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지금이 편해요

2010.04.21GQ

이십 대보다 사십 대가 더 좋을 수 있을까? 마흔 한 살의 차승원은 그렇다고 말한다. 그는 대답할 때마다 ‘편하다’ 는 말을 덧붙였다. 떠나갈 것 같은 웃음소리는 없었지만 다른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흰색 셔츠는 크리스 반 아쉐 at 10 꼬르소 꼬모.

흰색 셔츠는 크리스 반 아쉐 at 10 꼬르소 꼬모.

 

검은색 니트와 팬츠는 모두 이브 생 로랑.

검은색 니트와 팬츠는 모두 이브 생 로랑.

요즘 표정이 심각해 보인다. 안 좋은 일 있나? 아니다. 요즘은 마음이 편하다. 안 하던 역할을 많이 해서 기분도 좋고.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못 들은 지 꽤 오래됐다. 원래 그렇게 잘 웃는 사람이었나, 라는 의심까지 했다. 속았다?

속았다기보다, 과거엔 외모에만 시선이 집중되는 게 부담스러워서 일부러 그랬을 수 있었겠다 싶었다. 그런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한결같은 게 있다면 남들과 다른 걸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이번에 출연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도 무거운 분위기지만 나름대로는 다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할 수 있어서 편하다.

편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불편한 건 못 참는 편인가? 못 참는다.

어떤 게 편한 건가? 내 기분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상태다. 사람이 24시간 기분이 좋을 순 없지 않나. 그런데 어떤 장르는 늘 기분이 좋아야 한다. 이제는 그런 게 불편하다.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편인가? 잘할 수 있는 것과 불편해서 못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을 어떻게 다 알겠나. 일부러 이미지를 바꾸기보다 하다 보면 언젠가 바뀌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진행이 잘되고 있는 것 같다. 작전을 잘 세운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작전을 잘 세운다고 생각했다. 에이, 작전 아니다.

늘 대중이 본인을 어떻게 보는지 파악한 후 행동하는 것 같았다. 일상적인 역할이 안 어울린다고 판단해서 일부러 과장된 역할을 고르는 것도 그렇고. 정말 아니다. 실제로 이번에 〈아이리스〉 후속편 끝나면 꼭 멜로 할 거다. 일상적인 멜로.

1999년에 출연했던 〈세기말〉에서는 일상적인 역할인데도 잘 어울리지 않았나? 그는 뭐랄까, 굉장히 뒤틀린 인물이었다. 내가 말하는 건 그냥 일상적인 거, 매일매일 드라마에 나오는 일상적인 역할, 그런 건 이상하게 안 맞는 것 같다.

보통 젊을 땐 맞든 안 맞든 하고 싶으면 해버릴 때가 있지 않나?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계단이 있으면 어차피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냥 그걸 쉬지 않고 했던 것 같다. 배우라는 직업은 어느 정도 이미지 메이킹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선 왜 생각이 없겠나. 어떻게 보여야 하고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고. 그리고 사람들에 내게 어떤 이미지를 원하는지 어느 정도는 안다. 그것 반, 내가 하고 싶은 것 반. 그렇게 하면 되는데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딱 그렇다. 그러니까 좋은 거다. 멜로만 하면 된다. 이제.

이제야 전에 못했던걸 해보고 싶다? 남자 배우가 사십이 넘으면 할 수 있는 역할의 폭이 좁아진다. 연기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품성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드라마를, 하고 싶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다. 위 세대 배우들이 했던 것들. 나이가 들어서 단순히 아이의 아빠 역할로 나오는 것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겠지만, 그건 노력에 의해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성이란 건 이 직업을 갖고 있는 남자는 꼭 갖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 외의 인격이나 연기력은 이후에 논하면 된다.

마흔 살이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 스무 살이나 서른 살에 대한 얘기는 많은데 마흔 살부터는 드물다. 난 삼십 대보다 사십 대가 더 좋다.

어떤 점이? 여러 가지로.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 오십 대가 되면 어떨 것 같나? 지금 당장, 오늘 생각하는 건 이렇다. 내가 여태껏 마흔한 살을 살아왔고 사회생활을 만 22년 해본 결과 앞에서 말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는 거다. 앞으로도 그 안에서도 어떤 변형과 변주를 하면서 조금씩 나를 바꿔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더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사십 대가 넘으면 돈이 아니라 꿈을 좇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돈을 좇는다.

어느정도 돈이 있어야 꿈도 좇을 수 있는 시대다. 아니, 그러니까 나도 그게 될 때 있고 안 될 때 있다. 언제 변할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습관이 안 되면 나중에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는 때가 꼭 온다. 그때는 미치는 거다. 그게 안 될 때가 있다.

한편으론 편한 만큼 스타라는 위치에서는 많이 벗어났다. 스타… 스타…. 스타란 건 뭐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다. 한 편이 정말 잘되면 전에 있던 이미지가 확 바뀌는 경우도 많지 않나? 그러나 경력은 계속 쌓이는 거다. 지금 나와 작업하는 사람들은 내가 보기엔 좋은 사람들이다. 그건 정말 큰 재산이다. 스타… 스타…. 그거야 뭐.

