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ing

혼자 놀고 싶어요

2010.05.03GQ

이 전엔 샤워기가 도움이 됐다. ‘장난감’ 은 써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단계별로 준비했다. 어디까지 갔을까, 이 여자는?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 안에, 남자와 여자가 앞뒤로 앉아 있었다. 밤이 되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버스가 끊길 무렵에는 꽤나 서늘했고, 여자의 다리는 짧은 치마 아래로 맨살이었다. 검정 재킷의 단추는 모두 채워져 있었다. 새벽 네 시, 역삼역 오피스텔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허벅지와 종이리의 곡선, 하지만 흔치 않게 짧은 치마였다. 손은 아랫배 인근에서 가지런 했는데, 종종 치마를 움켜쥐었다. 두 정거장 정도 갔을 땐, 아예 고개가 뒤로 젖혀지기도 했다. 목 근육이 움찔거리는 덴 어떤 주기가 있었다. 입술이 어떤 모양이었는지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여자의 근육이 수축하는 순간엔 남자의 엄지손가락도 같이 움직인다는 걸 알았다. 남자는 웃으면서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은, 상상에서나 가능하다. (적어도 한국에선) 불법이니까.

“그런 제품을 갖고 있긴 한데, 팔 수는 없어요. 음성적으로 구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선으로 조종하는 바이브레이터는 불법이에요. 통신법에 걸립니다.”

‘부르르(www.bururu.co.kr)’ 김종백 매니저의 말이다. 통신법이 제한하는 건 개인정보 유출과 판타지의 실현인 걸까? 무선으로 여성의 성기를 자극하는 상상은 일본 ‘야동’ 보다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지난 2월 12일 한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회사 ‘러브 투 러브’ 는 원격으로 여성의 욕망을 조종할 수 있는 기계를 한정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름은 ‘르 데클릭’ 이다. 프랑스어로 ‘시동장치’ 란 뜻이고, 이탈리아 만화가 밀로 마나라가 지난 1984년 그린 만화의 제목과도 같다.

밀로 마나라의 만화는 전설이 됐다. 정숙한 여자가 불가항력으로 무너지는 상상을 한 번이라도 머리에 담아보지 않은 남자가 있을까? ‘르 데클릭’의 주인공은 수줍음이 많고, 불감증 증세까지 있는 부르주아 여성이었다고 한다. 이 여자의 머릿속에 어떤 전파 수신 장치를 이식하고, 성기 안엔 작은 진동장치를 넣어 원격으로 조종하기 시작했던 건 한 의사였다. 여자는 치마를 움켜쥐다, 고개가 꺾이다, 다리에 힘이 풀리다, 때론 기어가다, 누구라도 좋으니 “날 좀 어떻게 해달라” 고 간청하기도 할 것이다. 프랑스라면 ‘부르주아’ 의 도덕관념을, 미국이라면 청교도적 절제들을 일순에 내버리게 된다. 최음제는, 두통약처럼 뇌의 어떤 신경을 자극할 것이다. 하지만 ‘르 데클릭’ 은, 오카모토 콘돔 한장 만큼의 두께도 없이 여자의 몸속에서 떨리는 기계였다. 의사가 갖고 있던 원격 조종 기계는 곧 ‘악한’ 의 수중으로넘어간다. 기사는이렇게썼다.“ 남자는그녀를창녀로, 혹은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린다.”

성욕과 도덕의 경계는 머릿속에서만 두껍다. 실은 어떤 제약도 없다는 걸 스스로 알면서도, 남자와 여자는 어떤 규칙에 암묵적으로 봉사한다. “난원나잇할땐절대키스하지않아” “귓볼을 먼저 핥아 주지 않는 남자랑은 하고 싶지 않아” “여자가 너무 달려들면 짜증나, 너무 목석 같아도 짜증나”이런 식으로 따지지 않아도, 누릴 것보다 지키면서 살게 많은 나라다. 그리고 어떤 ‘아는여자’ 가, “좀 새로운게 필요하다” 는 쪽지를 건네 왔을 때 떠올랐던 게 ‘르 데클릭’ 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여자가 창녀나 하수아비가 되진 않았지만. 에디터는 김종백 매니저에게 조언을 청했다. 그는 세 종류의 ‘바이브레이터’ 와 ‘명랑한’ 편지를 보내왔다. 다듬으면, 이런 내용이다.

