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빠 ‘니네’ 오빠

팬덤은 죽지 않는다, 변화할 뿐이다. ‘오빠들’ 은 사라지고 ‘오빠’ 만이 남았다.

JYP는 지난 2월 2PM의 재범을 영구 탈퇴를 발표했다. 간담회 이후 2PM의 팬덤은 셋으로 나뉘었다. ‘7명의 2PM’ 을 지지하던 팬은 2PM을 떠났다. ‘6명의 2PM’ 을 인정하는 팬들은 그 자리에 남았다. 그리고 ‘재범’ 의 팬은 사라지는 대신 자연인 박재범의 팬이 되었다. ‘2PM의 재범’ 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도, 박재범의 유투브 동영상은 압도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포털사이트의 메인을 장식한다. 팬들은 더 이상 박재범의 2PM으로의 복귀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청년 박재범’ 이 전해주는 이야기와 노래를 들으며 그의 안위를 걱정하고 행복을 기원한다. 그뿐이다.

팬덤이 변화하고 있다. 형식은 분열이다. “어차피 영속적이지 못할 ‘그룹’ 에 정 줘봤자 자기만 상처받는다는 걸 한 번 더 깨달은 거죠. 지금의 팬덤은 HOT, 젝스키스 등 영원할 줄 알았던 아이돌이 힘 한번 못 써보고 한순간에 해체로 치닫는 걸 경험한 세대에요.”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이 말했다. 2PM은 활동 중 유난히 단체적 속성을 강조했다. 남성미, 의리, 공동체 같은 근래에 보기 드문 고전적인 아이돌의 이미지를 소구했다. 팬들은 잠시 헷갈렸다. 단시간에 폭발적인 팬덤이 생겨났다. 그리고 역시나 ‘상처뿐인 영광’ 이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다시 흩어졌다. “정말로 더 이상 팬들은 속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도 2PM에 ‘혹시나’ 했지만, 다시 ‘역시나’ 로 돌아선 거죠. 지금도 그렇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아이돌, 그리고 팬덤의 개인화는 더욱 심화될 겁니다.”

1세대 아이돌의 팬덤은 단순했다. 기획사는 콘텐츠의 독점 보유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었다. 지나가면 볼 수 없는 TV방송, 답답한 잡지 화보를 제외하고 ‘오빠들’ 을 볼 수 있는 길은 기획사를 통해서뿐였다. 공식 팬클럽은 팬들을 쉽게 조종했다. 기획사는 멤버 개개인을 부각시킬 이유가 없었다. 지금처럼 아이돌이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면을 장악하고 있어 ‘따로 또 같이’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저 하나의 단체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5명은 5배의 비용이 드는 대신 5배의 수익을 거두어들였다.

“아이돌의 개인화는 돈의 흐름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예전에는 하나로 묶어서 음반을 내고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올렸죠. 지금은 그게 아닙니다. CF, 음원, 연기 등 다양한 형태로 돈의 흐름이 잘게 파생되었어요.” 강명석의 설명이다. 돈의 흐름이 변하면서 전략도 함께 변했다. 기획사는 더 이상 ‘반항아’ 또는 ‘친근함’ 등의 집단적 이미지를 만들지 않고 멤버 각각에 색다른 이미지를 부여했다. 새로운 방식의 마케팅이었다.

