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그래도 그렇지 취향이 그게 뭐니?

E.L.

아무리 편견이 없는 사람인 척 스스로 대견해해도, 그게 말도 안 된다는 건 안다. 인종 차별을 안 (당)하려고 애를 쓰고, 빈부의 양면성을 가졌으며, 습한 성적 페티시를 이해하고, 다양한 종교를 받아들이려 해도, 취향을 말할 때만큼은 다들 바보가 되기 마련이다.

매 순간 타인들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하거나, 성품의 가치를 따지거나, 죗값을 달아보거나, 지식의 깊이를 굳이 알려 하지 않아도, 적어도 그가 무엇을 걸쳤는지는 심봉사라도 눈치 챌 수밖에 없다. 타인의 취향은 호기심의 모든 것이며, 모든 것에 대한 답변이라서.

취향은,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혹은 어떤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는지를 어떻게든 일러준다. 그 집의 소파와 커튼은 집 주인이 하고 싶은 말보다 그를 더 잘 설명한다. 책장에 얹힌 책들이며, 포장마차풍 하이글로시 옥색 식탁까지, 모든 게 꼭 점占 같다. 취향은, 지성의 지문이자 눈에 보이는 성격이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성숙한 담즙을 뿜어내는 다 큰 어른이건, 법의 제재를 받아야 하는 타락한 분자건 모두 자신만의 취향이라는 무해한 영역 안에서 안락하게 머무르는 것이다.

다들 자기 취향에 끌리게 돼 있다. 취향을 확인하는 과정이 백만 스물한 가지라고 해도 그걸 바꾼다는 건 눈동자 색깔을 바꾸라는 말과 같다. 자기도 어쩔 수 없다. 취향은 개인과 세상을 연결하는 현관문이지만, 자아라는 핵심으로부터 우러나오기 때문에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녹초가 될 때조차 너무나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남이야 식초에 밥을 말아먹건 말건, 구석구석 애무하자면 내년까지 걸릴 비계나라 뚱보만 밝히건 말건, 치앙마이의 라푸족 처녀인지 미소니 할아버지의 손녀인지 온통 운동회날 만국기처럼 알록달록 입고 돌아다니건 말건, 비오는 날 미꾸라지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건 말건 이래라 저래라 참견할 수 없는 이유는 취향이야말로 생존의 도구이며 진화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취향은 한편, 지성의 극한점이자 사색의 즉각적인 경고 시스템이라서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 나쁜 것과 좋은 것을 구분하도록 이끈다. 그럴 땐 반드시 실험과 실수라는 과학적 시행착오도 거친다. 어떤 때 취향은 경멸과 아주 가깝다. 그 돈 주고 산 게 겨우 그딴 거냐, 니가 지금 호강에 뻗쳐 돈지랄하고 자빠졌냐…? 이런 말은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건지, 어제 한 바가지 욕 먹을 때 들은 건지… 아스라할 따름이다. 아무튼 몸은, 장백산 벌목꾼이 베어낸 통나무 찜쪄먹게 우람한데 스키니 진 바늘땀이 터져라 허벅지를 구겨넣은 ‘네 자신을 모르는군증’ 환자나, 알량한 운동에 투자한 만큼 폭식하는 데도 열심인 ‘말짱 도루묵증’ 환자나,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은 주제에 유식한 척 입으로 설사를 하는 ‘개똥폼증’ 환자들을 보면 인간이 꼭 진화하는 존재 같진 않다. 솔직히 고상하고 품위 있는 취향인 듯 보이는 사람들도 후진 감각을 들키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쓰는 거, 잘 보면 다 나온다.

그런데, 지금 같은 상징의 제국에선 지위와 계층이야 수시로 변하지만, 위계질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 속 깊숙이 들추면 순위란 협상의 결과란 걸 알게 된다. 이때 취향은, 완벽하진 않지만 순위를 매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소비 사회에서 개인의 성격을 나타내는 건, 주로 몸 밖에 걸친 옷 브랜드와 유행을 따르는지의 여부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현대의 계층은 혈통이나 돈보단 취향이 결정한다. 롤렉스 18K 금통 데이토나를 찼는지 70년대 21석 수동 국산 오리엔트를 찼는지, 디젤의 더러운 워싱 컨버스를 신었는지 칠성 제화의 검정색 윙팁 구두를 신었는지…. 취향의 주류적 성향, 진부한 속물성은 사회의 도로 중앙통에서 번쩍번쩍 빛난다.
결국 취향은 문화의 농장으로서 모든 감각 체계를 정복했다. 시각과 청각은 감각 중추신경계의 중요한 일부다. 촉각은 특히 에로틱한 환경에서 마구 기분 좋게 만든다. 그런데 단순히 문화적인 관점으로라면 취향은 분명 입맛으로부터 유래한 게 맞다. 미각은 좋고 싫은 맛을 분별하는 동시에 죽느냐 사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예전 황제들이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알기 위해 간 보는 사람들을 그렇게 두었건만 얼마나 숱하게 독살 당했냔 말이다.

그러나 어떤 취향에 특정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질 때도 그게 절대적으로 옳을 리 없다. 대중들이 죄다 어떤 대상을 싫어한다는 건, 모두가 그걸 좋아하는 것보단 낫다. 다들 그것을 싫어하는 일은 논쟁과 모험을 숨기고 있지만, 한꺼번에 한 가지를 좋아하는 것은 파시즘류의 파괴 체계를 만드니까.

본질적으로 취향은 동일시하는 것에 열광한다. 그러나 역시 좀 더 개인화된 취향을 고집할 필요는 있다. 누구도 남이 먹여주는 대로 먹다가 위하수증 걸려 인생을 끝내고 싶진 않을 테니.

SIGNATURE

SHARE
[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