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 엔딩 스토리

한 번에 네 번. 남자는 여자를 사랑했다. 하지만 횟수가 사랑과 비례한다는 건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설명했다. 교감 신경, 부교감 신경, 오르가슴 도달 시간, 남성 호르몬 분비, 어쩌구 저쩌구. 명백한 사실의 언어는 그를 설득하지 못했다. 갑자기 번쩍 정신이 든 건 그 다음 한마디 때문이었다.

“하룻밤에 고기를 두 번 먹진 않죠”
그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었다. 두 번. 같은 두 번인데, 의미는 달랐다. 그는 어젯밤에 네 번을 했다.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의사를 찾아갔다. 약지에 조잡한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손톱도 꽤 길었다. 그러나 요란해 보이지 않았다. 두피에 이랑이라도 낼 듯이 머리를 두 번 더 긁었다. 머리 긁은 횟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사소한 일이고 머리 긁은 횟수가 생활에 발휘하는 영향력이 적기에 기억하려는 의지도 희박하다. 그러나 ‘몇 번을 했는지’ 는 그곳이 체력장이거나 경매장이었던 것처럼 숫자로 남는다. 숫자는 힘을 의미했다. 그는 주먹을 쥐었다. 긴 손톱을 숨길 생각이었다. 아니, 의사를 한 대 치고 싶기도 했다.

“제가 근력 운동을 많이 해서는 아니고요? 근력 운동을 좀 줄여 보면 어떨까요?”
“근육질과 횟수 사이에 비례 관계는 없어요. 오히려 유산소 운동이 발기 조직을 재생시키고, 남성 호르몬 수치도 높이기 때문에 횟수와 관계 있죠. 자주, 쭉 그랬나요?”
“자주, 쭉 맞는데, 이번에는 좀 심한 것 같아서요.”
“어젯밤 얘기를 더 해봅시다. 다시 발기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요?”
“1분? 2분?”
“정말 빠르시네요. 처음하고 똑같이 오르가슴을 느꼈어요?”
“아니요. 훨씬 더 좋았어요.”

“두 번째 성관계를 원인으로 발생한 오르가슴은 아닐 것 같네요. 남성의 오르가슴은 ‘사정 임박감’ 에서 오거든요. 1회 사정하면 보통 1시시에서 5시시가량의 정액을 배출하고, 온전히 채워지려면 약 이틀에서 삼 일가량이 걸려요. 사정 후의 안정 기간을 ‘불응기’ 라고 부르는 데, 남자는 불응기가 있어서 오르가슴이 처음보단 두 번째에서 덜한 게 일반적이에요.”

첫섹스를 경험할 때부터 ‘여러 번 한다’ 는 게 문제이진 않았다. 남자들의 대화에선 언제나 20분보단 30분이, 10센티미터보단 15센티미터가, 한 손가락보단 두 손가락을 펴는 게 우월했으니까. 그러나 네 번은 달랐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들수록 손가락 하나씩을 구부려 나갔다. 나중에는 검지만 펴 보이다가 그마저도 접었다. 잠자코 주먹을 쥐고 있는 날이 늘었다. 그래야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한 번씩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아무리 근육의 부피를 키워도 사람들을 곁눈질하는 그의 눈은 감추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성관계를 할 때는 음경으로 혈류가 쏠리면서, 이 것의 누수를 막아주는 근육이나 골반 근육의 피로도가 상당히 큽니다. 1백 미터 달리기를 끝내고, 또 한 번 뛰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섹스할 때는 비교적 체력을 비축하거나 안배하지 않고, 한 번에 모든 걸 쏟아낸다는 거죠. 두 번째 1백 미터 달리기를 더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도 극히 드물 게 있을 겁니다. 그러나 섹스에서는 불가능하지 않죠. 셀 수 없이 많은 예외가 섹스의 복잡함을 만들어요. 환자분의 경우에는 피로감의 극한을 오르가슴으로 인식하는 걸 수도 있어요.”

