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오! 심판, 오심! 판

2010.07.26GQ

‘오심도 축구의 일부다.’ 이 말은 곧 이렇게 바뀔지도 모른다. ‘전자 장비도 축구의 일부다.’ 당신은 둘 중 어느 생각을 지지하고 싶은가?

이번 월드컵은 ‘오심 월드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래서 또다시 비디오 판독이나 전자 장치 등에 대한 얘기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물론 그것들이 도입된다면 축구 판정의 ‘패러다임 교체’라 할 만큼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딱 한 가지 상황에서만 찬성한다. 바로 골라인 판정의 비디오판독이다. 예를 들어 오프사이드냐 온 사이드냐를첨단 장비를 동원해 다시 판정한다고 해보자. 공격수가 온 사이드 위치에서 돌파하던 순간, 심판의 오프사이드 오심이 내려졌다. 공격측의 항의에 따라 판독해본 결과 온 사이드가 맞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대목에서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느냐다. 온사이드 위치에서 돌파가 일어나던 순간과 정확히 똑같은 상황을 재연해 그 대목에서 경기를 재개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축구에서 대부분의 상황은 이런 유형이다. 다만, 골라인 통과 문제의 경우 판독의 합리성이 획득될 여지가 있다. 물론 이 판독도 일단은 경기를 진행하고 나서 공이 ‘아웃 오브 플레이’되었을 때 이뤄져야 한다.(따라서 선수들은 경기가 중단될 때까지는 일단 열심히 뛰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공격측의 슈팅이 골라인을 넘었는데 넘지 않은 것으로 판정되자마자 수비측이 역습을 해서 골을 넣었다고 해보자. 이 경우 판독의 결과 앞선 상황에서 골라인을 넘었던 것이라면, 그 골을 인정하고 수비측의 골을 취소시켜도 괜찮은 것처럼 보인다. 골라인 판정이 단순히 넘었느냐 안 넘었느냐의 문제인 데 반해, 핸들링 판정은 그보다 더 판정이 복잡하다. 뿐만 아니라 핸들링이 발생한 위치에 따라 앞에서 설명한 오프사이드판정 상황과 유사한 난점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찬성 범위는 딱 ‘골라인 판정’까지만이다.
한준희(KBS 축구해설위원)

월드컵은 그저 그런 축구 대회가 아니다. 지구인들이 4년 동안 쏟아 부은 엄청난 노력과 돈, 팬들의 열정이 단기간에 집중 소모되는 인류최대의 이벤트다. 그렇다면 실수는 최소화되어야 한다. 심판 판정은 최우선 고려 대상이다. 오심은 모든 것을 망칠 뿐만 아니라 월드컵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축구 팬들이 내놓는 개선책은 지극히 현실적이다.기술의 도입이나, 심판수를 늘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모든 축구장과 모든 경기에 다 적용할 필요는 없다. 최소한 월드컵만이라도 오심의 늪에서 건져내야 한다. FIFA는 그동안 ‘오심도 경기의 일부’, ‘축구는 인간적인 스포츠’라며 변화에 대해 보수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하지만, 더 이상은 곤란하다.기술의 발달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가 안방에 앉아 모든 반칙과 골 장면을 ‘주심보다 정확히’ 볼 수 있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심이 몇십 년전과 똑같은 원칙에만 의존해 판정할 필요가 있을까. ‘주심의 목격 여하’가 기준이던 것은 주심이 가장 정확히 판정할 위치에 있던 시절 얘기다. 모든 분야 도입이 어렵다면, 골이나 오프사이드 판독과 같이 승부에 결정적 변수가 될 항목부터 손을 대보는 게 좋겠다. 골 판독의 경우, 당장의 기술 도입이 어렵다면 심판을 두 명 더 두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이미 몇몇 대회에서는 양쪽 골대 뒤에 각 한 명의 심판을 더 두는 ‘6심제’를 적용해왔다. 월드컵에 도입을 미룰 이유가 없다. 결론은 하나다. 오심 가능성을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것. 방법이 무엇이든 월드컵이 오심에 의해 훼손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서형욱(MBC 축구해설위원)

보수적인 FIFA는 이번 월드컵의 굵직한 명승부를 몇 번이나 망친 오심에 놀랍도록 초연한 태도를 보였다. 결론은 단순하다. FIFA는 이윤을 원하며, 이윤은 재미가 있어야 보장되기 때문이다. 축구는 원초적이고 우연적이기 때문에 재미있다. 발놀림은 손보다 덜 정제되어 있고 모든 골에는 일정부분 우연이 개입한다. 기술과 체력, 전술뿐 아니라 기세와 태도, 그리고 흐름도 중요하다. 축구에선 하나의 사건 때문에 흐름이 단번에 뒤집히곤 한다. 그리고 필드에선 무슨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약체가 최강팀을 잡을 수도 있는게 축구다. 다른 종목에 비해 심판의 독재가 심한 이유는 이 카오스적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FIFA가 보수적인 이유는 결국 축구의 매력을 가장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심이 개입하면 시합의 흐름은 삼천포로 빠진다. 축구는 싸움이 아니라 게임이다. 패자뿐 아니라 관중과 시청자도 결과에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축구의 본질과 게임의 원칙이 충돌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FIFA는 비디오 판독 등 기술자체에는 큰 거부감이 없다. FIFA가 경계하는 것은 기술이 개입함으로써 시합의 흐름이 끊기는 것이다. 그러나 시합 자체를 위해선 오심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결국 타협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골에 대해서라면 FIFA도 양보할 수 있지 않을까. 골이 선언되는 순간 어차피 시합은 잠시 멈춘다. 1) 노골이 골로 둔갑했다면 이미 흐름이 끊긴 후다. 2) 정당한 골이지만 노골이 선언된 경우 어차피 흐름은 멈췄어야 한다. 카메라 기술은 1초 전의 상황도 고스란히 재현해낸다. 골에 대해서만큼은 재고와 번복의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심판의 권위를 조금 양보하는 게 어떨까? 권위란 권력뿐 아니라 공정함에서도 나오는 것이니까.
필독(<딴지일보> 기자)

    에디터
    문성원
    스탭
    아트 에디터/박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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