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고수의 봄 Part. 1

2010.03.24장우철

논산 딸기를 맛보며 웃지만 고수는 지금이 슬럼프라고 말한다. 그저 잔잔한 것 같다고, 너무 욕심없이 지낸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좀 ‘유도리있게’ 살아야 하는 건지 생각한다고, 띄엄띄엄 말한다.

“확실히 슬럼프인 것 같아요. 빨리 뭔가를 해야겠다고 말했더니, 주변에선 작품 끝낸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냐고 해요. 얼마가 됐든,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떡하죠?”

“확실히 슬럼프인 것 같아요. 빨리 뭔가를 해야겠다고 말했더니, 주변에선 작품 끝낸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냐고 해요. 얼마가 됐든,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떡하죠?”

뭐 하다 왔나? 스튜디오 들어오는 모습이 너무 일상적이라 식구가 밥 먹으러 들어오는 줄 알았다. 바쁜 일은 없는데 정신이 없다. 여기 들어올 때도 이런 느낌이 뭘까, 생각했다.

캐릭터에 빠졌다가 다시 나오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배우도 있던데. 캐릭터와 연관 짓고 싶진 않지만, 계절이나 창밖 풍경이나 지금이 몇 신지 그런 걸 잘 모르겠다. 오늘이 토요일 같은데, 사람들이 화요일이라고 하면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아무래도 슬럼프인 것 같다.

그나저나 당신이 언제 서른셋이 되었나? 그러게 말이다. 굉장히 다운된다. 그럴 것까지야.

이런 식으로 또한 마흔이 되지 않을까? 벌떡벌떡 깬다. 지금은 오히려 괜찮다. 사실, 남자 나이 서른셋이면 뭐, 좋잖나? 그런데 10년 후에 눈 떴는데 주변에 달라진 게 없다면…. 언제나 눈에 보이는 건 똑같을텐데. 촉감도 똑같고, 사람들 모습도 똑같을 거다. 출퇴근 풍경, 변하는 계절, 부는 바람, 색깔, 보이는 건 다 똑같을 텐데. 변한 건 쭈글쭈글해진 살갗과 늘어진 목살…. 슬픈 생각이 든다. 진짜 슬럼프인 것 같다. 거울을 보면 중력을 본다. 그 힘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래서 가까이서는 안 보려고 한다.

고수가 그렇게 말하면 여기저기서 남자들의 원성이 터질지도 모른다. 아, 이거 남자 잡지였나? 하하. 아무튼, 남자들 파이팅이다.

‘눈빛 고수’ 라는 말도 있던데, 확실히 당신 눈을 대놓고 보고있으니…. 부담스럽나?

글쎄, 부담이라기보다는…. 고수 하면 ‘잘생겼다’ 가 떠오른다. 그냥 평범한 것 같다. 더 잘 생기고 싶다는 뜻이라기보다, 아직까지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보여주면 보인다.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좀 인색했다. 좀 변하고 싶다.

사람이 변하나? 글쎄, 예전에 했던 일이 철없었다고 느끼는 걸 보면 조금씩 성장을 하는 것 같긴 하다. 그런데, 내 성향이 그냥 잔잔한 거 같다. 크게 튀거나 까불거나 그러지 않는.

평야지대에서 자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맞다. 경상도나 강원도에 가서 좀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했다. 농담이다. 예전엔 한 가지만 고집했는데 이제는 좀 ‘유도리 있게’ 생각을 좀 해야 되겠다고 느낀다. 유도리 맞나? 유두린가?

일본말인데, 아마 ‘유도리’ 가 맞을 거다. 흔히 젊은 배우들은 어떤 ‘한 작품’ 을 얘기한다. 그걸 만나야 한다고. 모든 작품에 최선을 다했지만, 이거다 하는 작품은 없는 것 같다.

당신과 비슷하게 출발한 배우 중엔 좀 더 큰 존재감을 갖는 배우도 생겼다. 여기는 굉장히 잔인한 바닥 아닌가? 뭐, 괜찮다. 욕심 부린 적이 없으니까. 싸워서 이기거나, 짓밟고 일어서거나, 더 가지려고 애쓰거나 그러질 못한다.

저 역할은 내가 했어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는 작품도 없나? 그런거없다. 내가했던 작품을 차라리 누가 누가 했으면 더 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그럼 누가 선행상 주나? 하하. 그런데 요즘 생각이 좀 많다.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는데 이게 맞는 걸까? 계속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걸까? 욕심을 부려야 하나? 나도 좀 치열하게 뭔가 싸워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한다. 너무 바보처럼 사는 건 아닌가? 아, 잘 모르겠다.

당신을 통째로 맡기고 싶은 감독이 있나? 음….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 어떤 이름을 말하기 전에 내가 배우로서 좀 더 갖춰야 하지 않을까? 머릿 속이 계속 복잡해진다.

당신이 작품을 고르는 첫 번 째 기준은 뭔가? 이게 재밌냐는 거다.

막상 코미디는 안 했다. 당신에게 어둔 구석이 있다고 짐작하는 증거다. 정말? 내가?

어두운데 뜨겁진 않고, 무거운데 욕심은 없는 캐릭터랄까? 그리고 모든 역할에서 ‘고수’ 가 보인다. 예전에는 캐릭터를 통해 실제 나를 숨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캐릭터를 뒤집어 쓰면 내가 가려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나를 숨긴 채 새로운 캐릭터를 뒤집어써도, 이건 어디까지나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일부러 몸부림 칠 필요가 없겠구나. 사람들이 보는 건 그저 나였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에디터
    장우철
    포토그래퍼
    장윤정
    스탭
    스타일리스트 / 남주희, 헤어/한지선, 메이크업 / 이지영, 어시스턴트/ 이승빈
    기타
    의상 협찬/ 그라데이션 효과를 이용한 셔츠는 휴고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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