빅뱅은 새로운 형식의 아이돌의 시발점이라 할 만하다. 빅뱅 내에는 음악 색깔이 현저히 다른 멤버가 공존한다. 유행의 꼭대기에 선 지드래곤이 좀 더 트렌디한 팝 사운드에 초점을 맞춘다면, 태양은 알앤비를 지향한다. 친근한 이미지의 대성은 트로트곡을 발표하기도 한다. 무대 의상 역시 멤버의 특성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탑은 배우로 입지를 쌓더니 이윽고 <폭풍 속으로>같은 블록버스터에 출연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빅뱅 자체를 지지하는 큰 팬덤이 가장 우뚝하지만 멤버별로 미묘하게 팬덤이 갈리는 양상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게시판으로 유명한 ‘디시인사이드’ 에서 가장먼저 개인 게시판을 만든 건 빅뱅의 개인 팬덤이다. 지드래곤의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팬들은 YG의 지드래곤 개인활동 지원 미비를 규탄하며 ‘지드래곤을 찾 을 수 없습니다’라는 신문광고를 내기도 했다. 승리의 게시판 공지에는 ‘자신만의 공간으로 독립하게 된 승리 갤러리의 1주년을 축하합니다’ 라는 문구가 있다. 빅뱅은 여전히 빅뱅이지만, ‘니네’ 오빠라는 개념에 대해 가장 민감한 팬덤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 매체의 발달 역시 팬덤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은 거점문화를 만들었다. 블로그, SNS, 개인 홈페이지 등 수많은 종류와 형태의 거점이 생겨났다. 팬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기획사라는 하나의 채널에 의존하던 팬들이 자의적으로 변한 건 ‘거점’ 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팬들은 기획사와의 1대 1 소통보다 손쉽고 값싸게 스타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제약과 제제가 많은 공식 팬 페이지, 포털 사이트 등을 벗어나 개인 멤버 중심의 홈페이지, 게시판 등을 구축하며 자기분열을 해 나갔다. 어차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24시간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빠’의 존재였지, ‘정통’ 의 명함이 아니었다.

거점이 생긴 팬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유노윤호가 좋은데, 굳이 동방신기 팬 페이지에 들어가서 다른 멤버들 사진 사이로 윤호를 힘들게 찾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룹을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단지 개인 팬 페이지를 이용하는 쪽이 더 편하고 효율적인 거죠.” 동방신기의 팬,아니 유노윤호의 팬 A양의 말이다.

‘대포 누나’ , ‘능력자 팬’ 이라는 신조어는 새로운 팬덤의 형태를 잘 설명한다. “어느 개인 팬 페이지 회원이 조류를 촬영하는 데 쓰는 ‘대포 렌즈’로 먼 거리에서 아이돌 멤버의 사진을 찍고 있었대요. 사진이 코앞에서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나오자 옆에 있던 기자가 자기도 못 찍는 사진을 찍고 있다며 부러워했다는 일화가 있어요. ‘능력자 팬’ 이죠.” 박재범의 팬B가 말했다. ‘능력자 팬’ 들은 영상을 1초 단위로 캡처한다. 해당 멤버만 나오는 부분을 편집, 재가공한 후 게시판에 올린다. 그들의 사적인 동영상을 보유하고 있는 건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방송에서 볼 수 없는 스타의 모든 것들이 개인 팬덤에는 있다. 팬들은 이런 ‘특종’ 자료를 끼리끼리 쉬쉬하며 즐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개인적, 배타적인 팬덤의 구조는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다마고치 팬덤이라는 말이 있어요. 스타를 ‘하나만 찍어서’ 키우고 관리한다는 거죠. 이제는 ‘오빠들’ 이라는 말보다 ‘우리 애’ 라는 말이 좀 더 친숙해요. 예전처럼 팬들은 스타에 죽자 살자 하지 않아요.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부분만 골라서 좋아하는 거에요.” 유노윤호의 팬 A의 말이다. 스타는 우상 대신 취사선택 가능한 취향의 영역이 되었다. 그들 식대로 표현하면, 관심 없는 것들에 대해선 ‘아웃 오브 안중’ 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 그룹의 멤버를 ‘로테이션’ 하고, 수시로 멤버 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은 팬덤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어요. 기획사들은 이미 오래 전에 기존 마케팅 전략의 한계를 인정했습니다. 일단 그룹으로 이름값을 올린 후 개인의 판매에 치중하는 형태가 앞으로의 아이돌 문화를 이끌어 가게 될 거에요. 물론 아이돌의 ‘브랜드’ 는 유지한 채로 말이죠. ” 강명석의 지적이다. 각자가 놓인 환경에서 변화를 겪은 기획사와 팬은 이렇게 한 지점에서 만났다. 그 어디에도 ‘오빠들’ 은 없다. ‘우리 오빠’ 와 ‘니네 오빠’ 만이 남았다. 팬덤은, 그렇게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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