“첫 번째는 작지만 거대한 쾌감의 명랑 바이브레이터, LELO사가 만든 ‘MIA Petal’ 입니다. 립스틱처럼 작고, 진동이 조용하죠. 충전은 USB로 합니다. 사무실 컴퓨터에 꽂아놓아도 알아채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두 번째는‘부르르’ 자체 브랜드 ‘지니 ROAE’ 입니다. 중급용이죠. 최고급 실리콘, 삽입과 동시에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도록 설계됐어요. 세 번째는 상급자용, 독일 펀팩토리가 만든 ‘트위스트 & 셰이크 Sally Sea’ 입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떨면서 돌아가고 꺾여요.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새로운 게 필요한 여자에게 물건들을 보낸 건 오후 다섯 시. 다시전화가 걸려온 건 새벽 한 시 반이었다. 여자가 말을 꺼냈다. “ 작은 것부터 해봤어요.”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 보기엔 진짜 립스틱처럼 생겼다. ‘+’ 버튼을 누르면 진동이 생기고, 점점 강해진다. 제일 강하게 하고 책상 위에 놓으면 ‘타다다닥’ 하고 깨 볶는 소리가 날 정도로. “그래서요?” “처음엔 바지를 입고 시작했어요. 소리 정말 작던데요? 그냥 간질간질한 정도? 가슴에 댔을 때도 그랬고. 전, 사실 아침에 샤워기로 혼자 놀 때가 많아요. 그러다 느낄 때도 있을 정도로. 시작할 땐, ‘차라리 샤워기가 낫다’ 싶더라고요.” “‘+’ 버튼 못 봤어요?” “눌렀어요, 여러 번. 그리고 한 삼십 분 정도….” “바지, 입고 있었어요?”

여자는 혼자 살아서 다행이라고, 옷을 벗었다고 말했다. 어떨 땐 뼈가 울리는 느낌이었고, 어떨 땐 (혼자면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고 했다. 오른손 세 손가락으로‘미아 페탈’을 쥐고, 샤워기 물줄기가 자극하던 어떤 부분을 예민하게 자극했다고도 말했다.

“팬티를 입고 할 땐, 뭐랄까 진동이 실크에까지 다 퍼져서 좋았어요. 깊거나 날카롭게 들어가기보단, 희롱당하는 느낌?” “당하는 게 아니라 ‘하는’거겠지?” “어쨌든요. 그러다 팬티 안으로 넣었을 땐 좀… 참기 힘들어지던데요?”

술도 최음제도 아니고, 누가 있어야 자극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놀랄 일은 아니었다. 누가 해주는 것보단, 혼자서 찾아가는 게 효율적일 것이다. 어쨌든, 시간은 많지 않다. 하룻밤에 끝낼 일이었다. “두 번째는 ‘지니’ 죠? 그거 의외였어요. 분명히 딜도라고 생각했는데, 생긴 게….” “얌전하죠?” “응. 손에 잡히는 느낌도 그렇고.” “그게 궁금하진 않아요.” “쳇. 나, 말 안 한다? 그럼 지큐 섹스 칼럼 ‘빵꾸’ 나는 거죠?”

해줄 것도 아니면서 ‘바이브레이터 3종 세트’ 를 보낸 데다,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인터뷰’ 하고 있는 차였다. 여자의 협박은 효과가 있었다. 이럴 땐, 그냥 웃는 거다.