“그거, 변태라는 뜻인가요?”
“하하. 아니에요. 대부분의 남자가 가벼운 성도착 하나쯤은 갖고 있거든요. 하지만 나이가 서른다섯인데, 20대와 변함없이, 그것도 평균보다 무리한 성생활을 한다는 건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노년에 성기능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보험도 들지 않았거든요. 위협의 실체를 의식하면서 살고, 섹스하고,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면, 이렇게 말씀 드리죠. 제 임상 경험으로는 현재 남성호르몬 과다 분비나 뇌하수체 종양까지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그는 귓불을 만지면서 시선을 돌렸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마치 귓불로도 듣지 않겠다는 의사표시 같았다. 그래도 두려움은 숨길 수 없어서 미간이 조금 당겨졌다. 그는 코가 크고 이마가 넓고 체격도 좋은, 옛사람들이 말하는‘밝히는 상’이었다. 종종 친한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작은 동작으로 입을 가리면서웃는그를보며, ‘밝힌다’ 는 말은 떠올렸을지언정 내뱉지는 않았다.

스스로는 밝히는 쪽이라고 여겼다. 시원스러운 외모와 떡 벌어진 체격을 지닌 채 수줍게 행동하는 건 습관이자, 사람들에게 ‘의외의’ 호감을 사는 행동 양식일 뿐이었다. 의사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하며 약간 고개를 숙였다. 푹 꺼진 눈꺼풀이 보였다. 건장한 몸에도 불구하고 순간, 나이가 들어 보였다.

“상대 여자 분은 와이프 되세요?”
“아직 미혼입니다.”
“그럼 애인이신가요? 아니면 그것도 아닌가요?”
“그게 중요해요?”
“사실 제일 중요합니다.”
“애인이냐 아니냐가 제일 중요하다고요?”
“우리나라 성인들은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1회 정도 성관계를 가진다는 통계가 있죠.”

의사가 검지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대도시에서의 직장생활, 습관적인 음주, 간편한 인스턴트 음식 섭취 등으로 나타나는 환경 호르몬의 영향도 물리치고, 하룻밤에 한 번의 성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남성의 신체 구조까지도 극복했다는 건 그 사람이 엄청난 흥분을 안겨주는 사람이라는 뜻 같은데요? 다른 모든 가설을 부정하고 나서 마지막에 남는 건 심리적인 부분이 원인인 경우가 많아요.”

“오래전부터 이게 병일 수 있겠단 생각은 했어요. 예외 없이 여자들을 너무 힘들게 했죠. 이번에는 정말 잘하고 싶은데, 몇 년 만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어제는 하도 괴롭히는 통에 ‘성폭행 당하는 기분이었다’ 는 말까지 들었어요.”

“그 말에 기분이 상해서 성의학센터까지 찾아오신 거예요?”
“아니요. 그녀가 그렇게 얘기한 건 세 번째로 하고 나서예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안아주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한 번을 더 시도했어요. 최악이었죠. 약이나 주사로 성욕 억제가 된다고 들었어요. 왜 성범죄자들에게 화학적 거세시키는 것처럼요. 그것보단 좀 약하게 처방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까 병일지도 모른다고 하셨죠?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더 이상 인간이랑 짐승이랑 왔다갔다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저도 그렇게 해주실 수 없을까요?”

“한 해 풍년으로, 풍년의 시작인지 흉년의 끝인지 알까요?”
“네에? 무슨 <탈무드>에 나오는 말인가요?”
“방금 지어낸 말이에요. 약이든 주사든 항상 두 번째거든요. 지금 이 사랑이 시작하는 건지 끝나는 건지도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차선’ 을 쓰겠어요. 폭력적으로 드러난다고 해서 꼭 짐승은 아니에요. 그런 사랑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초보 무술가처럼, 단단한 주먹만 믿을 뿐 어떻게 쓸지를 몰라서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과 같은 경우죠. 저는 사랑을 인위적으로 억제하거나 숨기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성의학에서 제시하는 심리 치료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요. 성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분산시키는 거예요. 한번 같이 시도하면서 고민해보죠.”

병원을 나와서 거리를 걸었다. 조금 부끄러웠다. 의사가 화학적 성욕 억제 치료를 제안했더라도 자신은 결국 번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향해 걷는 동안 그의 잡생각들은 업무 걱정에 뒤쳐졌다.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급한 마음은 방향도 없이 그녀에게 전화 걸게 만들었다. 어떤 결론이든 말해주고 싶었으나 지난밤의 얘기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퇴근해서 저녁에 고기나 좀 먹자고 말하고 끊었다. 아직 정오였고, 휴대 전화를 바지 주머니에 넣으면서 손톱이 부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