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당신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2010.06.30GQ

저출산으로 한국 경제가 좌초할 거라고 걱정들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를 위해 아이를 낳을 순 없다.

지난해 11월 25일이었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 위원회는 서울 광진구에 있는 여성능력개발원에서 한국의 저출산 문제 대응 전략 회의를 가졌다. 별났던 건 이날 회의를 대통령이 이끌었단 점이었다. 국무회의도 아니고 안보회의도 아니었다. 이유가 있었다. 한국 경제는 시한부 경제다. 국민들이 애를 안 낳아서다. 20년 뒤엔 20대가 없는 나라가 될 수 있다. 20대가 없으면 국가 경제가 순차적으로 붕괴된다. 신입생이 없어서 대학교가 사라진다. 다음엔 노동자가 모자라서 공장이 문을 닫는다. 가족 소비자가 사라지면 대형 마트도 끝이다. 싸고 힘 좋고 천진한 노동 인력이 없으면 기업들은 한국에서 사업하기가 버거워진다. 대통령이 앉았던 상석 뒤엔 “아이는 당신과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란 구호가 붙었다.

아이가 대한민국의 미래인 건 맞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지난 6개월 동안 낙태 근절 운동을 벌여왔다. 낙태를 해주는 산부인과를 고발하는 활동을 시작으로 이젠 정부와 낙태 줄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낙태는 불법이지만 산부인과는 낙태로 35만원 정도를 받아왔다. 한국에서 낙태는 한 해에 30만 건이 넘는다. 신생아는 20만 명 정도다. 낙태만 줄여도 매년 50만 명의 아이가 태어난다는 계산이다. 정부와 언론은 저출산 문제를 국가의 존망 대사로 접근한다. 무슨 수를 내서라도 국민이 애를 낳게 해야 한다고 본다. 저출산 문제의 미봉책을 낙태 줄이기에서 찾고 있다.

30만 건의 낙태는 곧 30만 명의 신생아를 의미한다. 하지만 30만명이란 숫자가 의미하는 건 또 있다. 30만 쌍의 엄마와 아빠다. 정부가 ‘당신’ 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당신들은 처음엔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신한 아이는 포기해선 안 된다는 국가적, 법률적, 종교적 강요와 설득 탓에 아이를 낳는다. 그때 당신들에게 아이는 예기치 못한 미래다. 하지만 국가는 당신들의 미래까지 책임져주진 않는다. 그 아이 덕에 당신이 행복하든 말든 정부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정부가 필요한 건 당신이 아니라 아이이기 때문이다. 20년 뒤 휴대전화를 사고 군대에 가고 노동을 해줄 아이들이다.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낙태 시술을 해주는 산부인과를 고발하기 시작하면서 낙태 시술에 드는 비용이 높게는 2백만원까지 올라갔다. 그래도 낙태 문의는 끊이지 않는다. 다급해진 당신들은 급기야 일본이나 중국으로 원정 낙태를 가고 있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국가의 미래로만 고민했지 당신의 미래로 걱정해주진 않아서다. 자신의 미래를 먼저 지켜야 하는 당신에게 낙태는 가능한 선택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저출산 문제는 여론의 꾸준한 화두였다. 일본 경제가 휘청이는 걸 보면서 지목한 원인이 1990년대부터 계속된 저출산이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 경제가 제법 일본 경제를 따라잡기 시작한 것도 일본 사람들이 아이를 덜 낳으면서부터였다. 한국의 미래를 충심으로 걱정하는 신문들은 경제면에선 저출산이 한국 경제의 암초라고 했고, 정치면에선 국가적 대책을 열거했고, 사회면에선 낙태 산부인과 고발 소식을 전했고, 특집면에선 저출산의 특효약을 찾는 기사를 실었다. 논의의 출발은 아기가 안 태어나서 국가의 미래가 불량하단 위기의식이었다. 그 안에 당신은 없었다. 당신은 정부와 여론이 꼬드겨서 아이를 낳게 만들 대상이다. 시민단체의 낙태 근절 운동과 정부의 단속은 당신에 대한 설득이 급기야 강제로 변질된 결과다.