“하하하하, 말해봐요, 장난치지말고. 좋았어요?” 여자도 웃으면서 말했다. “응, 생각보다 훨씬. 나, 느꼈어요. 한 이십 분 정도 지났을 때? 찾아보니까 삽입한 채로 클리토리스를 자극하거나, 엉덩이를 그렇게 하거나, 남자랑 같이 할 때도 쓸 수 있는 거라면서요? 뭐랄까…. 아까 ‘릴로’ 랑은 깊이가 달랐어요. 팬티 위로 마치 삽입하는 것처럼 꾹 눌렀는데, 십이지장까지 떨렸어요. 숨은 계속 차는데 소리는 안났어요. 세로로 길게 댔을 때도 이상한 느낌이었는데….”

“남자랑 어떻게 달라요?” “남자가 떨리진 않잖아요.” 바이브레이터를 질투할 일은 아니지만…. 그건 생물학적으로 ‘해줄 수 없는 일’ 이니까. 대신 질문을 했다. ‘삽입’ 하진 않았냐고.

“고민을 했어요.” “무슨?” “왠지, 넘으면 안 되는 선을 넘는 것 같아서.” “넣기 전에 이미 느꼈다고 하지 않았어요? 당신, 이미 선 넘었어요.” “근데, 그걸 말로 하긴 좀 어려워요. 뭐라고 해야 하지? 그냥 ‘좋았다…’ 고 하지 않아요? 남자랑 자고 나서도 뭔가 ‘좋았다…’ 고 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사실, 좋은 대답도 많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어요’ ‘그때,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내일은 이 이불 다 빨아야 할 것 같아요’ ‘당신이 필요했어’ 같은. “그래서, 넣어봤다는거죠?”

“응. ‘릴로’ 랑 두 개를 같이 쓰기도 했어요. 하나는 왼손으로 쥐고 움직이면서, 또 하나는….” “‘지니’ 도 동시 자극이지 않았나?” “그건 ‘뒤’ 로 돌려놓고….”

이젠, ‘넘으면 안 되는 선’ 따위를 운운했던 여자가 아닌 것이다. 아무 경험도 없는 여자와 하는 감정에 이런 결이 있을까? 원격 조종으로 희롱했던 의사가 그랬을까? 어쨌든, 내 손은 전화기에만 닿아 있었으니까.

“그럼 마지막 것은?” 상급자용 바이브레이터의 생김은 지니보다 과감했다. 조금 더 페니스에 가까웠고, 보통의 그것보단 더 길었다. 밑동은 두꺼웠고, 실리콘으로 덮은 안에 원형으로 회전하는 구슬 같은 게 들어 있었다. 이것이 어딘가에 들어간다면, 베터리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진동할 것이다. ‘트위스트’ 와 ‘셰이크’ 를 최고 단계까지 올리면, 그냥 ‘넣었다’ 는 말보단 ‘휘저었다’ 는 단어가 적합할 것이다. 상자 안엔 윤활제까지 동봉돼 있었다.

“그건….” “꺼내보긴 했어요?” “응, 그런데…. 차마 못해보겠어요. ‘이게 들어갈까?’ 생각도 들고, 윤활제까지 발라가면서 넣고 싶은 마음도 없었어요. 그리고 다 쓴 다음엔 씻어야 하잖아. 세면대에서 저 분홍색 물건을 들고 닦고 있는 것도 좀 그렇고요.”

“이미 느꼈으니까, 그것까지 쓸 생각이 안 들었던 건 아니고?” ‘여기까지’ 라고 생각하는 게 옳은 상황이었다. 목소리는 냉정했지만, 머릿속에선 밀로 마나라의 만화 속에서 전율했던 여자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밀로 마나라는, 여체를 가장 아름답게 그려내는 작가라는 세계적인 평가를 얻고 있다.) 만화는 만화일 뿐이라고 생각할때, 여자가 말을 이었다. “나, 이거 언제 돌려줘야 해요?”

“내일.” “……” “아쉬워요?” 그리고 열흘 정도가 지났다. ‘3종 세트’ 는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 새벽 두 시쯤엔 여자한테서 온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다.

    에디터
    정우성
    아트 디자이너
    Illustration/ Fingerpainting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