는데, 그냥 이미 갖고 있는 것만으로 당연하게 생각했구나 하는 생각.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알게 되었다.

마음이 왜 달라졌나? 시즌 1은 암흑이었다. 이렇게 아픈데도 일해야 하나? 친구들의 사건이 연이어 있었다. 나는 평생 아픈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허리 아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최진실 씨 장례 끝나고 급성 디스크로 입원했고, 방송이 끝날 때까지 감기가 떨어지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이렇게 괴로운데도 해야 하는 나, 그랬던 상황만 기억난다.

하이디 클룸과의 비교는 어땠나?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가 비교해본 적이 없다. 그녀는그녀고 나는 나다. 비교할 정신이 없었나? 하하.

시청자 반응은 체크하나? 처음엔 장난 아니었다. 반응이. 내가 봐도 죽을 것 같이 이상했다. 문어체의 딱딱한 그 말이 너무 이상했다. 근데 그렇게 해야 된다고 했다. 싸울 힘이 없었다. 바꿀 기력도 없었다. 너무 우울한 건 사전에 이미 녹화가 끝났기 때문에 아무런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반응 안 좋으면 다음에 안 하면 되는데 못 바꾼 채로 욕만 먹었다. 다행인 것은 〈무한도전〉에서 그 소재를 갖고 웃겨줘서, 그 자체를 프로그램의 톤처럼 느껴지게 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러나? 〈무한도전〉에서 그랬으니 또 그렇게 했다. 하하.

이후, 방송 제의 많이 들어왔나? 많았다.

왜 안 했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없었나? 어떤 프로그램을 원하나? 이런 질문에 나는 구체적으로 말을 못하겠다. 기다리고 있다. 좋은 것을.

방송에 큰 욕심 없나? 항상 있다. 방송의 매력이라는 것이 매우 크다는 것을 요즘 알았다.

어떤 여배우가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하다가 정작 방송의 매력을 알게 되면 더 이상 찾지 않게 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당신은 그 경우는 아니지 않나? 마찬가지다. 아무도 안 찾는다.

무슨 소린가? 시청률 제일 좋았다는데. 그 당시에는 그랬다. 그러나 이후에 〈슈퍼스타 K〉가 있었다.

당신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신경 쓰이나? 사람들이 이소라라는 이름값에 기대하고 있는 그 이미지를 고려하나? 방송 시작 전까지 철저하게 준비한다. 그러고 나서는 신경 안 쓴다. 모니터하고 속상하다는 생각은 안 한다. 준비가 완벽했으니 신경 안 쓴다가 아니라 준비를 철저히 하는 데 무게를 두는 것이다. 나는 약속도 절대 안 늦는다. 늦는 게 싫다. 나 때문에 남이 피해 보는 것도 싫고, 남 때문에 내가 피해 보는 것도 싫다.

참, 다르다. 당신은 생각과도 다르고, 다른 사람과도 다르다. 그런가? 모두 그렇지 않나? 말들을 안 하겠지!

매력적인 모델로, 여자로 나이 드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가? 당신의 이름 옆 괄호 속에 4자로 시작되는 숫자가 있는 게 신경 쓰이나? 나는 아무 상관없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자연의 일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이가 들었을 때 그 나이로 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업을 떠나 그저 사람으로 봐서도 그렇다. 그 나이가 들었을 때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공허하게 살 것 같다. 서른아홉 살 때 너무 힘든 일을 겪어서 어른들이 말하는 아홉 수, 닭띠 삼재가 지나가기만 바랐다. 마흔두 살 설날이 삼재가 나가는 날이라 알람을 맞춰놓고 그날만 기다렸다. 빨리 마흔두 살이 되기를 기다리느라 마흔이 되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넘긴 것 같다. 이제 한국 나이로 마흔두 살이다. 설 전이라 알람은 울리지 않았지만. 나이에 맞게 늙어가는 삶이라는 것은 자기 수양밖에 없다. 뭘 해도 누구도 나를 잡아줄 수 없다. 결국 나이라는 것은 나 자신이 거기에 갇힐 때 서글퍼지는 것 아닐까? 내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면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내게 아이나 가정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렇지 않은 나는 항상 쉰을 생각한다. 그때 지금을 돌아보면 후회하고 있을까? 그때도 그 이후의 삶에 대해 불안 없이 살 수 있을까?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다. 나이 들어 열심히 나를 닦으며 사는 삶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좌절하게 하는 멘트도 있다. 요즘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읽고 있는데 “결국 인생의 살아가는 하반기는 상반기에 쌓아온 습관의 일부일 뿐이다” 라는 말에 머리가 띵했다.

슈퍼모델, 방송인, 여자를 넘어 좋은 사람과 훌륭한 사장으로 사는 현재, 그녀는 모델처럼 아찔하고 방송인답게 재치있고 여자로서 섹시했다. 의상협찬 / 베이지색 가죽 트렌치 코트는 버버리 프로섬.

