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미술 작가와 자고나니, 대화는 갤러리에서만 하는 게 옳다는 걸 알았다.

골목은 어둡지 않았다. 해가 떨어지면 등을 켰다. 등을 켜기 전에 장사를 접는 집도 많았다. 문을 연 곳들은 술을 팔고 있었다. 듬성듬성 켜져 있는 술집에서 나오는 빛이 오징어잡이 배처럼 길을 안내했다. 따라갈 사람은 여자인데, 여자는 반쯤 눈을 감고 천천히 걸었다. 어쩌면 그건 걷는다고 할 게 아니라 음미한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원피스의 겨드랑이는 터져 있었다. 술집에서 빠져나올 때 계단을 헛디디면서 바닥을 손으로 짚었다. 비명 없이 소리가 났다. 원피스가 천 조각으로 돌아가는 소리였다. 극구 괜찮다고 말하는 것도 모자라 소리 내어 웃기에, 까만 손바닥은 닦아주지도 못했다. 여자는 말하지 않고도 고된 하루를 보냈음을 표현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집으로 가는 지름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렇지. 그게 예술가지.

찰과상 하나면 클로에 원피스를 입은 여자도 시장 바닥과 어울릴 수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문이 다 닫힌 시장 골목을 걸어본 적이 있느냐고 했다. 꿈틀거리는 것은 사랑해도 그런 일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술집에서 나오는 빛이 조명이고, 축축한 시장 바닥이 무대라는 듯이 대답했다.

“여기에 오면 제가 결국 혼자라는 걸 알게 돼요.”
“지금 둘이 걷고 있는데.”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더 외롭다는 거죠.”

그녀의 말은 술집에서 나오는 아저씨들의 노래와 섞였다. 술집의 노래는 그녀의 노래이기도 했다. 가래침 뱉는 소리가 좀 더 컸지만 그녀의 노래를 멈추기엔 역부족이었다. “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가지가지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가 울었다. 그녀의 집은 멀었고, 우리 집은 더 멀었다. 예정에 없던 귀가가 방금 추가된 참이었다. 그녀는 눈물 삼킬 틈도 없이 다른 걸 바랐다.

“술 한잔 더 하실래요?”
“그 상태로 술이 넘어가요?”
“그럼 해장으로 순대국이나 먹어요.”

순대국 집에 들어서자 외국인들에게나 보내는 시선이 쏟아졌다. “스미마셍” 이라고 할 타이밍을 놓쳤다. 아저씨들은 의외로 친절하게 자리를 내주었고 아가씨의 원피스를 걱정했다. 입 냄새는 막걸리 탓이지 아저씨들 탓은 아니었다. 순대국이 나오자 그녀는 아주머니께 비닐봉지를 부탁했다. 그녀는 내장과 머릿고기, 순대를 비닐봉지에 덜어냈다. 아저씨들은 다 봤으면서 모르는 척했다. 외국인은 호기심이라도 가는데 외계인은 무섭기 때문이었다. 작업에 쓸 거라고 그녀가 해명했다.

“무슨 작업이기에.”
“제 ‘아우라’ 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죠.”
‘아우라’ 에서 좀 발끈했다.
“나카자와 신이치의 <곰에서 왕으로> 같은 책을 보면, 옛 사람들이 동물을 죽이고 뼈와 살과 가죽을 취할 때의 태도가 얼마나 정중했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어쩔 수 없이 죽이는 거니까 양해해달라고 그들에게 사과를 한다고요. 얘네는 당신 아우라 때문에 죽은 게 아니에요.”

그녀가 목 놓아 말했다. “예술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에요. 저에겐 저라는 주제에 대해 물어보는 과정이고요. 돼지 말고 저도 희생하고 있어요. 지금은 손톱이랑 때만 모아서 작업하지만, 예전에는 제 피도 뽑았다고요.”