예전엔 심지어 차승원표 영화란 말까지 있었으니까, 모든 것이 당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기는 아니란 뜻이다. 그런데 난 지금이 더 편하다.

상실감은 딱히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 책임을 회피하겠단 건 아니지만, 그렇게 다 짊어지는 건 문제가 있다. 에너지를 다 쏟아 부었을 때 잘되면 모르겠지만 안 됐을 때 그 후폭풍이 굉장하다. 100퍼센트의 신념을 갖고 접근했는데 그게 안 되면 굉장히 허하다. 그런데 내가 할 몫이 있고 확신이 있을 때 에너지를 100퍼센트를 써서 딱 맞아떨어지면 기분이 좋다. 100퍼센트 자신이 책임지는 영화를 한다는 건 굉장히 웃기는 것 같다.

이제 어딜 가나 후배가 더 많을 것 같다. 반쯤은 농담인데, 그래서 편한 것 아닌가? 그래서 편한 것도 있다. 물론 그렇다.

시키는 일을 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뭘 시키는 걸 훨씬 더 좋아할 것 같다. 맞다. 후배였을 때도 누군가가 나에게 뭘 시키는 걸 굉장히 불편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사람들이 나를 오래 연기한 애처럼 봤다는 거다. 리딩을 시키지도 않았고 너 왜 그렇게 하냐는 말도 없었다. 장편 드라마만 두 개를 연속으로 해서 그런지 선생님들과도 유대관계도 좋았다. 확실히 요즘 찍는 영화에서는 승우 형 말고는 선배가 없다. 탑이란 애는 이제 스물두 살인가 세 살인데. 근데 좋다. 다 어울릴 수 있으니까.

그만한 나이대의 배우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 부럽다. 솔직히 부럽다. 이제 나는 해야 할 것만 정해서 할 나이가 됐다. 그때는 뭐든지 해도 된다. 그게 경험이다. 지금은 경험을 쌓을 필요가 없다.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안 된다. 무조건 잘해야 된다. 그게 부담스럽다. 내가 이십 대만 됐어도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할 수 있다. 쇼 프로 MC를 또 볼 수도 있는 거고. 비록 안 될지언정 다른 곳에서 만회할 수 있다. 내 나이가 되면 그게 안 된다. 이걸 잘하면 저것도 잘해야 된다.

후배들에게 그런 얘기 많이 하나? 될 수 있으면 하는 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탑이 연기를 얼마나 잘하겠나.

잘하나? 잘 못한단 말이다. 그런데 열심히 한다. 열심히 하는데 거기다 대고 연기는 이렇게 하고 그런 얘기 할 필요가 없다. 걔는 걔 나이 또래가 원하는 얼굴만 보여주면 된다. 그게 제일 부럽다. 별다른 연기를 안 해도 그 얼굴이 가진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우리 나이 때는 연기를 해야 된다. 그것도 잘해야 된다. 우리 나이 때 연기를 잘한다는 건 연기를 하지 않으면서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그건 정말 힘들다. 그러니까 잘살아야 된다는 게, 인생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게 사십 대다. 그래서 관리를 잘해야 연기도 잘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후배 얘길 한 건 당신이 사람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타입처럼 보이지 않아서다. 그걸 포기해서 그렇다. 일과 가정을 위해선 하나를 버려야 한다. 포기해야 뭘 하지. 잠을 안 자면 모를까 친분 관계까지 다 가질 순 없다.

취미가 있나? 취미? 없을 것 같나?

없을 것 같다. 맞다. 취미가 없다. 진짜. 취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한번도 안 해봤다. 어떤 학자가 배우는 딱히 취미를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실제로 늘 같은 일을 반복한다고 해도 늘 같지가 않으니까. 시간에 얽매이지도 않고.

워커홀릭 같다는 말 많이 안 듣나? 그런 얘기 엄청나게 듣는다. 어휴…. 다른 것들을 포기하니까 시간의 여유가 있는 거다. 다 하려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일 아니면 집이니까.

일요일 밤인데, 이제 집에 가면 뭐 하나? 먹을 거 사서 들어가 쉬어야지.

알겠다. 여기까지 하자. 더 하려고 했나? 농담이고, 사실 아까 힘든 시기가 있긴 했다. 배고플 때. 사십이 넘어서 변한 건 끼니를 거르면 힘이 없다는 거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는 호쾌하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꽉 잡은 그의 손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거칠었다. 이미지가 ‘진짜’ 로 다가오는느낌이 들었다.재킷과 셔츠와 팬츠 모두 돌체 & 가바나 컬렉션. 벨트는 드리스 반 노튼 at 분더샵.

인터뷰가 끝난 후, 그는 호쾌하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꽉 잡은 그의 손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거칠었다. 이미지가 ‘진짜’ 로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재킷과 셔츠와 팬츠 모두 돌체 & 가바나 컬렉션. 벨트는 드리스 반 노튼 at 분더샵.

    에디터
    문성원
    포토그래퍼
    최용빈
    스탭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김혜정(INTREND), 헤어/ 임정호(AURA), 메이크업/ 박은미(AURA)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