슈퍼모델, 방송인, 여자를 넘어 좋은 사람과 훌륭한 사장으로 사는 현재, 그녀는 모델처럼 아찔하고 방송인답게 재치있고 여자로서 섹시했다.
의상협찬 / 베이지색 가죽 트렌치 코트는 버버리 프로섬.

결혼과 아이가 비현실인가? 현실 아닌가? 누가 나타난다면 현실이 되겠지. 나는 〈매트릭스〉의 키에누 리브스를 기다리는 것 같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이 사랑하는 사람 만나 가정 갖고 아이를 낳고 헤어지고 슬퍼하는 그런 일을 보면서…. 물론 그런 것들만 내 생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굉장히 많은 영향을 준 건 사실이다. 갑자기 겁쟁이가 되었다. 이 세상에 계산 없는, 진정한 그 사람이 있을까? 상처투성이 여자를 만나면 얼마나 힘들겠나? 밝고 넓어서 내 상처를 안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있을까? 그런 사람이 나를 찾아내야 한다.

사람이 결국 관계 속에서 위안 받으며 존재감을 확인하는 건데, 사랑 없이 사는 삶이 팍팍하지 않나? 내 인생에 남자친구가 없었던 적은 없다. 최근 2년 빼고는 늘 있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였다. 망할 거라 하고, 직원 월급 주는 게 어려워서 30퍼센트 주고 며칠 있다 또 벌어 30퍼센트 주고, 아이 있는 사람 먼저 주고. 그런 게 몇 달 지속되니까 첫 번째는 회사가 됐다. 목표까지 가야 한다고 나를 계속 밀어붙인 게 회사였다. 그러는 동안 개인적으로 고통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좋아하는 술도 안 마셨다. 집에 가자마자 노트를 펼치고 글만 썼다.

책내라. 독해서 못 낸다. 선 하나 차이다. 정신 나가고 돌아오는 것은 선 하나 차이였다. 글에서 독이 나왔다. 안 썼으면 미쳤을 거다. 고통스러웠다.

요새도 그런가? 요새는 컴퓨터에 쓴다. 노트에는 마지막 하나는 못 쓴다. 누가 볼까 봐. 마지막 하나 남은, 쪽팔린 것은 못 쓴다. 컴퓨터에 쓰니 그게 됐다. 보안 프로그램 2만원짜리 사서 썼다. 망가지면 고치러도 못 보낸다. 누가 보면 어쩌나? 생각해보면 부질없는 거구나 싶다.

써놓고 다시 읽나? 당신에게 글은 배설인가? 환기인가? 나중에 다시 보나? 그 고통의 순기능으로 문장력은 좋아지겠다. 욕의 반복이라서 몇 페이지씩. 하하.

사랑을 믿지 않게 되었나? 아니, 사랑은 있다. 그저 두려울 뿐.

누구와 사랑했고, 헤어졌고, 또 다른 누군가와 사랑했고, 헤어졌고, 가까운 친구의 죽음을 맞이했고, 그래서 우는 모습, 그리고 일어나 다시 나와 웃는 모습까지, 대한민국이 모두 아는 삶을 사는 것은 어떤 것인가? 너무 어려서부터 습관처럼 살아온 삶이기 때문에 익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습관은 제2의 천성이 된다고 한다. 실수할까 봐 술을 안 마시던 때, 취해서 집에 들어왔는데 몇 년간 커튼 내리고 살았는데, 그날은 집에 있는 불이란 불을 다 켜고, 창문 다 열고 밖을 향해 30분간 비명을 질렀다. 그날, 경찰차가 오지 않고 엄마가 왔다. 내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것을 알지 않나. 이웃사람들이 ‘이소라 고통스러우니까 내버려둬. 그럴 만해.’그랬나 보다. 그렇게 한밤중에 소리를 지르면 당연히 경찰차가 와야 하지 않나? 알려진 삶이라 그게 가능했나 보다.

마음으로 수긍하지 않았으면 어디에 기사라도 나왔을 것이다. 알려진 삶이다. 누구에겐가 내 모습을 보이고 이런 문제는 내 친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정선희를 보지 않나. 진심으로, 이런 운명도 있을까 싶다. 나는 진심으로 마음 깊이 그녀를 존경한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끝없는 싸움 없이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가장 못생겨 보이는 모습으로 머리를 자르고 못생긴 모습으로 다닌다.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180도 바뀌고, 의혹에 찬 눈으로 보는 모습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이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모두 알려진 사람으로 그 슬픔을 함께한다는 것. 드라마 같다. 있을 수 없는.

어떻게 넘길 수 있었나? 하루하루 엄습해오는 그 큰 부재감을…. 마땅히 있어야 하는 사람이 없는 건데, 그것도 스스로 목숨을 버렸는데. 아직도 어떤 날은 맥없이 막 운다. 집에 들어가서. 그런 날이 있다. 최진실 씨가 가면서 준 메시지는 한 가지다. 주변에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손을 내밀어라. 그녀는 끊임없이 죽을 거라고 했다. “나 죽을 거야. 나 죽은 다음에 볼래?” 너무 오랫동안 그래왔기에 그냥 흘렸던 거다. ‘나 좀 살려줘. 나 좀 살려줘’ 였는데, 그 메시지를 주고 있었는데 그걸 몰랐던 거다….