술을 시켰다. 한 가지도 참기 힘든데, 두 가지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사실을 말하면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임을 확인했다. 학부에서 어쩌다 들어간 수업에서 들은 말을 평생 써먹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순대국에 설탕만큼도 가치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B 작가의 전시 오프닝 뒤풀이에서 빠져나온 이유는 두 비평가의 육두문자가 오가는 설전을 피하자는 거였는데, 그 꼴이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술은 그녀를 비판할 자격도 앗아갔다. 에디터와 작가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로 돌아왔다. 혀가 꼬여서 그녀가 말했다.

“나는 술이 신의 음료라고 생각해!”
신의 음료를 마시면 마실수록 인간적이 되는 이유는 뭘까?

눈을 가렸다. 시켜서 그랬다지만, 눈을 가린 다음엔 웃었으니 변명이다. 사실 집에 가자마자 작업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기에 재빨리 키스를 했다. 그녀는 공수전환이 빨랐다. 내 셔츠를 벗겼다. 옷의 색깔이나 형태보다 단추가 중요해지는 시간. 그녀의 원피스는 단추가 뒤에 있었다. 몸을 뒤로 돌리려는데 다른 통로가 보였다. 손을 집어넣었다. 겨드랑이 쪽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며 생각했다. 그녀의 가슴을 쥐고 이대로 있고 싶다는 생각과 아무런 친밀감도 없는 상대와의 섹스는 그만둬도 좋지 않은가 사이의 진자운동이었다. 달려들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그 따위 말은 ‘수동적으로는 하고 싶다’ 와 같은 의미였다. 그녀가 “잠깐” 하면서 손아귀를 빠져나가더니 옷장에서 스카프를 꺼내왔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다른 것보다 눈을 가리고 말하는 그녀의 입술이 예뻤다. 그대로 키스를 하다가 목을 애무하다가 귀를 물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것도 흥분될 터였다.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내 사랑, 내 상처.”

적응이 됐다. 그녀는 뒤풀이에서도 시장에서도 계속해서 무언가 혼자 중얼거렸다. 나의 말 상대는 나밖에 없다는 듯. 그녀의 옆에 앉은 B 작가의 친구라는 사람은 투명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낯을 가리는 거라 생각했다. 누구나 한때는 수줍었으므로 또 이상했으므로, 예쁜 상대를 만나면 자기 합리화의 과정조차 구태의연해지므로, 호감이 갔다. 말만 안 했으면 계속 그랬을 텐데, 아니 아무 말도 안 했던 것은 아니니까 수정하자면, 너무 많이 말하지만 않았으면 계속 예뻤을 텐데. 어쨌든 지금 예술가를 만드는 건 작품이 아니라 영화 대사라는 건 확실했다.

더 아래로 내려갔다. 가슴을 물었다. 가슴이 성감대인지 아닌지는 할 때마다 확인했다. 언젠가 가슴을 애무하다 고개를 들어 심드렁해하는 여자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모든 여자가 가슴을 애무하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클수록 더 그렇다.) 그녀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단 뜻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침대 시트를 팔로 휘젓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성감대가 아니었던 그 여자의 표정을 따라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손을 더 아래쪽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한 손으로 베개를, 한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넣어, 넣어.”
반 바퀴도 돌지 않았는데, 우승이라고 그만 돌고 들어오라고 소리치는 코치를 믿어야 할까. 코치를 믿지 적을 믿겠냐만, 이렇게 미궁에 빠진 상황에선 남은 반 바퀴를 돌고, 말 안 듣고 뭐하는 짓이냐는 핀잔을 들었다.

“벌써?”
“아프고 싶어.”

당장 섹스 따위 그만두고 그녀에게 왜 아프고 싶은지 묻고 싶었다. 그녀를 겪은 바, 흔치 않게 아쉬워하지 않을 자신도 생긴 참이었다. 결행을 결심했다.

“나 뭐 좀 물어봐도 될까?”
“뭐?”
“너 작품도 아프고 싶어서 만드니?”
“무슨 ‘작가와의 대화’ 같은 소리야.”
“넌, 천상 작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