1971년 한국의 출산율은 4.54명이었다. 2009년 출산율은 1.2명이다. 1970년대엔 산아 제한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때는 정부가 콘돔을 나눠줬다. 남자들한텐 정관 수술을 해줬다. 인구가 너무 많아서 경제가 주저앉을 판이었다. 먹을 쌀이 모자라 쌀막걸리를 못 만들던 시절이었다. 정부의 인구 억제 정책은 결과만 보면 성공했다. 정책과 여론으로 국민을 설득했기 때문이 아니다. 국민이 필요했고 선택했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에선 자식이 많은 게 재산이었다. 아들은 품삯이 들지 않는 농노, 첫딸은 살림 밑천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경제는 농경 중심에서 상공 중심으로 바뀌었다. 자식들은 도시에서 직장을 얻었다. 자식들이 딴 주머니를 찼으니 부모한텐 경제적으로 득될 게 없었다. 부모의 재산은 형제가 많을수록 세습될 땐 잘게 쪼개져서 적어졌다. 부모의 돈과 애정을 독점한 소수의 자식은 시장의 출발선에서 조금이라도 앞에 설 수 있었다. 어학 연수라도 다녀올 수 있었고 백수가 돼도 연명할 수 있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20대와 30대가 된 세대다.

지금 20대와 30대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강요받고 있다. 하지만 20대와 30대의 선택도 시장 논리의 결과다. 지금 아이는 경제적으론 쓸모가 없다. 교육비때문이 아니다. 아이를 낳으면 부모의 모든 경제 생활이 윤기를 잃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으면 둘이서 30평 전세에 살 수 있는데 아이가 있으면 20평 월세에 살아야 한다. 게다가 2009년 기준 한국의 이혼율은 OECD 국가 중 1등이다. 이혼할 때 아이는 고민거리다. 결혼하고 5년 안엔 아이를 안 갖는게 합리적이다. 20대와 30대 부부의 부모들도 아이를 강요 하지 않는다. 역시 시장 논리다. 그들은 직계 자식을 보살 피는 정도가 한계란 걸 안다. 한국의 어느 경제 세대도 아이가 간절하지 않단 얘기다. 낙태를 근절하고 교육비를 지원해도 지금의 20대, 30대는 아이를 낳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국가보단 자신의 미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한국적이고 동양적 사고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교적, 종교적 가족주의를 복원하겠단 뜻이다. 역설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은 경제 발전을 위해 의도적으로 한국인의 가족 체계를 허물었다.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아들이 도시 공장에서 일하도록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젠 국가의 필요 때문에 국민들한테 가족을 꾸리라고 요구한다.

인구 감소를 막을 방법은 없다. 프랑스나 독일의 복지 정책도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는 늦췄지만 현상을 역전시키진 못했다. 미국 인구가 늘어나는 건 기독교적 낙태 반대 운동 덕이 아니라 히스패닉 인구의 대거 유입 때문이다. 낙태 단속이나 세 자녀 갖기 정책은 보여주기 행정은 될 수 있지만 근원적인 처방은 아니다. 윤리나 종교에 기댄 잔소리 역시 반향은 작고 반발은 크다. 이젠 줄어든 인구로도 버틸 수 있는 경제 체질을 고민하는 게 맞다. 한국 경제는 너무 오래 국민의 노동력으로 성장했다.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 배는 모두 노동 집약적 산업이다. 하지만 한국은 싸고 만만한 노동 국민에 의존하는 체질을 바꿀 생각이 없다. 이젠 국민한테 미래의 노동자와 소비자를 낳아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가 경제는 정부와 기업과 국민이 축이다. 정부와 기업은 너무 오래 국민에만 희생적 노동과 소비를 강요했다. 저출산 문제는 국민이 지쳐간다는 암시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부를 세습하려는 번식 욕구보다 현재 만족을 추구하게 됐고, 그건 비난하거나 설득하기보단 인정해야 할 변화다. 이젠 정부와 기업이 길을 찾을 차례다. 아이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아니다. 당신의 미래다.

    에디터
    신기주(FORTUNE KOREA 기자)
    아트 디자이너
    Illustration/ Lil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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