당신 턱이 떨리면, 아무 질문도 할 수 없다. 친구들과는 어떤가?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사이다. 가깝다는 말이나 친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예전에 최진실 씨의 결혼이 위태로웠을 때 그녀의 괴로움을 자세히 알지 못한 채 우리가 파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우리 집에 아무도 모르게 와 있었고, 나는 엄정화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갔다. 나는 너무 신경이 쓰였다. 우리 집에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 냉장고에 있는 것이라고는 물과 콜라, 아이스크림이 전부였다. 그녀가 먹을 것도 없는 우리 집에 아무도 모르는 채 와 있으니 내색도 못하고 파티에 가 있는 내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우리끼리도 그렇게 모여 노는 것은 잘 없는 일이라 막 설레는데…. 그날 엄정화는 일찌감치 낙지집에 가서 낙지와 조개탕을 사다놓고 계속 변하는 우리의 도착 시간에 맞춰 불에 올렸다 내렸다했다고 한다. 막상 갔을 땐 조개탕이 완전히 졸아 있었다. 망고를 사오기도 했는데, 이영자가 “엄정화 집에는 망고가 있어” 해서 그 사투리와 그녀다운 목소리에 우리는 한참 웃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시나리오를 썼다. 시나리오의 시작은 우리 모두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엄정화는 찌개를 올렸다 내렸다 하고 최진실은 우리 집에 마음이 힘든 채로 와 있고, 그 사이에 싸우기도 하고, 그간의 싸웠던 얘기를 하며 배가 찢어지게 웃기도 하고. 마지막은 엄정화답게 손을 흔들며 안녕을 고한 후 마스카라 번진 눈으로 거울 앞에서 막 우는 그런 시나리오였다.

뭔가로 만들 생각까지 했나?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영원히 할 수 없다. 주요 등장 인물 한 명이 없다. ‘없다’ 는 말이 이렇게 슬프게 들린 날이 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슬픈가? 계속 슬프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말했듯이 난 직장인이니까. 내가 단단해야 더 굳건해지는 회사가 있으니까.

생뚱맞지만, 다른 얘기를 해야겠다. 당신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몸매의 대명사다. 요즘은 축에도 못 낀다.

부모님이 준 것 가지고 호의호식하는 기분은 어떤가? 그 주제로 이번 여름에 우리 언니랑 싸웠다. 우리 언니가 내게 그랬다. “너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언니, 안 예쁜가? 언니 예쁘다. 166센티미터다. 오히려 나는, 내가 키가 커서 만나고 싶은 사람 못 만나고 손해봤다 생각한다. 몸을 구기지 않는 한, 누가 나와 만나기 쉽겠나? 근데 나도 노력한 거라 말하고 싶다.

끝없는 체형 관리와 배고픈 삶? 어제, 오늘 촬영을 위해 마사지 받고 물리치료 받고, 네일 케어하고, 선탠하고 운동하니까 하루가 갔다. 내가 말하는 노력은 이런 준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웃기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몸은 정신적인 것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갈 길을 위해서 아름다운 정신과 몸을 위해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는 것, 그게 노력하는 것이다. 수양과 명상.

정신이 몸을 만든다고 생각하나? 언니는 뭐라던가? 얼마 전에 카드를 받았다. 힘든 세상에서 먹고 싶은 것은 먹고 살아라. 그걸 보고 막 울었다. 나는 술도 많이 먹고 다니고, 뭐든 다 질릴 때까지 마신다. 사람들 붙잡고 늘어지거나 건배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혼자 끝까지 마시고 밥도 먹고 잔다.

먹으면 찌지 않나? 찐다. 빵이나 과자는 먹지 않는다. 몸에 좋은 것만 먹는다. 빅토리아 베컴같은 사람 아니다. 하고 싶은 것 한다.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

배고픈 인생은 아니겠다. 절대 아니다.

안 예뻐지면 안 나타겠다거나 그런 마음 있나? 아니, 나이에 맞게 예쁘게 살겠다. 아직은 의학적 힘에 기대지 않았다. 주사를 맞은 적도 없지만, 맞을 때가 되면 맞을 것이다. 나는 편안하게 나이 들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만날 똑같은 얼굴의 여자가 되고 싶지도 않지만.

지금 예쁘다는 얘기를 들으면, 10년 전과 같은 느낌이 드나? 민망하면서 너무 좋다. 10년 전과 똑같이 좋다.

    에디터
    조경아
    포토그래퍼
    CHAE WOO RYONG
    스탭
    스타일리스트/윤상미, 헤어/ 신주희(이희 헤어앤 메이크업), 메이크업/ 이희 헤어 앤 메이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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